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어버이 주일 설교문

imhp 2021. 5. 9. 07:39

어버이 주일 설교문을 올립니다.

저는 2016년 부터 2020년 5월까지 서울 한국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였습니다. 작년 6월부터 지금까지 농장을 관리하며 가정교회를 꾸려오고 있습니다.

능력이 닿는데 까지 이번 주부터 설교문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이곳에서 평화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20210509 주일가정예배 요한복음3.(베데스다의 연못 :5:1~10)

준비찬송찬송가 579장 어머니의 넓은 사랑 입니다.

지금부터 2159일 부활절 후 다섯 번째 주일, 어버이 주일예배를 드리겠습니다.

개회찬송찬송가 27장 빛나고 높은 보좌와

개회기도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6:1~3) 아멘

한없이 크신 사랑으로 섬세하게 저희들의 삶을 돌보시고 인도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어버이의 소중함과 은혜를 기억하고, 저희들이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며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희들이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어릴 적에는 어버이의 사랑을 받게 하시고, 나이가 들어서는 자녀를 품에 안고 기르는 부모가 되게 하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끝없는 희생을 베풀어 주시는 저희 어버이들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저희들이 친히 자녀들을 돌볼 때에는,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옵소서.

5월은 가정의 달로 지키고 있습니다. 가정의 소중함을 잊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며 축복의 길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경배찬송찬송가 15장 하나님의 크신 사랑 찬송하겠습니다.

신앙고백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 하겠습니다.

성시교독교독문 98. 어버이 주일

봉헌찬송찬송가 558장 미더워라 주의 가정, 봉헌시간입니다.

봉헌과 축복의 기도

가정의 달 5월을 맞이하여 지난 주일은 어린이 주일로 지키고, 오늘은 어버이주일로 지키게 하시며 가정의 귀중함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들의 가정과 부모님과 자녀를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사랑에 감사하여 온 맘과 정성을 다하여 예물을 준비하여 드립니다. 드리는 손길을 기억하여 주시고 함께하시며 지켜주시고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삼채원 동산도 아름답게 가꿀 수 있도록 지혜와 명철과 건강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드리는 이 작은 예물로 주님의 크신 영광이 나타나게 하시옵소서. 이 봉헌예물이 사용되는 곳에 주님의 나라가 더욱 확장되게 하시고, 죄에 갇혀 허덕이는 인생을 구원하는 데 쓰이는 작은 씨앗이 되게 하옵소서. 만물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찬송찬송가 293장 주의 사랑 비칠 때에 찬송하고 난 후 황보 송옥 사모님이 대표 기도해 주시겠습니다.

대표기도황보 송옥 사모

성경봉독요한복음 5:1~10. 1.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4.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6.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10.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아멘

