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210704 주일 설교문

imhp 2021. 7. 4. 09:50

20210704 성령강림 후 여섯 번째 주일예배 사도행전9.(말씀대로 행28:23~31)

성경봉독사도행전 28:23~31. 23.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24.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25.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이르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26.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27.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28.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 29.(없음) 30.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31.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아멘

특별찬양찬송가 510장 하나님의 진리 등대 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오늘 저희 부부와 손자가 한자리에 모여 함께 예배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희들을 주님의 강한 손으로 붙들어 주셔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옵소서. 생기와 활력을 주셔서 강건하게 하시고 주님 주신 사명을 감당할 때 기쁜 마음으로 나설 수 있게 하옵소서. 2021년에는 신약성경을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사도행전 마지막 부분 25~28장 가운데 일부를 읽고 묵상합니다.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보다 자세히 깨달을 수 있게 하옵소서. 성령님 함께 하셔서 저희들의 우둔한 머리를 지혜롭고, 명철하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일상생활이 주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합당한 산제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제목말씀대로 :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하여 많은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을 지금까지 8회에 걸쳐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마무리를 하면서 우리의 마음에 무엇이 남았는지 정리해 보고자합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주님께서 신실하게 이루셨고 지금도 이루고 계시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 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하신 것이 복음서의 내용입니다. 사도행전의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여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성령을 보내시고 약속한 것들을 실현시키는 과정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8절을 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주님이 약속하신 대로 성령이 오순절 날 임하였습니다. 사도들이 권능을 받아 방언을 하고, 병 고침을 행하는 권세와 능력을 받았습니다. 이때부터 사도들은 증인이 되기 시작합니다. 누구의 증인이 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됩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나사렛 예수께서 다시 살아 나셨고 이분이 그리스도라고 증거 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코 사도들은 권세나 능력을 가지고 자기들을 증거 하고 있지 않습니다. 날 때부터 앉은뱅이가 되어 성전미문에서 구걸하던 자를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게 합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베드로와 제자들을 보면서 놀라는 것입니다. 그 때 사도들이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이 사람이 일어난 것이 어찌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일어난 것처럼 우리를 주목하느냐고 하면서 자기의 권세와 능력으로 한 것을 부인합니다. 그러면서 이 사람이 온전하게 된 것은 예수의 이름이 그렇게 하였다고 증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증인의 삶입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을 통하여 증거 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보아야 합니다. 증거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렇지 않고 자기의 권세와 능력이나 자기의 열심, 또는 자기의 교회를 증거 한다면 참된 증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자는 자기의 행위를 통해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의 핵심적인 내용은 이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자의 말과 행동을 받아들이고 믿는 사람들은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도들이 예루살렘과 유다의 경계를 넘어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나아가야 하는데 예루살렘에 머물려고 합니다. 주님이 하신 약속은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였는데 사마리아와 이방인의 경계를 넘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큰 핍박이 일어나게 합니다. 핍박의 주동자 중의 한 사람이 바울이었습니다. 그 핍박으로 인하여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할 수 없이 흩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핍박의 결과 사람들이 사마리아로 들어가게 되고 사마리아에도 복음이 증거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루살렘에만 있던 사도들이 사마리아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가? 하면서 의아해 하는 것입니다. 개같이 여기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것에 놀라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냅니다. 확인한 결과 그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이들에게 사도들이 안수를 하니 성령이 임한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임하였던 성령이 사마리아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임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도 물세례와 성령세례, 즉 예수 믿는 것과 성령이 임하시는 것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봅니다. 이는 사도들로 하여금 복음이 사마리아에도 증거 되고 있는 것을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사마리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했습니다. 하물며 사마리아보다도 더 하나님과 전혀 상관이 없는 자들인 이방인에게까지 성령이 임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힘이 들었겠습니까? 유대인들 간의 다툼과 소동 그리고 예루살렘 공의회를 통하여 가까스로 결론을 내리는 과정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방인에게도 생명을 얻을 수 있는 회개의 기회를 주셨다는 것을 미련하고 완고한 유대인들이 드디어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정하지 아니할 수 없도록 사마리아 사람들과 이방인들에게 성령이 임하는 것을 사도들로 하여금 직접 눈으로 볼 수 있게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온전히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 사도행전입니다.

