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12수요 가정예배 요한복음4.(생수의 강 -요7:37~52)
【준비찬송】 찬송가 518장 기쁜 소리 들리니 입니다.
지금부터 21년 5월 12일 수요 가정예배를 드리겠습니다.
【개회찬송】 찬송가 31장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개회기도】 오늘도 아름다운 삼채원 동산에서 수요예배를 드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어느 곳에서나 함께하시며 지켜주시는 주님! 이곳 삼채원 동산에서도 임재하시는 주님! 저희 예배를 즐거이 받아주시고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지켜주셨듯이 앞으로도 우리 가정과 이웃을 지켜주시고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은총 아래 주님 주신 힘으로 삼채원 동산을 아름답게 꾸미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맡기신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하면서 지낼 수 있게 하옵소서. 우리를 도우시며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신앙고백】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 하겠습니다.
【찬송】 찬송가 197장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은 찬송하신 뒤에 황보송옥 사모님께서 대표 기도해 주시겠습니다.
【대표기도】 황보송옥 사모
【성경봉독】 요한복음 7장 37~52절
37.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40.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이 참으로 그 선지자라 하며 41.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42.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이 살던 마을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 43.예수로 말미암아 무리 중에서 쟁론이 되니 44.그 중에는 그를 잡고자 하는 자들도 있으나 손을 대는 자가 없었더라 45.아랫사람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그들이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46.아랫사람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47.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48.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자가 있느냐 49.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50.그 중의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되 51.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 52.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찾아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 아멘
【특별찬양】 찬송가 298장 속죄하신 구세주를 입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화창한 봄날 저희 부부가 수요 예배를 삼채원 동산에서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드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말씀과 찬송 가운데 주님이 베푸시는 은총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올해는 신약성경을 좀 더 자세히 읽고 깊이 묵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요한복음 7~8장 중의 일부를 읽고 묵상합니다. 성령님 함께 하셔서 주님의 뜻을 더 깊고,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는 지혜와 명철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말씀 제목】 생수의 강. 말씀을 전하는 자와 듣는 자 모두 은혜로운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요한복음 7장의 주요 내용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예수님을 알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가까이 대할수록 인간의 무지가 드러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무지를 나타내는 주요 부분의 결론이 오늘 본문의 앞부분 요7:33~36절입니다. 33.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34.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시니 35.이에 유대인들이 서로 묻되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그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터인가 36.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한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니라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므로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것이고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어디로 가는지 몰라서 헬라인들에게로 가서 가르칠 것인가 하고 어리둥절해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에게 돌아가신다는 뜻인데 유대인들은 이방 땅에 선교하러 가시나하고 엉뚱한 생각을 합니다. 잘못 알아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엉뚱하게 유대인들이 한 말이 예수님을 통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에 의해서 실현되는 아이러니가 생겨납니다. 이러한 사례는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아들을 주실 때, 웃는 사라를 보고 웃는 아이 이삭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실수와 허물, 반역, 불신까지 예수님의 사역에 활용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실현해 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통하여 인간 무지의 극단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결국 성령에 의하지 않고는 예수님의 뜻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무지를 깨우치기 위해 성령이 필요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뒤이어 성령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늘 본문 요한복음 7:37-39절입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라고 나옵니다. 무슨 명절입니까? 초막절입니다. 초막절 끝 날에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생수의 강이 그 배에서 흘러나오리라는 말씀도 참 어려운 말씀입니다. 유대인에게나 제자들에게 이해도 안 되고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마치 마음의 할례를 행하고 마음을 찢으라는 말과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서 그의 생수를 마실 수가 있습니까? 이 말은 결국 성령이 임하면 그 안에서 생수의 강이 흐른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수의 강을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그 당시의 사람들은 그 의미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논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씨로 베들레헴에서 나온다고 하였는데 예수님이 갈릴리 출신이라면 틀리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41-42). 