20220713 수요 가정예배 룻기 4장 7~17절(다윗의 조상)
【준비찬송】 찬송가 445장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입니다.
지금부터 22년 7월 13일 수요 가정예배를 드리겠습니다.
【개회찬송】 찬송가 31장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개회기도】 언제 어디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 오늘도 주님이 주신 아름다운 동산 삼채원에서 저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며 예배합니다. 저희 예배를 받아주옵소서. 주님의 선한 뜻을 알지 못하는 저희들은 하나님을 향해 간구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해 방황하며 헛된 노력을 하고 있는 저희들입니다. 주님, 저희의 생각을 변화시켜 주시고 주님의 뜻에 알맞은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옵소서. 저희들의 기도를 들어주실 줄 믿사옵고,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신앙고백】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 하겠습니다.
【찬송】 찬송가 449장 예수 따라가며 찬송하신 뒤에 황보 송옥 사모님이 대표 기도해주시겠습니다.
【대표기도】 황보 송옥 사모
【성경봉독】룻기 4장 7~17절. 7.옛적 이스라엘 중에는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사람이 그의 신을 벗어 그의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이 이스라엘 중에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 8.이에 그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사라 하고 그의 신을 벗는지라 9.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고 10.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맞이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 그의 이름이 그의 형제 중과 그 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아니하게 함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느니라 하니 11.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이르되 우리가 증인이 되나니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네가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게 하시기를 원하며 12.여호와께서 이 젊은 여자로 말미암아 네게 상속자를 주사 네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13.이에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그에게 들어갔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14.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15.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하니라 16.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17.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아멘.
【특별찬양】 찬송가 452장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입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오늘도 함께 하셔서 저희 가정과 나라를 지켜주시는 주님을 생각하며 기쁜 마음으로 주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찬양하며 말씀을 듣고 기도로 예배할 때 주님이 베푸시는 한량없는 은혜를 누릴 수 있는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올해부터는 구약성경을 좀 더 자세히 읽고 깊이 묵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룻기 1~4장 중에서, 그리고 다음 예배에서는 사무엘상 1~5장을 읽고 묵상하고자 합니다. 저희들이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 성령님 함께 하셔서 우리를 향한 주님의 뜻을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말씀제목】 다윗의 조상. 이 말씀으로 은혜 받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룻기의 구조는 1장은 절망적인 현실을 보여주고 있으며, 2장은 희망의 은혜가 찾아옴을 말합니다. 그리고 3장에서는 믿음으로 은혜를 붙잡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4장은 하나님 나라의 회복이 그 주제입니다. 하나님은 보아스를 통해서 나오미와 룻의 인생을 통째로 바꾸는 역사를 이루시고, 그들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금 회복시켜 주십니다. 룻은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레아와 라헬처럼 존귀하게 되어 다시금 이스라엘을 일으킵니다. 이처럼 우리도 절망과 아픔의 시대를 살면서 오직 은혜로 찾아와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분을 주님으로 모시고 이 땅의 회복을 위해 간절히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사기와도 같은 당시의 혼란이 사무엘상하에 나타난 다윗왕의 도래로 온전히 회복되는 역사가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도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룻기처럼, 마치 쓴물이 단물로 되듯이 온전히 바꾸어지길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이 나오는 룻기 4장은 3장 말씀에서 이어집니다. 3장은 룻이 보아스에게 기업 물어줄 것을 부탁하고, 보아스가 그 부탁을 들어주겠다는 이야기입니다. 개인적 호감을 표시하거나 자기 삶의 안정을 위한 것을 넘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믿음으로 이러한 결정을 내리고 있습니다. 4장은 하나님께서 보아스를 기업 무를 자로 세워주셔서 나오미와 룻을 높이시는 이야기입니다. 크게 세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전반부는 1~7절로 하나님께서 보아스를 룻의 기업 무를 자로 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반부는 8~17절까지로 하나님께서 보아스와 룻이 결혼하게 하시고 룻에게 후사를 주셔서 나오미를 고통에서 회복시키십니다. 18~22절 후반부에서는 하나님이 룻을 다윗의 조상으로 세우시고 있습니다.
4장 전반부에서 보아스는 자기보다 앞선 기업 무를 자인 아무개를 불러 기업을 무르겠느냐고 묻습니다. 그가 “무르겠다고” 합니다. 약간 당황한 보아스가 말합니다. 기업을 무르게 된다면 “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 곧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야 할지니라” 하고 기업 무름의 의미를 정확히 짚어줍니다. 그러자 그 기업 무를 자가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하여 무르지 못하겠다”하고 말합니다.