복음이 증거 되는 것을 가장 싫어한 사람들 가운데 핵심 인물이 누구였습니까? 바울입니다. 그가 핍박한 일이 오히려 복음을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또한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입니까? 뿐만 아니라 회심하기 전의 바울은 예수님을 이단의 괴수로 생각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얼마나 싫어하였는지 스데반 순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스데반이 죽어야 마땅하다고 굳게 믿었고, 스데반의 순교 현장을 지켜보며 확인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다메섹까지 가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려고 가다가 오히려 예수님께 사로잡히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사람들을 핍박하다가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예수님은 바울 사도를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 하는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십니다. 복음 증거의 현장에서 일하는 일꾼으로 사용하시고 있으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사도행전의 후반부를 장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방인 지역을 위주로 다니면서 복음을 증거 하였습니다. 수많은 죽음의 고비와 위협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증거 한 것입니다. 복음전파의 현장에서 바울이 고난을 당하는 순간에 하나님의 능력이 또한 나타났습니다. 온갖 불치병을 치유하였습니다. 그 결과 바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병자 위에 가져다 놓아도 병자가 낫고 악귀가 떠나버리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장면을 보고, 우리는 바울이 가는 곳마다 엄청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수많은 사람들이 바울의 말을 순순히 믿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울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예수를 믿겠다고 환영하는 그런 일이 일어날 것으로 기대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의 사사로운 욕심을 따라 일하지 않았고, 목숨을 걸고 주님의 복음을 증거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바울에게 능력을 더하셔서 계속 기적을 일으키고 엄청난 일들을 해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초반에서 성령이 임하고 사도들이 능력을 행할 때에도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능력을 더하셔서 큰일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두에게 능력을 더하시거나 모든 일에 능력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스데반이 죽을 때 그냥 돌에 맞아 죽습니다. 야고보 사도가 순교를 합니다. 그 때는 아무른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른 사도들도 갈수록 기적과 능력이 나타나기 보다는 복음을 증거 하다가 죽어갔습니다.

왜 복음이 이렇게 일률적이지 않고 임의대로 증거 되는 것입니까? 모든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 칠만한 사회적인 위신과 체면과 권위를 세워주면서 복음을 전하게 하시면 안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원님 덕에 나팔 분다는 식으로 예수님 덕에 권세를 한번 누려보고 싶은 것이 사실입니다.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이런 생각은 위험천만한 것임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주님은 어떤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까? 세상에 오실 때에도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집안도 학벌도 없었습니다. 이사야 53장을 보면 예수님이 어떠한 모양으로 오실 것을 자세히 예고하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 보다 더 낮은 모습으로 오신 것입니다.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고 그래서 멸시를 받는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실제로 온갖 멸시와 조롱을 다 당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의 아들이 이런 모습으로 오신 것입니까?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하여 그렇게 오신 것입니다. 죄를 담당하시면서 우리의 죄를 고발하시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떠나서 지배당하지 않는 존재인 하나님처럼 살고 싶어 한 것입니다. 피조물인 사람들은 자기 뜻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세상에서 자기가 가장 불행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죄 없이 고난당하신 주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스스로 돌아본다면 우리는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는 우리 모두가 죄인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죄 때문에 죽으셨음을 아는 사람은 입을 닫을 뿐입니다.

