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16일 수요 가정예배 출애굽기 40장 28~38절(하나님의 영광)
【준비찬송】 찬송가 430장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입니다.
지금부터 22년 3월 16일 수요 가정예배를 드리겠습니다.
【개회찬송】 찬송가 31장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개회기도】 언제 어디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 촉촉이 내려주신 봄비로 가뭄을 해갈시켜주시고 산불을 잠재워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어제는 월악산 제비봉을 등산하면서 주님이 만드신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삼채원 동산에서 저희 부부가 함께 모여 죄인을 구원하시고 영생의 복락을 주시고자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며 예배합니다. 티끌과 같은 저희를 위해 목숨까지도 내어주신 주님! 예수님의 사랑을 잊지 않게 하시고 오직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우리들이 되게 하옵소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어렵고 힘든 삶 속에서도 소망의 기쁨을 가지고 살아가는 저희들입니다. 불평과 불만을 나타내지 않고 주님이 주신 사명을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며 감당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신앙고백】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 하겠습니다.
【찬송】 찬송가 375장 나는 갈 길 모르니 찬송하신 뒤에 황보 송옥 사모님이 대표 기도해주시겠습니다.
【대표기도】 황보 송옥 사모
【성경봉독】출애굽기40장 28~38절. 28.그는 또 성막 문에 휘장을 달고 29.또 회막의 성막 문 앞에 번제단을 두고 번제와 소제를 그 위에 드리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되니라 30.그는 또 물두멍을 회막과 제단 사이에 두고 거기 씻을 물을 담으니라 31.모세와 아론과 그 아들들이 거기서 수족을 씻되 32.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와 제단에 가까이 갈 때에 씻었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되니라 33.그는 또 성막과 제단 주위 뜰에 포장을 치고 뜰 문에 휘장을 다니라 모세가 이같이 역사를 마치니 34.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35.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36.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 앞으로 나아갔고 37.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며 38.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았더라 아멘.
【특별찬양】 찬송가 379장 내 갈 길 멀고 밤은 깊은데 입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오늘도 이곳 삼채원 동산에서 저희 부부가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예배를 드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이 주신 동산에서 주님을 생각하며 기쁜 마음으로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오늘도 말씀과 찬송과 기도로 예배하는 중에 주님이 베푸시는 한량없는 은혜를 누리게 하옵소서. 저희들이 드리는 기도에 응답받는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올해부터는 구약성경을 좀 더 자세히 읽고 깊이 묵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출애굽기 마지막 부분인 38~40장 중에서, 그리고 다음 예배에서는 레위기 1~5장을 읽고 묵상하고자 합니다. 저희들이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 성령님 함께 하셔서 우리들에게 베푸시는 주님의 긍휼하심을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말씀 제목】 하나님의 영광. 이 말씀으로 은혜 받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출애굽기 40장은 성막제작이 완성되어 성막을 봉헌한 후에 다시 광야 길을 걸어 가나안으로 가는 여정의 시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막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것으로 계속 움직이는 성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어디를 가든지 성막이 함께하게 하면 그곳이 바로 하나님이 계신 자리가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에 순종함으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리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들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복된 삶을 누리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들이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잃어버린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십니다.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우리의 삶 가운데로 오셔서 우리에게 영광을 나타내시며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인간의 삶은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죄의 속성, 죄인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가면서도 자신은 죄인임을 전혀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의 속성을 가지고 죄 가운데 살면서 한편으로는 죄를 싫어하고 죄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죄의 개념과 사고방식을 이용하고, 죄의 원리를 적용해야만 삶 속에서 실제적 효과가 나타나는 부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발달하면 죄의 개념과 사고방식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더욱 확산되고, 더 나아가 죄 된 행동이 정당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종교가 생겨나고 신을 찾아 도움을 구하는 것이 인간사의 모습입니다. 여러 종교 중에서 기독교는 그 개념과 원리와 사고에 있어서 타 종교와는 다른 혁신적 면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죄의 원리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여타 종교에서는 가르침이 우선하지 않고 노력, 열심이 우선합니다. 왜냐하면 상호간 비교를 통하여 동일한 가치와 개념을 중요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공로를 말하기 이전에 가르침이 강조됩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적 개념이나, 하나님의 뜻을 배우지 않은 상태에서 노력하는 공로는 죄를 더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에서는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행하게 하지 않습니다. 부자연스럽게 강요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의도적 행위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일반 세상에서 열심과 노력이 강조되는 이유는 자신이 행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루어 질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기독교에서 가르침과 배움이 강조되는 이유는 이미 하나님이 이루어 놓으신 일이 있음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생각에서 나오는 죄의 원리를 우리의 삶에 적용해서는 절대로 우리의 기대와 소망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죄의 원리로는 차별 없는 세상,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을 절대로 만들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 개개인이 욕심, 죄의 덩어리이기 때문입니다. 공로와 성과 등이 강조되는 세상에서, 열심히 일한 사람과 열심히 일하지 않은 사람 간에 차별이 없도록 만드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인간의 원리로는 은혜와 감사를 논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 인간들이 바라는 욕망을 채울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생각으로 인간들이 바라는 행복한 삶, 평안한 삶, 자유로운 삶, 더불어 함께 하는 삶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기독교는 인간의 노력이 역사를 이루고, 기적을 이룬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인간의 수고를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맹세하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셨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일하심을 전제로 하고서, 인간을 향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기독교적인 공동체에서는 차별과 우열과 갈등과 분쟁이 발생할 수 없습니다. 