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220914 삼채원가정교회 수요예배설교문

imhp 2022. 9. 15. 18:02

20220914 수요 가정예배 왕상 146~16(여로보암의 죄)

준비찬송찬송가 376장 나그네와 같은 내가 입니다.

지금부터 22914일 수요 가정예배를 드리겠습니다.

개회찬송찬송가 31장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개회기도언제 어디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 오늘도 주님이 주신 아름다운 동산 삼채원에서 저희 부부가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며 예배합니다. 저희 예배를 받아주시옵소서. 주님의 선한 뜻을 잘 알지 못하여 늘 우리 생각대로 행하는 저희들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해 방황하는 우리들입니다. 주님, 저희들이 모르는 주님의 뜻을 깨닫게 하셔서 주님이 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찬양할 수 있게 하옵소서. 저희들의 기도를 들어주실 줄 믿사오며,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신앙고백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 하겠습니다.

찬송찬송가 447장 이 세상 끝 날까지 찬송하신 뒤에 황보 송옥 사모님이 대표 기도해주시겠습니다.

대표기도황보 송옥 사모

성경봉독왕상 146~16. 6.그가 문으로 들어올 때에 아히야가 그 발소리를 듣고 말하되 여로보암의 아내여 들어오라 네가 어찌하여 다른 사람인 체하느냐 내가 명령을 받아 흉한 일을 네게 전하리니 7.가서 여로보암에게 말하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너를 백성 중에서 들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게 하고 8.나라를 다윗의 집에서 찢어내어 네게 주었거늘 너는 내 종 다윗이 내 명령을 지켜 전심으로 나를 따르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만 행하였음과 같지 아니하고 9.네 이전 사람들보다도 더 악을 행하고 가서 너를 위하여 다른 신을 만들며 우상을 부어 만들어 나를 노엽게 하고 나를 네 등 뒤에 버렸도다 10.그러므로 내가 여로보암의 집에 재앙을 내려 여로보암에게 속한 사내는 이스라엘 가운데 매인 자나 놓인 자나 다 끊어 버리되 거름 더미를 쓸어 버림 같이 여로보암의 집을 말갛게 쓸어 버릴지라 11.여로보암에게 속한 자가 성읍에서 죽은즉 개가 먹고 들에서 죽은즉 공중의 새가 먹으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음이니라 하셨나니 12.너는 일어나 네 집으로 가라 네 발이 성읍에 들어갈 때에 그 아이가 죽을지라 13.온 이스라엘이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장사하려니와 여로보암에게 속한 자는 오직 이 아이만 묘실에 들어가리니 이는 여로보암의 집 가운데에서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선한 뜻을 품었음이니라 14.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한 왕을 일으키신즉 그가 그 날에 여로보암의 집을 끊어 버리리라 언제냐 하니 곧 이제라 15.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쳐서 물에서 흔들리는 갈대 같이 되게 하시고 이스라엘을 그의 조상들에게 주신 이 좋은 땅에서 뽑아 그들을 강 너머로 흩으시리니 그들이 아세라 상을 만들어 여호와를 진노하게 하였음이니라 16.여호와께서 여로보암의 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을 버리시리니 이는 그도 범죄하고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하였음이니라 하니라 아멘.

특별찬양찬송가 378장 내 선한 목자 입니다.

