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06 사순절 첫 번째 주일예배 출25장1~9절(성막의 의미)
【준비찬송】 찬송가 366장 어두운 내 눈 밝히사 입니다.
지금부터 22년 3월 6일 사순절 첫 번째 주일예배를 드리겠습니다.
【개회찬송】 찬송가 27장 빛나고 높은 보좌와
【개회기도】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롬 8:18~20) 아멘
영원 형벌을 받고 죽을 수밖에 없는 불쌍한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늘의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비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아버지 아하님! 오늘 특별히 사순절 첫 번째 주일을 맞아 주님께서 당하신 고난의 의미를 되새깁니다. 주님이 베푸신 큰 은혜를 깊이 생각하며 이 시간도 저희부부가 삼채원 동산에서 온 맘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께 예배합니다. 저희들의 예배를 받으시고 주님의 고난이 헛되지 않도록 고난에 동참하게 하옵소서. 주님을 향한 믿음을 고백함으로 말씀의 은혜를 충만히 받을 수 있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경배찬송】 찬송가 144장 예수 나를 위하여 찬송하겠습니다.
【신앙고백】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 하겠습니다.
【성시교독】 교독문 124. 사순절(1)
【봉헌찬송】 찬송가 150장 갈보리산 위에, 봉헌시간입니다.
【봉헌과 축복의 기도】 저희들이 주님을 경외하며 주님의 계명을 순종하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는 것을 흡족하게 여기시고 기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오늘 거룩한 주님의 날에 세상 것들을 즐기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나와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며 말씀을 즐거워하는 예배를 드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의 후손들이 대대로 강성하게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니 말씀대로 이루지게 하옵소서. 오늘도 예배하는 주님의 자녀들이 온 맘과 정성을 다하여 준비한 예물을 드립니다. 기쁜 마음으로 드리는 자녀들의 예물을 흠향하시고, 주님의 사랑으로 은혜가 넘쳐나게 하옵소서. 저희들이 드리는 예물이 주님의 뜻에 따라 사용되게 하시고, 예물이 사용되는 곳에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만물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찬송】 찬송가 207장 귀하신 주님 계신 곳 찬송하신 후에 황보 송옥 사모님이 대표 기도해 주시겠습니다.
【대표기도】 황보 송옥 사모
【성경봉독】 출애굽기 25:1~9절.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기쁜 마음으로 내는 자가 내게 바치는 모든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3.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예물은 이러하니 금과 은과 놋과 4.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과 염소 털과 5.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목과 6.등유와 관유에 드는 향료와 분향할 향을 만들 향품과 7.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이니라 8.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9.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아멘.
【특별찬양】 찬송가 210장 시온성과 같은 교회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저희 부부가 삼채원 동산에서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배로 기도와 찬양을 드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강한 손에 붙들린 저희들입니다. 주님의 손길 아래 항상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 주신 힘으로 모든 질병과 환난을 극복할 수 있게 하시고 주어진 일을 기쁜 마음으로 감당할 수 있게 하옵소서. 봄철 건조함과 강풍으로 곳곳에서 산불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산불예방에 최선을 다하는 우리들이 되게 하옵소서.
2022년에는 구약성경을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출애굽기 25~29장을 읽고 묵상하고, 다음 예배에는 출애굽기 30~32장을 읽고 묵상하고자 합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성령님 함께 하셔서 저희들의 우둔한 머리를 지혜롭고, 명철하게 하셔서 주님의 큰사랑을 깨닫게 하옵소서. 그 사랑 안에서 복된 삶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제목】 성막의 의미 : 오늘 말씀을 통하여 많은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출애굽기 20장에서 하나님은 십계명을 주시고, 이어서 23장까지 이스라엘 공동체를 위한 율례를 선포하십니다. 이에 따라 24장에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언약을 세우고 사십 일을 지내면서 모세에게 모든 말씀을 기록하라 하십니다. 열두 지파대로 기둥을 세우고 언약식을 통해 피를 뿌립니다. 이것은 언약의 피입니다. 출애굽기 25장부터 모세가 여호수아를 데리고 다시 시내산으로 올라가서 사십 일을 지냅니다. 하나님은 성소를 지을 예물을 가져오게 하여 성소와 장막을 지을 것을 명령하십니다. 그 예물은 금, 은, 놋과 다양한 색의 실과 염소 털, 숫양의 가죽, 해달의 가죽, 각종 보석들입니다. 이것들은 성막을 짓는 데 사용됩니다. 모세에게 시내산에서 보인 모습대로 성막을 짓도록 명하십니다.