특별찬양복음성가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아 저희 부부가 함께 모여 정성을 다하고 신실한 마음으로 삼채원 동산에서 가정예배를 드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021년에는 신약성경을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요한복음 5장과 6장을 읽고 묵상합니다.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보다 자세히 깨달을 수 있게 하시옵소서. 성령님 함께 하셔서 저희들의 우둔한 머리를 지혜롭고, 명철하게 하시옵소서. 배우고 익힌 대로 우리의 일상생활이 주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합당한 산제사가 되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제목베데스다의 연못: 오늘 말씀을 통하여 많은 은혜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이 어떻게 해서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까?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혀 꼼짝 못하고 두 손 들게 하시므로 교회에 나와 예배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생각하는 이성적이고 올바른 사고방식을 가지고는 교회에 나와서 예배할 수가 없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교회란 사람의 이성적인 사고방식과 자존심을 죄라고 정죄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잘난 자신의 자존심을 챙기며 사는데 교회는 그 자존심을 죄라고 하면서 버리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불쌍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진리를 말합니다.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께 빌어야 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앉아 있을 자존심 꺾인 자들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경쟁사회입니다. 그것도 무한 경쟁의 사회입니다. 경쟁이 불붙듯 하기 때문에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쉬지 않고 끊임없이 일해야 하는 세상입니다. 사람들은 그러한 무한 경쟁을 통하여 무엇을 얻고 있습니까? 성장과 발전과 편리함을 원한다고 합니다. 발전이 가져온 피해를 지금 당하고 있으면서도 계속하여 경쟁하고 있습니다. 성장 발전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말하면서 발전하지 못하고, 문명이 발달하지 못한 나라를 부정하고 미개한 나라라고 합니다. 하지만 인류학자들이나 의식 있는 자들은 그러한 생각은 편견과 오만이라고 합니다. 행복지수의 크기는 빠른 발전과 많은 물질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간의 행복과 삶의 질을 나타내는 지표를 가지고 검증해보면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발전 될수록 스트레스가 많은 것입니다. 학생들에게 학교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많은 학생들이 학교가 아예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세상에는 학교가 없는 곳이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 사실 학교가 없어도 사람이 살아가는데 크게 불편하지 않습니다. 원시 부족국가의 사람들은 강과 숲만 있다면 그들은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먹을 음식물을 자연에서 취합니다. 고구마 비슷한 뿌리를 캐는데 꼭 자기 먹을 만큼만 캐고 나머지는 그대로 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캐어낸 곳에 다시 줄기를 심어두고 오는 것입니다. 우리 같으면 한꺼번에 다 캐올 것입니다. 더 빨리 더 많이 캐 와서 시장에 내다 팔아서 빨리 부자가 되려고 합니다. 이러한 행동양식을 통해 이룩한 부의 축적을 성장과 발전으로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장과 발전이 자연을 더 많이 파괴시키고, 더 빨리 망하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교회가 이러한 경쟁 사회에 속하여 살다 보니 교회 안에서도 자연스럽게 경쟁의식이 도입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교회와 교회끼리 경쟁합니다. 교회와 교회가 경쟁하여 이기기 위하여 교회 안에서 능률을 향상시키는 각종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합니다. 전도 경쟁, 헌금 경쟁, 충성 경쟁 등등 이러한 경쟁들이 교회 안에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경쟁이 없으면 발전이 없으니 교회 안에서도 경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대형 할인 마켓이 생기면 작은 구멍가게가 죽듯이 교회도 대형화하면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작은 교회가 대형교회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면 교회를 특성화해야 한다고 합니다. 대형 슈퍼에서 이것저것 다 취급하면 작은 슈퍼마켓은 몇 가지만을 선택하여 완벽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야 경쟁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은 경영을 하는 사업체에서 주로 하는 말입니다.

어느 유명한 목사님(김성곤)이 작은 교회는 특화를 해야 하고 중형교회는 어떻게 해야 하고 대형교회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목사님은 세상의 목사들이 부러워 할 만큼 큰 예배당을 지었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그 사람의 책도 많이 팔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교회의 현실입니다.