복음을 증거 하는 자들은 자기들이 얼마나 죄인인지 알고 동시에 주님의 십자가로 세상의 모든 죄를 없앤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이들에 의하여 복음이 증거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의 모습은 세상이 말하는 영광의 모습이 아니라 세상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는 모습으로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이나 세상의 것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므로 세상의 것들이 방해 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세상의 부귀영화와 유혹이나 그 어떤 위협과 고난과 죽음도 예수님을 증거 하는데 장애가 되지 않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협하고 고문하고 죽이려고 하는데도 예수님을 부인하지 아니하고 예수님을 증거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사는 목적은 눈에 보이는 것을 얻기 위해 살고 있는데 예수님을 증거 하는 그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마다하고 사는 것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있기에 저렇게 바보같이 사는가? 하고 의아해 하는 방식으로 복음을 증거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는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밭에 감추어진 보화와 같으며,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겨자씨와 같으며, 가루 속에 들어있는 누룩과 같은 것입니다. 모두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찾아내시기 위하여 복음을 증거 하는 자들로 하여금 세상의 영광을 누리지 못하게 하면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만약 복음이 세상의 영광을 전하는 것이라면 누구나 환영하고 좋아할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이란 이 세상에서 분리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모든 인류가 대동단결하여 좋은 세상을 만들어보자고 하는 단순히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휴머니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서로 사랑이라는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랑은 윤리와 도덕이라는 율법 위에 있는 것입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법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위해서 내가 먼저 희생하고 사랑하는 순교정신입니다. 그 뜻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사도행전에서 계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이 28장까지 진행이 되면서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주님의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대로 성취되고 있음을 봅니다. 드디어 바울이 로마에 도착합니다. 비록 죄수의 몸으로 잡혀가지만 그러나 복음은 막히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풍랑이 일어나 배가 깨어져도, 뱀에게 물려도 복음이 증거 되는 일에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로마에서도 무려 2년 정도를 가택 연금 상태로 있으면서 복음을 증거 하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유대인들의 지도자를 초청합니다. 그리고 복음을 증거 합니다.

그러자 두 가지 반응이 나옵니다. 믿는 자들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도 나오는 것입니다. 이때 바울사도가 하는 말이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 결론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8:23-28절입니다. “23.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24.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25.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이르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26.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27.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28.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믿지 아니하는 사람을 믿는 사람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복음으로 찾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전도, 즉 십자가의 도로 하나님의 백성을 찾아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찾아내는 것이기에 감옥에 있어도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지하에 있어도 상관이 없고, 세상에서 보잘 것 없는 자라도 주님의 복음을 증거 하는 일에는 전혀 방해를 받지 아니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취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 되리라는 주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바울 사후 약 19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복음이 증거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오늘 우리도 이 복음의 말씀을 듣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똑똑하거나 잘나서 복음을 알아들은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어떤 가능성이나 행함이 아니라 거저 주시는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로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고 영생을 얻은 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믿는 자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자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바울이 전한 이 복음을 믿으십니까?

그러면 천하를 얻는 것보다 더 귀한 생명을 선물로 얻었기에 다 얻은 것입니다. 이런 사람만이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현재 모습이 어떠하든지 그것으로 인하여 교만하거나 주눅 들지 아니합니다. 믿음의 눈을 뜨고 이 세상을 보면 이 세상은 가상현실입니다. 시뮬레이션이며, 하나님의 작정과 계획에 따라 이루어져 가는 매트릭스 상황입니다. 오직 현실은 하나님의 말씀만이 참된 현실이기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취될 뿐입니다.

기도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사도행전 2823~31절을 읽고 묵상할 수 있게 허락하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아무도 알아 볼 수 없도록 허약하고 비천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숨겨진 보화였습니다.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십자가의 사역을 통하여 태초부터 언약하신 약속을 다 이루셨습니다. 바다보다 더 넓은 주님의 뜻을 우리 인간의 지혜로는 제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보내신 성령을 받고 끝까지 사명을 감당하는 바울 사도의 모습을 봅니다. 우리 또한 성령님을 통하여 예수님의 하신 일과 말씀의 뜻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경 전체 가운데 오늘 읽은 한 부분을 묵상하고 깨달았다고 하여 성경 전부를 알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부분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게 하시고 부분을 통하여 전체를 상상할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항상 함께 하시며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들이 주님의 뜻을 올바로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폐회찬송찬송가 508장 우리가 지금은 나그네 되어도 입니다.

축도축도로 주일 예배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감동 감화 내주 역사 충만 교통하심이 오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말씀에 순종하고, 주시는 사명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다짐하는 성도들의 머리 위에와 섬기는 교회 위에와 삼채원 가정교회 위에와 이 나라 이 민족 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있을 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