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14 수요 가정예배 로마서 3.(의의 종 –롬6:15~23)
【준비찬송】 찬송가 268장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입니다.
지금부터 21년 7월 14일 수요 가정예배를 드리겠습니다.
【개회찬송】 찬송가 31장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개회기도】 오늘 주님이 임재하시는 삼채원 동산에서 수요예배를 드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어느 곳에서나 함께하시며 지켜주시는 주님! 이곳 삼채원에서 드리는 저희 예배를 즐거이 받아주시고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간곡히 기도하는 것은 주님이 사랑하는 자녀인 최 지윤 집사가 아직도 고통 받고 있습니다. 조속히 일상생활이 가능하도록 건강을 회복시켜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온전히 회복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수원 아들 집에 있는 황보 송옥 사모님이 자녀를 보살피고 있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일할 수 있게 하옵소서. 모든 고통 받는 자들을 도우시며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신앙고백】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 하겠습니다.
【찬송】 찬송가 272장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찬송하신 뒤에 제가 대표 기도하겠습니다.
【대표기도】 임 한표 목사
【성경봉독】 로마서 6장 15~23절
15.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16.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17.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19.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20.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21.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22.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23.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아멘
【특별찬양】 찬송가 270장 변찮는 주님의 사랑과 입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이곳 삼채원에서 주님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예배드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말씀과 찬송 가운데 주님이 베푸시는 은총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올해는 신약성경을 좀 더 자세히 읽고 깊이 묵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로마서 5~6장 중에서 일부를 읽고 묵상합니다. 성령님 함께 하셔서 주님의 뜻을 더 깊고,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는 지혜와 명철을 허락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말씀 제목】 의의 종. 말씀으로 은혜 받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두 종류뿐입니다. 한 종류는 죄와 사망이 왕 노릇하는 사람이고, 한 종류는 의와 생명이 왕 노릇하는 사람입니다. 죄와 사망이 왕 노릇하는 사람은 본인의 의사와 행위와 상관없이 죄의 종입니다. 반대로 의와 생명이 왕 노릇하는 사람 역시 자신의 의사와 행위와 상관없이 의의 종입니다.
복음을 들으면서 가장 황당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가 바로 오늘 이 부분일 것입니다. 로마서 전체가 이 부분을 증거하고 이 복음에 대한 오해와 반발에 관하여 증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법아래 있지 않고 은혜아래 있다는 14절의 말씀과 연결이 되고 있습니다. 법아래 있다는 것은 법을 지키지 않으면 죄인이며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체제 아래에서 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반면에 은혜 아래 있다는 것은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신 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당장 그러면 은혜아래 있으니 죄를 지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반발에 대하여 그럴 수는 없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과 비슷한 표현을 어디에서 볼 수 있습니까? 롬5:20-21절입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다는 말씀입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치면 더 많은 죄를 지어 더 큰 은혜를 받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롬 6장1절에서 보듯이 결코 그럴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럴 수 없는 이유는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옛 사람이 죽었고, 죄에서 떠나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있는 데 어떻게 죄를 지을 수 있느냐고 말하는 것입니다. 죄가 왕 노릇하는 곳에서는 그 결과가 사망으로 가지만 은혜가 왕 노릇하는 곳에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연약하고 부족함으로 죄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죽을 몸을 가지고 있기에 나옵니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사망으로 이끌어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덮어주시고 변호하시기 때문입니다. 단지 그러한 몸의 사욕을 따르는 것은 아직 성숙하지 않았으므로 앞으로는 자제하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시고 하나님께 대하여 사신 것처럼 이제 성도는 죄에 대하여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하여 산자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죄가 더 이상 주장하지 못하고 관리하지 못하는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법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은혜아래 있다고 한 것입니다.
