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210519 수요 설교문

imhp 2021. 5. 19. 14:36

20210519수요 가정예배 요한복음6.(하나님의 영광 -11:1~16)

준비찬송찬송가 449장 예수 따라 가며 입니다.

지금부터 21519일 수요 가정예배를 드리겠습니다.

개회찬송찬송가 31장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개회기도오늘도 아름다운 삼채원 동산에서 수요예배를 드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어느 곳에서나 함께하시며 지켜주시는 주님! 이곳 삼채원 동산에서도 임재하시는 주님! 저희 예배를 즐거이 받아주시고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지켜주셨듯이 앞으로도 우리 가정과 이웃을 지켜주시고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은총 아래 주님께서 맡기신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하면서 지낼 수 있게 하옵소서. 우리를 도우시며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신앙고백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 하겠습니다.

찬송찬송가 212장 겸손히 주를 섬길 때 찬송하신 뒤에 황보송옥 사모님께서 대표 기도해 주시겠습니다.

대표기도황보송옥 사모

성경봉독요한복음 111~16

1.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2.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더라 3.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4.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5.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6.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7.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8.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9.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10.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11.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12.제자들이 이르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13.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그들은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지라 14.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15.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 16.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17.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아멘

특별찬양찬송가 330장 어둔 밤 쉬 되리니 입니다.

기도사랑의 하나님! 화창한 봄날 저희 부부가 삼채원 동산에서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예배드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말씀과 찬송 가운데 주님이 베푸시는 은총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올해는 신약성경을 좀 더 자세히 읽고 깊이 묵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요한복음 11~12장 중의 일부를 읽고 묵상합니다. 성령님 함께 하셔서 주님의 뜻을 더 깊고,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는 지혜와 명철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말씀 제목하나님의 영광. 말씀으로 은혜받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11장은 요한복음을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눌 때 11장부터는 후반부입니다. 전반부는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방점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초막절의 주인, 생수, 생명의 빛, 양의 문이라는 표현을 하셨고, 그것을 증거 하셨습니다. 후반부에서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야 하는 이유, 즉 십자가 사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의 미움을 받아 죽음을 당하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부분입니다. 무덤에서 4일이나 지나 냄새나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부분입니다. 죽은 자를 살린 것을 모든 백성이 알게 되면 모두 예수를 따를 것이기에 서둘러 죽이려 계획합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우리들도 나는 누구인가? 정체성을 확인해보고, 그동안 나는 무엇을 위하여 살아 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위하여 살 것이며,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점검을 해 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우리는 왜 살고 있습니까? 무엇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오늘 말씀 제목에 힌트를 받아서 대답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고 대답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대답하면 또 묻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대답하기가 난감하지요. 그보다 더 걱정이 되는 것은 당신은 과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고 있습니까? 라고 묻게 되면 정말 답하기가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듣고 배우고 연구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된다는 당위론적인 답변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처음 다니면서 세례 전 교육을 받을 때, 배우는 신앙고백의 교리적인 기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대요리문답이고 다른 하나는 소요리문답입니다. 소요리문답은 요약된 교리문답입니다. 대요리 문답은 196문답이고 소요리 문답은 107문답입니다. 이 두 문답의 제일 첫 번째 질문은 사람의 제일 된 목적이 무엇이뇨라고 똑같이 되어 있습니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사람의 제일 된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 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즐거워 한다는 것은 그분 한분만으로 기쁘고 즐겁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의 제일 된 목적입니다. 여기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며, 해석할 것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만약에 자녀가 고등학생이 되어 교회에 열심히 다니면 부모는 은근히 염려가 됩니다. 교회에서 임원을 맡고 금요기도회, 임원회, 수련회를 준비한다고 바쁘다, 문학의 밤 준비하기 위해 바쁘다, 찬양 준비해야 한다면서 교회에 매여 살면 조금은 걱정이 됩니다. 무슨 걱정입니까? 저러다가 대학 떨어지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들아 네가 좋은 대학 입학하여 더 크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해라. 지금은 주일 11시 예배만 참석하고 나중에 대학에 들어간 후 열심히 믿음 생활하라고 말하게 됩니다. 네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부분은 부모인 내가 대신 두 배로 기도하고 봉사할 테니 너는 공부만 하라고 말합니다. 부모님은 당연히 자녀가 좋은 대학에 합격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영광은 대부분 이런 모습입니다. 성경구절에 좋은 대학 들어가면 하나님의 영광이고 재수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고 기록되어 있을까요? 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맞다 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에서 잘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잘된 것일까요?