이런 말을 서두로 꺼내는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십니다.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셔서 제일 먼저 가신 곳은 예루살렘 성의 양문 가까이 있는 베데스다라는 곳입니다. 그곳은 이름처럼 아름다운 곳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큰 요양병원과 비슷한 곳입니다. 베데스다는 베이트와 헤세드라는 말의 합성어입니다. 베이트는 집이라는 말이고 헤세드는 은혜, 자비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베데스다란 은혜의 집, 자비의 집입니다. 이곳에 연못이 하나 있는데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끔가다가 한 번씩 천사가 내려와서 물을 소용돌이치게 하는데 그때 가장 먼저 물에 들어가는 자는 어떠한 병이라도 낫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름이 은혜의 집이라고 붙여졌습니다. 수많은 난치병자들이 그 연못가에서 병 고침의 기적을 바라고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곳이 이름만 자비의 집이고 은혜의 집이지 정작 은혜와 자비는 없이 경쟁만 있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누구든지 가장 먼저 들어가는 자가 낫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병자들 중에 가장 먼저 들어 갈 수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가장 몸이 성한 사람입니다. 정작 가장 은혜가 필요한 사람은 들어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경쟁에 뒤처지는 것입니다. 눈치 빠르고 잽싼 사람들이 먼저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중증환자들은 그림의 떡과 같습니다. 암으로 죽게 된 자가 들어가야 하는데 많이 먹어서 과식한 자가 뛰어 들어 가버리는 것입니다. 날 때부터 소경된 자가 들어가야 하는데 눈이 충혈된 자가 먼저 들어가는 것입니다. 앉은뱅이가 먼저 들어가야 하는데 족구하다가 다리 삐끗한 사람이 먼저 들어가는 곳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경쟁의 아수라장이 자비의 집, 은혜의 집이었습니다. 말이 베데스다의 연못이었지 은혜와 자비가 사라진 경쟁의 소굴과 같은 베데스다였습니다.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으므로 다른 이름으로 바꾸어야합니다. 이름만 은혜를 말한다고 은혜가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경쟁이 난무하고 경쟁에서 뒤쳐지면 살아남을 수도 없는 곳이 교회라면 은혜로운 교회라는 말을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어떤 사람을 목사로, 교역자로 부르고 있습니까? 운전은 일종 면허를 가지고 있습니까? 컴퓨터는 잘 합니까? 제자훈련을 잘 합니까? 찬양 인도를 잘합니까? 이런 것이 조건입니다. 그래야 다른 교회와 비교하여 경쟁에서 이길 것 아닙니까? 그러다 보니 당신은 주님을 얼마나 알고 있으며 사랑하십니까? 이런 말이 주요한 조건으로 들어설 틈이 없습니다.

이처럼 교회 안에서 가르치는 것도 사람이 은혜를 따 내는 기술을 가르치는 기술 학원으로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은혜 받는 비결, 복 받는 비결, 교회성장의 비결. 성공비결 등등의 용어가 난무하고 있는 것입니다.

온몸이 장애로 움직이지 못하는 자에게는 아무리 좋은 비결을 제시하여도 그 비결을 이루어 낼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헤엄칠 줄 모르는 자가 물에 빠졌는데 수영강습으로 살려낼 수 있습니까?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 앞에 먹을 것 차려놓고 먹으라고 말한다고 해서 먹을 수가 있습니까?

오늘 본문 53절을 보겠습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있습니다. 많은 병자 중에 병명이 기록된 사람이 누구입니까? 맹인입니다. 맹인이 물이 동하는지 아니하는지 알 수 있습니까? 백년을 기다려도 불가능합니다. 다리 저는 사람이 얼마나 잘 달려야 다리 성한 자를 이기고 물에 먼저 들어가겠습니까? 혈기 마른 자는 중풍병자입니다. 중풍병 든 자가 무슨 수로 물에 들어갑니까? 은혜가 임하여 있는 강물이고 자비가 흐르고 있는 연못일지라도 환자가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 자비의 집에 자비가 없는 것입니다. 은혜의 집에 은혜가 없는 것입니다.

