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봉독】 사도행전 20:17~27절. 17.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18.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19.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20.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21.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22.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25.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26.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27.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아멘
【특별찬양】 찬송가 323장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오늘 저희 온 가족이 모여 함께 예배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희들을 주님의 강한 손으로 붙들어 주셔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옵소서. 생기와 활력을 주셔서 강건하게 하시고 주님 주신 사명을 감당할 때 기쁜 마음으로 나설 수 있게 하옵소서. 2021년에는 신약성경을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사도행전 19~21장 가운데 일부를 읽고 묵상합니다.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보다 자세히 깨달을 수 있게 하옵소서. 성령님 함께 하셔서 저희들의 우둔한 머리를 지혜롭고, 명철하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일상생활이 주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합당한 산제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제목】 사명 :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하여 많은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바울 사도가 3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오순절전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 위하여 서두르고 있습니다. 배로 에베소 교회 인근을 지나는 도중에 밀레도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불러 권면하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바울 사도가 전도한 곳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활동한 교회입니다. 바울사도가 다시는 에베소에 들리지 못할 것을 알고 마지막 유언처럼 장로들에게 설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그 중에 앞부분으로 바울이 받은 사명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가 참된 복음을 듣게 되면 세상에서의 삶이 허무하게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을 미워하라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2:15-17절입니다. "15.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우리의 본성은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을 사랑하고 싶은데 본성대로 사는 것은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고 합니다. 즉 선악과를 따 먹고 난 후에 보이는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워 보이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도 정욕도 다 지나가는 안개요 그림자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한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 세상이 허무하게 보이는 것이 당연합니다. 문제는 복음을 듣고도 우리의 눈에는 세상이 허무하게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사명, 예수 믿는 사람들의 사명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사명을 말하기 전에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명에 충성함으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이 더 나아지고 더 많아지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 사명은 세상적인 의미의 성공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잘 믿으면 땅에 속한 것들을 풍성하게 받는다고 간증을 하고 있습니다. 전도를 잘하였더니 무병장수하고 만사형통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교회가 선교를 잘하니 더 부흥이 되었다고 많이들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고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나를 믿지 않고,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을 믿지 않고 예수님만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약속하신 것들을 바라고 사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땅 끝 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은 다양한 은사를 통하여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좁게 해석하고 적용하고 있습니다.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을 전도하는 것으로만 해석하고 있습니다. 전도하는 것도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거저 세상에서 사교단체가 회원을 모집하는 것처럼 전도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증인이라는 것은 자기 교회 교인 수를 늘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교회 증인이 되거나 자기교회 목사의 증인이 될 수가 있습니다. 전도를 잘 하려면 교회도 자랑하고 목사도 자랑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전도의 본질에서 벗어난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은 예수님만 자랑하고 예수님만 증거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성령이 임하여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특정한 사람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성령이 임한 모든 자에게 사명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목사나 선교사처럼 다른 직업이 없이 전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만의 사명이 아니라 성령이 임하면 모든 사람이 다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무슨 직업을 가지고 일하든지, 어디에 종사하든지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보다 예수님이 약속하신 세상이 더 좋다는 것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세상, 눈에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영원한 것임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도의 기초입니다. 그런데 전도를 하면서 세상의 부귀영화를 약속하고 있다면 전도의 출발부터 잘못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5:1-10절을 봅니다. "1.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2.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3.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4.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5.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6.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7.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8.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9.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10.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성도라면 무엇을 원하고 기다립니까? 죄인임을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를 덧입기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인 장막이 무너지고 하나님이 지어주시는 새 몸을 덧입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16절 말씀처럼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새로운 몸, 죽을 몸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는 것을 간절히 사모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썩을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살아가는 영생을 소망하는 것입니다. 세상 끝 날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우리가 사는 동안 세상적인 욕망인 땅만 바라보고 살았는지, 주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살았는지 드러납니다. 이러한 내용이 다 전도인 것입니다.
이제 본문에서 바울사도가 전도한 내용을 자세히 살펴봅니다. 20:17-21절을 우선 봅니다. "17.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18.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19.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20.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21.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바울사도가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당한 고난과 핍박을 에베소 장로들은 다 보았습니다. 겸손과 눈물, 유대인의 간계로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을 말합니다. 성도에게 유익한 것이라면 공중 앞에서나 개인에게서나 무엇이나 다 전하여 가르쳤다고 말합니다.