은혜아래 있으니 죄를 지어도 되겠구나! 하는 것에 대하여 그럴 수 없다고 하면서 오늘 본문 16절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16절은 왜 그럴 수 없는지를 일반적인 원리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너희 자신을 누구에게 드리고 있느냐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의 종이라면 죄에게 순종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죄의 종이기에 죄가 시키는 대로 하여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죄의 종에게 의를 행하라고 한다고 해서 의를 행할 능력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 반대로 의의 종은 의에 순종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죄와 의가 인격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마귀의 종은 마귀에게 순종할 수밖에 없고 예수님의 종은 예수님께 순종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종인데 어떻게 죄를 지으려고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른다고 합니다. 죄는 사망이고 순종은 생명이라고 해야 하는데 바로 생명이라고 하지 않고 의에 이른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말합니까? 순종으로 생명에 이른다고 하면 지금까지 믿음으로 즉 은혜로 생명을 얻는다고 해온 말에 모순되기 때문입니다. 순종의 대가로 바로 생명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순종으로 의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의에 이른다는 것은 의로운 삶에 들어간 것입니다. 즉 의의 왕 노릇하는 곳, 예수님의 품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런데 의에 들어간 것이 우리의 순종으로 인한 것인가 하는 문제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다시 17절을 보아야 합니다.
17절은 나중에 설명하고 우선 여기서 사용하고 있는 종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종은 노예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자신의 권리나 주권이 전혀 없는 것이 노예입니다. 주인의 소유물이 노예입니다. 죽이고 살리는 모든 권한이 주인에게 달려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예 의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사망과 생명을 두고서 인간이 스스로 사망과 생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펠라기우스의 영향을 받은 에라스무스는 은총과 인간의 의지가 결합하여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것이 신인협동설입니다. 어거스틴을 따르는 루터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보았습니다. 여기서 루터가 노예의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전적인 타락, 죄의 노예가 되어서 생명을 얻는데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루터는 인간을 짐을 지고 가는 짐승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위에 누가 타고 가는가에 따라 그 짐승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율법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하여 분명히 계시하신 것입니다. 신명기 30:19-20절입니다. “19.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20.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 40년을 지낸 후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주시는 말씀입니다. 생사화복이 네 앞에 있다는 것입니다. 생명과 복은 여호와를 사랑하고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역사가 처절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은 이들이 생명과 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 화와 저주를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이 죄의 노예였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 예수님과 유대인들의 논쟁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을 향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믿어야 참 자유를 얻는다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러자 자신들은 종이 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자유를 자기들에게 주느냐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기 때문에 그들의 아버지는 마귀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사마리아 인, 귀신들린 자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런 소리를 들으려고 한다면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예수 믿지 아니하는 사람을 보고서 당신의 아버지는 마귀라고 하면 당장 미친놈이라는 소리를 들을 것입니다. 그처럼 죄의 종이 되어 있는 자는 자신이 죄의 종임을 결단코 인정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자기들은 자유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자유의지를 가지고 스스로 선과 악을 알아서 조절하고 선택하겠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습니다. 참으로 고상하고 인간적이며 인격과 이성의 능력을 존중하는 것 같지만 마귀가 말하는 것에 속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인간 스스로 생명과 복을 선택할 수 없는 죄의 노예라면 어떻게 의의 종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까? 요한복음 8:34-36절입니다. “34.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35.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36.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죄를 짓는 자는 죄의 종이기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여기서 죄의 구체적인 내용은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런 죄인은 영원히 집에 거할 수가 없지만 그러나 아들이 자유롭게 하면 자유하리라고 합니다. 아들이 자유를 주시는 방법뿐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예수님이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35-40절입니다. “35.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36.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37.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38.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39.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죄의 종에서 의의 종이 되는 것은 누구의 일입니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일입니다. 성령이 임하게 됨으로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죄란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고 자신의 주체성과 자율성을 믿고 사는 것이 죄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후에 이제 자신이 의의 종이 됨을 또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죄의 종에서 순종으로 의의 종이 되는 이것을 본문 6:17절, 한 절에 압축하고 있습니다. 다시 읽어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But thanks be to God that, though you used to be slaves to sin, you wholeheartedly obeyed the form of teaching to which you were entrusted.)” 시작부터 감사한다고 합니다. 죄의 종이 순종으로 의의 종이 되는 것에 대하여 바로 터져 나오는 내용이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은혜의 소식이었으면 다른 그 무슨 이야기보다 감사가 먼저 튀어나오겠습니까? 바울은 이전의 여러 경험을 통하여 죄의 종으로 있다가 의의 종이 되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은혜요 감사인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만약에 죄의 종이 의의 종이 되는 일에 인간의 순종이나 애씀이나 노력이 있었다면 이러한 감사가 먼저 나올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핵심 내용은 전하여준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였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교훈의 본이란 복음의 내용 전부를 말하는 것입니다. 믿는 도리입니다. 전하여 받은 그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내가 순종하여 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영어 성경에서 보면 수동태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복종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복종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힘이 강력하게 작용하여 복종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열심에 이끌려 항복하게 된 것입니다.