오늘 말씀은 그 ‘아무개’로부터 기업 무를 권한을 증명 받고, 보아스는 룻과 결혼하여 텅 빈 인생이던 나오미가 아기 오벳을 품에 안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을 낳았더라”는 룻기의 마지막 문장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이처럼 룻이 다윗의 조상이 되고,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님을 알리는 것이 룻기의 숨겨진 결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7절입니다. “옛적 이스라엘 중에는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사람이 그의 신을 벗어 그의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이 이스라엘 중에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 기업 무를 자가 그의 신을 벗어 이웃에게 줍니다. 본절은 다윗 왕이나 그 후대의 어느 한 시점에서 볼 때 옛날에 해당하는 사사 시대를 그 시점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은 저자가 살고 있던 시대에는 이 관습이 사라졌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옛날에는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하는 일이 신을 벗어 이웃에게 주었다는 것입니다. 본래 신을 벗기는 행위는 상대편에게 모욕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계대 결혼을 거부당한 과부가 장로들 앞에서 상대편에게 나아가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 얼굴에 침을 뱉도록 규정된 신명기 율법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신25:9절입니다. “그의 형제의 아내가 장로들 앞에서 그에게 나아가서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이르기를 그의 형제의 집을 세우기를 즐겨 아니하는 자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고”
이런 의미에서 1세기의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는 보아스가 룻으로 하여금 기업 무를 권리를 가진 자의 신발을 벗기고, 그의 얼굴에 침을 뱉도록 했다고 해석하였습니다. 그러나 본절에서는 이러한 의미로 신을 벗었다기 보다는 땅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 또는 양도한다는 뜻을 상징하는 행동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즉 신발은 땅을 직접 밟을 수 있는 매체입니다. 따라서 이것을 벗어 상대방에게 넘겨준다는 것은 그 땅을 양도 또는 포기한다는 사실을 상징합니다. 반대로 땅을 구입한 자는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확인하는 절차로 직접 산 땅을 발로 밟는 공증(公證) 순서를 치렀다 합니다. 또한 신발은 힘과 권위의 상징이었으므로(시 60:8) 이것을 벗어 상대편 사람에게 준다는 것은 자신이 지닌 권리를 양도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신발을 다른 사람에 의해 벗기는 것은, 힘과 권위를 타인에게 빼앗김으로써 수치를 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본절은 계대 결혼 관습에서 계대 결혼을 거부당한 과부가 장로들 앞에서 상대편을 모욕 주기 위해 신을 벗긴 것(신25:5-10)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습니다. 하지만 상징적 의미로는 서로 연관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본문 8절입니다. “이에 그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사라 하고 그의 신을 벗는지라”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사라하고 그의 신을 벗었습니다. 보아스가 기업을 무르게 되면, 보아스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기업 무를 권리를 가진 자 자신은 재산상의 손해를 우려하여 그 권리를 포기했으면서, 보아스가 그 권리를 취하게 되면 이익이 될 것 이라는 표현을 썼다는 것은 다소 이상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기업 무르는 문제를 보아스가 먼저 제기했으므로, 이 문제에 보아스가 어느 정도 관련되어 있을 것으로 추측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포기하는 것이 보아스에게 이익이 되는 것처럼 표현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무튼 이로써 이제 보아스와 룻과의 결혼은 율법적으로나, 사회·도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의 진행은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의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본문 9절입니다. “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고” 보아스는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일에 증인이 되었습니다. 베들레헴 성읍에 있는 기업 무를 땅은 본래 엘리멜렉의 소유였었습니다. 그렇지만 본절에서 저자가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이라고 그의 아들들까지 언급한 것은 상속에 관한 법적인 절차를 보여 주기 위함입니다. 즉 엘리멜렉이 죽게 되자 그 땅은 당연히 그의 두 아들들에게 상속되었으며, 이젠 그의 두 아들들조차 죽었으므로 그들의 두 미망인들에게 물려질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중 오르바는 모압 땅에 남았으므로 룻만이 법적으로는 그 땅의 소유자였던 것 같은데, 실제로 룻 역시 본래 이방 여인이었으므로 그러한 기업의 땅 상속에 관해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따라서 여전히 과부로 남아 있는 시모(媤母) 나오미가 실제로 그 땅을 관리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보아스는 법적인 절차를 설명함에 있어서 나오미의 손, 즉 나오미의 권위 또는 허락 하에서 모든 일이 이루어졌음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입니다.