성도에게 유익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세상에 속한 비전이나 꿈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한 천국을 전하고 가르친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 한 것입니다. 더 자세하게 말한다면 하나님께 대한 회개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자기들이 평소에 생각하던 하나님이 아님을 알리는 것입니다. 이방인들도 모두가 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섬겼지만, 로마서 1장에 보듯이 그들이 생각한 하나님은 피조물이었습니다. 피조물을 하나님보다 더 경배하고 섬긴 것입니다. 그들이 신이라고 섬긴 것들은 썩어질 사람과 짐승과 버러지 형상과 같은 우상이었던 것입니다. 즉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것이나 가치관들을 주님보다 더 사랑한 것입니다. 특히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지만 그들 역시 장님이었기에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두 죄 아래 있었던 것입니다.
전도란 죄인인 인간이 창조주를 몰라보고 죽였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포도원을 만들어 놓고서 주인이 세를 주었는데 세를 바치기는커녕 세를 받으러 보낸 종들을 죽이고 마지막에 아들까지 죽인 자들을 주인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진멸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전도를 하면서 이러한 죄의 지적이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전도할 때는 너희가 죽인 예수를 하나님께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자신들이 죽인 사람이 주와 그리스도라는 사실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회개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전도의 내용입니다.
오늘 우리는 전도하는 사명을 감당하기 전에 과연 전도에 대해 잘 알고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라고 찬송을 부릅니다. 정말 가사와 같이 생각합니까?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이 없습니까? 이 세상의 부귀, 명예, 행복, 즐거움보다 예수님이 더 귀합니까? 전도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방향과 목표가 여기에 합치하는가 생각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짐을 다 내려놓고 주님이 만드시고자 하는 나라를 사모하고 소망합시다. 하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주님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 참 믿음은 없고 오직 바라고 소원하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뿐이라면 전도, 예수님을 증거 하는 삶이 싫어지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을 전도한 사도들에게는 환난과 핍박이 당연한 것입니다.
본문 22-27절입니다. "22.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25.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26.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27.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무슨 일을 만나게 될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증거 하시기를 결박과 환난과 핍박이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주 예수께 받은 사명,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는 것이 자기의 사명이기 때문에 자기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복음을 증거 한 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피에 대하여 깨끗하다고 합니다. 이것은 사도가 꺼리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다 전하였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은 피하고 좋아하는 것만 골라서 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명 받은 자의 모습입니다. 성령이 임한 자이면 모두가 이러한 증인으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복음이 우리의 목숨보다 귀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이 임하여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사명인 것입니다.
목사가 자기 교회를 우상으로 만들어 예수님보다 그 교회가 더 크게 보이도록 만들지 않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교회보다도 주님의 나라가 더 좋다고 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우리들은 여러 가지 직업에 종사하면서 자기가 속한 조직에서 더 잘 살아남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은 영원하지 않고, 예수님께서 만드신 나라만이 영원합니다하고 말하는 것이 전도인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몫을 다 하였습니다. 이제 이 복음의 소식을 지키고 증거하는 것, 그것에 따라 살며 가감 없이 그것을 계속 전하는 것이 교회들의 몫입니다. 성령이 임한 모든 자의 몫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사명인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세상에 사는 것이 허무하게 느껴지지 않고 분명한 사명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세상보다 주님의 나라가 더 좋다는 것을 증거 하고, 하나님에 대한 회개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증거 하면서 사는 것이 사명입니다. 이것은 영원한 삶과 영원한 죽음에 관계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목숨보다 귀한 것입니다.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사도행전 20장17~27절을 읽고 묵상할 수 있게 허락하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아무도 알아 볼 수 없도록 허약하고 비천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십자가의 사역을 통하여 태초부터 언약하신 약속을 다 이루셨습니다. 바다보다 더 넓은 주님의 뜻을 우리 인간의 지혜로는 제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보내신 성령을 받고 사명을 감당하는 바울 사도의 모습을 봅니다. 우리 또한 성령님을 통하여 예수님의 하신 일과 말씀의 뜻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경 전체 가운데 오늘 읽은 한 부분을 묵상하고 깨달았다고 하여 성경 전부를 알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부분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게 하시고 부분을 통하여 전체를 상상할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항상 함께 하시며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들이 주님의 뜻을 올바로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폐회찬송】 찬송가 325장 예수가 함께 계시니 입니다.
【축도】 축도로 주일 예배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감동 감화 내주 역사 충만 교통하심이 오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말씀에 순종하고, 주시는 사명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다짐하는 성도들의 머리 위에와 섬기는 교회 위에와 삼채원 가정교회 위에와 이 나라 이 민족 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있을 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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