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220119 삼채원 수요가정예배 설교문

imhp 2022. 1. 19. 11:46

20220119 수요 가정예배 창세기 241~9(이삭의 결혼)

준비찬송찬송가 420장 너 성결키 위해 입니다.

지금부터 22119일 수요 가정예배를 드리겠습니다.

개회찬송찬송가 31장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개회기도언제 어디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 주님의 사랑이 머무는 이곳 삼채원 동산에서 저희 부부가 함께 예배를 드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죄인을 구원하시고 영생의 복락을 주시고자 낮고 비천한 자리에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며 기도하고 예배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티끌과 같은 저희를 위해 목숨까지도 내어주신 주님! 예수님의 사랑을 잊지 않게 하시고 오직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우리들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어린 양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아 갚을 수 없는 구원의 은혜를 받음에 감사하며 찬송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지 못하고 우리의 머리로 천국을 이루려는 모습을 보고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올바로 깨달아 보다 장성한 우리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신앙고백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 하겠습니다.

찬송찬송가 433장 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 찬송하신 뒤에 황보 송옥 사모님이 대표 기도해주시겠습니다.

대표기도황보 송옥 사모

성경봉독창세기 241~9. 1.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2.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 허벅지 밑에 네 손을 넣으라 3.내가 너에게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내가 거주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4.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5.종이 이르되 여자가 나를 따라 이 땅으로 오려고 하지 아니하거든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이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 6.아브라함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아니하도록 하라 7.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고향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8.만일 여자가 너를 따라 오려고 하지 아니하면 나의 이 맹세가 너와 상관이 없나니 오직 내 아들을 데리고 그리로 가지 말지니라 9.그 종이 이에 그의 주인 아브라함의 허벅지 아래에 손을 넣고 이 일에 대하여 그에게 맹세하였더라 아멘.

특별찬양찬송가 434장 귀하신 친구 내게 계시니 입니다.

기도사랑의 하나님! 오늘도 이곳 삼채원 동산에서 저희 부부가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예배를 드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이 주신 동산에서 주님을 바라보며 기쁨으로 찬송합니다. 오늘도 말씀과 찬송과 기도로 예배하는 중에 주님이 베푸시는 한량없는 은혜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저희들이 드리는 기도에 응답받는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올해부터는 구약성경을 좀 더 자세히 읽고 깊이 묵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창세기 23~25장 중에서, 그리고 다음 예배에서는 창세기 26~30장을 읽고 묵상하고자 합니다. 성령님 함께 하셔서 저희들이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 주님의 뜻을 더 깊고,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는 지혜와 명철을 가지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말씀 제목이삭의 결혼. 이 말씀으로 은혜 받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창세기는 크게 2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앞부분은 창세기 1~11장까지 인류의 초기 역사를 다루고 있고, 후반부는 12~50장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기원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후반부를 또 크게 나누면 12~36장까지 선민 열조와의 언약을 다루는 부분과 37~50장까지 요셉을 통한 하나님의 통치 섭리를 다루는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오늘 공부하는 부분은 창세기의 후반부 중 선민의 열조와의 언약을 다루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이스라엘 민족의 기원이 되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세 열조와 언약을 맺으시고 언약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아브라함을 갈대아에서 가나안으로 불러내어 땅과 자손과 하나님의 통치를 언약하셨습니다. 그 언약은 당대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고 이삭에게 그 언약을 계승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삭의 두 아들 중 장남 에서가 아닌 야곱에게 언약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언약하신 그 내용은 당대에는 물론 그 손자의 세대에서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과정 중에서 아브라함의 시대가 끝나가고 이삭의 시대가 전개되고 있는 부분입니다. 21장에서 이삭이 태어나고 22장에서는 이삭을 번제로 드림으로 아브라함의 신앙이 하나님께 인정받게 됩니다. 23장에서는 이삭의 어머니 사라가 죽음으로 헤브론의 마므레에 땅을 구입하여 매장합니다. 오늘 본문이 나오는 24장 말씀은 아브라함의 독자 이삭이 아내를 선택하여 혼인하는 내용으로 창세기에서 가장 긴 내용을 가진 장입니다. 25장에서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죽고 이삭에게 하나님의 언약이 계승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은 아브라함의 인생을 요약해서 알려줍니다. 1절 전반부는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의 삶은 누구나 똑 같습니다. 하지만 후반부는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누구나 똑같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만 누리는 인생의 역전인 것입니다. 여기서 복을 주셨다라고 쓰인 히브리어 바라크는 풍성하게 한다는 뜻이 있지만 무릎을 꿇다는 뜻도 가집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범사에 하나님께 무릎을 꿇음으로 복을 받은 것입니다. 복을 받으려고 억지로 무릎을 꿇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무릎 꿇는 자체가 복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따르고 섬기는 것 자체가 복이라는 것입니다.