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맞이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 그의 이름이 그의 형제 중과 그 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아니하게 함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느니라 하니” 룻을 사서 보아스의 아내로 맞이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울 것에 대하여도 증인이 되었습니다. 룻을 사서라는 말은 인신(人身) 매매의 의미가 아닙니다. 당시 기업을 무를 때 돈을 주고 물렀을 뿐만 아니라, 계대 결혼까지 이행하여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보아스가 기업을 무름으로 해서 룻도 계대 결혼을 통해 보아스에게로 오게 되어 있었으므로 이런 표현을 사용했을 뿐입니다. 보아스는 죽은 자의 이름, 즉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의 이름으로 자신이 무른 땅을 상속하겠다고 선포했습니다. 즉 이것은 룻과 자신 사이에서 나는 아들을 엘리멜렉 가문의 이름으로 기업을 잇게 하겠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보아스는 첫 기업 무를 권리를 가졌던 사람이 말했던 것과는 달리(8절) 자신을 위해 기업을 무른 것이 아니라, 사라지게 된 자신의 친족 엘리멜렉의 가문을 위해서 기업 무름을 해주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보아스가 율법의 정신을 바로 이해하여 기업 무를 자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했음을 의미합니다. 성문(城門)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장소입니다. 그러므로 룻을 통해서 날 아들이 엘리멜렉 가문의 이름으로 그 땅을 상속하게 되면, 많은 사람이 왕래하는 이 성문에서 엘리멜렉 가문의 이름은 끊어지지 않고 모든 사람의 입에서 오르내리게 될 것이었습니다. 기업을 무른다는 것은 자기의 희생을 감당하면서 형제의 가정을 세우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지는 것입니다. 헤세드 즉 자비 은혜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보아스는 예수님의 예표가 되는 사람인 것입니다.
본문 11절입니다.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이르되 우리가 증인이 되나니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네가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게 하시기를 원하며”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도 증인으로 확인하며 축복을 기원합니다. 라헬과 레아는 족장 야곱의 아내로서, 이스라엘 12지파를 형성한 12아들들의 어머니입니다. 따라서 장로들과 백성들은 룻 역시 여호와께 그러한 풍성한 복을 받아 자녀의 번성은 물론 라헬과 레아와 같이 믿음의 어미가 되도록 해달라고 축복하며, 기원하였습니다. 한편 여기서 야곱의 아내들 중 라헬과 레아만이 언급되고 그들의 여종들인 빌하와 실바의 이름은 제외되었습니다. 이것은 여종이 낳은 아들은 그 여 주인의 아들로 간주되었던 당시 이스라엘의 풍속을 보여 줍니다(창 30:1-13). 모든 백성들이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게 하시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에브랏은 베들레헴의 옛 이름입니다(창 48:7). 따라서 이 축복의 말은 유사한 내용을 시적(時的)으로 반복해서 표현하는 히브리 문학의 동의 대구법으로 표현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형태의 동의 대구법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재삼 강조할 때 흔히 사용되는 수사법입니다. 한편 보아스의 기업 무르는 일에 증인으로 참석한 장로들과 백성들의 이 축복은 보아스를 위하여 비는 축복의 내용으로, 곧 보아스가 근족을 위해 자기희생적인 정신으로 율법의 정도(正道)를 따라 진실 되게 행함을 축복하는 내용입니다. 사실 당시 사사 시대의 전반적인 타락상을 고려할 때 이러한 보아스의 정신은 실로 높이 살만한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이번 일로 인해 보아스의 덕망은 더 널리 알려졌을 것입니다.
본문 1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 젊은 여자로 말미암아 네게 상속자를 주사 네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룻으로 말미암아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합니다.
룻에게 사용된 젊은 여자라는 말은 그녀가 아직도 젊은 과부였기 때문입니다.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말합니다. 여기서 베레스는 다말이 그의 시아버지 유다와 부정한 방법으로 동침하여 낳았던 쌍동이 아들, 곧 베레스와 세라 중 차자(次子)였습니다(창 38:27-30). 그런데 여기서 베레스의 이름만 언급되고 세라의 이름이 빠진 이유는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습니다. 즉 18절 이하에 언급된 족보에서 처럼 보아스가 베레스의 후사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베레스는 보아스의 직계 조상이었으므로 여기서 베레스만 언급되고, 보아스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세라의 이름은 생략된 것입니다. 한편 본절에서 장로들이 특별히 베레스의 집에 대하여 언급한 것은 베레스가 계대 결혼법에 의해 태어나서 유력한 보아스의 조상이 된 것 같이, 장차 룻과 보아스 사이에서 태어날 아이도 이와 같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습니다.
