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210620주일예배

imhp 2021. 6. 20. 21:33

20210620 성령강림 후 네 번째 주일예배 사도행전5.(주님의 은혜 행15:1~21)

준비찬송찬송가 520장 듣는 사람마다 복음 전하여 입니다.

지금부터 21620일 성령강림절 후 네 번째 및 71주년 6.25 상기주일 예배를 드리겠습니다.

개회찬송찬송가 27장 빛나고 높은 보좌와

개회기도여러 나라의 종족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제물을 들고 그 앞에 들어갈 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대상 16:28~29) 아멘

전쟁에 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홍해를 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마른 땅 같이 건너게 하시고, 뒤쫓는 애굽 군사를 수장시키시기까지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 북한의 남침야욕으로 풍전등화와 같았던 이 나라의 자유를 지켜주시고 안보하여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 나라가 주님의 사랑 안에 견고하게 하시고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게 허락하시니 감사합니다.

아무런 공로가 없는 저희들은 오늘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오늘 이곳에서 온 가족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희들의 눈이 온전히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시고, 저희들의 마음이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옵소서. 예배 가운데 임재 하셔서 홀로 영광 받으시기 원합니다. 주님! 저희 가족 중에 육신적인 질병으로 고통을 받는 주님의 자녀들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직접 어루만져주시고 위로하여 주옵소서. 좋은 의사를 만나게 하여주시고, 끝까지 치료를 잘 받을 수 있게 인도하옵소서.

오늘 예배가 주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깨닫는 진정한 산제사가 되게 하시고, 믿음의 참된 기쁨을 회복하는 천국의 잔치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경배찬송찬송가 15장 하나님의 크신 사랑 찬송하겠습니다.

신앙고백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 하겠습니다.

성시교독교독문 84. 히브리서 11

봉헌찬송찬송가 95장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봉헌시간입니다.

봉헌과 축복의 기도

작은 것 하나까지라도 진리 안에서 자유하기를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천지 만물이 주님의 손길을 찬양하게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저희들을 돌아보시며 믿음을 가지게 하시고,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베푸시는 놀라운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 어떤 어려움이나 고통 속에서도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기 위해 일하시는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온 정성을 다하여 예물을 준비하여 드립니다. 기뻐 받으시고 드리는 손길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이 봉헌 예물이 사용되는 곳에 주님의 나라가 더욱 확장되게 하시고, 죄에 갇혀 허덕이는 인생을 구원하는 데 쓰이는 작은 씨앗이 되게 하시옵소서. 만물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찬송찬송가 523장 어둔 죄악 길에서 찬송하신 후에 황보 송옥 사모님이 대표 기도해 주시겠습니다.

대표기도황보 송옥 사모

성경봉독사도행전 15:1~11. 1.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2.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3.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4.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5.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6.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7.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9.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10.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아멘

특별찬양찬송가 524장 갈 길을 밝히 보이시니 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오늘 저희 온 가족이 모여 함께 예배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희들을 주님의 강한 손으로 붙들어 주셔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옵소서. 생기와 활력을 주셔서 강건하게 하시고 주님 주신 일을 할 때 기쁜 마음으로 감당할 수 있게 하옵소서. 2021년에는 신약성경을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사도행전 13~15장 가운데 일부를 읽고 묵상합니다.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보다 자세히 깨달을 수 있게 하옵소서. 성령님 함께 하셔서 저희들의 우둔한 머리를 지혜롭고, 명철하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일상생활이 주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합당한 산제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제목주님의 은혜 : 주신 말씀을 통하여 많은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지역적이고 민족적인 종교인 유대교를 변화시켜 세계적인 기독교로 만드는 순간을 기록하고 있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습니까? 행함으로 받습니까? 믿음으로 받습니다. 그러면 다시 질문을 합니다. 구원받는 사람은 믿어서 구원받고 구원받지 않는 사람은 믿지 않아서 구원받지 못하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이 믿음도 나의 행함입니다. 성경에서 구원 받는 믿음은 나의 의지적 결단이거나, 내가 예수님을 영접한다거나, 내가 먼저 무엇을 하여야 하는 선행행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란 무엇과 대비가 되고 있는가 하면 행함과 대비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3:19-22절입니다. "19.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20.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1.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율법이란 율법아래 있는 자들의 입을 막고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아래 있음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을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길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은 율법을 지켜 행해야 의롭게 된다는 것과 비교했을 때 그 의미가 분명하게 됩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에게 차별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로마서가 말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이 내용이 기록되던 시기, 약 이천년 전에는 이에 대하여 얼마나 큰 논란거리였는지 오늘 말씀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오늘날에도 계속하여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교회 안에 어떤 사람이 몇 대째 믿는 집안의 사람이라고 합시다. 어머니 배속부터 예배당에 다녔습니다. 이런 사람을 모태신앙이라고 하는데 그는 참된 신앙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런 분위기에서 태어나고 어려서부터 주일을 지키고 십일조를 철저히 하고 교회에 충성하고 봉사하여 왔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웃에 대대로 우상을 섬기던 집안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인생의 황혼기에 들어서 예수를 믿어 참 신앙을 가지고 교회에 즐겁게 헌신하고 있습니다. 장로 투표에 앞의 두 사람이 천거되었습니다. 여러분은 누구에게 한 표를 주겠습니까? 만약에 뒤늦게 교회에 나온 사람이 장로가 되고 먼저부터 열심히 봉사했던 사람이 장로에서 떨어졌다면 누가 제일 분노하겠습니까? 떨어진 당사자는 계속해서 교회에 나올까요? 이런 상황과 비슷한 것입니다.