그러나 예수님이 어디에서 나셨습니까? 베들레헴에서 나셨습니다. 그런데 자라기를 갈릴리에서 자랐고, 비천한 목수의 아들이었기에 메시아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메시아를 잘 알아보지 못하게 숨기시고 있는 것입니다. 보아도 볼 수 없고 들어도 듣지 못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아무리 실상을 그대로 전한다고 해도 인간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성령이 임하지 않고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종교와 복음과의 차이점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세상의 종교란 사람이 깨우침을 얻는다든가, 아니면 지극한 정성을 바침으로 보답을 얻어 부귀를 얻든가 어떠한 경지에 이르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복음은 사람이 행함으로는 할 수 없다는 것을 먼저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중생하여 거듭나라는 말씀이나, 위로부터 나야 된다는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태어날 때 스스로 나올 수 없음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함을 에둘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조차 마음의 할례나 마음을 찢는 일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누구십니까.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들 마음에 들어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 마음에 들어와 임하십니까? 말씀이 우리들 마음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말씀을 보고 읽고 들어서 깨달을 수 있습니까? 그렇게 되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서 눈으로 말씀을 보여주십니다. 성막이나 율법의 요약인 십계명의 말씀이 눈으로 보이는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인간들은 예수님을 보고도 알지 못합니다. 죄악에 빠진 인간들은 깨닫지 못할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 성령의 보내심을 계획하시고 실제로 역사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여야 한다고 말하니 오늘날의 사람들은 또 다시 성령 받는 방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느 누가 성령을 줄 수가 있습니까? 그러한 것이 다 종교적인 술책입니다. 성령이 일하심은 성령이 임의대로 일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성부와 성자의 뜻에 따라 일하십니다. 이 말은 사람의 뜻과 무관하다는 것입니다. 마치 바람이 임의로 부는 것처럼 성령으로 난 자도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나의 정성이나 노력이나 애씀으로 성령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여야 생수의 강이 흐르게 되고 목마르지 아니하는데 이일을 7장 39절에서는 무어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까?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생수라 하시고, 이어서 괄호로 자세히 설명하기를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셔야 성령이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어떤 일을 이루어 놓으신 결과인지를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예배하고 감사하고 연보를 하는 것이 조건적이거나 거래가 되어 버리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이런 것을 하였으니 하나님 복 주십시오 라는 것은 아직도 복음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고 종교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복신앙입니다.
구약에서는 날과 달과 절기들을 지키라고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무슨 일을 이루어 놓으셨는지 그것을 알고 기억하며 하나님의 일하심을 받아 누리라는 의미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있는 절기가 초막절입니다. 이 초막절은 어디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까? 유월절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유월절은 어린 양의 죽음과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을, 그리고 칠칠절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받음을, 그리고 초막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불평불만을 표시함으로 인한 벌로서 광야생활 한 것의 기억을 의미합니다. 구약의 절기들이 하나님이 이루어 놓으신 그 일들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입니다. 십계명이 출애굽 이후, 즉 구원 받은 후 시내 산에서 받은 것처럼 이미 하나님이 그들에게 베풀어 주신 복을 받았기에 절기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예배드리고 감사와 찬송을 하는 것도 이미 주님께로부터 모든 복을 받았기에 하는 것입니다. 엡1장 4~6절입니다. 4.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내가 예배를 드리고 감사와 찬송을 함으로 복을 받고자 한다면 하나님을 상대로 장사하는 종교적인 거래가 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반드시 나오는 말이 일단 바쳐봐 복 주나 안주나, 일단 기도해봐 응답하나 안하나, 자기가 무엇을 먼저 드려서 보답을 받으려는 것이 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무시하는 인간의 죄라는 것입니다. 롬11:35-36입니다. 누가 먼저 주께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또 한 단계 더 나아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 안다 은혜로 구원받았으니 이제 그 은혜를 갚아야 하지 않나? 그래서 많이 헌신 봉사 충성하는 것이 맞는 것이야 그러면 천국 갈 때 떳떳하게 나아갈 수 있는 것이야 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입니다. 이것도 자존심을 나타내는 죄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감사와 예배는 무엇입니까? 주님의 일하심이 얼마나 크신지를 제대로 알게 됨으로 나타나는 감사와 감격의 찬송인 것입니다. 이러한 예배가 바로 성령이 임하신 결과로 되는 것입니다. 세상사에 인과응보의 원칙만이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성적인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는 인간들은 이것을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성령을 보내신다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영광을 받으셔야 한다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아야 합니다. 성령이 오시려면 예수님이 하나님 계시는 곳으로 돌아가셔야만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속해서 계시면 우리들에게 유익하지 않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받고 하늘로 올라가셔야 성령을 보낼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요 16장)
다음에는 성령을 받게 되면 다시는 목마르지 아니한 생수의 강이 어떻게 흘러넘치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본문 37절입니다. 예수님이 서서 외치며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 와서 마시라. 여기서 두 단어에 관심을 집중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와 목마르다입니다.