조금만 더 깊이 성경을 묵상하고 연구한다면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세상의 영광을 가져다 놓고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잘못 전하고 있습니다. 마치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이 다르듯이, 오늘 우리의 영광과 성경이 증거하는 영광이 얼마나 다른 가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많이 돌리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말씀을 통하여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이야기입니다. 나사로 남매는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자들입니다. 마리아, 마르다, 나사로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서 그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씻긴 자입니다. 이 자매의 오빠가 병들자 자매들이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빨리 와서 병을 고쳐달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병은 죽을병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들도 이로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이 나사로를 죽도록 버려두고서 다시 살려내셔서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임을 이미 이야기로 알고 있습니다. 이 내용을 우리가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하여 보면, 예수님이 사랑하는 자들인데 왜 죽을병에 걸리게 하시나 의문입니다. 사랑하시는 사람을 어떻게 죽을병에 걸리게 하시고 나중에 살려내시고는 영광이라 하시는가? 하는 점입니다.

요한복음 9장에서는 날 때부터 소경된 자의 죄가 누구 때문인가 질문하였을 때 예수님은 부모의 죄도 자신의 죄도 아니라 하십니다. 다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고치시고, 또 병들어 죽은 자를 살리시는 것 자체가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이 하시는 놀라운 것이고 신기한 기적이기에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보시면 너무나 피상적인 관찰입니다. 그런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라면 오늘날 우리도 사람들이 놀랄만한 기적을 일으키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보통사람들이 잘하지 못하는 초인적인 금욕생활이나 신비적인 기적을 보여줌으로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이다,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하나님의 영광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이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은 기적이 아닙니다. 실패의 모습이고 힘없이 붙잡혀 죽는 모습입니다. 유대인들이 볼 때는 저주 받아 죽는 모습입니다. 이방인들이 보았을 때는 유대 독립운동가 한 사람이 독립 운동하다가 로마 군대에 붙잡혀 처형된 사건, 실패한 혁명가의 말로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십자가 사건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십자가가 어떻게 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지 아는 것이 성경을 올바르게 아는 핵심적인 내용이 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영광이란 하나님의 뜻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이유는 그 천지만물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천지창조의 마지막 날에 사람을 만드시고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천지가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일에 누가 도움을 주거나 보탬을 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적 작정에 의하여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 창조의 역사에 어떤 피조물도 동참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나 욥기에 보면 인간이 무슨 항변을 할 때에 하나님이 하시는 질책과 대답은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고 되묻는 것입니다. 또 하늘을 손으로 재어 보았느냐? 바닷물을 손으로 헤아려 보았느냐 산들을 저울로 달아 보았느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이란 자신이 창조하신 세계를 자신의 뜻대로 이루어진 것을 보시고서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창조에 죄가 들어오게 되고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탈하고자 하는 기도들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욥기 384절입니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에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이사야 4012~17입니다. 12.누가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쟀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접시저울로 산들을, 막대 저울로 언덕들을 달아 보았으랴 13.누가 여호와의 영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14.그가 누구와 더불어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를 교훈하였으며 그에게 정의의 길로 가르쳤으며 지식을 가르쳤으며 통달의 도를 보여 주었느냐 15.보라 그에게는 열방이 통의 한 방울 물과 같고 저울의 작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리니 16.레바논은 땔감에도 부족하겠고 그 짐승들은 번제에도 부족할 것이라 17.그의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 같이, 빈 것 같이 여기시느니라

