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26 수요 가정예배 창세기 32장 21~30절(얍복강의 씨름)
【준비찬송】 찬송가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입니다.
지금부터 22년 1월 26일 수요 가정예배를 드리겠습니다.
【개회찬송】 찬송가 31장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개회기도】 언제 어디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 주님의 사랑이 머무는 이곳 삼채원 동산에서 저희 부부가 함께 예배를 드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죄인을 구원하시고 영생의 복락을 주시고자 낮고 비천한 자리에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며 기도하고 예배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티끌과 같은 저희를 위해 목숨까지도 내어주신 주님! 예수님의 사랑을 잊지 않게 하시고 오직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우리들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어린 양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은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찬송하게 하옵소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우리의 짧은 지식과 노력으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고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올바로 깨달아 장성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신앙고백】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 하겠습니다.
【찬송】 찬송가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찬송하신 뒤에 황보 송옥 사모님이 대표 기도해주시겠습니다.
【대표기도】 황보 송옥 사모
【성경봉독】창세기 32장 21~30절. 21.그 예물은 그에 앞서 보내고 그는 무리 가운데서 밤을 지내다가 22.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 새 23.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너가게 하며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 24.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26.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 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7.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28.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29.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30.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아멘.
【특별찬양】 찬송가 289장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입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오늘도 이곳 삼채원 동산에서 저희 부부가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예배를 드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이 주신 동산에서 주님을 생각하며 기쁨으로 찬송합니다. 오늘도 말씀과 찬송과 기도로 예배하는 중에 주님이 베푸시는 한량없는 은혜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저희들이 드리는 기도에 응답받는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올해부터는 구약성경을 좀 더 자세히 읽고 깊이 묵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창세기 31~33장 중에서, 그리고 다음 예배에서는 창세기 34~38장을 읽고 묵상하고자 합니다. 성령님 함께 하셔서 저희들이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 우리들에게 베푸시는 주님의 긍휼하심을 깨달아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말씀 제목】 얍복 강의 씨름. 이 말씀으로 은혜 받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32장은 야곱이 밤새 하나님께 기도해서 복을 받은 장면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어떤 사람이 야곱과 밤새 씨름을 했다고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기도한 것이 아니라 밤새 저항하고 버티면서 먼지가 날리도록 싸웠습니다.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이기적이고 완고한 야곱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설득하시는데 야곱은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지 못하고 계속 버텼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야곱도 사랑하고 받아주고 변화시키십니다. 야곱, 사기꾼이라는 뜻을 가진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 하나님을 이긴 자, 하나님이 져주시는 사랑을 받은 자로 바꾸어주십니다. 이제부터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지켜주시는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게 하십니다. 야곱이 하는 처신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야곱 같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우리에게 참된 힘을 주시고, 새로운 삶의 길로 인도하시고 있습니다.
최근 한반도가 세계의 화약고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그 발사체인 미사일의 시험 발사는 미국뿐 아니라 주변 국가들에게 엄청난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한반도의 정세는 극도의 위기 상황에 직면하여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출산율은 급격히 내리막길을 걷고 있고 청년 실업률이 갈수록 상승하고 있어 나라의 미래가 어두워 보입니다. 나라 안팎으로 위험과 혼란이 가득한 이때 우리 그리스도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우리 성도들이 취할 행동은 오직 주님께 나아가 손을 들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하면 무조건 들어주실까요?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돌아오는 길에 얍복 강변에서 간절히 기도합니다. 창32:9~12절입니다. “9.야곱이 또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10.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11.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12.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야곱은 라반의 압박과 하나님의 명령으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고향이 점점 가까워지자 라반의 가혹한 처사에서 벗어나는 기쁨보다 개인적인 위기를 만납니다. 많은 처자식과 재물로 금의환향하는 길이었지만 자기를 맞서 기다리는 에서 형이 문제였습니다. 형을 속이고 도망친 야곱이었기에 돌아오는 자기를 형이 어떻게 맞이해 줄지 불안했습니다. 20년 동안 이룬 가족과 재산과 목숨을 빼앗기지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현재 처해 있는 상황과 비슷합니다. 이때 야곱은 얍복 강변에서 천사를 만나 씨름하게 됩니다. 이 본문은 우리들에게 급하고 힘든 환란을 만났을 때 드리는 최고의 기도 모델로 기억됩니다. 과연 그런 기도의 모델이 맞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우리는 이 천사와의 씨름 사건을 보통 간절한 기도로 해석합니다. 그처럼 지금도 간절하게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요구대로 들어주실까? 만약 들어주신다면 우리 앞에 펼쳐지는 하나님의 역사 모두가 우리가 기도한 대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도가 하나님을 움직이는 만능열쇠입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응답은 은혜가 아니라 우리의 기도에 대한 보답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고 찾는 이는 찾아 낼 것이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 7:8). 구약에서도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말씀을 듣고 읽으면서 기도의 주도성이 인간에게 있는 것으로 착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의 기도에 귀를 열어 들어주시는 것으로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엄밀하게 따져서 기도의 주도성이 우리 인간에게 있다면 그것은 은혜가 아니라 요구에 대한 응답이 될 뿐입니다. 인간의 요구에 대한 응답은 은혜가 아닙니다.
