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11성령강림절 후 열네 번째 주일예배 왕상22장29~39절(아합왕의 죽음)
【준비찬송】 찬송가 176장 주 어느 때 다시 오실는지 입니다.
지금부터 22년 9월18일 성령강림절 후 열다섯 번째 주일예배를 드리겠습니다.
【개회찬송】 찬송가 27장 빛나고 높은 보좌와
【개회기도】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시62:1~2) 아멘
믿는 성도들에게 구원의 반석이 되시는 아버지 하나님! 어지러운 세상 가운데 살면서 저희들이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시고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리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저희 인생들의 요새이시니 악한 마귀에게 흔들리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이기게 해주시옵소서.
언제 어디서나 주님과 함께하여 믿음을 지키게 하시고, 빛과 소금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며, 찬송하며, 말씀을 통해 저희들이 가지고 나온 문제들이 해결되기를 원합니다. 풀리지 않는 답답한 문제들이 풀리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무거운 인생의 짐을 내려놓고 쉼을 얻고 새 힘을 주실 줄 믿사옵니다. 모든 영광 하나님 홀로 받아 주시기를 원하오며,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경배찬송】 찬송가 28장 복의 근원 강림하사 찬송하겠습니다.
【신앙고백】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 하겠습니다.
【성시교독】 교독문 28. 시편 63편
【봉헌찬송】 찬송가 179장 주 예수의 강림이, 봉헌시간입니다.
【봉헌과 축복의 기도】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저희들에게 시시때때로 은택을 베풀어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 지난 한 주간에도 저희들과 동행하시고 인도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저희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오늘 예배를 통하여 적은 예물이지만 구별하여 봉헌하오니 받아주시옵소서. 이 예물이 밑거름이 되어 오병이어의 축복이 우리 교회와 가정과 사업장과 생업마다 차고 넘치게 하옵소서. 주님의 은혜로 주어진 재물을 이웃과 지역사회와 교회를 위하여 사용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게 하옵소서. 만물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찬송】 찬송가 183장 빈 들에 마른 풀같이, 찬송하신 후에 황보 송옥 사모님이 대표 기도해 주시겠습니다.
【대표기도】 황보 송옥 사모
【성경봉독】열왕기상 22:29~39절. 29.이스라엘의 왕과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니라 30.이스라엘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나는 변장하고 전쟁터로 들어가려 하노니 당신은 왕복을 입으소서 하고 이스라엘의 왕이 변장하고 전쟁터로 들어가니라 31.아람 왕이 그의 병거의 지휘관 삼십이 명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작은 자나 큰 자와 더불어 싸우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왕과 싸우라 한지라 32.병거의 지휘관들이 여호사밧을 보고 그들이 이르되 이가 틀림없이 이스라엘의 왕이라 하고 돌이켜 그와 싸우려 한즉 여호사밧이 소리를 지르는지라 33.병거의 지휘관들이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 아님을 보고 쫓기를 그치고 돌이켰더라 34.한 사람이 무심코 활을 당겨 이스라엘 왕의 갑옷 솔기를 맞힌지라 왕이 그 병거 모는 자에게 이르되 내가 부상하였으니 네 손을 돌려 내가 전쟁터에서 나가게 하라 하였으나 35.이 날에 전쟁이 맹렬하였으므로 왕이 병거 가운데에 붙들려 서서 아람 사람을 막다가 저녁에 이르러 죽었는데 상처의 피가 흘러 병거 바닥에 고였더라 36.해가 질 녘에 진중에서 외치는 소리가 있어 이르되 각기 성읍으로 또는 각기 본향으로 가라 하더라 37.왕이 이미 죽으매 그의 시체를 메어 사마리아에 이르러 왕을 사마리아에 장사하니라 38.그 병거를 사마리아 못에서 씻으매 개들이 그의 피를 핥았으니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거기는 창기들이 목욕하는 곳이었더라 39.아합의 남은 행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건축한 상아궁과 그가 건축한 모든 성읍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아멘.