먼저 누구든지 라고 말씀하심으로 특정 대상을 규정하지 않았습니다. 가난하거나 부자거나, 배운 자, 못 배운 자 모두를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신앙생활 오래 한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별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과 일대일로 모두가 다 대상이 되므로 내가 초대되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의 대상은 결국 주님과 나의 관계로 좁혀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마르거든 이라고 합니다. 목마름의 주제를 특정화하지 않았습니다. 목마름의 문제는 다양합니다. 사람마다 욕구하는 것들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목이마르거든 내게 와서 마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모든 해답이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어떤 문제로든지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하십니다.
그 다음 구절 38절에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십니다. 그 배는 믿는 자의 배입니다. 예수를 믿는 자는 그의 배에서 생수가 흘러나오리라는 것입니다. 배는 헬라어 코이리아인데 동의어는 카르디아입니다. 카르디아는 심령을 말합니다. 즉 심령, 마음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온다는 것입니다. 나 같이 흠 많은 사람에게 어떻게 생수가 흘러나올까요?
겔47:1~12을 찾아 읽겠습니다. 1.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2.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3.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4.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5.다시 천 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6.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고 나를 인도하여 강 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 7.내가 돌아가니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8.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9.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10.또 이 강 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11.그 진펄과 개펄은 되살아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12.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성전의 사방에서 물이 스며 나옵니다. 즉 예수에게로부터 물이 나옵니다. 생수가 나오는 것은 성령을 말하고 있습니다. 생수가 흐르는 곳에서는 모든 생물이 살아나고, 바다가 살아납니다. 바다는 세상을 상징합니다. 계시록에 보면 오만 가지 더럽고 악한 것이 다 일어납니다. 바다의 폭풍우는 세상의 험악한 상태를 말합니다. 성전에서 나오는 물이 바다를 되살리는 것은 세상을 되살린다는 것입니다. 강가에 어부가 들어서 그물을 친다고 합니다. 예수님이신 성소에서 나오는 물이 강으로 흐르고 바다에 들어가 큰 바다의 어종들이 다 살아납니다. 회복과 치유가 일어납니다. 강 좌우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 먹을 만한 열매가 나오고 잎사귀는 약재료가 된다고 합니다. 성령이 세상에 온 결과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난 뒤, 두려워서 떨며 모여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숨을 불어넣으시며 성령을 받으라고 하십니다. 요한복음 20장 21~22절입니다. 21.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창세기 2장에서는 흙으로 아담을 빚으시고 하나님의 숨인 성령을 불어넣으신 결과 살아있는 영이 됩니다. 이는 창조의 사역입니다. 둘 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다음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고 하시는 것은 재창조를 의미합니다. 성령을 우리 각자에게 부어 주셔서 우리 안에 내재하고 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예수님을 구주라고 부를 수 있게 됩니다. 성령이 들어와 충만하여야 흘러넘쳐 이웃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하십니다.