기도사랑의 하나님! 오늘도 함께 하시며 저희들 가정과 나라를 지켜주시는 주님께 감사하며 기쁜 마음으로 주님을 찬양하며 예배합니다.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올 추석 연휴를 풍성하고 여유롭게 보내게 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모든 인생의 삶을 주관하시며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경배합니다. 부족하고 미련한 저희들이 주님께 의지하며 말씀과 기도로 예배할 때 주님께서 한량없는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지혜롭게 하시옵소서. 올해부터는 구약성경을 좀 더 자세히 읽고 깊이 묵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열왕기상 14~17장 중에서, 그리고 다음 예배에서는 열왕기상 18~22장을 읽고 묵상하고자 합니다. 저희들이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 성령님 함께 하셔서 우리를 향한 주님의 뜻을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말씀제목여로보암의 죄. 이 말씀으로 은혜 받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열왕기상 14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앞부분은 1~20절까지 하나님 앞에 범죄한 여로보암 왕과 그의 후손들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비참하게 멸절될 것이라는 예언과 여로보암의 죽음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습니다. 뒷부분은 21~31절까지로 유다 왕 르호보암의 실정과 죽음에 대하여 간단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분열 왕국의 초대 왕들인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과 남유다의 르호보암의 최후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남북 왕국의 초대 왕들은 각기 남왕국, 북왕국 역사의 일반적 유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훈계와 경고를 무시하고 일관되게 완악한 길을 걸었습니다. 이에 비해 르호보암은 대체로 하나님께 불순종하였으나 간간히 겸비와 순종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왕들을 벌하실지라도 새로운 후계자들을 세워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계속 이끌어 가시고자 하십니다.

오늘 본문이 있는 앞 부분을 좀 더 세분하면 앞부분은 아히야의 경고와(1-16), 여로보암 아들의 죽음(17-18), 그리고 여로보암의 죽음(19-20)이 나옵니다.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가 병들자 여로보암은 아내를 평민으로 변장시켜 실로로 보내 선지자 아히야를 찾게 합니다. 이는 여로보암이 직접 세운 단과 벧엘의 금송아지가 참 신이 아님을 스스로 인정하는 행위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도 의지하지 않고 믿지 않는 금송아지를 백성 앞에 세워놓고 따르라고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백성들은 그 사람을 믿고 왕으로 인정할까요? 아들의 병은 여로보암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는 어쩌면 마지막 기회였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이 때도 하나님을 찾아 붙잡지 않았습니다. 단지 자신이 왕이 될 것을 예언했던 선지자를 찾아 의지하려 합니다. 그것도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고 아내를 변장시켜 보내는 속임수를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세워주신 왕, 그러나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끝내 기회를 저버린 불행한 왕, 여로보암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하나님을 떠난 자의 반면교사로 계속 꼬리표처럼 등장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성경 속에서 부족하고 연약한 왕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들과 똑 같은 모습입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것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왕이나 영웅, 선지자의 모습을 보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통하여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잘못했을 때는 솔직히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받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겸손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우리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 6입니다. “그가 문으로 들어올 때에 아히야가 그 발소리를 듣고 말하되 여로보암의 아내여 들어오라 네가 어찌하여 다른 사람인 체하느냐 내가 명령을 받아 흉한 일을 네게 전하리니나이가 많아 눈이 어둡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미리 전해들은 아히야가 그 발소리를 듣고 여로보암을 아내를 알아봅니다.

어찌하여 라는 말은 몰라서 묻는 의문이 아닙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왜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가? 할 때처럼 냉소적 어감을 지닌 말입니다. 이 말은 마치 세상의 군왕들이 떠들썩하게 나서서 하나님을 대적하지만, 정작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냉소와 비웃음을 흘리시는 광경을 연상하게 합니다.

여로보암은 자신의 아내를 변장시켜 다른 사람인체 하여 아히야가 못 알아보도록 하였습니다(2). 그러면서도 여로보암은 앞일을 내다보는 아히야의 능력만은 인정하고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는 곧 선지자를 일종의 점술가로 취급하는 태도에 해당합니다. 즉 여로보암은 자신을 감춤으로써 아히야와 인격적 관계 맺기를 거부하면서도 기복의 도구로 하나님의 사람인 아히야를 이용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런 태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그분과의 인격적 관계에서 파악하지 않고 하나의 도구적 사물로 인식하는 왜곡된 신앙형태입니다.

흉한 일에서 흉한은 엄격하다, 가혹하다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본문에서 흉한 은 여로보암 가문의 멸절을 선언하는 심판의 가혹함을 묘사하는 데 쓰였습니다. 과거 하나님의 메시지를 여로보암에게 전했던 아히야는 이제 하나님의 메시지를 다시금 여로보암의 아내에게 전합니다. 이 메시지, 즉 심판의 예언은 훗날 반드시 성취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대언자 역할하는 아히야의 모습에서 우리는 참선지자의 고유한 권한과 한계를 볼 수 있습니다.