오늘 본문이 나오는 출애굽기 25장은 성막에 대한 말씀이 시작되는 장입니다. 우리는 성막에 대한 내용을 잘 알지 못하고 낯설기 때문에 막연하게 지루하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성막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와 함께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보이시고 명하시는 아주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사랑의 고백이며 증거입니다. 그래서 이 성막을 알면 알수록 하나님의 임재가 더욱 선명하게 우리 삶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 체험되는 은혜가 밀려옵니다. 그중에서도 증거궤 위에 속죄소,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자리가 있고 이를 시은좌, 은혜를 베푸시는 자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거기서 우리를 만나주시는 자기를 제한하시는 크신 사랑이 나타나는 자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왜 성막이 필요할까요? 오늘 본문 8절에 보면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말씀하시며 성소를 나를 위하여 지을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잘 알아야 합니다.
성막은 천막으로 만들어진 거주하는 공간입니다. “성소” 즉 거처가 필요한 존재는 형상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어느 것의 형상이라도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어느 것의 형상도 만들지 않는다면, 형상을 두어야 하는 성소 또한 만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이제껏 존재하시지 않다가 이제 와서 존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 동안 성소가 없이도 하나님은 항상 존재하셨고 갑자기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필요하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간과 함께 동거하기 위해서 처소가 필요하셨다면 가장 먼저 아담에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아니면 노아에게라도, 그것도 아니면 아브람에게라도 부탁을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혀 처소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처소가 없어서 불편하셨거나 처소가 없어서 만남이 이루어질 수 없었다거나 하는 내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존재하셨고, 분명히 백성들의 삶을 돌보시고 보호하시고 동행하시고 인도하시고 주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왜 성막을 지으라 하시는 것입니까? 결국 성막은 하나님이 거할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막은 실제적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다분히 의도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었다는 의미입니다.
절기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필요한 것처럼 성막도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할 장소가 필요해서 지을 것을 명령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막을 지으라 하신 이유를 알기 위해 절기를 세우신 이유를 알게 되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하나님이 출애굽한 사실을 기념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시고 있습니다. 그 출애굽한 사실을 확인하는 유월절이 없다면 인간은 스스로 출애굽한 것으로 자랑할 것입니다. 인간의 교만함을 하나님은 꿰뚫어 아시고 있었습니다. 우리 인간은 자신이 연약할 때는 교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힘을 가지게 되면 교만하여 모든 일을 자신들이 하였고, 또 할 수 있다고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강성해지면 교만에 빠져 하나님을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아시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절기를 주시며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성막을 설치하고 안식을 지키라는 것도 인간의 교만함을 미리 예방하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처방법입니다. 절기와 성막과 제사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교만을 방지하기 위한 하나님의 특단의 조치인 것입니다.
출애굽기의 마지막 부분인 25~40장 즉 16개의 장중에서 성막에 관한 내용이 13장이나 됩니다. 이스라엘의 최종 목표는 가나안에 정착하여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는 과정 가운데 광야에서는 성막 건축이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임무로 주어지고 있습니다.
성막은 이스라엘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고, 시내산 정상에 임하신 하나님 임재가 재현되는 곳이었습니다. 성경은 출25:1-31:11절에서 성막 준비를 위한 양식을 묘사한 후 출35:4-40:38에서 제작하는 과정을 다시 한 번 반복하고 있습니다. 성막 준비 단계에서는 법궤의 제작 순서부터 기록되어 있지만 실제 제작과정에서는 성막의 제작부터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막의 모형을 제시하는 기사가 있는 출25~31장의 마지막 즉 31:12~17절에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씀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또한 출35~40장의 성막을 직접 제작하는 내용의 처음 부분 즉 35:1~3절에도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성막에 관한 기사의 정 중앙에 안식일을 지키라는 권고가 두 번에 걸쳐 반복적으로 강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막이 안식일과 구별되어 존재한다면 성막이라는 “장소”만이 더욱 강조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장소”로서의 성막이 아니라 “의미”로서의 성막을 강조하기 위하여 “안식일”이라는 규례의 의미를 강조하면서 앞뒤에 배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안식일이 “한 날”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을 강조하는 것처럼 성소도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을 강조한다는 것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성막은 “하나님이 거하실 장소”라는 의미이고, 하나님은 그곳에서 백성을 만나는 것입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저들에게 성막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시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공급하시고 책임지시고 도우신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스라엘은 성막에서 하나님을 만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없으면 유월절이 의미 없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없으면 안식일과 성막이 의미 없는 것입니다. 