어느 인간도 스스로 예수를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믿게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전도가 소용이 없습니까? 전도란 참으로 미련한 것입니다. 전도라는 말이 선포라는 말입니다. 설교는 남녀노소, 신분의 지위고하, 지식의 유무를 막론하고 일방적인 선포입니다. 현대 교육학 이론에서 보면 얼마나 미련한 것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의 발달심리학에 따라 설교를 한다면 아주 세부적으로 나누어서 연령에 맞추어 교육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설교는 그렇게 하지 않고 일방적인 선포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볼 때 복음의 선포가 미련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미련한 선포의 방법으로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야 구원이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오직 주님의 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씨를 뿌리거나 물주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직 자라게 하시는 것은 주님만이 하시는 것입니다. 씨를 뿌리고 물주는 사람은 필요시마다 사용되어지는 도구일 뿐이고 생명을 주시고 자라게 하시는 분은 성부의 계획과 성자의 대속과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되어지는 일입니다. 이것이 놀라운 일입니다. 이것이 기적이요 능력이요 성도의 감사와 찬양의 제목입니다.
따라서 믿는 자들의 모든 고백이 동일하게 나오는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입들을 막아버리는 것입니다. 자기 자랑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오직 자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이 주의 은혜라고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고백들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까? 자신이 죄의 종이었던 것을 잘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너무 쉽게 가볍게 죄를 다루어 버립니다. 죄인이라는 말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한두 번만 말하고 사람들이 듣기에 좋은 말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빠져 나와 구원받았는지 그 죄의 깊이를 제대로 아는 사람만이 죄보다 더한 은혜의 깊이를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너희가 죄의 종이었다가 전하여준 교훈의 본을 듣고서 마음으로 복종이 되어 죄에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교훈의 본은 흔들리면 안 됩니다. 본이 있어야 그 본대로 모양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제는 지옥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법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는데 어떻게 다시 죄를 짓겠다고 할 수 있는가? 반문하는 것과 그 대답이 오늘 본문의 핵심입니다. 이제는 의의 종, 의의 노예로 살 수밖에 없는 사람임을 깨닫고,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로 의인인 하나님께 대하여는 산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로마서 6장의 일부를 읽고 묵상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주님의 뜻을 조금이나마 더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선악과를 먹은 우리들은 지혜가 부족하여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도대체 잘 알지 못합니다. 내 생각은 내려놓고, 보내신 성령님을 모시고 주님의 뜻을 올바로 분별할 수 있게 하옵소서. 주님이 주신 믿음을 통하지 않으면 미련하고 완고한 저희들은 주님의 말씀을 알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생각을 내려놓고 보내신 성령님의 뜻에 귀를 기울이며 눈을 뜨고 깨달을 수 있게 하옵소서. 바울 사도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 성령을 받은 후에는 주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 스스로가 얼마나 완악한 사람들인지 깨닫게 하시고, 그럼에도 우리를 위하여 목숨까지 아끼지 않으신 주님의 공로를 생각합니다. 오직 주님만 의지하여 축복받고 살아가는 성도가 되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폐회찬송】 찬송가 273장 나 주를 멀리 떠났다 입니다.
【축도】 축도로 수요 예배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감동 감화 내주 역사 충만 교통하심이 오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 주신 은혜를 잊지 않고 표현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다짐하는 성도들의 머리 위에와 섬기는 교회 위에와 삼채원 가정교회 위에와 이 나라 이 민족 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있을 지어다. 아멘
매일 매순간 주님 안에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하옵소서.
2021년 7월 14일 수요 가정예배 순서
【준비찬송】 찬송가 268장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 다같이
【개회찬송】 찬송가 31장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 다같이
【개회기도】 예배 인도자
【신앙고백】 사도신경 - 다같이
【찬송】 찬송가 272장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 다같이
【대표기도】 임 한표 목사
【성경봉독】 로마서 6장 15~23절
【특별찬양】 찬송가 270장 변찮는 주님의 사랑과 – 다 같이
【말씀선포】 의의 종 - 예배 인도자
【폐회찬송】 찬송가 273장 나 주를 멀리 떠났다 - 다같이
【축도】 예배 인도자
【광고】 예배 속에서 주님의 참사랑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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