본문 7입니다. “가서 여로보암에게 말하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너를 백성 중에서 들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게 하고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가 여로보암을 백성 중에서 들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라는 표현은 이스라엘과 여호와 사이가 불가분리의 각별한 관계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절의 행간에 감추어진 아히야의 심정은 여로보암이 그러한 각별한 관계를 파기한 것에 대한 상처와 분노입니다. 이스라엘 하나님에 대조되는 표현이 있다면 그것은 9절의 다른 신입니다.

주권자가 되게 하고에서 되게 하고는 원래 위임하다는 뜻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그러므로 백성의 주권자가 된다는 것은 권력자가 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백성의 주권자는 어디까지나 우주의 참된 주권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위임받은 백성을 겸손히 다스려야 하는 제한된 봉사자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여로보암은 저들을 우상 숭배의 죄악으로 몰고 간 것입니다(12:25-33).

본문 8입니다. “나라를 다윗의 집에서 찢어내어 네게 주었거늘 너는 내 종 다윗이 내 명령을 지켜 전심으로 나를 따르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만 행하였음과 같지 아니하고나라를 다윗의 집에서 일부를 찢어내어 주었거늘 다윗과 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다는 것입니다.

찢어 내어 라는 말은 한 왕조에서 왕조의 일부를 분리해 냄을 의미하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한편 성경에서 이와 유사한 표현인 옷을 찢는다는 것은 비통함과 회개의 표시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나라가 찢어졌다는 것은 비통한 현실이기도 하거니와 나라 전체에 회개를 촉구하는 표시이기도 합니다.

다윗처럼 하지 아니하고, 본문은 마치 여로보암의 소행을 놓고 판결을 내리는 법정의 장면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의 행위를 판단하는 기준이 찢어낸 왕조에 속한 다윗인 점이 흥미롭습니다. 즉 아히야는 이전의 예언에서 여로보암에게 다윗의 신앙을 본받으라고 이미 충고한 적이 있습니다.(11:38) 따라서 다윗 왕조와 비교하여 그를 책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로보암에게 있어서 다윗은 적대 가문의 전왕으로서 증오의 대상이었을지언정 따라야 할 모범적인 왕조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본서의 다윗은 여로보암 뿐만 아니라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들의 표준이 될 만한 신앙인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반면에 여로보암은 우상 숭배의 대표적 인물로서 언급되고 있습니다(15:34; 16:26,30).

본문 9입니다. “네 이전 사람들보다도 더 악을 행하고 가서 너를 위하여 다른 신을 만들며 우상을 부어 만들어 나를 노엽게 하고 나를 네 등 뒤에 버렸도다이전 사람보다 더 악을 행하고 너를 위하여 다른 신을 만들며 나를 치욕스러울 정도로 멸시하였다는 것입니다.

너의 이전 사람들보다도 악을 행하고 에서 이전 사람들이란 말의 범위 및 이해 방식에는 여러 견해들이 있습니다. 이전의 왕들, 즉 사울, 다윗, 솔로몬과 같은 앞선 왕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이 경우 비교 대상의 범위가 작으므로 여로보암의 악을 강조하기에는 조금 아쉬운 느낌이 있습니다. 이전의 사사들까지 포함해서 지칭하는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이는 지나친 비약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단지 여로보암의 극악무도함을 표현하는 수사적 관용 어법으로 이해합니다. 어쨌든 이상의 세 견해 중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우상 숭배에 빠졌던 선대의 인물들이 결코 여로보암만큼 악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과거 솔로몬왕도 많은 여인들로 인하여 한때 혼미하여 우상 숭배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여로보암처럼 체계적이고 정책적으로 우상 숭배를 전국에 확산시키지는 않았습니다(11:1-8).

