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22 수요 가정예배 살전1.(하나님의 복음. 살전2:1~5)
【준비찬송】 찬송가 320장 나의 죄를 정케 하사 입니다.
지금부터 21년 9월 22일 수요 가정예배를 드리겠습니다.
【개회찬송】 찬송가 31장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개회기도】 어디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 주님이 임재하시는 삼채원 동산에서 저희 부부가 함께 예배를 드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즐거운 추석 명절을 보내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이들이 집에 안전히 도착할 때까지 지켜주시옵소서. 죄인을 구원하시고 영생의 복락을 주시는 주님! 원수까지도 사랑하라 하시는 주님! 예수님이 주신 새 계명에 따라 맡은 일을 즐겁게 감당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게 하옵소서. 어렵고 힘든 이웃과 가족의 아픔을 생각하는 우리들이 되게 하옵소서. 모든 고통 받는 자들을 도우시며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신앙고백】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 하겠습니다.
【찬송】 찬송가 322장 세상의 헛된 신을 버리고 찬송하신 뒤에 황보 송옥 사모님이 대표 기도해주시겠습니다.
【대표기도】 황보 송옥 사모
【성경봉독】 데살로니가전서 2장 1~5절 1.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 2.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3.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 4.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5.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언하시느니라 아멘.
【특별찬양】 찬송가 212장 겸손히 주를 섬길 때 입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이곳 삼채원 동산에서 저희들이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예배드릴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말씀과 찬송과 기도 가운데 주님이 베푸시는 은총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올해는 신약성경을 좀 더 자세히 읽고 깊이 묵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데살로니가전서 1~3장 중에서, 그리고 다음 예배에서는 데살로니가전서 4~5장 중의 일부를 읽고 묵상하고자 합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 성령님 함께하셔서 주님의 뜻을 더 깊고,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는 지혜와 명철을 가지게 허락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말씀 제목】하나님의 복음. 이 말씀으로 은혜 받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 바울사도가 데살로니가에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헛되지 않았음을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많은 고난과 핍박을 받으며 쫓겨나 데살로니가에 들어갔지만 헛수고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 까닭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복음의 열매가 되어 맺혔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에는 교회를 상징하는 건물이나 어떤 조직도 없었습니다. 성도들이 바로 참된 교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쫓기듯이 단지 3주 동안 복음을 전하고 떠난 곳입니다. 그럼에도 놀라운 복음의 능력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들이 복음을 듣고서 복음의 열매인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나타나고, 다른 교회들에 본이 될 정도로 성장하였던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2절에서 데살로니가에 복음이 전하여 지고 열매들이 나타난 것을 하나님의 복음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우리가 전한 복음이라고도 하지만 이곳에서는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이란 그 복음의 기원이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12제자들과는 다르게 복음을 받았습니다. 12제자들은 예수님과 3년을 함께 동행하였고,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십자가에 죽으신 분이 부활하셨고 주와 메시야가 되셨다고 증거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증거를 유대교에 대한 이단으로 보고 이들을 잡으러 다니던 사람이 바울입니다. 바울이 예수를 따르는 이단들을 잡으려고 다메섹으로 가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하늘에서 강렬한 빛이 비치고 음성이 들린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받은 복음의 기원이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1:10-12절입니다. “10.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11.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12.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사람에게서 받은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받은 것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전하는 이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가 있다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도 저주를 받으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받은 이러한 복음이 12제자들과 같은 것입니다. 다만 바울사도의 특징이라면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복음이 이미 유대의 경계를 넘어 이방인에게 까지 전파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맨 나중에 부르심을 입은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전한 하나님 복음의 기원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직접 받은 복음이기에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복음을 주신 분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이란, 말 그대로 복된 소식, 기쁜 소식인데 왜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기쁜 소식이면 듣는 사람들이 기뻐해야 하는데, 왜 바울사도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라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4절에서도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말합니다. 이해하기 참 어렵습니다. 기쁜 소식이라면 모든 사람에게 기쁜 소식이 되어야 하는데 왜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까? 여기에서 참된 복음과 가짜 복음이 구별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기쁜 소식이란 어떤 것들입니까? 아주 가난하게 사는 사람이라면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병든 사람이라면 병고침을 받는 것입니다. 학생이면 공부를 잘하는 것이고, 운동선수라면 최고의 선수가 되는 것입니다. 사업가라면 사업이 잘 되는 것이 됩니다. 이러한 것들이 사람에게 기쁜 소식이 됩니다.