아담 이후의 인간의 모습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막는 모습으로 살게 된 것입니다. 그 모습이 어떠한 방법으로 드러나는가 하면 사람의 인위적인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범죄하고서 최초로 행한 행동이 하나님이 두려워서 몸을 숨기는 것입니다. 몸을 숨길뿐만 아니라 몸을 가리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인간은 끊임없이 자기를 숨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하다고 하시는 원래의 영광, 하나님이 홀로 일하시는 영광을 우습게 여기는 타락한 세상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의 지위를 떠나서 스스로 창조자의 지위를 가지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모습이 바벨탑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창세기 114절입니다. 또 말하되, .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정치, 경제, 교육 등이 바벨탑을 이루고자 하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이름이 나는 것에 대하여 열광을 합니다. 자기의 이름이 영광을 받지 않으면 기분 나빠합니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자기의 이름을 들어내는 것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어내신 예수님의 모습은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의 첫 구절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 하나님의 이름만이 구별되어 영광을 받는 것이 기도의 첫 번째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보다 나의 이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나의 이름은 드러나지 않아도 상관없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되며, 오직 주의 이름만이 영광을 받으시면 됩니다. 하는 고백은 없습니다. 자기의 이름을 늘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교회에서 하는 일도 사람들이 알아주는 방향으로 일하게 됩니다.

이러한 흐름이 바로 요한복음 1-10장까지 전반부에 나오는 내용들입니다. 전반부에 나오는 유대인들의 끊임없는 질문이 무엇입니까? 내가 어떻게 하여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고 질문합니다. 자신들이 행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묻습니다. 행함의 능력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런 질문을 한 사람들은 오히려 영생의 길을 깨닫지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요한복음 전반부 1-10장까지의 메시지는 너희는 행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내용입니까? 니고데모 같은 당대의 유능한 율법 선생도 아직 거듭나지 못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은 어떻습니까? 38년 된 병자, 날 때부터 소경된 자, 현장에서 간음하다가 돌 맞아 죽어야 할 여인입니다. 결국 이들을 동원시켜서 드러내시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우리 모두 이러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6:63절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육은 생명을 살리는데 무익하다는 것은 인간의 어떠한 육체적인 행위로도 영생을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육체적인 욕구를 가진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다고 말합니다. 썩을 육체를 가지고 있는 인간의 행위로는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6절입니다. 예수님이 지금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말을 들으시고 일부러 죽도록 기다렸다가 무덤에 장사한 뒤 냄새가 나게 되었을 때에 이들을 찾아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면 왜 죽였다가 살리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말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자들이라면 처음부터 병에 걸리지도 않게 하고, 크고 멋있는 일을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될 텐데. 병 주고 약주는 식으로 하는가 하는 말입니다.

여기서 그 의미를 살피고자 합니다. 먼저는 모든 사람이 다 죽은 자라는 것입니다. 죄로 인하여 죽은 목숨들입니다. 죽은 자는 스스로 살아나올 수 없습니다. 이런 의미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나사로가 아플 때에 가서 치료하시지 않고 일부러 죽은 뒤에 가서 살리시는 것입니다. 아플 때 가서 살려 주시면 무언가 인간에게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완전히 죽어 버리면 아무리 명의라고 하더라고 살려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살아있을 동안에 나사로의 동생들이 예수님을 빨리 오시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일부러 늦게 오셨을 때 마리아가 무어라고 합니까? 예수님이 여기에 계셨더라면 우리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일부러 늦게 오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사람의 모든 가능성을 원천 봉쇄하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란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려면 언제 구해야 됩니까? 물을 몇 번 먹고 축 늘어 졌을 때 구하라고 말합니다. 나오려고 버둥거릴 될 때 섣불리 접근하여 건지려들면 둘 다 물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힘이 전혀 손쓸 수 없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문의 메시지입니다.