비록 여로보암이 자신의 종교 정책을 전통적 신앙으로의 복귀를 위해 홍보했을지라도 본심은 참된 신앙적 동기에 있지 않았습니다(12:25-33). 즉 여로보암은 단지 유다와의 체제 경쟁의 차원에서 정권을 안정시키기 위해 종교 정책을 펼쳤을 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러한 여로보암의 불순함을 간단하게 한 마디로, 너를 위하여 하고 정확히 통렬하게 지적하시고 있습니다. 형식적인 겉치레와 간판이 무엇이든 내적인 하나님을 위하여 라는 참된 동기가 결여된 제사는 불법인 것입니다. 그런 제사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무엇, 즉 우상을 향한 제사이기 때문입니다.

네 등 뒤에 버렸도다, 는 하나님을 최대한으로 경멸하고 무시했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즉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성실히 섬기는 태도를 가리켜 종종 눈을 하나님을 향하여 두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의 행위는 하나님께로부터 눈을 돌렸을 뿐 아니라, 아예 등까지 돌려 버린 것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등 뒤에 라는 표현이 갖는 모욕과 경멸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여기에 버리다는 말이 추가됨으로서 모욕의 정도는 최대로 증폭이 됩니다. 왜냐하면 이 버리다는 말은 어떤 것을 무가치한 것처럼 유기해버리는 행위를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즉 이는 여로보암이 하나님을 쓰레기만큼도 여기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본문 10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여로보암의 집에 재앙을 내려 여로보암에게 속한 사내는 이스라엘 가운데 매인 자나 놓인 자나 다 끊어 버리되 거름 더미를 쓸어 버림 같이 여로보암의 집을 말갛게 쓸어 버릴지라내가 여로보암의 집에 재앙을 내려 그의 집을 말갛게 쓸어 버릴지라 말씀하십니다.

여로보암에게 속한 사내. 원문의 문자적 표현은 여로보암에게 속한, 벽에다 오줌 누는 자들입니다. 곧 여로보암 가문의 모든 남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가운데 매인 자나 놓인 자나. 매인 자나 놓인 자는 관용법적 표현으로서 모든 사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말은 앞서 여로보암에 속한 사내와 동격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매인 자와 놓인 자의 자세한 의미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기혼자와 미혼자, 종과 자유인, 연소자와 연장자를 가리킨다는 등 여러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하지만 원문에 아주브는 종에서 풀려나다는 뜻이 있기에 종과 자유인으로 보는 것이 적당합니다.

거름을 쓸어버림같이. 에서 거름은 길에 굴러다니는 똥을 말합니다. 원어에 비해 번역한 거름은 좀 점잖은 느낌입니다. 왜냐하면 거름은 더럽긴 해도 쓸모 있는 무엇이란 의미를 주기 때문입니다. 원문 그대로 번역하면 본절은 여로보암 일족의 멸망이 마치 길에 굴러다니는 똥을 치우듯 혐오를 갖고, 조금의 미련도 없이 수행될 것임을 시사해 줍니다(15:28-30).

본문 11입니다. “여로보암에게 속한 자가 성읍에서 죽은즉 개가 먹고 들에서 죽은즉 공중의 새가 먹으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음이니라 하셨나니여로보암에게 속한 자가 성읍에서 죽은즉 개가 먹고 들에서 죽은즉 공중의 새가 먹으리니라. 시체가 무덤에 안장되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버려지는 것은 히브리인에게 있어서 큰 수치였습니다. 더구나 시신이 야수의 밥으로 먹히는 것은 죽은 자에 대한 최대의 오욕과 불명예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여호와가 말하였음이니라. 이 말은 마치 어떤 공문서로 하여금 권위와 효력을 갖게 하는 서명 날인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말씀은 인간의 말과 달라서 반드시 시행이 되고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삼상 15:29).

본문 12입니다. “너는 일어나 네 집으로 가라 네 발이 성읍에 들어갈 때에 그 아이가 죽을지라네 발이 성읍에 들어갈 때에 그 아이가 죽을지라 말씀하십니다.

