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30 주현절 후 네 번째 주일예배 창세기 37장1~11절(요셉의 등장)
【준비찬송】 찬송가 484장 내 맘의 주여 소망되소서 입니다.
지금부터 22년 1월 30일 주현절 후 네 번째 주일예배를 드리겠습니다.
【개회찬송】 찬송가 27장 빛나고 높은 보좌와
【개회기도】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사람들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피하나이다 그들이 주의 집에 있는 살진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물을 마시게 하시리이다(시 36:7~8) 아멘
지치고 곤고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은혜의 보좌로 인도해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 하늘 평안과 위로로 저희들의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셔서, 이곳 삼채원에서 예배하며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찬송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드리는 이 예배를 통하여 무한한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옵소서. 오늘도 풍족한 생명의 양식을 얻게 하시고 베풀어 주시는 말씀으로 반석위에 믿음의 집을 짓게 하옵소서. 근심하는 기도의 제목들이 응답받는 축복의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경배찬송】 찬송가 28장 복의 근원 강림하사 찬송하겠습니다.
【신앙고백】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 하겠습니다.
【성시교독】 교독문 3. 시편 4편
【봉헌찬송】 찬송가 425장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봉헌시간입니다.
【봉헌과 축복의 기도】 죄와 허물보다는 하나님을 향한 저희 마음의 중심을 보시고 기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그 큰 사랑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수 있는 믿음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웃을 위하여 사랑의 예물을 드리는 심령 위에 하늘 복을 내리시사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언제 어디서나 감사하며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고 오직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오늘도 예배를 통하여 우리의 질병과 장래의 불안과 근심이 보혈의 피로 씻음을 받아 질병이 치유되고 평안을 누리는 천국 잔치가 되게 하옵소서. 저희들이 드리는 예물이 주님의 뜻에 합당한 일에 사용되게 하시고, 예물이 사용되는 곳에 주님의 소망이 밝은 해와 같이 빛나게 하시옵소서. 만물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찬송】 찬송가 486장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찬송하신 후에 황보 송옥 사모님이 대표 기도해 주시겠습니다.
【대표기도】 황보 송옥 사모
【성경봉독】 창세기 37:1~11절. 1.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으니 2.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3.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4.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5.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6.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7.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8.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9.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10.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11.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아멘.
【특별찬양】 찬송가 487장 어두움 후에 빛이 오며
기도하겠습니다. 오는 2월 1일은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날입니다. 주님, 명절을 가족과 함께 지내고자 오가는 발길들을 지켜 주옵소서. 3년 째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공포에서도 어서 빨리 해방되게 지혜와 능력을 주옵소서. 오늘도 주님 앞에 나와 꿇어 엎드려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의 기도와 찬양을 드리오니 받아 주옵소서. 주님의 강한 손에 붙들린 저희들입니다. 주님 주신 힘으로 모든 질병과 환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강건하게 하시고 주어진 일을 기쁜 마음으로 감당할 수 있게 하옵소서. 2022년에는 구약성경을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창세기 34~38장을 읽고 묵상하고, 다음 예배에는 창세기 39~41장을 읽고 묵상하고자 합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성령님 함께 하셔서 저희들의 우둔한 머리를 지혜롭고, 명철하게 하셔서 주님의 뜻을 올바로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제목】요셉의 등장 : 오늘 말씀을 통하여 많은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37장은 요셉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장입니다. 그 시작은 요셉의 꿈입니다. 요셉의 꿈은 철없는 꼬맹이의 의미 없는 꿈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하나님 나라를 품은 요셉의 큰 뜻이 있습니다. 요셉은 열두 형제가 함께 밭에서 곡식 단을 묶는 꿈을 통해서 형제들이 누구 하나도 흩어져 이방인이 되지 않고 함께 농사를 지으면서 하나님이 주신 땅에 정착하는 소박한 꿈을 꿉니다. 그리고 그 꿈은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형들이 요셉을 미워하는 데 하나가 됨으로 응답이 됩니다. 이렇게 이들은 누구도 소외되어 이방인이 되지 않고 결국 이스라엘 열 두 지파가 됩니다. 하나님이 요셉의 꿈을 이루어주신 것입니다.