하지만 복음은 이런 것을 죄라고 고발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기쁜 소식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인간에게 기쁜 소식을 주지 않았다고 해서 하나님의 아들을 죽였다는 것이 복음서의 내용입니다. 이러한 면에서 보면 복음이란 오히려 인간을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숨기고 있는 죄들을 들추어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살아나신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믿으면 죄 사함을 받는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이것을 사람들이 기뻐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말라고 하십니다. 돼지가 진주의 가치를 모르는 것입니다. 돼지는 오직 자기의 배만 채워지면 행복한 것입니다. 돼지에게 진주를 던져 주면 오히려 그것을 발로 밟고 진주를 던져준 사람을 헤치려합니다. 돼지에게 필요한 기쁜 소식은 진주가 아니라 배를 채울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이 비유를 예수님께서 돼지를 보고서 말씀하신 것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돼지는 자기 배의 80% 정도만 먹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자기 위장의 120%를 넘게 먹습니다. 사람의 탐심을 보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복음이 탐심으로 가득한 인간에게 기쁜 소식으로 들어오지 않는 것입니다.
인간은 허물과 죄로 죽어 있기에 죄에 대하여 고통으로 여기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고통이 아닌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을 몰라도 고통으로 여기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나병에 걸린 사람처럼 통증이 없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나병에 대한 상세한 규례들이 나와 있습니다. 나병이 있는 사람은 철저히 격리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들이 무감각하고 구제불능의 나병환자인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사람이 실수도 하고 잘못을 한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구제불능의 죄인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싫다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두고서 신도 이만큼 도와주니 인간도 이만큼은 노력해야한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인간에게 기쁜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이 전한 복음은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의인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구원에 이른다는 말이 기쁘지 않다는 것입니다.
2절을 봅니다. 바울은 이미 빌립보에서 많은 고난과 능욕을 받았습니다. 고난은 육체적인 것이고 능욕은 수치와 모욕이니까 정신적인 것입니다. 바울은 인간이 받을 수 있는 고난은 다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복음을 전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정상 아닙니까?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인 복음을 전하면 환영을 받고 대접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왜 고난과 능욕을 받는 것입니까? 복음 안에 사람이 기뻐하지 않는 소식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음은 하나님의 필요를 채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을 복음 안에 넣어두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율법이 아닌 의입니다.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의를 우리들에게 주시려는 것입니다. 의가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지만 죄로 인하여 그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예수를 믿는다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도 하나님께서 복음을 통하여 주시는 그 의를 받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의에 다른 것을 더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자가 싸워야 하는 싸움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면 이것도 저것도 인정하여 주면 됩니다. 하지만 복음이 어디로부터 온 것입니까? 사람에게서 온 것이라면 그 사람을 기쁘게 하면 됩니다. 복음이란 하나님께서 온 복음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16-17절입니다. “16.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 안에 들어 있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의가 복음 안에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 하나님의 의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다른 복음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되지 않는 것은 모두가 쓰레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시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 외의 어떠한 것도 의로 여기지 않습니다. 이 말은 인간의 애씀과 수고와 땀과 심지어 피 흘림까지도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것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인간 스스로 쌓아온 의와 선하게 여긴 것들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의만 붙들라는 것입니다. 신앙의 싸움은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행한 것을 붙들 것인가? 아니면 나 행한 것 죄뿐이니 하면서 주님의 의만을 붙들 것인가?
바울사도가 사람을 기쁘게 하지 않았다는 것은, 오직 복음만을 전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복음을 짧은 기간 동안에 전하였는데도 복음의 열매가 나타난 것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복음이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이기에 고난과 능욕을 극복하고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고난과 능욕가운데서 전하여진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역시 하나님의 복음이기에 그런 것입니다. 복음을 들은 자들이 세상의 영광과 부귀를 누렸다면 바울은 아마 가는 곳마다 최고의 대접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그것은 사람을 기쁘게 함으로 오는 결과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온전히 율법을 잘 지키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결국 세상에서 성공하게 될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내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말을 아직도 좋아합니다. 예수님의 시작과 끝은 어떠합니까? 말구유에서 시작하였습니다. 삶의 과정은 고난과 능욕이었습니다. 그 끝은 십자가의 죽으심입니다. 성도가 지상에서 예수님을 따르게 되면 겪게 될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가 경건하게 살며 주님을 따르고자 하면 할수록 고난과 능욕이 따르게 됩니다. 무릇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말하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우리가 경건하게 살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핍박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려고 마음을 먹으면 당장 핍박이 오게 됩니다. 회사에서 부정한 일을 하지 못하겠다고 하면, "그렇게 해서 회사가 돌아가겠나?" "제가 예수 믿기에 부정한 일은 못하겠습니다." "그래? 그러면 예수를 택하든지 회사를 택하든지 결정하게!" 헌금을 많이 하면 가정에서는 “아니 우리는 어떻게 살려고 그렇게 많이 헌금합니까? 이름을 부르지도 않는데 적당히 하지. 아이들 학원비는 어떻게 하고, 집은 언제 장만 하려고 합니까?” 당장 불평이 나올 것입니다.
