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봉독】 사도행전 18장 12~23절
12.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13.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14.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이것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주는 것이 옳거니와 15.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고 16.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니 17.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하지 아니하니라 18.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19.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20.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21.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22.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23.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 아멘
【특별찬양】 찬송가 327장 주님 주실 화평입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저희 부부와 손자 임유엘이 이곳에서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예배드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말씀과 찬송 가운데 주님이 베푸시는 은총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올해는 신약성경을 좀 더 자세히 읽고 깊이 묵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사도행전 16~18장 중에서 일부를 읽고 묵상합니다. 성령님 함께 하셔서 주님의 뜻을 더 깊고,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는 지혜와 명철을 허락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말씀 제목】 하나님의 뜻. 말씀으로 은혜 받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를 이렇게 살려두신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살피면서 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입술로는 그렇게 말하지만 과연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사는지 되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고 하면서도 왜 구하고자 하는지 자세히 분석해보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하여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로, 직장, 사업, 결혼 등의 인간사가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일이 잘 풀리지 않을 것 같아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하기만 하면 모든 일들이 술술 잘 풀리고 만사형통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일이 꼬이고 고난과 어려움을 당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종교성이 우리 마음 안에 뿌리 깊이 박혀 있기에 결국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도 내 뜻을 꺾는 것이 아니라 내 뜻을 펼치기 위한 수단으로 묻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뜻대로 복음을 증거 하였습니다. 자신은 아시아 지역으로 가고 싶었지만 성령께서 막으셔서 마케도니아 지역으로 왔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왔지만 일이 잘 풀리기는커녕 가는 곳마다 핍박과 대적들이 일어납니다. 심지어 감옥에 갇혀 지낸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핍박 속에서도 하나님의 백성들을 찾아내는데 여념이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이것을 형통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나의 일과 나의 뜻이 잘 이루어지는 것을 형통이라고 생각하지만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형통이라고 말합니다. 십자가의 도는 내용만이 십자가의 도가 아니라 증거 되는 방법까지도 사람들에게 미련하게 보이고 꺼려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국의 비밀을 모든 사람에게 다 알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몰라야 할 사람에게는 모르게 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바울 사도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데도 이러한 고난을 당하는 것은 몇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는 이 세상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싫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도 아주 쉽게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작정을 하고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구하고 말씀에 순종하며 살려고 하면 당장 핍박이 오게 됩니다. 멀리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가족에게서, 또는 교회 안에서 올 것입니다. 믿지 아니하는 가족에게서 오는 것이라면 이해가 되지만 믿는 가족이나 믿는 교인들 사이에서도 왕따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무얼 그리 별스럽게 믿느냐고 말합니다. 너 혼자 잘났느냐며 집단 따돌림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신앙이란 외로운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외로워질 때 하나님이 다가 오셔서 위로 하시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주님만 의지하고 살도록 고난과 핍박을 당하게 합니다. 세상에서 살 소망까지 끊어지게 하시는 고난을 통하여 주님만 바라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에서 이래 저래 고난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무릇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죄인이 세상을 고생스럽게 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하지만 자기 욕심 때문에 고생스럽게 사는 것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생기는 고난과는 질이 다른 것입니다. 어차피 하는 고생, 주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고생을 하는 것이 귀하고 복되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8:9-10절을 봅니다. "9.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10.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하나님의 백성이 고린도 지역에 많이 있기에 두려워말고 잠잠하게 있지 말고 복음을 증거 하라고 합니다. 아무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12-17절의 말씀을 보면 역시 유대인들이 들고일어나서 바울을 고소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분명히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다고 하시고서는 또 대적이 일어나 재판정으로 끌려온 것입니다. 다행히 갈리오 총독이 고소하는 사람들을 쫓아내어 버림으로 풀려나는 것입니다. 바울이 비록 대적들에게 고소를 당하였으나 하나님께서 이방인 총독 갈리오를 사용하셔서 바울이 해를 받지 않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바울에게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다는 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데 장애가 없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고발하고 있는 내용이 본문 13절입니다.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13)
아가야는 현재 그리스 최남단에 혹처럼 붙어있는 반도 지역입니다. 그 반도의 입구 쪽에 고린도가 있으며, 바울이 무려 1년 6개월이나 머물면서 복음을 전하자 고린도에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특히 유대교에 입교한 무수히 많은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회당장조차도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유대교인들이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으로 새로이 부임하자 유대인들은 이 기회에 바울을 제거하려고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도 갈리오는 총명한 사람이어서 다수의 말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이 주장하는 법이 로마법이 아니라 율법임을 파악하고는 그들이 한 고발을 의미 없는 것으로 판결한 것입니다.
