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봉독】 사도행전 24장 1~9절
1.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호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발하니라 2.바울을 부르매 더둘로가 고발하여 이르되 3.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로 개선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크게 감사하나이다 4.당신을 더 괴롭게 아니하려 하여 우리가 대강 여짜옵나니 관용하여 들으시기를 원하나이다 5.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6.그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6하반-8상반 없음) 7. 8.당신이 친히 그를 심문하시면 우리가 고발하는 이 모든 일을 아실 수 있나이다 하니 9.유대인들도 이에 참가하여 이 말이 옳다 주장하니라 아멘
【특별찬양】 찬송가 432장 큰 물결이 설레는 어둔 바다 입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저희 부부와 손자 임유엘이 이곳 삼채원에서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예배드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말씀과 찬송 가운데 주님이 베푸시는 은총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올해는 신약성경을 좀 더 자세히 읽고 깊이 묵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사도행전 22~24장 중에서 일부를 읽고 묵상합니다. 성령님 함께 하셔서 주님의 뜻을 더 깊고,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는 지혜와 명철을 허락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말씀 제목】 이 세상. 말씀으로 은혜 받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지금 세상은 과거보다 더 좋아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과거보다 나빠지고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고 합니다. 본인도 처음에는 세상이 점점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물질적인 풍요와 기계적인 편리함만을 본다면 분명 과거의 생활보다 훨씬 나아진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삶에서 행복함과 평안함의 측면을 본다면 과거와 별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편리함이 인간의 행복을 주관하지 못한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경쟁구조 속에서 인간성은 피폐되고 마음은 더욱 사악해져 갑니다. 마음의 평안을 구할 곳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풍요하고 편리해진 만큼 마음의 평안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과거의 세상이나 지금의 세상이나 변화가 없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세상이 바뀌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살고 계시던 시대나 오늘이나 우리 인간의 본성이 바뀌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성경 말씀이 오늘에도 적용이 된다는 것은 곧 이러한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닐까요? 세상의 끝은 천국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 되면 그제야 끝이 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천국 복음이 세상 끝까지 증거 되어 세상이 천국이 됨으로서 끝이 나면 좋을 텐데,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고 세상의 종말은 이 세상은 사라지고 영원한 불이 타는 세상과 영원히 빛나는 천국으로 나누어진다고 합니다. 그때까지 이 세상에서는 전쟁의 포화소리가 끊이지 않고, 전염병이 늘어날 것이 예고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것으로 보아 우리가 영원히 살 곳은 이 세상이 아님을 나타내는 표지일 것입니다. 그 사인을 보고서도 여전히 우리 조상들이 살았던 방식대로 살겠다고 우리들이 고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의 끝을 알고 준비하며 깨어 있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 기름과 등을 준비한 지혜로운 다섯 처녀들처럼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은 유대교 지도자인 대제사장 아나니아로부터 매수당한 변호사 더둘로가 로마의 총독 벨릭스에게 기독교를 매도한 사실에 관한 내용입니다.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초대 기독교가 로마 정부로부터 핍박을 받게 된 주요 원인이 유대교의 모략 때문이었음을 본문을 통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변호사 더둘로가 바울을 요즘 팬데믹 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전염병과 같다고 주장하는 것은 바로 오늘날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받는 오해와 비난과 같은 것입니다. 이렇게 비난과 핍박을 당할 때 우리는 어떤 자세로 이 세상을 바라보고 대처해야 할 것인지 본문을 통해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당시의 유대교는 세상 권력을 장악하고 선민의 재산을 불의로 약탈하고 참된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기독교를 억압하던 세력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세상의 실권자들인 총독과 대제사장, 변호사인 더둘로는 세상을 대표하는 인물들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선민과 기독교를 대변하는 사람입니다. 이들의 활동을 보면 오늘날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과 다름이 없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오늘 본문의 앞장 사도행전 23:23-30절의 내용을 살펴봅니다. 바울 사도가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 의하여 죽임을 당할 지경에 이르렀을 때 로마의 수비대에 의하여 구출을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이 계속하여 로마 시민권을 가진 바울을 죽이려고 하자 천부장이 가이사랴에 있는 벨릭스 총독에게 바울을 보내는 이유를 편지로 써서 바울과 함께 보냅니다. 무려 470명의 군인이 보호한 상태에서 바울을 가이사랴까지 데리고 갑니다.
