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210616 수요가정예배 설교문

imhp 2021. 6. 16. 11:58

20210616수요 가정예배 사도행전4.(이방인 선교 -10:34~48)

준비찬송찬송가 452장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입니다.

지금부터 21616일 수요 가정예배를 드리겠습니다.

개회찬송찬송가 31장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개회기도오늘도 주님이 주신 아름다운 삼채원 동산에서 수요예배를 드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어느 곳에서나 함께하시며 지켜주시는 주님! 이곳 삼채원 동산에서 드리는 저희 예배를 즐거이 받아주시고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지켜주셨듯이 앞으로도 우리 가정과 이웃을 지켜주시고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은총 아래 주님께서 맡기신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감당할 수 있게 하옵소서. 우리를 도우시며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신앙고백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 하겠습니다.

찬송찬송가 453장 예수 더 알기 원하네 찬송하신 뒤에 황보 송옥 사모님께서 대표 기도해 주시겠습니다.

대표기도황보 송옥 사모

성경봉독사도행전 1034~48

34.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35.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36.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37.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38.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39.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40.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41.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42.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43.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44.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45.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46.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47.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48.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라 아멘

특별찬양찬송가 454장 주와 같이 되기를 입니다.

기도사랑의 하나님! 저희 부부가 아름다운 삼채원 동산에서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예배드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말씀과 찬송 가운데 주님이 베푸시는 은총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올해는 신약성경을 좀 더 자세히 읽고 깊이 묵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사도행전 10~12장 중에서 일부를 읽고 묵상합니다. 성령님 함께 하셔서 주님의 뜻을 더 깊고,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는 지혜와 명철을 허락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말씀 제목이방인 선교. 말씀으로 은혜 받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일을 하실 때 직접 하지 않으시고 사람을 통하여 일을 하십니다. 932~43절에 보면 베드로가 룻다에 살고 있는 중풍병자 애니아를 고친 일과 욥바에서 죽은 과부 도르가를 살린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양육한 사도들을 통해 주님이 일하시고 있음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가이사랴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가이사랴는 욥바에서 약 50km 떨어져 있는 도시로서, 그 당시에 유대와 사마리아 지방을 관장하는 총독의 주재지였으며 로마 군 수비대의 주둔지입니다. 그곳에 이달리야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 고넬료가 있었습니다. 이곳에서도 주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당시에 이방인들 중에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부패하고 문란한 이방 종교에 환멸을 느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유대교의 회당 예배에 참가하는, 즉 회당 공동체에 가담하는 친유대교적인 이방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고넬료는 그러한 종류의 이방인들 가운데 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함으로 유대인들에게도 칭찬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구제만이 아니라 기도에도 힘쓴 것입니다. 제 구시 기도시간, 우리 시간으로 오후 세 시입니다. 유대인들이 정한 기도시간에 기도하다가 환상 중에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서 지시를 받게 됩니다. 욥바에 가서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있는 시몬, 즉 베드로를 부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의아스럽게 생각할 부분이 있습니다. 고넬료는 이방인으로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구제와 기도에 힘을 썼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러한 고넬료의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되었다고 하나님의 사자가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베드로를 부르지 않고 하나님께서 직접 고넬료에게 너는 내가 선택한 백성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어라 하시면 될 것인데 왜 복잡하게 베드로를 불러 일하시나 하는 생각입니다. 또 베드로를 부르러 보내지 말고 베드로에게 너 가이사랴의 고넬료에게 가서 전도하라고 명령하시면 되실 텐데 환상을 세 번씩이나 보이시는가 하는 겁니다.

109절 이하를 보면,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베드로가 유하고 있는 욥바에 있는 시몬 무두장이 집에 도착하였을 때 베드로는 기도 중에 환상을 보게 됩니다. 제 육시는 정오입니다. 점심때에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갔습니다. 지붕은 슬래브처럼 되어 있어 그곳에서 쉴 수도 있고, 기도할 수 있는 곳입니다. 베드로가 시장하여 무엇을 먹고자 함으로 사람들은 식사 준비를 합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잠시 잠이 들었는지 비몽사몽간에 하늘이 열리고 큰 보자기 같은 것이 네 귀에 메달려 내려오는 것을 봅니다. 그 안에 온갖 부정한 짐승들이 가득한 것입니다. 이때 잡아먹으라고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베드로가 주여 그럴 수 없습니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다고 합니다. 그 때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입니까? 내가 깨끗하다고 한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세 번이나 있었던 것은 확정적인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 환상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유대인으로서 율법에서 금한 부정한 짐승들을 언제든지 먹지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돼지고기, 개고기, 장어, 미꾸라지 등을 먹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먹으라고 하시니 어안이 벙벙한 것입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고 혹시 유혹인가? 생각하며 속으로 의심하고 있던 바로 그 때입니다. 마침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찾아와서 그 이유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성령께서 베드로에게 의심하지 말고 그들을 따라 가라고 하십니다. 시간이 늦어 베드로가 그들을 불러들여 함께 유숙합니다. 이것도 큰 변화입니다. 이방인과 함께 밥도 먹고 잠도 자게 된 것입니다. 다음날 가이사랴에 갑니다.