숨이라도 붙어 있어야 침을 놓든지 손을 쓰든지 할 텐데, 이미 죽고 4일이나 되었습니다. 무덤에서 썩는 냄새가 날 정도로 된 상황이므로 사람의 힘으로 전혀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 하나님은 일하시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은 이 세상이 죄로 인하여 죽어 있다고 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죽음의 세상에서 하나님이 자기의 영광과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택한 자를 불러내시는 것입니다. 그 불러내시는 일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듯이 홀로 이루어 내시는 일이기에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꾸만 자기의 이름과 자기의 행함을 하나님의 영광에 더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로는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고 하면서도 은근히 자기의 이름이 들어가는 것을 바라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하나님이 홀로 이루어 내신 그 일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나사로를 살리시는 방법으로 오늘 주의 백성들을 살려 내신 것입니다. 그냥 내버려 두셨더라면 썩어서 냄새만 풍기는 인생이었습니다. 시체들끼리 모여서 무슨 윤리 운동을 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습니까? 어제까지 북한을 주적으로 삼았는데 오늘은 일본을 주적으로 삼고 북한을 한 민족으로 여기는 김정은 신드롬이 일어나는 시대입니다. 이 또한 우리 냄새나는 시체들인 인간들이 하는 것입니다. 진짜 생명을 살려 내시는 일은 오직 주님께서만 하시는 것입니다. 시체를 향하여 나사로야 나오너라 하고 부르실 때 시체가 알아듣고 나온 것입니까? 그렇다면 시체가 아닙니다. 주의 말씀의 능력이 죽은 자 가운데서 들어가서 생명을 불어넣어 살려 내시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천지만물을 만들어 내신 창조의 능력이 나사로를 죽음에서 살려 내신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을 나사로와 똑 같이 죽음에서 우리를 불러내신 것입니다. 우리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노력하여서, 아니면 잘나서 하나님이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죽은 시체가 부르시는 소리를 듣고 나온 자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랑이 아닌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걸음 더 나아가 깨달아야 할 것은 이렇게 불러내신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과 열심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우리는 냄새나는 시체들 사이에서 더 버티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육신적으로 살아 있을 동안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다시는 죽는 일이 없는, 냄새나는 일이 없는 그 나라와 그 의를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은 살아나지 않는 자들에게는 아무른 소용이 없는 자들입니다. 눈을 뜨지 않은 자들에게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빛으로 비추어서 살려 낸 자들은 그 빛 가운데서 알아듣고 살아야 합니다. 이제는 어두움의 일을 벗으라고 하는 것은 빛 가운데 들어 왔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제는 거듭난 자로서 주님의 일하심에 항복하여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요한복음 11~12장 가운데 일부를 읽고 묵상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주님의 뜻을 조금이나마 더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선악과를 먹은 우리들은 지혜가 부족하여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도대체 잘 알지 못합니다. 나 중심의 인간적인 욕심은 내려놓고, 보내신 성령님을 모시고 주님의 뜻을 올바로 분별할 수 있게 하옵소서. 주님이 주신 믿음을 통하지 않으면 미련하고 완고한 저희들은 주님의 뜻을 따를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뜻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에 귀를 기울이며 눈을 뜨고 깨달을 수 있게 하옵소서. 죄에 빠져 죽어 있는 우리들을 건지시려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주님의 공로로 우리가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주인이 되어 구원을 얻고자 노력하는 저희들의 마음을 내려놓고 오로지 하나님의 은총만을 붙들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일을 하는 자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폐회찬송찬송가 327장 주님 주실 화평 입니다.

축도축도로 수요 예배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감동 감화 내주 역사 충만 교통하심이 오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 주신 은혜를 잊지 않고 표현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다짐하는 성도들의 머리 위에와 섬기는 교회 위에와 삼채원 가정교회 위에와 이 나라 이 민족 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있을 지어다. 아멘

'교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210526 수요 설교문  (0) 2021.05.26
210523성령강림주일 설교문  (0) 2021.05.23
210516주일 설교문  (0) 2021.05.17
수요예배 설교문  (0) 2021.05.12
어버이 주일 설교문  (0) 2021.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