오직 은혜요, 오직 감사라는 말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출애굽기 25장에서 31장까지는 성막에 대한 설계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2장부터 35장에서는 금송아지 사건에 따른 이스라엘 백성의 죄와 모세의 중보기도, 하나님의 용서가 기록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36장부터 40장까지는 하나님이 설명하신 성막의 설계도에 따라 성막이 그대로 지어지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막을 짓기 시작하면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할 것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36장 1절에서 시작하여 39:32절에 성막이 완전히 만들어질 때까지 설명하는 중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는 표현이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하였더라” 입니다. 성경은 여호와의 명령대로 행하라고 강조하고, 여호와의 명령대로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명령, 여호와의 말씀이 가장 옳고 가장 분명하고 가장 좋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창의성이 요구되지 않는 것, 혁신적 사고가 필요하지 않은 것이 바로 진리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명령은 이미 진리이기 때문이다. “진리”는 말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진리는 모든 사람을 위한, 모든 시대를 위한, 모든 지역을 위한 동일한 효과가 있어야만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자신의 뜻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따르는 가장 지혜로운 일입니다.
교회는 새로운 원리, 새로운 방식, 새로운 내용을 찾아내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새로운 인물, 새로운 행사, 새로운 프로그램을 찾아내는 곳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기독교 자체가, 성경 자체가, 교회 자체가 인간들에게는 늘 새롭고 놀라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생각인 죄의 원리와 비교하여 하나님의 말씀인 하나님의 원리 자체가 이미 인간에게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새로운 것입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려고 하지 말고, 이미 인간에게 주어진 새로운 복음을 배워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막이 지어졌습니다. 그 성막의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앞서 설교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성경에서 아주 재미있는 것은 성막에 대한 평가가 단 한마디도 없다는 것입니다. 성막을 지은 자들의 수고에 대하여도 언급하지 않고, 지어진 성막에 대하여도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습니다. 성막이 아주 크고 아름답더라, 성막이 아주 웅장하더라는 평가가 없습니다. 성막보다 더 신령한 것은 이 세상에 없더라는 찬사도 없습니다. 성막이 애굽의 어떤 신전보다 능력이 있었더라는 비교도 없습니다. 왜 성막에 대한 평가가 나오지 않을까요? 그 이유는 성막을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성막이 필요하지 않았고, 성막이 있다고 해서 더 나아질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성막이 지어졌다는 사실로 인해 변화될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성막을 지은 목적이 하나님께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성막이 지어졌다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성막의 설계부터 제작, 완성까지 하나님이 친히 주관하셨습니다. 백성이 하나님을 위해 성막을 지어드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시고 백성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백성들을 위해 만드신 것이기에 감히 평가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인간, 사람에게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세상에서 살아갈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 “다 이루었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 안에서 행복한 삶을 누리는 모습을 보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말씀하셨습니다. 또 그 인간이 범죄하자 안타까워하셨고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통하여 인간의 죄를 대속하실 때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관심은 언제나 인간입니다. 인간이 자유와 평화와 안식과 기쁨과 행복을 누리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관심이요,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출애굽 사건이나 성막이 지어진 것은 그 자체로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다만 인간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고, 하나님이 동행하심을 알게 하여 하나님과 더불어 평안을 누리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유일한 관심이요 목적인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를 향하여 일하시고 계심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는 인간이 하나님께 영광을 억지로 올려드리는 종교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인간에게 임하는 종교입니다. 성막 때문에 여호와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여호와 때문에 성막이 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백성과 함께 한다는 사실입니다. 출애굽기의 끝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동행하시며, 이스라엘을 인도하시는 장면입니다. 이것이 성막을 지으시는 이유요, 출애굽기의 강조점이요, 성경의 핵심입니다. 성막이 다 지어지고 나서 “하나님이 백성을 인도하였더라” 하고 출애굽기는 끝을 맺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심으로 천국을 이루는 종교입니다. 하나님은 선택한 백성인 우리와 언제나 동행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이 이곳에 오셔서 우리와 동행함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천국을 누리는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우리와 동행하시며, 우리의 인생길에 함께 동행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를 향하여 하나님에게 올라오라고 하시지 않고 찾아 내려오신 것입니다. “성막을 만들어라” 하시는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에 보이도록 임재를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눈에 보이는 증거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바로 성막입니다. 성막 구성의 핵심은 법궤입니다. 법궤 안에는 십계명의 말씀이 새겨진 돌판과, 만나 항아리,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 삶 가운데 말씀과 만나와 권위가 함께 있음으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은혜의 증거들을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그 구체적인 모습인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함께 보여주십니다. 법궤 안에 있는 말씀 속의 뜻을 알려고 노력할 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먹여주시고 최종 목적지인 가나안으로 인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눅17장 12~21절입니다. “12.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14.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5.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17.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20.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말씀에 순종하여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면 나병이 낫는 것입니다. 나병을 고쳐주시고 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제사장에게로 나아감으로 나병이 낫게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말씀을 따라 행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고 있는 천국을 누리는 것입니다.