본문 13절입니다. “이에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그에게 들어갔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아들을 낳았습니다. 보아스가 룻을 취하여 아내로 삼음으로서 모압 여인 룻은 가나안 여인 라합 및 다말과 더불어 여인 중 그리스도의 계보에 들게 되는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마1:5절입니다.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그런데 사실 구속 역사 속에서 모압의 인상은 매우 부정적입니다. 왜냐하면 모압 족속은 본래 근친상간에 의하여 생겨난 부족이며(창19:31이하) 출애굽 중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적대적이었고(민 22:2-6), 바알브올 사건 때에는 이스라엘을 범죄하게 하는 올무가 되기도 하였기 때문입니다(민 25장). 그래서 모압 사람은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율법에 규정되기도 했습니다(신 23:3). 이처럼 혈통적으로 볼 때 모압의 딸 룻은 마땅히 저주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었지만, 자기 민족의 신인 그모스를 버리고 온전히 여호와를 신앙함으로써 하나님의 크신 구원의 은총을 힘입을 수 있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 복을 받았으니 이것은 하나님의 은총이 거둔 놀라운 승리였던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아들을 낳게 되는 것이 무엇보다 귀중한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겨졌습니다. 반대로 아들을 낳지 못한 여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으로 여겨졌으므로(시 127:3) 슬픔 가운데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삼상 1:11). 따라서 본절은 룻이 하나님의 돌보심과 축복 가운데서 성읍 장로들의 소원대로 아들을 낳게 된 사실을 강조한 것입니다.
본문 14절입니다.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찬송하라 합니다.
찬송할지로다 하는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라크’는 ‘무릎을 꿇다’, ‘축복하다’, ‘문안하다’등 다양한 의미를 지닙니다. 그런데 이 말이 인간 대 인간 사이에 사용될 때에는 주로 ‘무릎을 꿇다’, ‘축복을 빌다’, 등의 뜻으로 사용됩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을 향하여 이 말을 사용할 때에는 ‘찬양하다’란 의미가 됩니다. 그 이유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 이 말을 사용할 때에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축복에 대한 감사와 응답으로 이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신학자는 여기서 기업 무를 자로 보아스에게 적용시키고 있으나, 문맥으로나 법적으로 볼 때 분명 룻이 보아스를 통해 낳은 아들을 가리킵니다. 왜냐하면 룻이 낳은 아들은 법적으로 엘리멜렉 가문을 이어 나갈 자이며(10절), 따라서 나오미에게는 마치 아들처럼 되어 그녀에게 위로와 기쁨을 줌으로써, 결국 나오미의 참 기업 무를 자(고엘)가 되기 때문입니다.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는 것은 어떤 사람의 이름이 사람들 사이에서 좋은 의미로 많이 불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본문 15절입니다.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하니라”
여기서 네 생명의 회복자라는 말은 나오미의 생명이 새롭게 된다는 것, 즉 마치 죽은 것과 다름없던 나오미의 가정이었습니다. 엘리멜렉 가문이 룻이 낳은 그 아이로 인해 생기를 되찾게 된 것에 대한 표현입니다.
네 노년의 봉양자라는 말은 나오미에게 손자가 생겼으므로, 그로 인해 그녀가 비록 늙더라도 장성한 손자의 봉양을 받게 될 것을 일컫는 말입니다.