그리고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변호사 더둘로를 데리고 바울을 고소하기 위하여 가이사랴에 왔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역사적인 인물 벨릭스와 아나니아와 더둘로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은 이 세상을 대표하는 인물들입니다.
이 당시의 유대인 역사학자 요세푸스와 로마인 역사학자 타키투스에 의하면 아나니아 대제사장은 매우 교활하고 거만한 사람으로 경멸받아 마땅한 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나니아는 전임 대제사장에게 자객을 보내어 암살하고 그 자리를 차지하였고, 성직을 이용하여 축재를 한 부자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벨릭스는 노예출신으로서 총독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 로마의 역사상 가장 타락한 자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변호사 더둘로도 자기의 재능을 돈벌이의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진리와 정의는 생각하지 않는 비인간적인 변호사였습니다. 그러므로 종교와 정치권력이 가장 타락한 자들의 손아귀에 들어 있는 상황 아래에서 바울 사도가 재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드디어 벨릭스 총독 앞에서 송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데리고 온 변호사 더둘로가 온갖 아첨을 다하면서 벨릭스 앞에 바울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1절에 보면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바울을 정죄하고 없애버리고자 이방인 변호사 ‘더둘로와 함께’ 가이사랴로 내려왔습니다. 그들은 로마 법정에 관한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사리사욕에 눈이 먼 변호사, 하지만 최소 2개국어에 능숙한 똑똑한 변호사를 매수하여 어찌하든지 바울을 없애버리고자 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둘로는 총독에 대한 아부성 논리를 펼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지켜야 할 자존심마저 팽개치고 로마 정부 관리에게 아부성 발언으로 시작합니다. 로마에서 파견된 악한 벨릭스 총독을 평화의 수호자로 미화시키고 있습니다.
3절에 보면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벨릭스는 역대의 어느 총독보다도 잔인한 강압주의의 통치자였다고 역사가들은 평가했습니다. 그는 ‘토끼들의 반항에 대포로 맞선’ 정치를 유대 민족에게 시행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유대 사회가 겉으로는 조용한 듯 했으나, 속으로는 불만이 고조되어 급기야 주후 70년에는 유대 민족의 ‘반로마 유혈 폭동’을 불러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유대의 역사가들도 ‘벨릭스 치하에서 반란이 영구화되었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그는 ‘평화의 수호자’가 아니라 ‘불화의 조장자’였던 것입니다. 결국 더둘로는 벨릭스로부터 환심을 사기 위해 아첨의 말을 한 것입니다. 세상의 권력자들은 이처럼 하나님이 세우신 선지자와 교회가 교권주의자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세상의 권세나 법을 이용하려고 합니다. 세상은 항상 자기의 이권을 위하여 거짓과 불의와 야합하는 죄악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권력가들이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임을 유념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더둘로 변호사는 벨릭스 총독을 전지 전능자로 추켜세웠습니다.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로 개선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크게 감사하나이다’(3절). 이와 같은 아첨은 신에게 올리는 제사의 축문에 가까운 성격의 문장입니다. 유대교의 제사장들은 변호사를 통하여 하나님께 올려야 할 감사의 기도를 이방 폭군 총독에게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3장 1~7절에 따르면 우리는 선정을 베푼 위대한 정치가들을 마땅히 존경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정치인을 세워 주신 하나님께도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세속적인 이익을 얻으려고 어느 특정한 정치 세력을 이용하거나 그들에게 아첨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역사를 왜곡하는 일이며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를 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세속의 권력이 불의를 행한다고 해도 그것을 우리가 지적하고 정죄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제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않고 형제의 티를 빼려고 하는 것과 같은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잘못을 범치 않으려면 세속적인 모든 욕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바울처럼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행동할 뿐인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죄를 범하지 않게 되고 세상의 범죄도 과감하게 지적함으로써 그들도 죄를 범하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로남불의 거짓으로 자기중심의 이익을 취하는 자기 합리화에 불과하며, 하나님께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더둘로는 유대교와 같은 뿌리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받아들이는 기독교를 비난하고 있습니다. 같은 편에서 힘을 합하여 로마와 싸워야 할 동족이 동족을 비난하고 동족과 다투고 있는 것입니다. 4절입니다. ‘우리가 대강 여짜옵나니 관용하여 들으시기를 원하나이다’. 