창세기 37장 6절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하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요셉은 십칠 세였습니다. 그는 꿈꾸는 소년이었습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목축을 하고 있는 형들은 요셉이 오자 꿈꾸는 자가 온다고 하였습니다. 요셉의 별명은 꿈꾸는 자였습니다. 그는 두 가지 꿈을 꾸었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곡식 단이 일어서고 형들의 곡식 단이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다른 꿈은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요셉에게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요셉이 지도자가 되어 온 가족을 살리는 꿈을 꾸었습니다. 이 꿈은 하나님이 요셉에게 주신 꿈이었습니다. 요셉은 성령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바로는 요셉처럼 성령 충만한 사람을 본적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성령 충만한 자에게 꿈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꿈꾸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이 땅에 공평과 사랑이 강물처럼 흐르는 하나님 나라를 꿈꾸었습니다. 인간이 죄를 지은 후에도 하나님은 이 꿈을 버리지 않고 오히려 더 강화하셨습니다. 나중에는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이 꿈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꿈은 고난을 겪지만 하나님이 친히 이루십니다.
우리는 요셉을 꿈을 가진 사람으로 부릅니다. 요셉은 확실히 꿈을 가졌고, 꿈을 이룬 사람입니다. 그런데 요셉의 꿈은 일반적인 의미의 꿈이나 비전과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꿈을 가졌다고 말하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나는 나중에 연예인이 될 거야” “나는 나중에 노벨상을 받을 거야”
일반적으로 꿈을 가졌다고 말할 때 그 의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소망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의 경우는 전혀 다릅니다. 요셉은 스스로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을 품은 적이 없습니다. 그의 꿈은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셉을 부를 때 꿈을 가진 사람이라고 불러서는 안 됩니다. 요셉은 꿈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12명이나 있었는데, 왜 하필 하나님은 유독 요셉이란 사람에게만 꿈을 주셨는가?” 이러한 물음에 대하여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함께 살펴보고자 하는 중요한 내용입니다. 요셉은 하나님께 꿈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꿈을 이루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광야로 보내졌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특별한 꿈을 주시고 요셉을 통하여 어떻게 그 꿈을 이루시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창세기 37장 1-2절입니다. “1.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으니 2.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거류하던 땅은 나그네로서 정착된 삶을 살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직도 목축업을 하면서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생활하는 유목민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이제 가나안에 정착하여 목축도 하며 농사도 짓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절에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 칠세의 소년으로서 그 형제와 함께 양을 칠 때에 그 아비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함께 양을 쳤다고 말합니다. 어느 정도 성장한 요셉이 첩의 아들들과 함께 양을 쳤다고 나옵니다. 요셉의 할아버지인 이삭의 경우는 첩의 아들 이스마엘과 함께 일하지 않았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이 약속한 아들로서 하나님이 인정하신 자녀이고, 이스마엘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생각에 따라 난 아들로서 하나님은 자녀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야곱의 대에 와서는 첩의 아들과 정부인의 아들과 차별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에 요셉은 형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그들의 나태함을 아버지에게 일러 바쳤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요셉이 아버지 야곱에게 고자질한 이야기로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에는 더 깊은 영적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는 고자질 자체가 나쁜 일이고 미성숙한 사람의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비밀을 알려면 좀 더 깊은 차원에서 요셉의 행위를 보아야 합니다.
요셉은 17세의 소년으로 형들과 함께 양을 돌보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빌하의 아들인 단과 납달리, 실바의 아들인 갓과 아셀의 부정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것을 아버지 야곱에게 가서 그대로 알려주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상상할 수 있는 것은 형들은 분명 요셉을 협박하고 함께 부정에 가담시켜 공범으로 만들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형들의 협박에 굴하지 않고 아버지에게 형들의 부정을 그대로 폭로했던 것입니다.
요셉에게는 형들과 다른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곧 옳고 그름에 대한 바른 기준이 있었습니다. 요셉은 가족이라 할지라도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고, 죄는 죄라는 사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형들의 부정을 감추는 데 함께 하길 거절하고 아버지에게 그 잘못을 모두 알려주었던 것입니다.