얍복 강에서 야곱의 씨름 사건을 세밀히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보인 그의 태도를 주목해 봅시다. 그는 형 에서에게 사람을 보내 성공하여 돌아온 것을 알리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다녀온 사신의 말은 에서가 병사 사백 명을 데리고 자기를 맞으러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는 매우 두려워졌습니다. 답답한 나머지 자기 무리를 두 떼로 나누어 혹시 에서가 공격해오면 도망치려고 준비시키면서 기도했습니다. 창32:11절을 다시 봅니다.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솔직하고 진솔한 심정을 하나님께 토로하였습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시며 은혜를 베푸신다고 약속하셨는데도 여전히 야곱은 두려움과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에서에게 보낼 예물을 준비시켰습니다. 그 예물 가운데 야곱의 진심이 담겨 있었습니다. 창32:20하입니다.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 주리라 함이었더라”
야곱이 기도한 것은 그냥 두려워한 것일 뿐 사실은 예물로 형의 마음을 사서 문제를 풀려고 한 것입니다. 주님을 의지하려는 간절함과 오직 주밖에 없다는 애절함을 전혀 볼 수 없습니다. 철저히 대비하는 부끄러운 모습으로, 이는 우리들의 마음과 똑 같습니다. 그런 후에도 바로 강을 건너가지 못하고 가족을 먼저 건너보낸 후 홀로 남아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야곱을 찾아와 날이 새도록 씨름을 하게 되었습니다.
야곱의 씨름은 하나님이 시작하신 것입니다. 참된 기도는 사람이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시작하십니다. 기도의 고전인 오 할레스비의 책 『기도』에 보면 진정한 기도는 무력함과 믿음의 열매라고 말합니다. 부유한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계3:20절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성령이 오셔서 우리의 영을 건드리고 그에 대한 반응이 곧 기도가 시작되는 행위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기도의 신비이고 기도의 은혜입니다. 다른 종교의 기도 행위는 사람이 시작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기도는 하나님이 시작하십니다. 성령 하나님이 부요함에 게으른 교회를 찾아오셔서 회개하고 열심을 내라고 책망하심으로 기도는 시작됩니다. 기도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따라서 기도는 인간의 행위가 아닙니다. 인간의 간절함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의 마음을 흔들 작정을 하시고 다가오셔서 우리 스스로 기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기도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본심을 먼저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애가 3:33절입니다.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그리고 다윗은 이렇게 시편에서 찬송을 부르고 있습니다. 시 30:5절입니다.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통을 주시는 본심은 우리에게 기도하게 하시고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기도에 응답하실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 복음이요 은혜입니다. 따라서 기도의 용사, 기도의 대장이라 부르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입니다. 물론 기도에 많은 시간을 드리고 기도에 집중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일에 속합니다. 우리가 체험한 현실적인 경험은 기도로 문제를 풀고 기도로 능력을 얻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야곱에게 져주시려고 찾아와 씨름을 걸고, 허벅지를 꺾으시고, 그 후에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주요부분만 살펴보겠습니다. 21~23절입니다. “21.그 예물은 그에 앞서 보내고 그는 무리 가운데서 밤을 지내다가 22.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 새 23.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너가게 하며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 여기서 얍복 나루라는 말이 나오는 데, 얍복이란 말은 갈릴리 호수와 사해 중간에 위치한 요단강의 동쪽에서 내려오는 간헐천(間歇川)의 이름입니다. 이 단어는 '싸우다'란 의미를 지닌 '야바크'에서 유래한 ‘씨름꾼, 씨름한 곳’이란 뜻을 가집니다. 그 이름은 이곳에서 겪은 야곱의 신비한 경험을 기념하여 후대 사람들이 붙인 것으로 보입니다.
본문 24~25절입니다. “24.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어떤 사람이 야곱과 씨름을 합니다. 야곱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야곱에게 달려들어 씨름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사자, 예수 그리스도의 현현으로 보는 것이 정설입니다.
