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09수요 가정예배 사도행전2.(예수의 이름 -행4:12~22)
【준비찬송】 찬송가 359장 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들아 입니다.
지금부터 21년 6월 9일 수요 가정예배를 드리겠습니다.
【개회찬송】 찬송가 31장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개회기도】 오늘도 주님이 주신 아름다운 삼채원 동산에서 수요예배를 드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어느 곳에서나 함께하시며 지켜주시는 주님! 이곳 삼채원 동산에서 드리는 저희 예배를 즐거이 받아주시고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지켜주셨듯이 앞으로도 우리 가정과 이웃을 지켜주시고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은총 아래 주님께서 맡기신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감당할 수 있게 하옵소서. 우리를 도우시며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신앙고백】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 하겠습니다.
【찬송】 찬송가 360장 행군 나팔 소리에 찬송하신 뒤에 황보 송옥 사모님께서 대표 기도해 주시겠습니다.
【대표기도】 황보 송옥 사모
【성경봉독】 사도행전 4장 12~22절
12.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13.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14.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 15.명하여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16.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 그들로 말미암아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17.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18.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19.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20.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21.관리들이 백성들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라 22.이 표적으로 병 나은 사람은 사십여 세나 되었더라 아멘
【특별찬양】 찬송가 543장 어려운 일 당할 때 입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저희 부부가 아름다운 삼채원 동산에서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예배드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말씀과 찬송 가운데 주님이 베푸시는 은총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올해는 신약성경을 좀 더 자세히 읽고 깊이 묵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사도행전 4~6장 중에서 일부를 읽고 묵상합니다. 성령님 함께 하셔서 주님의 뜻을 더 깊고,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는 지혜와 명철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말씀 제목】 예수의 이름. 말씀으로 은혜 받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이 세례를 받을 때 누구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목사의 이름이나 교회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나 목사는 심부름꾼일 뿐이며 세례를 베푸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교회에서의 세례란 이 사람이 우리와 함께 형제 되었습니다하는 공식적인 선포인 것입니다. 이미 성령이 임하셔서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이 아니면 지옥의 형벌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인식한 사람에게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마태복음 28장에서 명하신 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주신 권세로 제자들에게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신 것입니다.
다른 이름으로는 왜 안 되는 것입니까? 오직 예수의 이름이어야 한다는 것에 배타적이고 독선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요한복음을 통하여서도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에 예수님 외에 다른 것으로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다고 하십니다. 오늘 말씀 사도행전 4:12절에서도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다른 어떠한 이름으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의 이름으로만 구원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냥 예수로부터 구원이라고 하면 될 텐데 왜 "꼭 그 이름"이라고 하는지를 오늘 말씀을 통하여 확인하고자 합니다.
최초의 이름을 받은 자는 아담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아담이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이름을 부여 받았다는 것은 이름을 지어 주신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이름을 부여 받았다는 것은 창조주가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자녀의 이름을 지어줍니다. 자식만이 아니라 새로운 과학적인 이론이나 새로운 식물과 별들을 발견하면 그 사람의 이름을 붙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만드시고 사람이라고 이름을 주시고는 다른 피조물에 대하여 이름을 짓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다른 피조물보다 높여 주신 것입니다. 아담이 이름붙인 모든 다른 피조물은 인간에게 종속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아담의 지위였습니다.
죄가 들어오고 범죄 함으로 인하여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고, 그의 후손은 타락한 아담의 형상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창5:3). 아담의 형상으로 나온 인간의 운명은 죽음이었습니다. 무려 일천년 가까이 살았지만 모두가 죽었다고 하는 족보를 만들고 있습니다. 죽음이 만연한 세계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나왔습니다. 에녹은 3백년간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죽음의 세상에서도 죽음을 이기는 능력은 하나님에게 속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 동행하였기 때문입니다. 노아도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노아 때 홍수가 일어나게 된 이유는 하나님의 영이 사람에게서 떠남으로 사람이 육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육체가 되었다는 것은 죄 속에서 만들어진 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사라진 몸이 된 것입니다. 노아 홍수 이전에 세상은 죄악이 관영하였다고 합니다. 죄악이 관영한 곳에서 나오는 인간은 역시 죄 된 인간인 것입니다.
죄인 된 부모에게서 나오는 자식은 당연히 죄인인 것입니다. 나는 죄인이기에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가 없고 오직 예수의 이름이 나를 구원합니다하는 신앙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모든 인간은 아담의 형상이기에 죽음을 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어떤 사람이라도 자기의 이름으로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자기의 이름을 드러내고 높이고자하는 교만함이 죄인 된 인간의 속성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세계를 하나님께서 물로 심판을 하시는 것입니다. 모두가 자기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세상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 심판 가운데서 노아의 가족은 구원을 받습니다.