2절부터 4까지는, 범사에 복을 받은 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과 약조를 합니다. 그를 통하여 이삭의 아내를 얻고자 여호와께 맹세하며 아브라함의 고향과 족속에게로 가서 이삭의 아내를 택하라고 지시합니다.

창세기 22장의 후반부에 보면 아브라함의 친족관계가 정리되어 있고 그 중에서 나홀의 가족 관계가 나와 있습니다. 이후에 이삭에게 언약 계승을 실현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22장에서 가족 관계를 미리 말씀하신 것입니다.

2~4절에서 아브라함의 신앙이 이삭으로 말미암아 철저한 하나님 중심 신앙이 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현실 속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의지하는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2절에 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자신의 허벅지 즉 사타구니 밑에 손을 넣게 합니다. 그리고 3에 하늘과 땅의 하나님에게 맹세하도록 하면서 이삭의 아내를 택할 때 가나안에서 택하지 말라고 합니다. 4에서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고 합니다.

하늘과 땅의 하나님이라는 것, 지난 날 동안 아브라함 자신을 언약하신대로 이끄셨던 하늘과 땅을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말합니다. 그 앞에서 맹세하기를 원한다는 것은 부정함이 없고 확실한 절대적 맹세를 하라는 뜻입니다. 늙은 종이 아브라함의 집 모든 소유를 맡았다는 말은 아브라함과 오랜 시간을 함께 했음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이 종도 아브라함과 함께 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직접 보며 체험하였기에, 그 하나님을 경외하며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삭의 아내를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택하지 못하게 한 이유는, 가나안 족속은 노아의 아들 중에 함의 후손입니다. 따라서 셈의 후손인 이삭과는 다른 족속이므로 종교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장차 그 땅을 정복하여 살게 될 때에는 그 가나안 족속을 몰아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5절입니다. 지시받은 늙은 종은 아브라함에게, 여자가 자신을 따라 오지 않겠다고 거절하면 이삭을 데리고 주인의 고향으로 가도 되느냐고 묻습니다.