고넬료가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불러 모아서 이미 말씀 들을 준비를 다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베드로가 도착하니 고넬료가 겸손하게 맞이하면서 발 앞에 엎드려 절합니다. 식민지 백성에게 지배자의 군대 백부장이 엎드려 절하는 것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고넬료를 일으키면서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다'라고 말합니다. 이 부분은 말씀을 전하는 자나 듣는 자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하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에스겔서 33:30-33입니다. “30.인자야 네 민족이 담 곁에서와 집 문에서 너에 대하여 말하며 각각 그 형제와 더불어 말하여 이르기를 자, 가서 여호와께로부터 무슨 말씀이 나오는가 들어 보자 하고 31.백성이 모이는 것 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으로는 이익을 따름이라 32.그들은 네가 고운 음성으로 사랑의 노래를 하며 음악을 잘하는 자 같이 여겼나니 네 말을 듣고도 행하지 아니하거니와 33.그 말이 응하리니 응할 때에는 그들이 한 선지자가 자기 가운데에 있었음을 알리라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옵니다. 그들 대부분은 말씀을 들으나 그대로 행치 아니하고 입술로는 사랑을 말하나 마음으로는 자기의 이익을 따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전하는 것을 연예인들이 쇼하는 것처럼 보고 즐기려고 오는 것입니다. 그 참 노래 잘한다. 그런데 춤은 별로다 그런 식으로 듣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베드로가 겸손한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면서 무어라고 하는지를 봅니다. 28절입니다.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스스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베드로가 아직도 유대교 관습과 전통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복잡한 상황을 만들면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이유는 베드로를 양육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고넬료를 구원하시는 일도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복잡한 상황을 통해서 베드로가 스스로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풍성한지 조금씩 더 넓고 깊게 알아가도록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베드로가 능력이 많아서 기적을 행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전도를 하려면 그런 큰 능력을 받아야 한다면서 우리에게 능력을 달라고 합니다. 아니면 그런 능력이 없으니 나는 전도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는 모든 것에 능통하고 말씀을 완벽하게 갖추어서 강단에 서서 설교하고, 성도는 아직 부족하기에 목사의 설교를 앉아서 듣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상 설교를 하면서 가장 많이 훈련받게 되는 사람은 목사 자신인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 입장에서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만드는 것이 가장 큰 목표입니다. 하지만 먼저 사용하시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성숙시키면서 그를 통하여 성도들을 양육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 베드로를 고넬료에게 보내시면서 어디에 가장 중요한 초점을 맞추고 있는지 확인해 봅니다. 고넬료라는 경건한 로마인에게 성령세례를 베풂으로 이방인에게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복음이 증거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의 은혜를 더 깊이 알아가는 것은 베드로 자신임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넬료가 어떻게 베드로를 부르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다 듣고 나서 하는 말이 34-35절입니다. "34.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35.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말합니다. 이러한 고백이 베드로의 입에서 나오도록 하나님께서 일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고 취하지 아니하심을 이제야 알았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아직도 유대민족이란 선민의식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정한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세 번씩이나 거부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고넬료를 만나면서 그 환상이 보여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된 것입니다. 이방인도 얼마든지 주님께서 받으시는 것을 아는 것만이 아니라 베드로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유대교적인 우월의식이 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구원받은 것이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행하고 안식일을 지킨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인한 것임을 갈수록 더 깊이 알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설득시키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설득의 결과가 이방인 고넬료 가정에 복음을 증거토록 한 것입니다. 고넬료 가정에 증거한 복음의 내용이 36-43절까지입니다. 다시 읽겠습니다. “36.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37.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38.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39.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40.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41.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42.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43.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사도들이 전하였던 복음의 핵심을 베드로가 그대로 증거 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의 증거로부터 예수님의 사역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사람들이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3일 만에 다시 살리심으로 예수님이 옳으심을 입증 하신 것입니다. 즉 모든 선지자도 증거 하기를 그를 믿는 자는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고 증거한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살펴볼 것은 왜 하나님께서 고넬료를 바로 구원하시지 않으시고 베드로를 보냈는가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를 키우시는 것도 있지만 어느 누구도 도덕적인 구제나 선행으로는 구원에 이르지 못함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간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만 구원에 이름을 보이시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선지자도 증거 하듯이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는 이 사실을 고넬료에게 증거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또 하나 더 생각할 점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어야 된다는 의미를 새겨보아야 합니다. 고넬료가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구제와 기도를 하였고 그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또 따로 예수를 믿어야 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바로 하나님께 직통으로 통할 수 있는데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과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을 혼동하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흔한 오해는 우리들의 조상인 한민족도 다 하나님을 믿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름을 조금씩 다르게 하느님이라고 하든 조물주라고 하든 옥황상제라고 부르든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로마서 1장에 보면 사람들이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도 그들이 섬긴 것은 온갖 우상이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123~25장입니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누가 참된 하나님을 나타내시고 있는가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마다 자기들 나름대로의 하나님의 상이 다 들어 있다고 말합니다. 각자 개인에게 상상의 하나님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요즈음에는 각 개인이 인간의 마음, , 권력, 동물과 자연물 등을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 개인이 만든 우상의 하나님을 부수어 버리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서 십자가에 피를 흘리고 죽으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생각, 마음속에 상상으로 그리고 있는 모든 우상의 하나님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모두 가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모든 권세를 일임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 자신이 예수님을 죽인, 참 하나님을 죽인 죄인임을 알고 회개하고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들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넬료에게 베드로를 보내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성령이 임하시고 베드로와 함께 온 유대인 기독교인들이 놀라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주심을 인하여 놀라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하는 말이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 것입니다.