일곱 아들보다 귀한 며느리라는 말은 룻이 단순히 아들을 낳았기 때문에 나오미에게 있어서 일곱 아들보다 귀하게 여겨진 것이 아닙니다. 그 동안 룻이 시모를 잘 공경하고 헌신하며 순종하였던 사실에 근거하여, 결국 그러한 지극한 효성이 열매를 맺게 된 사실을 칭찬한 말입니다. 특히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일곱이라는 숫자는 충만이나 완전을 상징하며, 하나님께로부터 자녀의 축복을 풍성히 받았음을 상징할 때도 사용되었습니다(삼상 2:5). 따라서 본절은 시모에 대한 룻의 공경과 헌신이 많은 아들의 그것보다 더욱 컸다는 것을 생생히 표현한 말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축복이 아닙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조금은 잘 살 수 있습니다. 빠져 나올 수 없는 웅덩이에 빠진 사람을 건지는 것은 자기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도움의 손길, 즉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나오미와 오벳은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연은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우리들과 하나님의 양자 관계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롬8:14~15절입니다. “14.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예수님이 고엘이 되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양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16~17절입니다. “16.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17.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그 아이의 이름은 오벳 이었습니다. 혹자는 나오미가 단순히 그 아이의 보모가 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사실상 이것은 보아스와 룻을 통해서 난 아이가 엘리멜렉의 가문에 속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나오미가 그 손자를 자신의 양자(養子)로 삼았다는 의미가 됩니다.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는 말은 보아스와 룻이 낳은 아들은 계대 결혼에 의해 태어난 아이이므로, 곧 나오미의 남편인 엘리멜렉 가문을 잇게 될 아이였습니다(10절). 한편 이 아이의 이름 오벳은 섬기는 자를 의미합니다. 이에 따라 탈굼 역에서는 ‘오벳’을 여호와의 종으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의미의 히브리어로 ‘오바댜’가 있으므로 그렇게 의역될 필요는 없습니다. 단지 여기서 ‘오벳’이란 이름은 늙은 나오미를 봉양하고 섬기는 자라는 의미에서(15절)그처럼 불러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는 다윗의 아비인 이새의 아비였더라는 말은 본서의 저자가 다음에 이어지는 다윗의 족보를 열거하기 전에 삽입이 되어 있습니다. 특히 본서의 이야기를 마무리 하면서 특별히 본 구절을 삽입시킨 것은 저자가 본서를 기록한 목적을 보여 주기 위함입니다. 즉 이어서 세워질 다윗 왕국을 미리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룻이 다윗의 조상이 되었음을 자랑스럽게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룻기 4장의 일부를 읽고 묵상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주님의 뜻을 조금이나마 더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정착하며 복락을 누릴 수 있게 배려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법도를 따르며 순종하면 누릴 수 있는 천국 생활의 기회를 뿌리치고 있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사사기를 통해 보았습니다. 교만한 이스라엘은 남아 있는 가나안 족속의 우상에 빠져 타락의 길로 들어갑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의 본성을 아시고 남아 있는 이방인을 사용하여 가시처럼 시험하시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눈에 보기에 좋은 우상을 섬기는 가나안 족속들의 풍습에 물이 들어 스스로는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는 무기력한 상태에 빠졌습니다. 하나님은 그래도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하신 약속을 기억하시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윗 왕국을 세우시려고 합니다. 그에 대한 암시가 바로 룻기에서 시작됩니다. 룻기는 고부간의 갈등이나 좋은 시어머니, 좋은 며느리의 모델을 보여주는 책이 아닙니다. 그런 이야기는 굳이 성경이 아니라 다른 곳에 더 많습니다. 룻기는 사사기의 혼란을 겪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사무엘상하에 나타난 다윗의 시대로 이어지는가 하는 연결점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한 마디로 사사기는 환란이고 사무엘상하는 구원의 소식입니다. 그 가운데 무엇이 있어서 이렇게 변화되었는가 하는 신앙생활의 열쇠가 바로 룻기입니다. 혼돈과 아픔의 시대, 분노와 허탈의 시대에 주시는 하나님의 치유의 손길이 바로 룻기입니다. 룻기를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우리들이 되게 하옵소서. 오직 주님 말씀에 순종하는 우리들이 되어 이 땅에서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를 풍성하게 누리게 하옵소서.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폐회찬송】 찬송가 459장 누가 주를 따라 입니다.
【축도】 축도로 수요 예배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감동 감화 내주 역사 충만 교통하심이 오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 주신 은혜를 잊지 않고 표현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다짐하는 성도들의 머리 위에와 그 가정 위에와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교회 위에와 삼채원 가정교회 위에와 이 나라 이 민족 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있을 지어다. 아멘
**설교문 작성에 참고한 설교 내용: 부산성민교회 홍융희 목사님, 삼일교회 송태근 목사님, 성서학당 김윤희 목사님, 헤브론 선교회 자료, 호크마 주석 등
매일 매순간 주님 안에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하옵소서.
2022년 7월 13일 수요 가정예배 순서
【준비찬송】 찬송가 445장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 다같이
【개회찬송】 찬송가 31장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 다같이
【개회기도】 예배 인도자
【신앙고백】 사도신경 - 다같이
【찬송】 찬송가 449장 예수 따라가며 - 다같이
【대표기도】 황보 송옥 사모
【성경봉독】 룻기 4장 7~17절
【특별찬양】 찬송가 452장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 다 같이
【말씀선포】 다윗의 조상 - 예배 인도자
【폐회찬송】 찬송가 459장 누가 주를 따라 - 다같이
【축도】 예배 인도자
【광고】 주님께서 허락하신 일에 항상 기도로 준비하며, 최선을 다하는 우리들이 될 수 있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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