더둘로는 벨릭스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아첨과 거짓으로 환심을 사놓고는 드디어 바울과 기독교를 매도하기 시작합니다. 이는 데오빌로에게 기독교를 담담히 변증한 누가와는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는 부분입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기독교를 반국가적 단체라고 매도했습니다. 5절에 보면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당시 유대 민족 사이에는 ‘정치적 메시야 운동’이 성행하기 시작했습니다. 폭력주의자 ‘바라바’(막15:7)도 그 우두머리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로마 제국은 식민지에 문화적으로 관용했으나, ‘정치적 운동’에는 예민했고 관용을 베풀지 않았습니다. 유대교는 교활하게도 바로 기독교가 그 ‘정치적 반역 세력의 전염병’이라고 로마 정부에고자질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공의로운 분노를 느끼면서도 한편으로 한량없는 기쁨도 느낍니다. 왜냐하면 더둘로의 거짓 증언 속에는 당시 기독교의 복음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온 세계에 확산되고 있었는지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퍼져나가듯이 번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정당한 이유 없이 이웃들에게 매도당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생명과 능력이 넘치고 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탄은 결코 열매 없는 나무를 흔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더둘로는 기독교를 사이비 종파로 격하시켰습니다. 5절에 보면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교의 탈무드에 보면 기독교를 지칭할 때는 항상 ‘나사렛 당’이라고 경시합니다. 유대인들이 얼마나 철저히 사악했는지 그리고 기독교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알 수 있게 하는 구절입니다. 이를 통해서도 우리는 오히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이 역사적인 사건이라는 객관적인 증거를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초대 교회 성도들이 얼마나 높은 그리스도의 영과 정신을 가지고 삶을 영위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마귀와 사탄의 후손들인 권력 세도가들은 정말 머리가 좋은 사람들입니다. 거짓 논리를 만들어서 교회와 목회자와 성도를 넘어지게 하고, 낙심하게 만듭니다. 논리적으로 공격해 들어오는 것을 감정적으로 방어해서는 이길 수 없습니다. 이에, 바울은 10절부터 철저하게, 더둘로가 바울을 고소하는 내용들에 대하여 증인도 없고, 증거도 없고, 나는 부활하신 예수님만을 전했다고 논리적으로 반박합니다. 벨릭스는 증인으로 천부장을 요청하였고, 바울을 가택 연금시키게 됩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힘이 작용한 것입니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이 세상의 사악한 세력과 싸워서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주님이 주신 말씀으로 무장하고 주님을 의지하며 주님께 모든 것을 맡겨야 합니다. 이 세상은 이권과 물욕으로 가득한 사람들이 이끄는 세상입니다. 이 세상에서 주님의 나라를 이루어야 하는 성도는 말씀의 검을 준비해야 하는데, 그 말씀의 검은 날이 잘 세워진 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과거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세상입니다. 이 세상이 우리의 힘으로 바뀌어 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안이하게 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매일 주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닫고 주어진 우리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사도행전 22~24장 가운데 일부를 읽고 묵상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주님의 뜻을 조금이나마 더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선악과를 먹은 우리들은 지혜가 부족하여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도대체 잘 알지 못합니다. 내 생각은 내려놓고, 보내신 성령님을 모시고 주님의 뜻을 올바로 분별할 수 있게 하옵소서. 주님이 주신 믿음을 통하지 않으면 미련하고 완고한 저희들은 주님의 말씀을 알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생각을 내려놓고 보내신 성령님 뜻에 귀를 기울이며 눈을 뜨고 깨달을 수 있게 하옵소서. 바울 사도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 성령을 받은 후에는 주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이 얼마나 험악하고 두려운 세상인지 깨닫게 하시고, 말씀에 순종하며 축복받고 살아가는 자녀들이 다 되게 하옵소서. 주님의 일을 하는 자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폐회찬송】 찬송가 545장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입니다.
【축도】 축도로 수요 예배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감동 감화 내주 역사 충만 교통하심이 오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 주신 은혜를 잊지 않고 표현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다짐하는 성도들의 머리 위에와 섬기는 교회 위에와 삼채원 가정교회 위에와 이 나라 이 민족 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있을 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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