【특별찬양】 찬송가 528장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찬양받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오늘도 저희 부부가 삼채원 동산에서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게 인도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지난 3일 동안 처형 가정이 이곳에 방문하여 즐거운 교제의 시간을 가지게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인생의 남은 기간에도 형제자매들과의 교제를 더 자주 나눌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시51:6~7)”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사옵니다. 한없이 크신 주님의 사랑 안에서 주님의 지혜를 배우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지혜로 우리의 죄가 눈같이 희게 씻기기를 바랍니다. 예배드리는 동안 주님의 죄 사함을 경험할 수 있게 하옵소서. 2022년에는 구약성경을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열왕기상 18~22장을 읽고 묵상하고, 다음 예배에는 열왕기하 1~3장을 읽고 묵상하고자 합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성령님 함께 하셔서 저희들의 우둔한 머리를 지혜롭고, 명철하게 하셔서 주님의 큰사랑을 깨닫게 하옵소서. 그 사랑 안에서 복된 삶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제목】 아합왕의 죽음 : 오늘 말씀을 통하여 많은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아합은 아람을 칠 계획을 세우고 사돈인 남유다왕 여호사밧을 불러 함께 전쟁에 나갈 것을 제안합니다. 그런데 여호사밧은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물어보고서 결정하자고 합니다. 그때에 아합의 선지자 400명이 모두 전쟁에 승리할 것이라고 한 목소리로 예언하자 여호사밧은 이들 외에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없느냐고 다시 제안을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아합에게 여호사밧을 붙이셔서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묻도록 그의 앞길을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아합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전하는 미가야보다 자기를 만족시키는 400명의 말에 자기의 앞날을 맡겼다가 결국 패망의 길로 가고 맙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좋게 하기 보다는 사람에게 좋게 하는 외침이 더욱 귀를 즐겁게 하는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귀 기울이며 듣고 따라야할 여호와의 말씀이 과연 어디에 있는지 살필 수 있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드러내는 삶, 즉 온 맘과 몸으로 정성을 다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열왕기상 22장 전체의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요약해 보겠습니다. 본장에는 아합 왕의 최후에 대해 기록되어 있는데 아합 왕은 이스라엘의 어떤 왕보다 더욱 악한 왕이었습니다. 아합 왕이 나오는 구절은 열왕기상 16장에서 시작하여 22장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합 왕 때 상당히 많은 내용들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아합 왕이 북왕국 이스라엘에 미친 영향력이 그만큼 컸음을 반증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아합 왕의 악한 통치로 인해 이스라엘은 온통 죄악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또한 본장에는 아합 왕의 죽음에 대하여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그의 악한 통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분명히 보여 주는 것입니다. 본 장의 내용을 크게 구분하여 보면 다섯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①1~12절로 아합이 길르앗라못 탈환을 계획합니다. ②13~28절로 여호와의 참선지자 미가야는 아합의 패전을 예언합니다. ③29-40절까지는 아합이 길르앗라못에서 전사하는 장면입니다. ④41-50절로서 여호사밧의 유다 통치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⑤마지막 단락인 51-53절은 아하시야의 북이스라엘 통치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합의 출정 계획은 사실 자신의 욕심 외에도 여호사밧과의 동맹, 다수 선지자들의 승리 예고 등으로 부추겨졌습니다. 따라서 어느 때 보다 자신감으로 고무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가야의 눈에는 모든 것에 거짓 영의 활동이 있었음을 알았습니다. 아합의 자신감이란 사상누각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이 전쟁에서 아합이 최후를 맞게 된 것은 인간의 계산을 초월한 하나님의 섭리를 느끼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합 왕이 통치하던 시절에 이스라엘 백성의 범죄와 하나님의 심판을 자세하게 기록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러한 역사적인 사건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죄를 경계하도록 교훈하시기 위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고전10:11).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경에 기록된 북이스라엘 역사를 통하여 주시는 교훈을 마음에 새겨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오늘 본문 29절입니다. “이스라엘의 왕과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니라” 이스라엘의 왕 아합과 유다의 왕 여호사밧이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갑니다. 미가야의 예언을 묵살한 채 아합은 길르앗 라못 정벌을 단행합니다. 이처럼 스스로 패망의 길로 접어드는 아합의 모습에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즉 악인이 패망의 길로 행하는 것을 내버려 둠이 곧 하나님의 징계라는 점입니다. 실상 아합의 그릇된 결정에 직접적으로 작용한 원인은 아합 자신의 과욕과 선지자들, 즉 거짓말하는 영 등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탐욕과 악령의 미혹이 서로 결합되어 패망으로 향하는 것조차도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허용 아래 있다는 것이 본문의 핵심 요지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탐욕과 악령의 활동을 단지 내버려 두실 뿐이지 악을 주관하여 일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한편 유다 왕 여호사밧은 비록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에 의심을 품었지만 사돈관계로 얽혀 아합과의 동맹에서 몸을 뺄 수는 없었습니다.