너는 일어나 네 집으로 가라. 본문에서 여로보암의 아내의 역할은 일종의 심부름꾼(메신저)입니다. 즉 그녀는 처음에 올 때에는 여로보암의 심부름꾼이었으나(1-4), 이제 갈 때에는 아히야의 메신저가 된 셈입니다. 즉 여로보암의 아내는 처음에 아이의 생사 여부를 물으러 왔습니다. 이제 돌아갈 때 그녀는 여로보암 가문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6-11)과 그 증거로서 자신의 아이가 죽게 될 것(12,13)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여로보암에게 알려야 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즉 말씀의 전언과 징조의 해석이 그녀에게 임무로 부과된 셈입니다. 결국 여로보암이 아내를 이용하고, 아히야를 속이려던 것이 이제는 거꾸로 아히야가 그녀를 통하여 여로보암을 꾸짖게 된 셈입니다.

네 발이 성읍에 들어갈 때에 그 아이가 죽을지라. 여로보암의 병든 아들(1)은 결국 죽을 운명임이 드러났습니다. 여로보암이 애초에 아히야에게 묻고자 했던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 아이가 죽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표징이 되어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표징이 우연과 구별되는 근거가 되는데 발이 성읍에 들어갈 때라는 특정한 시점과 아이의 죽음의 순간이 일치하는 것에 있습니다. 17절에서는, 발이 성에 들어갈 때가 집 문지방에 이를 때로 보다 자세히 언급됩니다. , 아이의 죽음과 아히야의 예언이 사실로 성취될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닌 필연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13입니다. “온 이스라엘이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장사하려니와 여로보암에게 속한 자는 오직 이 아이만 묘실에 들어가리니 이는 여로보암의 집 가운데에서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선한 뜻을 품었음이니라오직 이 아이만 묘실에 들어갈 것이라 합니다. 본절은 아이의 죽음을 역설적으로 차라리 행운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물론, 이후 여로보암 가문에 밀어 닥칠 심판을 생각할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한편 이러한 본절의 구조는 전반부가 아이의 죽음이 갖는 상대적 행복의 요소를, 후반부가 이에 대한 해석을 말하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중 먼저 전반부에서 아이의 죽음은 온 백성의 애도를 받을 수 있음과 묘실에 매장될 수 있음이 지적됩니다. 따라서 아무데나 버려져 짐승의 먹이가 될 다른 가족의 주검에 비하면(11) 이는 거의 축복에 가까운 죽음입니다. 다음으로 본절 후반부는 아이의 이 같은 죽음의 이유를 그가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선한 뜻을 품었기 때문으로 풀이합니다. 문맥상 아이의 병, 혹은 죽음을 놓고 여로보암의 아들이 병이 난 것은 여로보암의 소행 때문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아이가 병으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여로보암에게는 불행과 슬픔으로 느껴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선지자 아히야가 보기에는 그것은 차라리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55:8~9절입니다. “8.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선한 뜻을 품었음이니라. 이 말은 11절 예언의 예외로서 오직 아비야만이 온 백성의 애도를 받으며 묘실에 들어갈 수 있게 된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즉 여기서 선한(토브)은 어떤 사람의 욕망이나 의지의 방향을 나타내줍니다. 다시 말해 여로보암의 아들이 가진 의지는 하나님을 향해 선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한편 유대교 랍비 전승에 의하면, 이 아들은 절기를 지키러 예루살렘으로 가는 백성들을 저지하라는 부친의 명령을 어기고, 오히려 길에 세운 장애물을 치워 주었다고 합니다. 아무튼 여로보암의 모든 권속들에게 닥쳤던 참화(15:29)를 겪지 않고 평안히 죽음을 맞이한 아비야의 경우는 의인들은 악한 자들 앞에서 불려가도다 하는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57:1입니다. “의인이 죽을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진실한 이들이 거두어 감을 당할지라도 깨닫는 자가 없도다 의인들은 악한 자들 앞에서 불리어가도다악인들의 징계현장에 함께 있지 않도록 의인을 먼저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14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한 왕을 일으키신즉 그가 그 날에 여로보암의 집을 끊어 버리리라 언제냐 하니 곧 이제라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위에 한 왕을 일으키신 즉 그가 그 날에 여로보암의 집을 끊어 버리리라 합니다.