오늘 38절에 생수의 강, 성령이 우리의 배에서 충만하게 흘러나옵니다. 성령이 임재하시지만 나 하나 버티기 힘든 상태이면 성령이 흐를 수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때가 이르게 되면 우리를 불러 성령이 넘치는 곳으로 보내십니다. 이처럼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를 믿는 신자들의 심령에서 성령이 넘쳐 나오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앞서 7장 33절~36절에서 인간은 영적으로 무지하여 하나님을 스스로 찾아 나설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오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들의 마음에 오시고 충만해져서 어둠의 땅과 죽음의 땅에 흘러넘쳐서 어둠을 밝히고 죽음에서 치유하여 살려내실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 속에는 하나님의 선교 방식이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스도의 성령이 임재하고 있는 곳에는 반드시 갈등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사역을 보고(예수님의 사역은 성령의 활동입니다) 그리스도라고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가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하고 배타적인 지역주의가 일어납니다.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베들레헴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았느냐 합니다. 유대인들은 이같이 정확한 성경의 지식을 알고 있었지만 정작 예수님을 보고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입니다. 오늘 본문 7장 44절입니다. 예수님을 배척하는 자들이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 또한 역설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로 가는 여정은 사람의 때에 맞추어 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이 보낸 사람들에게 피동적으로 끌려가는 듯이 보이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은 예수님의 때에 맞추어 스스로 걸어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인간적인 물리력으로 예수를 붙잡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권위로 스스로 십자가를 향하여 나아감을 의미합니다.
7장 46절에 보면 아랫사람들이 이상한 말을 합니다. 대제사장이 예수를 잡으러 보냈더니 예수님의 권위 있는 말씀에 사로잡혀서 왔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잡을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런 영광스러운 말을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결국 성령의 임재를 통해서만 우리들의 무지를 깨달을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 실증적인 열매로서 뜻밖의 사람이 나타납니다.
50절에 보면 니고데모가 등장합니다. 그가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들어보지 않고도 심판하느냐고 말합니다. 신명기에 보면 재판에서는 반드시 피고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니고데모가 예수 그리스도를 변호하고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요한복음에 3번 등장합니다. 3장에서 밤에 예수님을 찾아 왔을 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라고 질책을 받았고, 오늘 말씀에서는 예수님을 변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요19장 38~39절입니다. 예수님의 시신을 돌려달라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공회원이면서 대범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일을 하게 한 것도 성령의 힘으로 한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뜻하지 않는 시기에 하나님의 힘에 의해 성령님이 내 인생에 ①임재하시고 ②충만하게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의 생수가 아직 발목까지 차서 내 마음대로 움직이게 되고, 무릎까지 차서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고, 허리까지 차서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의 생수가 목을 넘어 우리가 잠기어 성령에 휩쓸려 내려가는 강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완전히 나를 제압하셔서 생수의 강이 되어 흘러넘쳐 바다로 가서 세상을 치유하고 회복하는데 쓰임 받게 되도록 기도하여야 할 것입니다.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요한복음 7~8장 가운데 일부를 읽고 묵상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주님의 뜻을 조금이나마 더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선악과를 먹은 우리들은 지혜가 부족하여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도대체 잘 알지 못합니다. 나 중심의 인간적인 욕심은 내려놓고, 보내신 성령님을 모시고 주님의 뜻을 올바로 분별할 수 있게 하옵소서. 주님이 주신 믿음을 통하지 않으면 미련하고 완고한 저희들은 주님의 뜻을 따를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뜻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에 귀를 기울이며 눈을 뜨고 깨달을 수 있게 하옵소서. 죄에 빠져 죽어 있는 우리들을 건지시려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주님의 공로로 우리가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주인이 되어 구원을 얻고자 노력하는 저희들의 마음을 내려놓고 오로지 하나님의 은총만을 붙들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일을 하는 자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폐회찬송】 찬송가 301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 입니다.
【축도】 축도로 수요 예배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감동 감화 내주 역사 충만 교통하심이 오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 주신 은혜를 잊지 않고 표현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다짐하는 성도들의 머리 위에와 섬기는 교회 위에와 삼채원 가정교회 위에와 이 나라 이 민족 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있을 지어다. 아멘
'교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10526 수요 설교문 (0) | 2021.05.26 |
|---|---|
| 210523성령강림주일 설교문 (0) | 2021.05.23 |
| 210519 수요 설교문 (0) | 2021.05.19 |
| 210516주일 설교문 (0) | 2021.05.17 |
| 어버이 주일 설교문 (0) | 2021.05.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