1-3절입니다. 지금 안디옥 교회에 유대교 그리스도인들이 몇 사람 내려왔습니다. 이들이 주장하는 말이 예수를 믿어도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예수 믿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니 모세의 법을 똑 같이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바울과 바나바가 이들을 반박합니다. 논란이 일어났습니다. 여러 형제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에게 답변을 구하려고 사람을 보내기로 하였습니다. 요즈음도 교회에 문제가 생기면 노회나 총회로 상소하는 것처럼 당시의 기독교 최고 의결기구인 예루살렘 공의회에 상소문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 결정은 논란거리를 잠재우는 아주 중요한 회의가 되는 것입니다.

논란거리를 해결하기 위하여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가면서 베니게와 사마리아에 있는 교회들을 방문하면서 올라갑니다. 이 교회들은 예루살렘에서 핍박이 일어나자 흩어져 살고 있는 헬라파 유대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이들은 이방인들이 주님께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서 매우 기뻐합니다. 마침내 예루살렘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런데 분위기는 달라집니다. 전통 유대인이라고 자부하는 유대인 기독교인들은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고 기독교에 들어 왔다는 것을 아주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들의 중심에는 바리새인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고집 피우고 있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유대인의 전통과 관습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4-5절을 봅니다. 바리새파 중에서 예수를 믿는 자들은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더라도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이에 사도와 장로들이 모여서 이 일을 의논합니다. 그리고 많은 변론이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먼저 이 일에 대하여 결정적인 자기의 경험을 말합니다.