그 날에는 문자적으로는 이 날(this day)입니다. 이 말은 평면선상의 어느 시간으로서 이 날 혹은 저 날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는 희랍어의 카이로스처럼 결정적인 순간으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즉 자연 발생적이 아닌, 돌발적 박진감으로 들이닥치는 결정적인 시점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마침내 때가 이르면 바로 그 날이라는 어감을 지닌 말입니다.

언제냐 하니 곧 이제라. 본절에서 이 부분은 당혹감을 주고 있습니다. 문맥상 그 날에가 하나님께서 한 왕을 일으키시는 날과 일치함은 분명합니다. 그 날은 임박하는 날로 좌우간 미래의 어느 때입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는 심판의 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얼핏 이것은 모순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거의 종말론적 언어입니다. 즉 너무나 확실한 결정이여서 이미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고 되고 있는 중 혹은 되어 질 것으로도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막, 방금을 의미하면서도 동시에 이제부터를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본절은 심판이 이미 시작되었단 말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본문 15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쳐서 물에서 흔들리는 갈대 같이 되게 하시고 이스라엘을 그의 조상들에게 주신 이 좋은 땅에서 뽑아 그들을 강 너머로 흩으시리니 그들이 아세라 상을 만들어 여호와를 진노하게 하였음이니라그들이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므로 이스라엘을 쳐서 물에서 흔들리는 갈대 같이 되게 하시고 땅에서 뽑아 그들을 강 너머로 흩으시리라합니다.

이제 여로보암 가문의 파멸 예언(14)은 슬그머니 그 대상을 북왕국 전체로 확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왕과 백성이 함께 심판 받음은 그들의 공동 운명적 유대 관계를 암시합니다. 즉 백성들도 여로보암의 정책을 묵묵히 따름으로서(12:30) 결국 그에게 동조한 셈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이처럼 백성들이 동조한 우상 숭배는 여로보암 사후에도 계속되어 북왕국 역사 전체를 올무에 빠뜨리고 맙니다. 즉 북왕국의 우상 숭배는 왕과 백성의 상호작용에 힘입어 만연하게 된 셈입니다.

물에서 흔들리는 갈대. 갈대는 가지, 줄기 등으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이는 이차적으로 파생되어 나온 뜻입니다. 본래 갈대의 일차적인 뜻은 기본적으로 연약함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성경에서 애굽은 이스라엘이 의지할 수 없는 상한 갈대로 비유되기도 합니다.

왕하18:21입니다. “이제 네가 너를 위하여 저 상한 갈대 지팡이 애굽을 의뢰하도다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그의 손에 찔려 들어갈지라 애굽의 왕 바로는 그에게 의뢰하는 모든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

이상을 참고할 때, 물에 흔들리는 갈대는 강대국에 시달리는 약소국의 처지를 빗대는 말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뽑아는 뿌리 채 뽑는 것, 즉 근절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뽑혀야할 것은 아세라 상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정작 아세라 상을 뿌리 뽑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거꾸로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뿌리 뽑히게 된 것입니다. 1116~17입니다. “16.너희는 스스로 삼가라 두렵건대 마음에 미혹하여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그것에게 절하므로 17.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아니하여 땅이 소산을 내지 않게 하시므로 너희가 여호와께서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

하수 밖으로 흩으시리니 에서 하수는 큰 강 유프라테스를 말합니다. 본절의 예언은 이스라엘 멸망 후 앗시리아로 끌려갈 사건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사건은 B.C. 722년에 성취되고 말았습니다.