여기서 갈리오 총독을 언급하고 있음으로, 바울의 활동 시기를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역사적인 기록에서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으로 있었던 시절이 AD 52-53년이었습니다. 따라서 바울이 고린도에서 전도한 시기가 AD 52년경으로 추정됩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지 20년 남짓한 시기입니다.
유대인들이 한 고발 내용은 바울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풀어보면 율법에 따른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가르친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바울은 율법에 따른 방식이 아닌, 예수를 믿는 믿음에 따른 삶의 방식을 가르쳤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간단히 줄여서 그리스도의 법, 복음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복음은 율법과 대립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오히려 율법의 참 형상입니다. 태양이 뜨면 더는 가로등 불빛이 필요 없습니다. 가로등은 태양이 없는 동안에 필요한 대체물일 뿐입니다. 밝은 대낮에 가로등을 끄라고 말한다고 해서 어두움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몰아세워서는 안 될 것입니다.
율법의 본체이신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그림자인 율법을 참 형상으로 알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바울의 설명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성도가 율법을 삶의 규례로 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구원받기 위해서 처음에만 필요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은 믿음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합니다. 믿음 이후에는 율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믿음이란 그리스도를 살아계신 생생한 인격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며, 믿음을 통해서 예수님의 마음을 접하고, 그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생명의 양식으로 매일매일 먹고 마시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사랑과 겸손과 온유와 충성을 배우며,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면서 점점 그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을 간단히 줄여서 그리스도의 법, 복음이라고 합니다.
교회는 율법주의와 반 율법주의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양쪽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참 율법주의가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율법의 실체 곧 참 율법으로 믿고 따르는 자들입니다. 율법이 무시되는 것이 아니라 본체의 그림자로서 함께 하며 존중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법정에 고발되었다가 풀려난 후에 여러 날 더 유하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수리아로 떠나게 됩니다. 그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함께 동행을 합니다. 겐그리아를 지나 에베소에 이르게 됩니다. 바울 사도가 하나님 앞에 무슨 서원하는 바가 있어서 머리를 깎고 에베소에 이르게 됩니다. 이곳에서도 회당에 먼저 들어가서 복음을 증거 합니다. 그러자 다른 곳보다 복음을 잘 받아 들일뿐 아니라 더 있어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바울 사도가 하는 말이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다시 돌아오리라고 하면서 그곳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남겨 두고 다른 곳으로 가게 됩니다.
핍박받는 곳에서는 더 있어야 하고, 더 있어 달라고 하는 곳에서는 오히려 떠나는 모습입니다. 바울은 이제 자기의 삶이 자기의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대로 사는 종일뿐입니다. 이것은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사람을 만나게도 하시고, 헤어지게도 하시고 교회를 정하게도 하시는 모든 일들이 다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질뿐입니다..
바울이 떠난 에베소 지역에 아볼로라는 사람이 알렉산드리아에서 왔습니다. 학문도 많고 구약성경에도 능통하고 언변에도 능하여 성경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었으나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아볼로에게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와 함께 생활하였던 이들 부부는 이미 복음의 증인들이 되었습니다. 고린도에서 일 년 육 개월을 함께 지내고 에베소까지 왔다고 하여도 약 2년 미만입니다. 그들이 아볼로 같은 학문이 많은 사람이요 구약성경에 해박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도에 대하여 자세히 풀어 가르친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도를 다른 사람들에게 자세히 증거 할 수 있습니까? 벌써 선생이 되어야 하는데 아직도 젖을 먹고 단단한 식물을 먹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신실한 동역자가 되었고 아볼로 같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도를 자세히 풀어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갈 때 형제들이 그를 장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보내어 아볼로를 영접하라고 합니다. 아볼로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었습니다.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 하여 공중 앞에서 유력하게 유대인의 말을 이기는 것입니다.