6~7입니다. “6.아브라함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아니하도록 하라 7.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고향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하고 답합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을 삶 속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주실 것을 맹세로 약속하셨기에 이삭을 데리고 가나안 땅을 벗어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어 하나님께서 그의 사자를 너 보다 앞서 고향 친척의 땅으로 보내실 것이라 말합니다.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대신하여 양을 준비하셨던 것처럼 그의 아내 또한 준비하실 것이므로 거기서 이삭의 아내를 택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아브라함의 신앙은 지나온 삶 가운데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면서 만드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볼 때마다, 이삭이라는 이름을 부를 때마다 자신은 매일 죽습니다. 그렇게 내세웠던 인간적 힘과 지식을, 이삭을 잉태함과 동시에 모두 내려놓고 던져버렸습니다. 자기들이 한 일은 쓸모가 없었고 오히려 거추장스럽고 방해가 될 뿐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생각은 버려졌고 포기되어졌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1624)” 마음의 평안을 얻으려면 나의 아집과 생각, 계획을 빨리 포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포기가 빠를수록 평안은 속히 찾아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하심을 뼈 속 깊이 깨달았기에 자신의 생각과 뜻을 굽히고 온전히 하나님께 순종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삭을 통하여, 육체적이고 불순종하며 모든 것을 자기의 생각과 의지대로 행하던 아브라함을 이렇게 변화시켰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온전한 믿음의 영적 산 제물로 바꾸셨습니다. 삶 속에서 영적 예배를 드리는 예배자로 만드셨습니다(121).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형식적 신앙인이 아니라, 내면의 삶 깊은 곳에서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 생겨나 저절로 움직이게 만드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결혼시키는 과정에서 이러한 믿음을 계승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당대에 그 지역의 부자로서 주변에 많은 혼처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7절의 말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온전히 하나님께 순종하여 자기 친족 가운데서 며느리를 얻고자 합니다. 그 며느리가 리브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7절 이후의 말씀은 아브라함의 변화된 하나님 중심 가치관을 보여줍니다. 이를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아버지의 집과 고향을 떠난 것이 여호와께서 하셨음을 고백합니다. 가고 오는 것들이 나의 의지와 생각에 따른 것이 아니라 언약대로 이루시는 여호와께서 하셨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가나안 땅을 자신의 씨에게 주실 것을 맹세하신 것을 확신합니다. 그러므로 주의 사자가 앞서서 아브라함의 늙은 종도 하나님이 인도하실 것이라 말합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와 나의 씨를 인도하실 것에 대한 믿음이요 확신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되돌아봅시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얼마나 가로막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얼마나 많이 가슴이 답답해하고 가로막힘을 당했습니까? 가로 막힘을 많이 당하는 것이 은혜입니다. 가로막힘이 없다면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내 생각과는 거꾸로 살아가는데 어떻게 가로막힘이 없겠습니까? 아멘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하고 소리치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자신을 얼마나 꺾었고 포기했습니까?

적당하게 타협하면서 살려고 어느 젊은 부자 관원이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영생도 얻고 싶고 육신적인 행복도 즐기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네 소유를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셨을 때에 부자 관원은 근심하고 돌아섰습니다. 우린 육체를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육체를 가지고 있는 동안은 우리의 힘으로 죄를 떠날 수 없습니다. 다만 말씀과 성령으로 무장하여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영에 익숙한 육체가 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할 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브라함을 통하여 믿음과 행함을 정리하고 성경 전체에서 말씀하는 믿음이 무엇인지 간략하게 확인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배웠던 아브라함의 믿음이 누구의 소유인가요? 아브라함의 의지적 행위인가요? 아니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믿음을 주셔서 아브라함이 믿게 되었나요? 창세기12장부터 21장까지의 내용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언약대로 성취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을 수밖에 없도록 하나님께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게되었고 그 믿음으로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행함이 나타난 것입니다.

한 마디로 믿음은 하나님의 것이고 행함 역시 하나님의 것입니다. 죄인인 인간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하나님이 하십니다(332). 마태복음 25장에서 심판주이신 그리스도 앞에 있는 양과 염소를 보시면 확연해 집니다. 양은 자신이 행한 선한 행위를 기억도 못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 자신도 모르고 행한 것임을 알기에 자기 자신이 하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자랑할 만한 기억은 없고 주께서 하신 것으로 기억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염소는 반대입니다. 자기들은 주님께 해야 할 일을 다 하였다는 것입니다. 오직 자신의 뿐입니다.

예를 들어, 부모의 사랑을 깨달은 자녀는 하라 하지 말라는 말을 듣기 전에 먼저 효를 다하고 효도하면서도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살아왔음을 고백하며 부모님께 모든 기쁨과 영광을 돌립니다.

2237~40절입니다. 37.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이와 같으니를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와 둘째가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사랑이 같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웃이 누구입니까? 나와 가장 가까운 아내나 남편, 자식, 부모, 형제, 이웃사촌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으로 확인되는 것입니까? 나 아닌 가까이 있는 이웃을 나와 똑 같이 사랑하는 것으로 확인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 이웃이 떨어져서 구분되는 것이 아닌 같은 내용입니다. 즉 나의 이웃인 형제자매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의 영혼을 사랑하는 것과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나의 영혼 사랑 그리고 이웃의 지체를 향한 사랑은 하나이며 일체인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 공동체요 결국에는 천상교회의 하나 된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완성을 사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 이웃사랑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행위입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하십니다. 죄인 된 인간은 죄짓는 것밖에 하는 것이 없습니다. 인간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이 죄요 죄의 열매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은 하늘나라의 열매입니다. 하늘나라의 일을 하는 주체는 성령과 말씀입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랑이 없고 주께서 하셨다고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죽기 직전에 자신의 모습에 대하여 나는 죄인 중에 괴수이라고백을 합니다. 신앙적인 삶은, ‘를 포기하는 자기 부정입니다. 신앙은, ‘예수그리스도뿐입니다. 나의 행위는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드러냅니다.