본문 30절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나는 변장하고 전쟁터로 들어가려 하노니 당신은 왕복을 입으소서 하고 이스라엘의 왕이 변장하고 전쟁터로 들어가니라” 이스라엘의 왕은 변장하고 여호사밧 왕은 왕복을 입고 전쟁터로 들어갑니다. 아합 왕이 변장하고 출정하는 이유는 비록 미가야의 예언을 묵살하고 나가지만 내심 그의 예언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인간의 눈을 속여 혹시라도 닥칠지 모를 죽음을 방지하려 했습니다. 곧 왕복을 벗고 일개 군사로 변장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왕복을 입으소서 하고 아합은 일견 매우 약삭빠른 제안을 여호사밧에게 하고 있습니다. 어느 전투에서나 지휘관은 집중 공격의 표적이 되기 마련입니다. 즉 그만큼 위험 부담이 많은 것이 곧 지휘관의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사밧에게는 왕복을 입게 하고 자신은 변장하겠다는 아합의 본 제안은 매우 비겁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혹자는 아람과 특별한 원한이 없는 여호사밧은 상대적으로 위험 부담이 적기 때문에 이 같은 제안이 가능했다고도 설명합니다.
아합의 이러한 약삭빠른 모습은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본문 31절입니다. “아람 왕이 그의 병거의 지휘관 삼십이 명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작은 자나 큰 자와 더불어 싸우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왕과 싸우라 한지라” 아람 왕이 그의 지휘관 32명에게 오직 이스라엘 왕과 싸우라고 명령합니다. 병거의 지휘관 삼십이 명은 아람 왕 밴하닷이 이스라엘과의 1차 교전에서 패배한 후 새롭게 일선 지휘관으로 세운 32명의 장관들입니다.
작은 자나 큰 자나 더불어 싸우지 말고, 즉 말단 병졸이든 좀 더 신분 높은 장군이든 그들은 상대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이는 곧 오직 전력을 총집중하여 적군의 우두머리인 아합을 상대하여 싸우도록 하기 위한 명령입니다.
오직 이스리엘 왕과 싸우라. 이 말은 왕상 20장에 나오는 이전 전투에서 패배하고 맺은 아벡 조약 당시 벤하닷이 아합에게 당했던 수모와 굴욕이 매우 컸음을 암시해 주는 구절입니다.
왕상20:34절입니다. “벤하닷이 왕께 아뢰되 내 아버지께서 당신의 아버지에게서 빼앗은 모든 성읍을 내가 돌려보내리이다 또 내 아버지께서 사마리아에서 만든 것 같이 당신도 다메섹에서 당신을 위하여 거리를 만드소서 아합이 이르되 내가 이 조약으로 인해 당신을 놓으리라 하고 이에 더불어 조약을 맺고 그를 놓았더라” 그래서 벤하닷은 아합에게 보복하기 위한 날만을 학수고대해 왔을 것입니다. 한편 벤하닷의 이 명령 때문에 여호사밧은 행운을 얻게 됩니다. 즉 아합과 여호사밧은 둘 다 적군의 왕임에도 불구하고 벤하닷의 명령은 오로지 북이스라엘 왕만을 지목하였습니다. 때문에 여호사밧은 체포당하거나 살해당할 위기에서도 목숨을 보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32,33절). 이 역시 악인은 멸망의 길로 가도록 내버려 두시나 의인은 굳건히 지켜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의 결과임을 새삼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본문 32~33절입니다. “32.병거의 지휘관들이 여호사밧을 보고 그들이 이르되 이가 틀림없이 이스라엘의 왕이라 하고 돌이켜 그와 싸우려 한즉 여호사밧이 소리를 지르는지라 33.병거의 지휘관들이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 아님을 보고 쫓기를 그치고 돌이켰더라” 여호사밧을 보고 그들이 이스라엘의 왕이라 하고 돌이켜 그와 싸우려 한즉 여호사밧이 소리를 지르니 이스라엘 왕이 아님을 알고 쫒기를 그칩니다.