이 현장에 누가 오셨습니까? 자비와 은혜의 실체이신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자비가 없는 자비의 집에 자비이신 예수님이 오십니다. 그리고 누구를 찾아 갑니까? 연못에 뛰어 들어 갈 수 없는 자, 가장 거동이 불가능한 자 혈기 마른 자 그것도 38년이나 누워 있는 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람에게 다가 가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묻습니다. 만약에 이 사람이 예수님을 알아보았다면 뭐라고 하여야 합니까? 예 제가 낫고자 합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38년 된 병자는 예수님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38년 동안 은혜의 집에 누워 있어도 자기에게 은혜 베푸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몇 사람이 그 곳에서 나음을 입었는지 모르지만 과연 그런 곳이 있다면 누가 이런 38년 된 병자를 물에 넣어 주겠습니까? 능력 있고 힘 있는 자가 연못에서 가장 좋은 자리 차지하고 있다가 뛰어 들고 마는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교회가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만약 예수를 3년만 믿으면 자기 집을 살 수 있고, 5년만 믿으면 어떤 병도 고칠 수가 있고, 10년만 믿으면 자녀가 서울대 합격할 수 있다고 해 봅시다. 아마 교회는 가난한 사람은 발도 못 디딜 만큼 부자들과 힘 있는 자들로 꽉 들어찰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목사의 인기는 상종가를 칠 것입니다. 목사님 다음번 등록은 우리 삼촌입니다. 등록하려고 돈을 보따리로 들고 올 것이며, 또 청와대와 같은 권력기관에서 청탁이 들어 올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모습은 일체의 경쟁이 없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만이 넘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38년 된 병자는 자리에 누워서 예수님을 보고 물에 넣어줄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고 하소연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알고 찾아 나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38년 된 환자에게 무어라고 하십니까? 너는 내가 누구인지 알지도 못하느냐?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나를 믿어라. 그러면 너를 고쳐줄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나를 믿으면 내가 고쳐주마 그러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가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하지 않으면 내가 고쳐 주마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 환자에게 어떠한 지시와 명령을 할지라도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임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다만 주님께서는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라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 중풍병자가 38년이나 누워 있었는데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믿었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 난 것입니까? 아닙니다. 만약에 병자가 믿어서 나았다면 그것 역시 무늬만 은혜일 것입니다. 알고, 믿고,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아예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라는 그 말씀이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이 병자를 건강하게 한 것입니다. 그 말씀이 천지를 창조하신 능력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러한 동일한 주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주님을 알게 된 사람들입니다. 그 연못가에 수많은 병자들이 있었지만 다 고쳐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한 사람 38년 된 중풍병자만 고치십니다. 이것은 주님의 선택적인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교회란 이러한 은혜를 입은 자가 모이는 곳입니다. 교회에 나오게 된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더 선하고 착한 일을 많이 해서 은혜를 입은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교회 다니는 것은 나의 자랑이 아닙니다. 언제 어떻게 다른 사람들도 은혜를 받을지 모릅니다. 똑같은 무지하고 불쌍한 사람일 뿐입니다. 먼저 받은 은혜, 나중에 받은 은혜로 경쟁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교회의 교회됨은 오직 주님의 은혜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인이었기에 어떠한 방법으로도 스스로 은혜 속에 들어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오셔서 처음으로 찾은 곳이 베데스다입니다. 은혜의 집에 은혜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날이 안식일입니다. 유대인은 안식일만 안식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절기를 안식일의 기준에 따라 지키는 것입니다. 유월절 맥추절 수장절 등의 절기를 안식일과 똑 같이 지킵니다. 그런데 베데스다의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신 날이 5:1절에 보면 유대인의 명절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무슨 명절인지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지만 명절에 지키는 안식일이라는 것입니다. 이 날이 7일마다 쉬는 안식일일 수도 있고 명절기간이기에 안식일로 지키는 날일 수도 있습니다.