세례를 받을 때에 무엇으로 받았습니까? 물입니다. 물이란 노아 홍수도 물이고, 홍해 바다도 물이고, 요단강도 물입니다. 물속에 들어가면 다 죽습니다. 그런데 노아는 물속에서 살았습니다. 애굽 군대는 홍해 물속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 민족들은 살았습니다. 역시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물속에서 나온 것입니다. 물로 세례를 준다는 것은 단지 씻는다는 의미보다 물에 빠져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의미가 더욱 강한 것입니다. 나의 이름은 이제 죽었습니다. 이제 예수의 이름으로 살게 되었다하는 고백입니다. 이제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고 주님이 내 안에 사시므로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세례인 것입니다.
세례를 받으신 분은 누구를 위하여 살아야 합니까? 누구 이름을 위하여 살게 됩니까? 아직도 여전히 자기의 이름과 자기의 영광과 자기의 자존심을 위하여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세례란 한번이 아니라 날마다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나의 이름은 물속에 장사 지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왜 나의 이름이 중요한 것입니까? 나의 이름, 우리 집안의 이름. 우리 교회의 이름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버린 것이 인류의 역사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이름이 들어 있는 곳은 무조건 잘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신 예수님을 배척하고 죽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홍수로 죄악이 관영한 세상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직 자기들의 이름을 위하여 살았습니다.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자기 집을 세우는 일에는 열심이었습니다. 그러나 방주를 만드는 일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이름을 내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세상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앞으로도 이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여전히 이 세상은 자기의 이름을 위해서만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자가 임할 때에도 노아 때와 같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 때는 심판의 도구가 다릅니다. 물이 아니라 불인 것입니다.
노아 홍수 이후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어떤 세상입니까? 창세기 11:1-4절입니다. "1.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2.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3.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4.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이 모습이 노아 홍수 이후의 인간세계의 모습입니다. 자 우리 이름을 내자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노아가 홍수의 심판에서 살아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살려 내신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또 다시 자기의 이름을 위해 살고자 합니다. 자기의 이름에 기대를 거는 자는 단지 이름 세 글자에만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사상, 의지, 판단력, 지식, 가치관, 인격, 인생의 목표 같은 것이 그 이름에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필히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이름을 주셨습니다. 이 이름으로 인하여 복을 받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 이름이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 이름으로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다른 이름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꼭 아브라함의 이름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신 이유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 자신의 이름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씨로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씨가 이삭입니다. 아브라함을 대신하여 희생하는 아들의 모습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이라는 이름도 모형이고 그림자이지 실체가 아니었습니다. 이삭이 늙어서 에서를 축복하려 했지만 축복하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바꾸지 못하는 것입니다. 결국 야곱으로 넘어갑니다. 그러나 야곱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계시하실 때 항상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가는 씨앗의 계보가 있음을 말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계시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름을 모세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모세가 부름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에게 나아 갈 때 나를 보내신 분의 이름이 무어냐고 물으면 무엇이라고 말할까요? 라고 질문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하시면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약속하신 것을 이루어 내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뜻이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 사명을 주실 때 하나님이 스스로를 밝히시는 이름이 여호와입니다. 출애굽기 3장 13~16절입니다. “13.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14.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15.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16.너는 가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돌보아 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확실히 보았노라”
이스라엘 자손과 바로 왕이 여호와가 누구냐? 하고 물으면 모세가 어떻게 대답해야 하느냐고 하나님께 여쭈었을 때 하신 하나님의 대답이었습니다. 여호와는 설명하고 설득해서 알 수 있는 이름이 아닙니다. 무조건 선포하고 선언하며, 천명할 수 있을 뿐입니다.
당시 애굽은 세상의 중심이었습니다. 통치와 권력의 중심이었습니다. 바로는 신과 같은 존재였고, 살아있는 역사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런 바로에게 나아가 여호와를 알리라는 것입니다. 바로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 여호와가 세상의 중심임을 알리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 만물을 지으시고 창조하신 하나님, 역사의 처음과 끝을 붙들고 들었다 놓았다 하시는 하나님, 우리 인생에서 크고 작은 모든 사건을 주관하시고, 통치, 경영, 운영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 우리 인간에게 생명을 주시고, 부활을 소망하게 하시는 하나님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것을 바로에게 선언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설득할 수 없습니다. 다만 선포하고 선언할 뿐입니다. 애굽왕이나 세상이 만물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관자이심을 천명할 뿐입니다.