요즈음도 참 복음을 전하게 되면, 옛날처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기뻐하는 복음으로 변질을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바른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사도가 어떠한 싸움을 싸웠는지 살펴봅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에게 좋은 것을 추구하고자 하는 본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는 사람의 기쁨이 아닌 하나님의 기쁨에 관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쁨은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복음을 전하는 자세가 3절과 5절에 나타납니다. 3절에서, “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말합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려면 간사하게 하면 됩니다. 속으로 아니더라도 밖으로 미소 지으며 부드럽고 친절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부정한 것이나 속임수로도 아니하였다는 것입니다. 속임수란 고기를 낚을 때 사용하는 미끼를 말합니다. 교회 다니면, 당신이 원하는 것을 준다고 합니다. 이것이 속임수라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를 사탕으로 유혹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마다 가지고 싶은 욕망들이 있는데 그것을 이루어 준다고 유혹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유혹당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너희가 왜 나를 따르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나의 살과 피를 주겠다는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인기를 얻으려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준다고 하면 됩니다. 하지만 바울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고 그것을 얻도록 하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간사함이나 부정이나 속임수로 하지 않고 오직 순전하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복음이기 때문에 믿는 자들이 생겨나오는 것입니다.
5절입니다. 바울은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아첨의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상대방이 거짓인줄 알면서도 아첨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진심어린 충고는 싫어합니다. 아첨을 주석에 찾아보면 “감언이설(甘言利說). 어떤 사람에게 안도감을 줄 목적으로 그럴 듯한 말을 하여 자기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나옵니다. 아첨을 왜 하는 것입니까? 상대방에게 안도감을 주려고 거짓 확신과 거짓 평안을 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첨을 당하는 자는 모릅니다. 자신이 평안하게 된다고 하니 그저 기분이 좋은 것입니다. 그것을 이용하여 자신이 얻고자하는 목적을 이루는 것입니다.
바울사도에게는 자신의 목적이나 의도가 없습니다. 자신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종일뿐입니다. 사람들에게 아첨의 말을 하여서 자기를 따르게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전화 한통 없다가도 선거가 임박하게 되면 전화하는 것입니다. 아첨의 말을 하는 것은 결국 탐심의 탈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위하는 것처럼, 무엇보다도 교회를 위하는 것처럼 탐심의 탈을 쓰고 나오는 것입니다. 탈을 벗기면 하나님도 아니고 교회도 아니고 결국 다른 목적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욕구충족입니다. 자기의 세력화입니다. 이것을 위해 입만 벙긋하면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일, 교회를 위한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 얼마든지 탐심의 탈을 쓰고 나올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설마 나는 아니겠지, 설마 저 사람은 아니겠지, 그러나 설마가 사람 잡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주의하여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어떠하였습니까? 간사하거나 부정하거나 속임수로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아첨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바울은 정말 성실하고 진실하다고 사람들이 인정했습니까? 오히려 엄청난 핍박과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을 직접 받았기 때문에 자기에게 영광이 되느냐 아니냐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4절을 봅니다.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우리가 주님을 믿는다는 것, 즉 복음 받은 증거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삶을 사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간사하게 하거나 속임수를 쓰거나 아첨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 계획, 행동 모두를 하나님이 감찰하시고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데살로니가전서 2장의 일부를 읽고 묵상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주님의 뜻을 조금이나마 더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선악과를 먹은 우리들은 지혜가 부족하여 하나님의 뜻을 잘 알지 못합니다. 내 생각은 내려놓고,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뜻을 올바로 분별할 수 있게 하옵소서. 주님이 믿음을 주시지 않으시면 미련하고 완고한 저희들은 주님의 말씀을 전혀 알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주님의 뜻을 제대로 알게 하시려고 저희에게 복음을 주셨습니다. 우리들도 참 복음이신 십자가의 예수님을 제대로 알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주님이 택한 자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폐회찬송】 찬송가 330장 어둔 밤 쉬 되리니 입니다.
【축도】 축도로 수요 예배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감동 감화 내주 역사 충만 교통하심이 오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 주신 은혜를 잊지 않고 표현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다짐하는 성도들의 머리 위에와 섬기는 교회 위에와 삼채원 가정교회 위에와 이 나라 이 민족 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있을 지어다. 아멘
매일 매순간 주님 안에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하옵소서.
2021년 9월 22일 수요 가정예배 순서
【준비찬송】 찬송가 320장 나의 죄를 정케 하사 - 다같이
【개회찬송】 찬송가 31장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 다같이
【개회기도】 예배 인도자
【신앙고백】 사도신경 - 다같이
【찬송】 찬송가 322장 세상의 헛된 신을 버리고 - 다같이
【대표기도】 황보 송옥 사모
【성경봉독】 데살로니가전서 2장 1~5절
【특별찬양】 찬송가 212장 겸손히 주를 섬길 때 – 다 같이
【말씀선포】 하나님의 복음 - 예배 인도자
【폐회찬송】 찬송가 330장 어둔 밤 쉬 되리니 - 다같이
【축도】 예배 인도자
【광고】 예배 속에서 주님의 참사랑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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