성경을 공부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내용들이 많이 나옵니다. 특히 십계명이 그렇습니다. 창세기 22장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명하시는 내용들을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하고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할까요? 하나님의 명령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하여야 하는 법입니다. 그런데 이 법의 내용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온전히 지킬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지킬 수 없는 법들을 명령하셨을까요?

하나님의 언약은 인간에게 명령으로 주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주어진 언약의 말씀은 그 말씀 자체가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는 능력이 동반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성경이 하나님은 명령자로, 인간은 그 명령의 수행자로 이중적인 구조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인식하는 이유는 기독교를 계시의 종교가 아닌 계율(윤리)의 종교로 정의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란, 하나님을 나타내기 위한 목적에서 출발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직접적으로 인간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스스로 이루어 나가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명령하시고 인간이 타율적으로 수행하는 이중적인 구조가 아닌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언약은 하나님 스스로 성취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완성하시고 성취하신 것입니다. 구약의 모든 명령은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보내심으로 모두 이루실 것에 대한 그림자라 할 수 있습니다. 이삭의 결혼을 누가 시킵니까? 하나님이 결혼시킨 것입니다.

다시 본문입니다. 8절에서 아브라함은 그 종에게 만일 여자가 너를 따라 오려고 하지 아니하면 나의 이 맹세가 너와 상관이 없나니 오직 내 아들을 데리고 그리로 가지 말지니라고 말합니다. 아들을 선보이려고 데려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9절에서 늙은 종은 그의 주인 아브라함의 허벅지 아래에 손을 넣고 이삭을 위한 아내를 데려오는 일에 대하여 아브라함에게 맹세를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전염되어 종도 하나님을 믿고 따르게 됩니다.

기도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창세기 24장의 일부를 읽고 묵상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주님의 뜻을 조금이나마 더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선악과를 먹은 우리들은 지혜가 부족하여 하나님의 뜻을 잘 알지 못합니다. 내 생각은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뜻을 올바로 분별할 수 있게 하옵소서. 성경 말씀으로 전하신 하나님의 뜻을 전하시려고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 씨를 통하여 저희에게 예수님을 보내시고 믿음을 주셨습니다. 말씀이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알게 하시고, 주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게 하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영원한 언약을 하시고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옵소서. 택하신 자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폐회찬송찬송가 441장 은혜 구한 내게 은혜의 주님 입니다.

축도축도로 수요 예배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감동 감화 내주 역사 충만 교통하심이 오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 주신 은혜를 잊지 않고 표현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다짐하는 성도들의 머리 위에와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교회 위에와 삼채원 가정교회 위에와 이 나라 이 민족 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있을 지어다. 아멘

 

 

 

매일 매순간 주님 안에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하옵소서.

 

2022119일 수요 가정예배 순서

 

준비찬송 찬송가 420장 너 성결키 위해 - 다같이

 

개회찬송 찬송가 31장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 다같이

 

개회기도 예배 인도자

 

신앙고백 사도신경 - 다같이

 

찬송찬송가 433장 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 - 다같이

 

대표기도 황보 송옥 사모

 

성경봉독창세기 241~9

 

특별찬양 찬송가 434장 귀하신 친구 내게 계시니 다 같이

 

말씀선포 이삭의 결혼 - 예배 인도자

 

폐회찬송 찬송가 441장 은혜 구한 내게 은혜의 주님 - 다같이

 

축도 예배 인도자

 

 

광고 새해에는 주님의 마음에 합당한 자가 되도록 노력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