본문 7-11입니다. 베드로 자신은 이미 이방인 고넬료에게 복음을 증거 한 적이 있습니다. 베드로도 처음에는 성령께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증거 하게 하시는 것을 거부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주님께서 깨끗하게 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고넬료에게 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그러자 자기들이 받은 것과 동일한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본 것입니다. 베드로는 어떻게 자기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막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합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 자신을 통하여 이방인에게 세례를 주고 성령을 받게 하셨다고 증거 합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나 우리를 복음 전파하는데 차별하지 않으신다고 말합니다. 주님이 구원을 베푸시는 데에는 유대인이나 이방인 간에 차별대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주 중요한 말을 합니다.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와 우리 조상이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고 하느냐고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나 그들이나 간에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고 합니다. 할례를 행하고 율법을 지켜서 구원 얻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모두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얻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함으로 회의에 참석한 무리가 잠잠하여 집니다. 수제자인 베드로가 주님의 하신 일을 이렇게 증거 하니 잠잠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자 뒤이어 바울과 바나바가 하나님의 하신 일을 증거 합니다. 이방인들이 어떻게 주님께로 돌아오게 되었는지를 보고한 것입니다. 그러자 공의회 의장인 야고보가 최종적인 결론을 내립니다. 예루살렘 회의에서 내린 최종적인 결론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간에 오직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15:13-21입니다. “13.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이르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14.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그들을 돌보신 것을 시므온이 말하였으니 15.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일치하도다 기록된 바 16.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7.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19.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20.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21.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하더라야고보가 아모스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하면서 베드로가 말한 이방인이 복음을 받는 것은 이미 아모스 선지자가 예언한 것과 합치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방인이 예수를 믿고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더 이상의 반론은 없었습니다. 단지 몇 가지 주의해야 할 우상, 음행, 피 등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결론에도 불구하고 일부 기독교 유대인들은 돌아다니면서 계속하여 예수 믿는 것만으로 부족하니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와 똑 같은 관성을 가진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말씀에 순종하여 너희들은 세상을 복되게 살라고 하는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라는 말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왜 유대인들이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이라는 말을 싫어할까요? 성경전체를 생각하면서 살펴봅니다. 유대인들이 강조하는 할례와 모세의 율법이 무엇입니까? 할례와 율법 중 무엇이 먼저입니까? 할례가 먼저입니다. 할례는 하나님이 선택한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모세의 율법은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고 430년이 지나서 주어진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할례가 먼저입니까?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 먼저 입니까?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 먼저입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은 건성건성 듣고 자기 이익은 더 깊이 생각합니다. 유대인들의 뿌리 깊은 완고함입니다. 우리 또한 예외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하신 약속을 믿게 됨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그 약속은 후손에 대한 약속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을 믿고 약속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사라의 권고를 받아 하갈과 동침하여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한동안 나타나지 않으시다가 아브라함의 나이 99세에 나타나서 할례를 행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삭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할례를 행하고 난 후에 이삭을 주시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아브라함에게 너의 육정이나 너의 뜻으로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약속의 자녀는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이시고자 할례를 명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할례를 바리새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는 자격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이라도 할례를 받아야만 유대인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으려면 선택된 민족인 유대인이 되어야 하고, 유대인이 된다는 것은 또한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편협된 생각을 보여줍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를 믿고 죄 사함을 받아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오직 주 예수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어떠한 조건을 보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게 되면 무언가 잘 할 것 같아서 구원하신 것도 아닌 것입니다. 내가 저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 두면 나중에 은혜를 갚아 줄 거라 생각하시고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에게 선물을 하고 잔치에 누구를 초대합니까? 내가 은혜를 입었거나 아니면 나중에 무언가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계산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이미 은혜가 아니라 삯이고 대가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잔치를 열고 사람을 대접하려면 갚을 능력이 없는 자들을 초대하라고 하십니다. 무언가 갚아 줄 것을 기대하고 대접하는 것은 이미 은혜의 대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베푸신 은혜의 식탁에 초대된 자들은 세리와 창기와 죄인들이었습니다. 이들에게는 아무것도 갚을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잘난 것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에는 어느 누구도 잘난 사람이 없습니다. 은혜 받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교회에서는 개인이 자랑의 대상이 되지 않는 곳입니다. 어떤 공로가 있거나 없거나 간에 오직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것이 교회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새 편이 갈라집니다. 파당이 생기는 것입니다. 교회가 시끄러워지고 분리가 일어나는 이유를 들여다보면 모두가 서로가 잘났다고 하기 때문에 생겨납니다. 그러므로 제대로 은혜를 입은 자라면 자기의 못남을 아는 자들입니다. 자기의 못남을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천국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현장입니다. 현실과 교회를 왕래면서 천국과 지옥을 같이 경험하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한 쪽으로만 치우쳐서 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바울 사도와 십자가에 예수님과 함께 달린 강도와, 베드로와 거지 나사로와, 바리새인과 이방인이 오직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에 이른 것입니다. 여기에 차별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우리의 삶에도 적용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사도행전 151~11절을 읽고 묵상할 수 있게 허락하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아무도 알아 볼 수 없도록 허약하고 비천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십자가의 사역을 통하여 태초부터 언약하신 약속을 다 이루셨습니다. 태산 보다 높고 바다보다 더 넓은 주님의 뜻을 우리 인간의 지혜로는 제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떠나가신 후 우리들에게 보내 주신 성령님이 가르쳐주심으로 예수님의 하신 일과 말씀의 뜻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함께하시는 성령님을 잊지 않게 하시옵소서. 성경 전체 가운데 오늘 읽은 한 부분을 묵상하고 깨달았다고 하여 성경 전부를 알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부분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게 하시고 부분을 통하여 전체를 상상할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항상 함께 하시며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들이 주님의 뜻을 올바로 깨달을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고 주님의 일을 기쁜 마음으로 행하게 하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폐회찬송찬송가 320장 나의 죄를 정케 하사 입니다.

축도축도로 주일 예배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감동 감화 내주 역사 충만 교통하심이 오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말씀에 순종하고, 주시는 사명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다짐하는 성도들의 머리 위에와 섬기는 교회 위에와 삼채원 가정교회 위에와 이 나라 이 민족 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있을 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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