요셉은 죄와 부정에 있어서 가족이라고 봐주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옳고 그름에 대한 하나님의 분별력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청년기의 요셉에게 나타나는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요셉은 옳고 그름에 있어서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에게 꿈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꿈을 주시는 사람은 옳고 그름에 대한 하나님의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나와 관련된 일이나 우리 가족, 또는 우리 교회, 또는 우리 국가와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감싸주고 감추려는 경향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불의한 일입니다.
우리는 그 어떤 일에도 하나님의 기준을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그 기준에 합당치 않으면 그것을 토해내고 고치고, 버릴 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하나님의 기준을 붙드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아이들 안에 분별력이 생겨납니다. 그때부터 부모의 잘못된 것도 지적하는 경향들이 생겨납니다. 아이를 요셉처럼 키우길 원하는 부모는 자녀가 부모의 잘못을 지적할 때에 그것을 스스로 변명하거나 묵살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정직한 말을 할 수 있는 아버지는 자녀를 요셉과 같이 키울 수 있습니다. 이런 부모님은 자녀에게 바른 기준을 심어주는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하고자 하는 경향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잘못한 것을 잘못했다고 인정하지 않고 나의 죄는 죄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내가 저지르거나 우리 가족이나 우리나라가 저지른 죄는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가령 외국과의 운동경기에서 심판이 편파 판정으로 우리나라에게 유리하게 판정을 내렸습니다. 이런 경우에 우리나라를 위한 일이니까 괜찮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맹목적인 자기사랑, 맹목적인 가족사랑, 맹목적인 국가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올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불의한 결과를 가져오기 쉽습니다.
일본을 생각하면서 정말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일본은 전체주의적인 문화를 가진 나라입니다. 그래서 일본은 전체가 결정한 일에 대해서는 거의 맹목적인 지지를 보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최근에 세계 제2차 대전을 일으킨 것을 정당화시키려는 시도나 독도를 자신의 땅이라고 부르는 일처럼 역사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을 서슴없이 하는 이유는 나라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만 가득한 나라는 불행한 나라입니다. 모든 나라들은 잘못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우리나라가 결정하고 행하는 일이 무조건 옳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그것은 정말 악하고 불의한 생각입니다.
자신과 나라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가정과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찰서에 잡혀온 아이를 데리러 온 부모들이 주로 사용하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아이는 원래 착한 데 나쁜 친구를 사귀어 이렇게 됐습니다.” 자녀가 잘못한 것이 명백한 데도 부모는 일단 자기 자녀를 감싸고 보호하려고만 합니다. 이것도 역시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못한 것입니다. 내 자녀가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바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잘못된 것도 내 자식이기에 무조건 감싸려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못한 것입니다.
요셉은 비록 형이라 할지라도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형의 잘못을 서슴없이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들도 요셉처럼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 우리의 이해관계를 뛰어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꿈을 받은 사람은 옳고 그름에 있어서 분명한 기준을 붙들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자기가 한 일이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옳지 않은 것은 하지 않습니다. 자기 가족이 한 일이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옳지 않은 것은 반드시 지적을 하고 고치도록 합니다. 자기 교회가 한 일이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옳지 않은 것은 반드시 고쳐 바로 잡습니다. 자기 나라가 한 일이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옳지 않은 것은 반드시 저항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요셉을 귀하게 보신 내용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꿈을 받고자 한다면 제일 먼저 나와 우리 안에 있는 불의를 도려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꿈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은 제일 먼저 이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요셉은 어려서부터 장성하여 애굽에 팔려가서 종으로 살 때까지 스스로 잘못을 저지르는 일을 하지 않으려 노력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택한 사람, 꿈을 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택한 사람은 나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요셉을 등장 시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자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창세기 37장에서 50장까지는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인 요셉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집니다. 