씨름하다는 말은 ①'먼지를 일으키다, 격렬하게 몸싸움을 하다'란 뜻의 '아바크'에서 유래했다는 견해와 ②'단단히 붙잡다', '껴안다'란 뜻의 '하바크'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이 두 견해 모두 가능합니다. 실제 씨름하듯 영육간의 모든 힘을 쏟아(눅 22:44) 눈물로 붙들고(호 12:4) 필사적으로 싸우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이 씨름은 야곱이 간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자, 현현하신 그리스도가 야곱을 찾아와서 야곱의 완악한 고집을 꺾으시려는 하나님의 씨름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과 같은 정신 상태로는 너는 에서를 이길 수 없으니 너의 생각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자기의 주장, 고집을 내려놓지를 않습니다. 허벅지 관절을 꺾어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허벅지 관절을 꺾는 것은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는 허우적거리는 사람의 힘을 빼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같이 물에 빠져 죽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야곱이 계속 죽을 길을 가는 것을 허벅지를 꺾음으로 방향 전환하여 살 길로 나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나 중심의 생각과 욕망에 빠져 있는 야곱을 변화시키려고 그렇게 질책하고 타이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야곱은 끝내 자신을 지키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포기하고 돌아서 가려는데 야곱은 그래도 붙들고 놓지를 않습니다. 그런 야곱을 보고 하나님은 불쌍히 여겨서 그래 내가 졌다하고 어깨를 다독이고 있습니다. 그 때서야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인 줄 알고 축복을 해주지 않으면 못 떠난다고 집요하게 붙들고 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를 만났을 때 경배하거나 경외하지 않고 오히려 복만 달라고 합니다. 우리의 모습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기심을 꺾고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살아가겠다고 버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이름을 묻습니다. 야곱의 이름이 가진 뜻을 깨닫게 하고는 새로운 이름을 주게 됩니다. 이 씨름 사건을 통하여 야곱은 이스라엘이란 이름으로 바뀝니다. 이스라엘이란 단어는 “하나님과 겨루어 이김”이란 뜻입니다. 그 부모가 쌍둥이의 출생 과정에서 동생이 형의 발꿈치를 잡았다고 야곱이라 불렀습니다. 태어날 때는 형도 이기지 못했던 자가 이제 하나님을 이긴 자가 되었습니다. 씨름에서 이기고 진 것은 판정자가 판단하는데 하나님께서 “네가 이겼다”고 선언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져주시고 붙여준 이름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것을 하면서 힘들 때, 자기 자신을 믿지 않고 연약함을 보이는 것, 겸손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순종하면 축복하여 주시고 풍성하게 하시고자 찾아오십니다. 애써 고집을 피우고 주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우리가 스스로 일을 하다가 고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성도라 불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하나님이 져주신 십자가 사건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시고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가는 어린 양이 되게 하심으로 우리의 생명을 건져 주셨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죄를 깨닫지도 못하고 여전히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이 친히 찾아오신 것입니다. 인간이 찾지도 구하지도 스스로 돌이켜 의의 길을 걷지도 않았는데, 찾아오시고 나타내시고 우리를 불러 의롭다 해주시는 것은 우리에게 져주시는 하나님의 결단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들에게 져주시는 은혜입니다. 내려놓으신 은혜입니다. 어떤 인간의 노력과 협조도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하나님의 행위이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져주시고 내려놓으시는 데 인간이 한 일은 전혀 없습니다. 바울은 그래서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로마서 5장 7~8절에서 이렇게 찬송했습니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 성도가 혼란과 위험이 가득한 이 세상을 살아갈 힘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일어날 힘이 전혀 없는 우리에게 다가와 손잡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아시고 찾아오셔서 마음 문을 열게 하십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믿으면 누구든지 어떤 상황에서든지 극복하고 일어나 새로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론 어떻게 해도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것을 바꾸어 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약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게 만드는 마약이 아닙니다. 도리어 우리를 주님이 주시는 능력을 입어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십니다. 주님의 은혜면 족하다는 그 믿음이 우리의 희망이 되고 꿈을 키워 나가는 능력입니다. 더구나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은 ‘너는 내 자녀’라고 하시는데 무엇이 두렵습니까? 우리는 만유의 주재이시며 왕이신 하나님의 자녀로 당당하게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더 이상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천국을 이루며 살 수 있는 유일한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이 찾아오셨을 때 마음 문을 활짝 열고 받아들일 수 있는 우리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창세기 32장의 일부를 읽고 묵상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주님의 뜻을 조금이나마 더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선악과를 먹은 우리들은 지혜가 부족하여 하나님의 뜻을 잘 알지 못합니다. 내 생각은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뜻을 올바로 분별할 수 있게 하옵소서. 성경 말씀으로 전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려고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 씨를 통하여 저희에게 예수님을 보내시고 믿음을 주셨습니다. 말씀이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알게 하시고, 주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게 하옵소서. 어렵고 힘든 상황에 있을 때 찾아오셔서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옵소서. 택하신 자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폐회찬송】 찬송가 290장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입니다.
【축도】 축도로 수요 예배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감동 감화 내주 역사 충만 교통하심이 오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 주신 은혜를 잊지 않고 표현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다짐하는 성도들의 머리 위에와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교회 위에와 삼채원 가정교회 위에와 이 나라 이 민족 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있을 지어다. 아멘
매일 매순간 주님 안에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하옵소서.
2022년 1월 26일 수요 가정예배 순서
【준비찬송】 찬송가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 다같이
【개회찬송】 찬송가 31장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 다같이
【개회기도】 예배 인도자
【신앙고백】 사도신경 - 다같이
【찬송】 찬송가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 다같이
【대표기도】 황보 송옥 사모
【성경봉독】 창세기 32장 21~30절
【특별찬양】 찬송가 289장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 다 같이
【말씀선포】 얍복강의 씨름 - 예배 인도자
【폐회찬송】 찬송가 290장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 다같이
【축도】 예배 인도자
【광고】 주님께서 허락하신 일에 항상 기도로 준비하며, 최선을 다하는 우리들이 될 수 있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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