귀신이 들려도 사람이 바뀌게 됩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 사람에게 들어오면 바뀌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조건 바뀌게 됩니다. 모세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두려움이 없어지고 용기와 담대함이 생깁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세상적인 두려움이 몰려들게 됩니다. 믿음을 가지게 되면 나이가 많아 기력이 없다고 느끼거나, 오랫동안 자국어를 쓰지 않아서 입이 우둔하다는 것 등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성령이 오시면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대한 확신이 생김으로 두렵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전인적이고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요14:26절에 보면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것을 생각나게 할 것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성령이 오시면 진리의 세계를 발견하도록 계시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신천신지가 밝히 다가 온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였을 때 첫 번째 일어나는 일이 바로 두려움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의 부귀와 권력에서 나오는 배짱이나 힘과 용기로서는 그것을 대치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안내와 인도함으로 예수님이 하늘의 문이고 양의 문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씨를 통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고 하셨는데 그 씨가 누구입니까?
갈라디아서 3:1-16절입니다. "1.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2.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3.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4.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5.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6.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7.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8.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9.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10.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1.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12.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13.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15.형제들아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도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16.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아브라함의 복이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입니다. 누구를 믿는 것입니까? 대신 저주 받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생명과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이 세상에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모든 것이 달려있음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이 이름 때문에 복을 받는 것입니까? 어떤 인간도 자기 이름으로 구원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15절의 약속대로 아담의 후손이 아니라 여인의 후손으로 오신 것입니다. 남자의 혈통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하신 것입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오셨지만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인 것입니다. 천하 인간에 이러한 이름이 없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라는 이름은 수도 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죄 없이 십자가를 지신, 자신의 죄 없이 저주를 받으신 이름이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 이름이 갈라디아 3:13절의 말씀처럼 저주를 대신 지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이 저주 받으신 것은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자기 백성들을 대신하여 받으신 것입니다. 그것을 위하여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물로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시고 불로서도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3:11절을 봅니다.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라고 하십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는 것은 우리가 압니다. 그런데 불로 세례를 주신다는 것은 또 무엇입니까? 불세례를 받으면 뜨겁게 펄펄뛰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어서 나오는 말씀을 보시면 불이란 곧 심판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3:12절입니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불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현현을 말씀하실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불입니다. 하나님을 소멸하는 불이라고 합니다. 누가복음 12:49-50절입니다.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예수님께서 이미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시고서도 또 받으실 세례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례가 무슨 세례입니까?
요한일서 5:5-9절입니다. "5.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6.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7.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8.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9.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의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것이니라" 물과 성령과 피로 임하셨다는 것입니다. 물세례 성령세례를 받으시고 아직도 이루실 세례란 바로 피의 세례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 십자가의 피란 결국 하나님의 진노의 불 심판을 받으시는 세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물과 성령과 피가 하나라고 하신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입니다. 성령도 이것에 대하여 증거 하시고 하나님도 이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공의가 십자가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입니다. 죄는 반드시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신 것이 아니라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일하시는 모습입니다. 자기 이름을 위하여 자기 백성을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시23:3). 하나님은 자기 이름을 위하여 심판하시고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분명하고 새로운 심판의 기준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을 믿지 않고 다른 이름이나 자신의 이름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스스로 자초하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외치고 있는 “천하 인간이 구원 얻을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다”는 말의 의미를 자세히 풀어보았습니다. 하지만 온 세상 사람들은 달려들면서 예수의 이름만은 말하지 말라고 합니다. 사도행전 4:18절에 보면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것 한 가지만은 막으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세상을 심판하는 기준이 완연하게 드러났기 때문에 제자들과 성도들은 망설이지 않고 외치고 있습니다. 성도란 자기 이름을 부정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사는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에 들어갔을 때 이런 자의 이마 위에는 예수의 이름이 있는 것입니다.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사도행전 4~6장 가운데 일부를 읽고 묵상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주님의 뜻을 조금이나마 더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선악과를 먹은 우리들은 지혜가 부족하여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도대체 잘 알지 못합니다. 내 생각은 내려놓고, 보내신 성령님을 모시고 주님의 뜻을 올바로 분별할 수 있게 하옵소서. 주님이 주신 믿음을 통하지 않으면 미련하고 완고한 저희들은 주님의 말씀을 알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생각을 내려놓고 보내신 성령님 뜻에 귀를 기울이며 눈을 뜨고 깨달을 수 있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제자들을 훈련시키시고 사랑하신 뜻을 분명히 알게 하옵소서. 제자들은 주님 생전에 주님의 뜻을 알지 못했지만 성령을 받은 후에는 주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저희들 또한 주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게 하시고, 말씀에 순종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일을 하는 자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폐회찬송】 찬송가 546장 주님 약속하신 말씀 위에 서 입니다.
【축도】 축도로 수요 예배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감동 감화 내주 역사 충만 교통하심이 오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 주신 은혜를 잊지 않고 표현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다짐하는 성도들의 머리 위에와 섬기는 교회 위에와 삼채원 가정교회 위에와 이 나라 이 민족 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있을 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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