베드로도 아직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주님의 크신 은혜와 긍휼과 자비를 더 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베소서 1:15-19절입니다. “15.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16.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17.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바울이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능력을 우리 모두가 함께 알아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3:14-19절을 봅니다. "14.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16.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17.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가 알아가야 할 주님의 은혜와 사랑의 풍성하심이 얼마나 넓고, 길며, 높고 깊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아갈수록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심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과 베드로처럼 종교적인 편견과 고집에서 벗어나 이방을 향하여 복음을 선포할 수 있는 분위기를 점진적으로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이로서 베드로가 주님께 항복하는 것이며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동일하게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그와 똑같이 일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 일 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더욱 잘 알도록 하여 구원하시는 것이 목표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부로 단장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 곳곳에 하나님이 택한 사람들이 아주 많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공개적이고 공식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성령이 개별적이고 비공식적으로 임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약에 오면서 달라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회심햐였고, 베드로가 유대교적 전통과 관습의 올무에서 벗어났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마가 다락방에 있던 120문도 모두에게 임하였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모였던 많은 이방인에게도 복음의 소리가 분명히 들리게 된 것입니다. 이는 유대인들이 가진 고정된 전통과 편견과 관습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똑 같이 적용됩니다. 나 중심에서 이웃, 이방을 생각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오묘한 사랑을 범사에 확인하면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사도행전 10~12장 가운데 일부를 읽고 묵상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주님의 뜻을 조금이나마 더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선악과를 먹은 우리들은 지혜가 부족하여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도대체 잘 알지 못합니다. 내 생각은 내려놓고, 보내신 성령님을 모시고 주님의 뜻을 올바로 분별할 수 있게 하옵소서. 주님이 주신 믿음을 통하지 않으면 미련하고 완고한 저희들은 주님의 말씀을 알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생각을 내려놓고 보내신 성령님 뜻에 귀를 기울이며 눈을 뜨고 깨달을 수 있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제자들을 훈련시키시고 사랑하신 뜻을 분명히 알게 하옵소서. 제자들은 주님 생전에 주님의 뜻을 알지 못했지만 성령을 받은 후에는 주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저희들 또한 주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게 하시고, 말씀에 순종하며 축복받고 살아가는 자녀들이 다 되게 하옵소서. 주님의 일을 하는 자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폐회찬송찬송가 456장 거친 세상에서 실패하거든 입니다.

축도축도로 수요 예배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감동 감화 내주 역사 충만 교통하심이 오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 주신 은혜를 잊지 않고 표현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다짐하는 성도들의 머리 위에와 섬기는 교회 위에와 삼채원 가정교회 위에와 이 나라 이 민족 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있을 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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