유월절, 안식일, 성막은 하나님께 필요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에게 필요하여 하나님이 만드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나를 위해 성막을 지으라고 말씀하시지만 속뜻은 이처럼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부연 설명하자면 성막은 본문 8절에서 보듯이 하나님이 “그들 중에 거할 성소”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첫째, 성경은 “그것”이 아니라 “그들(3인칭 복수)중”에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성소에 거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거하신다는 것입니다. 둘째, ‘거하다’라는 동사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동사가 아니라 ‘장막치다’이며 이 동사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동사는 유목민의 삶에서 유래한 것으로 잠시 텐트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성막은 결코 하나님의 거처가 아닙니다. 다만 이스라엘 사람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모형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막은 누가,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왜 만드는지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①하나님이 성막을 만드시는 것입니다. 성막을 만드는 사람은 사람 중에서 선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재주 있는 자, 능력 있는 자를 골라내는 작업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런 자가 존재하도록 성령을 부어 재능을 주시는 것입니다(출31:1~6). 만약 재주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을 고르게 되면 사람들은 그런 사람에게 집중합니다. 다음에 그런 사람을 찾아가서 다른 형상을 만들어 달라고 할 것입니다. 또한 성막은 그 자체로 절대로 높은 품위를 가지지 않습니다. 성막이 품위를 가지는 것은 하나님이 가치 있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출 29:43절입니다.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리니 내 영광으로 말미암아 회막이 거룩하게 될지라” 출 40:34~35절입니다. “34.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35.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임하지 않으면 그것은 그냥 천막입니다. 이처럼 성막을 지으시는 이도 하나님이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②성막 제작에 사용된 재료는 광야생활에서 전혀 필요하지 않는 물품들이었습니다. 25:3절에 성막의 재료로 가장 눈에 띠는 것이 ‘금과 은’입니다. 이것들은 보석이요 비싼 것이요 귀한 것이요 가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금과 은은 소중하고 값비싼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광야생활을 하는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사정이 다릅니다. 만약 하나님이 “금과 은은 너희들이 갖고 만나를 내 놓아라.”하고 말씀하신다면 백성들이 “하나님은 참 소탈하시구나.”라고 생각했을 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도리어 “금과 은을 내어 놓으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고마운 것입니다. 금과 은을 내어 놓는 것이 훨씬 쉬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그들에게서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 놓으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가장 불필요하고, 가장 쓸모없고, 가장 무익한 것을 내어 놓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청색 자색 녹색 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의 가치는 쓸모가 있을 때 생기는 것입니다. 쓸 일이 없으면 가치가 없습니다. 광야에서 청색, 자색, 녹색 실은 백성들에게 전혀 쓸 일이 없습니다. 신29:5절에 보면 “주께서 사십 년 동안 너희를 광야에서 인도하게 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아지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으며”라고 했습니다. 쓸 일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무익한 것을 가져다가 하나님의 성막을 지으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③성막의 모양은 백성들에게 큰 인기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성막을 이렇게 만들라고 지시하시는 내용이 25~31장에 나오고, 그래서 백성들이 어떻게 만들었다는 내용이 35~40장에 나옵니다. 재미있는 것은 성경에는 성막에 대한 ‘인간의 반응’ 또는 ‘인간적 묘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성막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성막이 얼마나 웅장했는지, 성막을 보기만 해도 위엄이 넘쳐났다는 말이 없습니다. 백성들이 보고 모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감탄해서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는 등의 말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애시 당초 그런 용도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성막은 규모와 치장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처소로서의 하나님의 위엄과 격에 맞느냐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닙니다. 종교적 장소로서 얼마나 거룩성이 묻어있고 그곳을 찾는 인간들에게 얼마나 종교심을 일으킬 수 있느냐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신으로서 하나님의 특징은 인간적인 기준으로 본다면 가장 신답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종교로서 기독교의 특징은 인간적인 기준에 비추어 가장 종교답지 않은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에 입각하여 판단할 때 기독교는 종교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종교로서 설명될 수 없고, 종교로서 묘사될 수 없는 수준인 것입니다.
성막에서 하나님이 하실 일은 “하나님이 백성과 만나 교제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출25:22입니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출29:42절입니다. “이는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 회막 문에서 늘 드릴 번제라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 성막에서 영광, 찬양, 예물을 받고, 그곳에서 통치하시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성막은 하나님의 왕궁이 아니고, 하나님의 침소가 아니고, 하나님의 집무실이 아닙니다. 하나님 때문에 만들어진 곳이 아닌 것입니다.
④그렇다면 왜 성막을 만드는지 그 이유에 대하여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이 절기를 만드신 이유와 하나님이 성막을 만드신 이유를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이유를 알고 나면, 이러한 교육적 장치들이 결국 쓸데없이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가 와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사역은 인간으로 하여금 더 이상 핑계하지 못하게 하시는 과정입니다.