여호사밧이 소리 지르는 지라. 아람 병거군대 장관들이 여호사밧을 향해 집중 공격을 가해 오자 여호사밧은 당황했음에 틀림없습니다. 공동 번역은 이 부분을 여호사밧이 기겁을 하여 소리치자로 옮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사밧은 단순히 겁에 질려 소리친 것만은 아닙니다. 그는 은연 중 자신이 아합이 아님을 공격자들에게 알리려 하였던 것입니다. 다음절에서 아람 장관들이 공격을 멈춘 것만 보더라도 이 점은 입증됩니다. 그러기에 Living Bible은 본절을 여호사밧은 적들이 자신을 알아보도록 소리를 질렀다 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아님을 보고라는 말은 잘 주목하여 알아내다는 뜻입니다. 즉 아람 장관들은 여호사밧이 아합이 아닌 줄 알아차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꼭 얼굴이나 기타 외양을 봄으로 해서 알아낸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문맥상 아람 장관들이 공격하려던 대상이 아합이 아닌 줄 알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여호사밧의 소리침과 관련됩니다. 혹자는 이와 관련해서 여호사밧이 큰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밝힌 것이 아닌가 추측하기도 합니다.
본문 34절입니다. “한 사람이 무심코 활을 당겨 이스라엘 왕의 갑옷 솔기를 맞힌지라 왕이 그 병거 모는 자에게 이르되 내가 부상하였으니 네 손을 돌려 내가 전쟁터에서 나가게 하라 하였으나” 아합은 한 사람이 무심코 쏜 활이 왕의 갑옷 솔기를 맞혀 부상당함으로 병거 모는 자에게 전쟁터에서 나가게 하라 합니다(34절)
무심코(레투모)는 문자적으로 단순함으로라는 뜻입니다. 되는대로 또는 별 생각 없이 등으로 번역될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는 혼란한 전쟁 중에 누가 맞아도 맞겠거니 하고 아무렇게나 화살을 날린 것을 말합니다. 당시 쇠로 만들어진 갑옷은 가슴과 갈빗대 부분을 덮도록 되어 있었고 여기에 하복부를 가리기 위해 금속조각들로 솔기를 매어 달았습니다. 본 절에서 갑옷 솔기란 바로 이 연결 부위로 가슴막이 아래 부분입니다. 아람 병정이 아무렇게나 날린 화살 하나가 하필이면 변장하고 숨은 아합의 갑옷 솔기를 파고들었다는 점은 이 일이 단순히 우연한 사건이 아님을 감지할 수 있게 해줍니다. 즉 미가야의 예언(17-23, 28절)에 입각해 볼 때, 이는 분명 하나님이 배후에서 역사하신 결과인 것입니다.
내가 부상하였으니 네 손을 돌려 내가 전쟁터에서 나가게 하라. 지휘관의 부상이나 전사는 군대 전체의 사기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치명상을 입은 아합은 군사들 몰래 진영 밖으로 빠져나가려 한 것입니다.
본문 35절입니다. “이 날에 전쟁이 맹렬하였으므로 왕이 병거 가운데에 붙들려 서서 아람 사람을 막다가 저녁에 이르러 죽었는데 상처의 피가 흘러 병거 바닥에 고였더라” 이날에 전쟁이 맹렬하여 아람 사람을 막다가 아합이 저녁에 죽었는데 상처의 피가 흘러 병거 바닥에 고였습니다.
전쟁이 맹렬하였다는 전쟁이 고조되다, 타오르다 는 뜻입니다. 즉 일단 맞붙은 전투는 점점 열기를 더함으로써 혼전에 혼전을 거듭하게 된 것입니다. 붙들려 서서는 계속해서 서 있다는 뜻입니다. 즉 아합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치열한 전투 때문에 아합의 병거는 이동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아합의 거듭되는 불운을 설명해 줍니다. 즉 아합은 제때에 부상을 치료받지 못해 결국 과도한 출혈로 죽고 만 것입니다.