이 안식일에 한 사람이 참된 안식을 얻어 자유와 해방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 때 다른 사람들이 무어라고 합니까? 너 왜 안식일을 안 지키느냐고 따지는 것입니다. 이 비난은 곧 예수님께로 화살이 가는 것입니다. 나중에 예수님이 성전에 들어가서 종교지도자들을 만났을 때 예수님께 왜 안식일에 그런 일을 하였느냐고 비난합니다. 그러자 517에 예수님의 대답이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대답하십니다. 이 대답이 예수님을 죽일 구실이 되었던 것입니다. 감히 사람이 하나님과 동등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자기 친 아버지로 말하느냐며 죽이려고 계획을 세우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하게 된 발단이 바로 베데스다에서 병자를 안식일에 고친 사건입니다. 은혜를 베푼 사건입니다. 사람들이 은혜를 베푸시는 예수님을 왜 죽이려고 했습니까? 그것은 자기들이 지키는 안식일을 어기는 것으로 자기들의 정체성을 무너뜨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배척을 충동질 하는 배후세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베풀지 못하게 하려는 마귀의 조종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44절에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강하게 책망하십니다. 예수님을 배척하는 것은 결국 사탄의 조종을 받는 것입니다. 사탄이 하는 일은 예수님의 은혜를 차단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사탄이 장악하고 있는 현재의 체제를 유지하려는 것입니다. 사탄이 유지하려고 하는 체제란 무엇인가 열심히 행함을 통하여 구원을 받는 체제입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은혜의 나라입니다. 사람이 범죄함으로 인하여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구원의 길에 들어 설 수 없는 것입니다. 마치 38년 된 병자가 베데스다의 연못에 들어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은혜가 있는 곳이라고 하여도 스스로 은혜의 자리에 들어 갈 수 없기에 은혜가 그를 붙잡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여기에 나와서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도 오직 주님의 은혜입니다. 나의 노력과 애씀과 실력으로 나올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러면 마귀는 은혜를 막기 위하여 무엇을 합니까? 사람들에게 자기 행함을 통하여 열매를 맺게 합니다. 은혜의 연못에 사람이 스스로 노력하여 들어 갈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조금만 더 애를 쓰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키고 무엇을 행하고 무엇을 하지마라는 것입니다. 은혜 대신에 사람의 행함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경쟁을 시킵니다. 사람들의 공적과 업적을 드러냅니다. 상을 줍니다. 세상의 실력자를 교회의 중직자로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그래야 교회가 세상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주님을 더 잘 증거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사탄의 속임수입니다. 은혜와는 반대되는 길입니다. 예수님이 증거되는 길은 세상의 방법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어떤 모습으로 예수님을 증거하였는지 성경에 너무나 잘 나와 있습니다. 한결같이 순교하는 모습으로 나와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간 것입니다. 사탄은 십자가의 길을 버려두고 세상에서 좋아하는 방식으로 나가려합니다. 교회가 돈과 힘이 있어야 된다고 합니다. 돈과 힘이란 수에서 나오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지 사람을 유혹하여 숫자를 늘리고자 합니다. 그런 곳이라면 교회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 은혜의 손아귀에 붙들린 사람입니다. 이 은혜를 입은 자는 거부할 수 없는 힘 아래 갇힌 사람입니다. 아무도 모르게 다가와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의 은혜입니다. 은혜는 우리가 행한 공로라고는 하나도 없이 받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것만이 우리에게 감사이며 말로 다할 수 없는 자랑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우리의 삶에서 항상 흘러넘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요한복음 5~6장 가운데 일부를 읽고 묵상할 수 있게 허락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이 땅에 내려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 뜻을 우리는 잘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주님의 큰 은혜를 우리 인간의 좁은 소견으로는 제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성경 전체 가운데 오늘 읽은 한 부분을 묵상하고 깨달았다고 하여 성경 전부를 알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부분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게 하시고 부분을 통하여 전체를 상상할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저희들이 주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마다 주님의 십자가를 기억하게 하시옵소서. 완고한 우리들의 자존심을 내려놓게 하시고, 우리 자신보다도 우리를 더 사랑하시는 주님의 뜻을 알게 하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폐회찬송찬송가 295장 큰 죄에 빠진 나를 입니다.

축도축도로 주일 예배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감동 감화 내주 역사 충만 교통하심이 오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말씀에 순종하고, 주시는 사명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다짐하는 성도들의 머리 위에와 섬기는 교회 위에와 삼채원 가정교회 위에와 이 나라 이 민족 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있을 지어다. 아멘

주님 안에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하옵소서.

 

202159일 부활절 후 다섯 번째 주일, 어버이 주일 가정예배 순서

 

준비찬송찬송가 579장 어머니의 넓은 사랑 - 다같이

 

개회찬송찬송가 27장 빛나고 높은 보좌와 - 다같이

 

개회기도예배인도자

 

경배찬송찬송가 15장 하나님의 크신 사랑 - 다같이

 

신앙고백사도신경 - 다같이

 

성시교독교독문 98. 어버이 주일 - 다같이

 

봉헌찬송찬송가 558장 미더워라 주의 가정 - 다같이

 

봉헌기도예배 인도자

 

찬송찬송가 293장 주의 사랑 비칠 때에 - 다같이

 

대표기도황보 송옥 사모

 

성경봉독요한복음 51~10

 

특별찬양복음성가 다같이

 

말씀선포베데스다의 연못 - 예배 인도자

 

폐회찬송찬송가 295장 큰 죄에 빠진 나를 - 다같이

 

축도예배 인도자

 

광고 예배 속에서 주님의 참사랑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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