성막은 출애굽하여 광야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착하였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는 성막이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그 때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막, 즉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상징인 돌판이 있는 성막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성막을 예루살렘으로 옮겨왔고 초라한 모습의 성막을 보고 성전을 짓겠다고 하나님께 요청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거절하시고 오히려 너를 위하여 하나님이 집을 짓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솔로몬에게 내 이름을 위해 성전을 짓게 하시겠다고 하여 솔로몬이 성전을 세웠습니다. 그 성전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함께 섬기므로 하나님은 성전을 무너뜨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으로 쫓아 버리셨습니다. 포로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후에 다시 스룹바벨이 성전을 세우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활동하시던 시대에는 헤롯 성전이 세워지고 있었습니다. 그 성전도 예수님의 예언에 따라 마침내 로마군에 의해서 서기 70년에 무너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을 무엇이라 하십니까?
마가복음 13:1~2절입니다. “1.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2.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2장 19~22절입니다. “19.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예수님의 몸이 바로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8~9절입니다. “8.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9.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나의 백성이라” 하며 피로 계약을 맺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복원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생활하는 것에 익숙하게 하기 위하여 성막을 만드시고 함께 하시며 교제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9절에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네게 보이는” 에서 너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모세를 말합니다. 예수님의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즉 우리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 그 모습입니다. 다시 말하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기 전의 아담의 모습대로 장막을 짓는 것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성막을 세우고 율례를 주신 것입니다. 성막은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장성한 그리스도인으로 세우시기 위해 상징적으로 만드는 장막, 우리의 육신을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17절입니다. “16.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7.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린도전서 6장 19~20절입니다. “19.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의 몸이 성령의 전, 즉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좀 더 자세히 말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20~22절입니다. “20.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그리스도인은 모퉁이돌, 기초석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 성막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죄인이었던 우리를 개조시켜 새로운 피조물을 만들어 하나님의 성전으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건물 성전이 아닌 우리의 삶을 말합니다.
에베소서 3장 17~19절입니다. “17.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구약의 성전은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며 묶여있는 우리들이라는 것입니다.
계시록 22장 1~5절입니다. “1.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2.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3.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3.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최초의 참된 성전이었던 에덴동산의 복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성막, 성전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닮아가는 우리 성도의 삶, 에덴동산의 삶을 복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사는 곳이 에덴동산과 같아지길 축원합니다.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출애굽기 25장 중 일부를 읽고 묵상할 수 있게 허락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마침내 애굽에서 탈출하여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노예 신분에서 자유의 몸이 되었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유인으로서 살아가는 법도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자유인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하나님은 율법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하늘 백성으로서 지키면서 살아가야 할 마땅한 규례를 요약하여 십계명으로 제시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의 표시로서 십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전하기 위해 율법이신 말씀이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율법을 준행하신 것입니다. 돌판에 새겨진 하나님의 말씀이 산돌이 되어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돌판으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임재하시는 곳이 바로 성막입니다. 성막에 계신 하나님을 어떻게 예배하며 영광을 돌릴 것인지 기록하고 있는 것이 바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지으라하신 성막에 관한 기록입니다. 사랑의 표시로 우리에게 제시하시는 성막의 참된 의미를 깨달아 주님이 임재하시는 성막인 우리들이 어떻게 적응하며 살아갈 것인지 알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폐회찬송】 찬송가 151장 만왕의 왕 내 주께서 입니다.
【축도】 축도로 주일 예배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감동 감화 내주 역사 충만 교통하심이 오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말씀에 순종하고, 주시는 사명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다짐하는 성도들의 머리 위에와 섬기는 교회 위에와 삼채원 가정교회 위에와 이 나라 이 민족 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있을 지어다. 아멘
주님 안에서 고난을 함께 할 수 있게 하옵소서.
2022년 3월 6일 사순절 첫 번째 주일예배 순서
【준비찬송】 찬송가 366장 어두운 내 눈 밝히사 - 다같이
【개회찬송】 찬송가 27장 빛나고 높은 보좌와 - 다같이
【개회기도】 예배인도자
【경배찬송】 찬송가 144장 예수 나를 위하여 - 다같이
【신앙고백】 사도신경 - 다같이
【성시교독】 교독문 124. 사순절(1) - 다같이
【봉헌찬송】 찬송가 150장 갈보리산 위에 - 다같이
【봉헌기도】 예배 인도자
【찬송】 찬송가 207장 귀하신 주님 계신 곳 - 다같이
【대표기도】 황보 송옥 사모
【성경봉독】 출애굽기 25장 1~9절
【특별찬양】 찬송가 210장 시온성과 같은 교회 - 다같이
【말씀선포】 성막의 의미 - 예배 인도자
【폐회찬송】 찬송가 151장 만왕의 왕 내 주께서 - 다같이
【축도】 예배 인도자
【광고】 주님께서 허락하신 일에 항상 기도로 준비하며, 최선을 다하는 우리들이 될 수 있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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