본문 36절입니다. “해가 질 녘에 진중에서 외치는 소리가 있어 이르되 각기 성읍으로 또는 각기 본향으로 가라 하더라” 해가 질 녘에 진중에서 각기 성읍으로 본향으로 가라 외칩니다. 각기 성읍으로, 각기 본향으로. 이 말은 전투 중지와 귀향을 촉구하는 말입니다. 분명 아합의 죽음은 벡성들의 전의를 상실하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 처음부터 이번 전쟁은 아합의 욕심으로 시작된 것일 뿐 백성들에겐 고달픈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왕상 22장 17절입니다. “그가 이르되 내가 보니 온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 같이 산에 흩어졌는데 여호와의 말씀이 이 무리에게 주인이 없으니 각각 평안히 자기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그 날의 전투가 수그러들고 아합의 죽음이 알려지자 진중에는 이심전심으로 귀향의 외침이 터져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본절의 외침, 그 이면에는 반가움이 실려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말씀을 어긴 결과는 이처럼 참혹합니다.
본문 37절입니다. “왕이 이미 죽으매 그의 시체를 메어 사마리아에 이르러 왕을 사마리아에 장사하니라” 왕의 시체를 메어 사마리아에 장사합니다. 본절을 미가야 선지자가 예언한 내용인 22장 28절과 대비해 보면, 그 극적 인상이 한결 뚜렷해집니다.
왕상 22장 28절입니다. “미가야가 이르되 왕이 참으로 평안히 돌아오시게 될진대 여호와께서 나를 통하여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이다 또 이르되 너희 백성들아 다 들을지어다 하니라” 아합은 죽은 채로 사마리아로 돌아옵니다. 이 침울한 장면 위에 미가야가 왕이 참으로 평안히 돌아오시게 될진대 여호와께서 나로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이다 하던 말이 겹쳐지게 되면 모든 것의 의미가 밝히 드러납니다. 즉 여호와께로부터 계시를 받았던 자는 진정 400명의 선지자가 아닌 미가야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이제 그 증인이 된 것입니다. 또한 본절은 20:42절 예언의 성취입니다.
왕상20:42절입니다. “그가 왕께 아뢰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네 손으로 놓았은즉 네 목숨은 그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그의 백성을 대신하리라 하셨나이다” 이전 전쟁에서 아합 왕에 넘긴 아람 왕 즉 벤하닷을 풀어 줌으로 인해 아합의 목숨으로 벤하닷의 목숨을 대신하리라 예언한 것입니다. 그 예언은 이제 본장에서 마침내 이루어진 것입니다.
본문 38절입니다. “그 병거를 사마리아 못에서 씻으매 개들이 그의 피를 핥았으니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거기는 창기들이 목욕하는 곳이었더라” 그 병거를 사마리아 못에서 씻으매 개들이 그의 피를 핥았으니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 병거를 사마리아 못에서 씻으매 개들이 그의 피를 핥았으니. 본절은 21:19의 예언이 얼마나 정확히 성취되었는지 알려줍니다. 왕상21:19절입니다. “너는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고 하셨다 하고 또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였다 하라” 즉 아합의 시신 자체는 왕의 예우로 장례가 치러졌습니다. 하지만 아합이 전쟁터에서 흘린 피는 병거 바닥에 고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못에서 병거를 세척할 때 개들이 그 피를 핥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마리아 못, 고대 근동 지역에서는 거의 모든 성읍들마다 각기 저수지를 하나 이상씩 구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대개 성읍 문 밖에 위치하였습니다(삼하 2:13). 본절의 못 역시 바로 그러한 저수지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창기들의 목욕하는 곳이었더라. 어떤 학자는 본절의 창기들을 아세라와 바알 신전에 소속되어 있어 음란한 제의와 매음행위를 하던 창녀들로 이해합니다. 아무튼 이들이 목욕하던 곳에서 아합의 피를 씻었다는 것은 곧 그의 죽음이 매우 치욕스러운 것이었음을 시사해 줍니다.
본문39절입니다. “아합의 남은 행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건축한 상아궁과 그가 건축한 모든 성읍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아합의 남은 행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건축한 상아궁과 모든 성읍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 되어있습니다.
그가 건축한 상아궁. 열왕기는 아합을 대단히 나약하고 우유부단한 인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적 측면을 제외하고 보면 아합은 제법 군사적 성공과 활발한 건축 사업의 성과를 거둔 강력한 왕이었습니다. 그러한 면모들 가운데 한 부분이 상아궁 건축 사실입니다. 특별히 이 곳에서 언급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즉 부강을 상징하는 상아궁 건축은 아합 치세의 특성을 단적으로 드러내 주는 인상 깊은 사실인 것입니다. 추측하건대 아마도 이 같은 상아궁은 아합과 이세벨이 결혼한 기념으로 지은 사치스런 별장이었을 것입니다. 그린데 홋날 아모스는 사치와 향락의 표상이었던 이러한 상아궁들과 관련,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때 그 궁들 역시 파괴되리라고 맹렬히 비난하였습니다.