흩으시리니는 본래 키질하다, 까부르다는 뜻입니다. 즉 이는 곡식을 키질하여 찌꺼기를 바람에 날림으로써 깨끗하게 하는 동작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비유적 의미로 사용될 때는 응징, 정화의 의미로 쓰입니다. 즉 이 말은 파국적 응징으로만 그치지 않고 정화라는 긍정적 측면도 함께 내포하고 있는 동사입니다.

아세라는 페니키아와 가나안의 풍요의 여신입니다. 아세라는 분열 왕국 시대에 여호와 신앙의 주요 대적으로 등장합니다. 엘리야가 활동할 무렵, 이세벨의 식탁에서 먹는 아세라의 선지자는 무려 400명이었습니다. 또 아세라 숭배는 남왕국까지 잠식해 들어갔습니다. 요시야의 종교 개혁은 아세라 숭배를 근절시키는 것이 주요 과제 중 하나였습니다.

본문 16입니다. “여호와께서 여로보암의 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을 버리시리니 이는 그도 범죄하고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하였음이니라 하니라하나님께서 여로보암의 죄로 이스라엘을 버림으로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하였습니다. 여로보암은 자신이 타락하면서 결국 이스라엘 역사 전체를 오염시킨 원천적인 씨앗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면 은혜를 저버리고 온갖 우상숭배로 하나님을 노엽게 하고 폐기하듯 하나님을 버린 여로보암과 그 가문에 재앙을 선고하십니다. 맨 먼저 병든 아들 아비야의 죽음이 자비로 여겨질 정도로 그 심판은 혹독할 것입니다. 은혜를 떠난 자리에 죄가 들어오고, 죄가 쌓인 곳에 진노와 징벌이 임합니다. 여로보암의 고집은 마지막 회개의 기회마저 놓치고 최후의 심판으로 이끌어 버렸습니다.

기도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열왕기상 14의 일부를 읽고 묵상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주님의 뜻을 조금이나마 더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여로보암의 죄악이 극에 달했을 때 그의 아들 아비야가 병듭니다. 그는 자식의 고통 앞에서 회개하기보다, 자신이 왕이 될 것을 예언한 선지자 아히야게게 아내를 변장시켜 보냅니다. 하나님과의 불편한 관계가 변장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 앞에서 본래의 자신이 아닌 하나님께 반하는 거짓된 모습으로 살아온 것입니다. 왕이 우상숭배하고 하나님을 떠나자(9), 공동체 전체가 하나님을 버린 것입니다. 지도자가 공동체의 안녕이 아닌 사리사욕을 추구하면, 모두 나 하나 살기 위해, 나부터 살자고 하나님의 길을 떠날 것입니다. 우리들은 끝까지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공동체 내에서 평화를 누리는 우리들이 될 수 있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폐회찬송찬송가 446장 주 음성 외에는 입니다.

축도축도로 수요 예배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감동 감화 내주 역사 충만 교통하심이 오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 주신 은혜를 잊지 않고 표현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다짐하는 성도들의 머리 위에와 그 가정 위에와 삼채원 가정교회 위에와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교회 위에와 이 나라 이 민족 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있을 지어다. 아멘

 

참고: 홍융희 목사님 설교, 송태근 목사님 설교, 늘푸른교회 이장우 목사님 설교, 헤브론 선교회 자료 등

 

  

 

매일 매순간 주님 안에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하옵소서.

 

2022914일 수요 가정예배 순서

 

준비찬송 찬송가 376장 나그네와 같은 내가 - 다같이

 

개회찬송 찬송가 31장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 다같이

 

개회기도 예배 인도자

 

신앙고백 사도신경 - 다같이

 

찬송찬송가 447장 이 세상 끝날까지 - 다같이

 

대표기도 황보 송옥 사모

 

성경봉독열왕기상 146~16

 

특별찬양 찬송가 378장 내 선한 목자 다 같이

 

말씀선포 여로보암의 죄 - 예배 인도자

 

폐회찬송 찬송가 446장 주 음성 외에는 - 다같이

 

축도 예배 인도자

 

 

광고주님께서 허락하신 일에 항상 기도로 준비하며, 최선을 다하는 우리들이 될 수 있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