출애굽기는 우리의 구원과정과 같습니다. 현재, 과거, 미래라는 시간을 통하여 구원이 이루어지고 그 결과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아직 피부에 와 닿는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하나님의 구원을 출애굽기를 통하여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계속적인 고난, 부르짖음과 불평, 불만의 연속입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노예생활하면서 고통으로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보시고 알고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그 고통스런 삶 속에서 우리를 어떻게 구원해내시는가 하는 것이 바로 출애굽의 여정입니다. “삶의 길, 시간이라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바로 출애굽기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붙잡아야 할 삶의 지혜인 연단, 인내, 소망이라는 과정을 보여주시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견디기 힘든 시간에 부딪힐 때마다 우리는 자기 존재에 대해 깊이 절망합니다. 짧고도 긴 시간 속에서 느끼는 곤고한 상황에서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예수님밖에 없음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순간에 부닥치는 매 사건마다 생겨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 문제가 해결될 때마다 감격으로 터져 나오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찬양입니다.
출애굽기 40장은 출애굽기를 마치면서 회막, 성막을 완성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이 만나는 장소가 만들어지면서 시내산 꼭대기에 계시던 하나님이 백성들 가운데 내려오신 것입니다. 백성들이 감히 근접할 수 없었던 하나님의 영광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신 것입니다. 요1:14절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성막이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세워짐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마1:23절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28:20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모세는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였습니다. 성경대로 말씀대로 순종하실 것을 미리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단에 드려질 예배, 제물에 대한 그리스도의 순종의 장면을 그대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제물로 드려질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길과 소망이 되실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우리는 가나안, 구원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광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고 오만가지 고통을 겪은 후에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원리는 불교의 무소유와는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돈과 욕심의 노예입니다. 세상에 살면서 돈이 없이 우리는 하루도 살 수 없습니다. 세상을 떠나 무소유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회피하려고 하기 보다는 그 속에서 살면서 어려움을 주님께 호소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먼지보다도 못한 존재임을 깨닫고 그럼에도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죽을 죄인임에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구절입니다.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았더라” 성막에 충만한 하나님의 영광을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면서 가나안 땅으로 행진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이 순간까지 우리가 이렇게 살아오게 된 것도 다 주님의 손길아래에 보호 받았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출애굽기 마지막 장40장의 일부를 읽고 묵상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주님의 뜻을 조금이나마 더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선악과를 먹은 우리들은 지혜가 부족하여 하나님의 뜻을 잘 알지 못합니다. 내 생각은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뜻을 올바로 분별할 수 있게 하옵소서. 우리 속에 잔존하고 있는 죄의식을 자연스럽게 제거하는데 온 맘과 정성을 다하게 하옵소서. 내가 찾아서 구한 하나님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찾아오셔서 사랑하시고 있음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택하신 자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폐회찬송】 찬송가 384장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입니다.
【축도】 축도로 수요 예배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감동 감화 내주 역사 충만 교통하심이 오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 주신 은혜를 잊지 않고 표현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다짐하는 성도들의 머리 위에와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교회 위에와 삼채원 가정교회 위에와 이 나라 이 민족 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있을 지어다. 아멘
매일 매순간 주님 안에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하옵소서.
2022년 3월 16일 수요 가정예배 순서
【준비찬송】 찬송가 430장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 다같이
【개회찬송】 찬송가 31장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 다같이
【개회기도】 예배 인도자
【신앙고백】 사도신경 - 다같이
【찬송】 찬송가 375장 나는 갈 길 모르니 - 다같이
【대표기도】 황보 송옥 사모
【성경봉독】 출애굽기 40장 28~38절
【특별찬양】 찬송가 379장 내 갈 길 멀고 밤은 깊은데 – 다 같이
【말씀선포】 하나님의 영광 - 예배 인도자
【폐회찬송】 찬송가 384장 나의 갈 길 다가도록 - 다같이
【축도】 예배 인도자
【광고】 주님께서 허락하신 일에 항상 기도로 준비하며, 최선을 다하는 우리들이 될 수 있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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