암3:15절입니다. “겨울 궁과 여름 궁을 치리니 상아 궁들이 파괴되며 큰 궁들이 무너지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말씀을 정리합니다. 아합은 미가야의 예언을 무시하고 출전했지만 죽게 되고 개들이 시신의 피를 핥겠다는 예언의 말씀이 성취되고 있습니다. 인간이 계획을 세울지라도 이루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잠16:9절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렘29:11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평안과 희망과 생명이고, 불순종이 재앙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서도 아합 왕은 심판 받지 않으려는 꼼수를 부립니다. 사람의 눈인 아람 군대는 속일 수 있지만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변장의 신앙을 벗어버리고 실제의 삶을 진실 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지막에 내 인생을 어떻게 평가하실지 늘 생각해야 합니다. 아합은 미가야의 예언을 무시하고 출전했다가 무심코 쏜 적군의 화살에 맞아 죽습니다. 개들이 시신의 피를 씻은 물을 핥는 장면은 심판 예언의 정확한 성취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원래 뜻은 심판이 아니라 생명이고 미래인 것입니다.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열왕기상22장의 일부를 읽고 묵상할 수 있게 허락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가나안 땅에 정착시키시며 복락을 누릴 수 있게 배려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말씀에 따라 살아간다면 영원히 복락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웃 열방과 같이 자기들을 다스릴 왕을 요구함으로 왕정제도를 도입하였습니다. 열왕기는 그 왕정의 폐단을 역사를 통하여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악한 왕으로 명명된 아합 왕은 빼앗긴 길르앗 라못을 되찾으려고 치밀히 계획하지만 예기치 못한 우연 앞에서 죽음을 맞게 됨을 봅니다.
아합은 참선지자 미가야의 불길한 예언을 무시한 채 전쟁에 나섰지만, 불안해서 왕이 아닌 듯 변장하고 여호사밧에게 왕복을 입힙니다(29,30절). 선지자의 경고대로 전쟁을 멈추지도 않으면서 심판을 피하려 꼼수를 부립니다. 그렇게 아람 군대는 속일 수 있지만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인간의 부질없는 욕심과 말씀에 불순종하는 끈질긴 고집이 가져온 결말은 파멸과 죽음입니다. 일상의 삶을 통해 진실 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체험한 흔적들이 내 인생의 발자취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폐회찬송】 찬송가 529장 온유한 주님의 음성 입니다.
【축도】 축도로 주일 예배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감동 감화 내주 역사 충만 교통하심이 오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말씀에 순종하고, 주시는 사명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다짐하는 성도들의 머리 위에와 그 가정 위에와 삼채원 가정교회 위에와 하나님을 섬기는 세상 모든 교회 위에와 이 나라 이 민족 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있을 지어다. 아멘
*설교문 작성에 참고 내용: 부산성민교회 홍융희 목사님, 삼일교회 송태근 목사님, 헤브론 선교회 자료, 늘 푸른 교회 이장우 목사님, 호크마 주석 등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2022년 9월 18일 성령강림절 후 열다섯 번째 주일예배 순서
【준비찬송】 찬송가 176장 주 어느 때 다시 오실는지 - 다같이
【개회찬송】 찬송가 27장 빛나고 높은 보좌와 - 다같이
【개회기도】 예배인도자
【경배찬송】 찬송가 28장 복의 근원 강림하사 - 다같이
【신앙고백】 사도신경 - 다같이
【성시교독】 교독문 28. 시편 63편 - 다같이
【봉헌찬송】 찬송가 179장 주 예수의 강림이 - 다같이
【봉헌기도】 예배 인도자
【찬송】 찬송가 183장 빈 들에 마른 풀같이 - 다같이
【대표기도】 황보 송옥 사모
【성경봉독】 열왕기상 22장 29~39절
【특별찬양】 찬송가 528장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 다같이
【말씀선포】 아합 왕의 죽음 - 예배 인도자
【폐회찬송】 찬송가 529장 온유한 주님의 음성 - 다같이
【축도】 예배 인도자
【광고】 주님께서 허락하신 일에 항상 기도로 준비하며, 최선을 다하는 우리들이 될 수 있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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