특히 37장에서는 요셉이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것과 17세가 되어 하나님께서 주신 두 가지의 꿈을 이야기한 것 때문에 형들의 시기와 미움을 받고 결국 애굽으로 팔려 가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요셉이 꾼 꿈은 부모와 형제들 사이에서 으뜸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늘의 별과 같이 자손을 많이 주시겠다는 약속을 요셉을 통하여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요셉의 꿈은 일반적인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로 주신 특별한 계시입니다. 요셉이 장차 애굽의 총리가 되어 기근에서 온 땅을 구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통한 인류의 구원을 암시하는 것으로 요셉의 삶 전체가 이 꿈의 실현을 향한 움직임의 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받음으로 다른 형제들이 하나의 마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애굽에 끌려가서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 집에 팔려갔습니다. 시위대장은 왕의 신변 보호를 맡은 호위대의 우두머리로 애굽 왕의 최측근이었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이 뜻을 이루기 위한 특별한 섭리인 것입니다. 이처럼 요셉의 생애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에 의해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이 요셉에게 꿈을 주신 이유는 매사에 성실하고 의로운 생활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의로운 성격의 요셉은 아버지의 편애와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고함으로 인해 형제들로부터 미움을 받게 됩니다. 역설적으로 이는 다른 형제들을 한마음으로 묶는 역할을 합니다. 사람이 미움을 받는 데는 자신이 잘못해서 받는 미움도 있고, 또한 하나님의 크신 섭리 안에서 다니엘과 스데반 집사와 같이 의로움을 행함으로 받는 미움도 있습니다. 요셉을 미워한 원인은 그가 꾼 꿈이었습니다. 부모와 형제들 사이에서 자신이 으뜸이 되는 꿈입니다. 이러한 요셉의 꿈은 일반적인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로 주신 특별한 계시였습니다. 그것은 요셉이 장차 애굽의 총리가 될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그의 생애 전체가 이 꿈의 실현을 향해 움직입니다. 요셉은 이 꿈을 이야기함으로 형들의 미움을 샀고, 아버지의 꾸중을 들었지만, 야곱은 이 꿈을 마음에 두었고 요셉 자신도 나중에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도 하나님이 꾸시는 꿈을 향해 움직이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의 꿈을 간직하고 살며 이 꿈이 실현되는 과정을 믿음으로 기다리며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공의와 사랑으로 살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를 사람들 앞에서 겸손하게 하시고 마침내는 높여주실 것입니다.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창세기 37장 중 일부를 읽고 묵상할 수 있게 허락하시니 감사합니다. 야곱은 12아들을 낳았고 하나님은 그 아들을 모두 잘 양육하여 이스라엘 12지파를 이루게 됩니다. 그 중심에 요셉이 있어 요셉의 희생적인 헌신으로 아버지와 형제를 모두 가난에서 구원하는 일을 해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인류구원의 모형으로 계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오직 주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하나님의 참 뜻이 어디에 있는지 깨달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함으로 주님의 긍휼을 입을 수 있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폐회찬송】 찬송가 490장 주여 지난 밤 내 꿈에 입니다.
【축도】 축도로 주일 예배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감동 감화 내주 역사 충만 교통하심이 오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말씀에 순종하고, 주시는 사명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다짐하는 성도들의 머리 위에와 섬기는 교회 위에와 삼채원 가정교회 위에와 이 나라 이 민족 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있을 지어다. 아멘
주님 안에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하옵소서.
2022년 1월 30일 주현절 후 네 번째 주일예배 순서
【준비찬송】 찬송가 484장 내 맘의 주여 소망되소서 - 다같이
【개회찬송】 찬송가 27장 빛나고 높은 보좌와 - 다같이
【개회기도】 예배인도자
【경배찬송】 찬송가 28장 복의 근원 강림하사 - 다같이
【신앙고백】 사도신경 - 다같이
【성시교독】 교독문 3. 시편 4편 - 다같이
【봉헌찬송】 찬송가 425장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 다같이
【봉헌기도】 예배 인도자
【찬송】 찬송가 486장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 다같이
【대표기도】 황보 송옥 사모
【성경봉독】 창세기 37장 1~11절
【특별찬양】 찬송가 487장 어두움 후에 빛이 오며 - 다같이
【말씀선포】 요셉의 등장 - 예배 인도자
【폐회찬송】 찬송가 490장 주여 지난 밤 내 꿈에 - 다같이
【축도】 예배 인도자
【광고】 주님께서 허락하신 일에 항상 기도로 준비하며, 최선을 다하는 우리들이 될 수 있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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