바울이 떠나도 하나님의 일은 빈틈없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드러나는 인물이라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또는 아볼로 같은 사람은 그렇게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보다 전혀 못하지 않는 복음의 증인 들인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말에는 어눌하였습니다. 글에는 그렇지 않지만 말은 잘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볼로는 말에도 능통하여 성경으로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거 하여 유대인을 이기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동역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몇 번이나 유대인들에게 거절당하고 핍박을 받으면서, 다시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행 13:46, 18:6). 그러면서도 계속 미련을 못 버려서 이렇게 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기 민족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이것은 끊었다고 끊어지는 게 아닙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로마서 9장 1~3절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바울의 민족을 향한 간절함은 우리가 가족과 친척들의 구원을 위해 어떤 마음으로 기도해야 하는지를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에베소 사람들이 바울을 붙잡았으나 바울은 그들을 떠나면서 하나님의 뜻이면 다시 돌아올 것을 말합니다. 과연 후에 3차 전도여행 시 바울은 에베소에서 무려 2년이나 머물면서 에베소에 거대한 부흥의 불길을 일으킨 것입니다. 바울의 2차전도 여행이 끝나고 3차 전도여행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22절입니다.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바울은 가이사랴에 상륙해서 교회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여기서 교회는 아마도 예루살렘 교회일 것입니다. 가이사랴를 기준으로 보면 안디옥은 북쪽으로 400km에 위치하고 예루살렘은 100km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올라가'라는 말은 그가 예루살렘을 방문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예루살렘에 있는 시온산은 언제나 '올라가'는 방향이었습니다. 방문해서 예루살렘 교회의 안부를 살핀 후에 자신을 최초로 파송한 안디옥으로 내려갔던 것입니다. 이로써 바울의 2차전도 여행은 끝났습니다. 곧 3차전도 여행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고린도후서 7:10절.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고린도 교회가 바울 사도의 책망을 받고서 회개한 것입니다. 그리고 열심히 주님을 사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지만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관심사가 어디에 있습니까? 나의 뜻 성취에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데 있는 것입니까? 이 말씀뿐만이 아니라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뜻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말씀을 보고 듣기를 싫어합니다. 성경 말씀은 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뜻은 오히려 무너지고 하나님의 뜻만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부름 받은 우리는 다른 것입니다.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기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38-40절입니다. "38.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39.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오셨으며 그 하나님의 뜻이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는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영생을 얻는 것이 지상 최대의 선물입니다.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사도행전 16~18장 가운데 일부를 읽고 묵상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주님의 뜻을 조금이나마 더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선악과를 먹은 우리들은 지혜가 부족하여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도대체 잘 알지 못합니다. 내 생각은 내려놓고, 보내신 성령님을 모시고 주님의 뜻을 올바로 분별할 수 있게 하옵소서. 주님이 주신 믿음을 통하지 않으면 미련하고 완고한 저희들은 주님의 말씀을 알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생각을 내려놓고 보내신 성령님 뜻에 귀를 기울이며 눈을 뜨고 깨달을 수 있게 하옵소서. 바울 사도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 성령을 받은 후에는 주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저희들 또한 주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게 하시고, 말씀에 순종하며 축복받고 살아가는 자녀들이 다 되게 하옵소서. 주님의 일을 하는 자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폐회찬송】 찬송가 337장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입니다.
【축도】 축도로 수요 예배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감동 감화 내주 역사 충만 교통 하심이 오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 주신 은혜를 잊지 않고 표현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다짐하는 성도들의 머리 위에와 섬기는 교회 위에와 삼채원 가정교회 위에와 이 나라 이 민족 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있을 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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