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04 수요 가정예배 고전 2.(판단하는 자 –고전4:1~5)
【준비찬송】 찬송가 320장 나의 죄를 정케하사 입니다.
지금부터 21년 8월 4일 수요 가정예배를 드리겠습니다.
【개회찬송】 찬송가 31장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개회기도】 오늘 주님이 임재하시는 삼채원 동산에서 수요 가정예배를 드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어느 곳에서나 함께하시며 지켜주시는 주님! 이곳 삼채원에서 드리는 저희 예배를 즐거이 받아주시고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주님이 사랑하시는 자녀인 최 지윤 집사가 주님의 은혜로 건강을 많이 회복시켜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간곡히 기도하는 것은 아직도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온전히 회복되어 일상생활로 복귀할 수 있게 은혜 베풀어주옵소서. 그리고 다른 가족들의 건강도 지켜주시고 모두가 맡은 일을 즐겁게 감당할 수 있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이곳을 다녀간 황인정 권사님이 소망하는 것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 가정을 선한 길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고통 받는 자들을 도우시며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신앙고백】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 하겠습니다.
【찬송】 찬송가 321장 날 대속하신 예수께 찬송하신 뒤에 황보 송옥 사모님이 기도하겠습니다.
【대표기도】 황보 송옥 사모
【성경봉독】 고린도전서 4장 1~5절
1.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2.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3.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4.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5.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아멘.
【특별찬양】 찬송가 322장 세상의 헛된 신을 버리고 입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이곳 삼채원에서 주님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예배드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말씀과 찬송과 기도 가운데 주님이 베푸시는 은총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올해는 신약성경을 좀 더 자세히 읽고 깊이 묵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고린도전서 4~6장 중에서 다음 예배에서는 고전 7~9장 중의 일부를 읽고 묵상하고자 합니다. 성령님 함께 하셔서 주님의 뜻을 더 깊고,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는 지혜와 명철을 허락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말씀 제목】 판단하는 자. 말씀으로 은혜 받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의 일꾼이라는 소 주제가 달린 문장의 전반부입니다. 1절에 보면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하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예배당에 오시면서 제일 많이 신경 쓰는 부분이 어떤 부분입니까? 예배를 위하여 기도하며 마음에 준비를 하면서 올까요? 아니면 입고갈 옷 걱정을 하며 올까요?
보통 우리들이 어떤 모임에 갈 때 제일 많이 신경 쓰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평소에 집 안에 있을 때는 화장도하지 않고 운동복을 입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디에 간다하면 신경을 곤두세우고 제일 많이 시간을 들이는 것이 외모를 치장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는 것입니까?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남에게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것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사람의 행동이란 남의 욕망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를 신경 쓰면서 사는 것입니다. 평생 열심히 산다고 살았지만 모두 남의 눈을 의식하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남을 의식하고 살아가는 의례를 특히 우리 민족은 중요시했습니다. 문화, 체면, 교양, 윤리나 도덕, 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의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실상을 깊이 파고 들어가 보면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그럴듯하게 이름 붙인 것입니다.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도 물론 있습니다. 자기만을 위하여 아예 다른 사람의 눈을 무시하고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왕따를 당하게 됩니다. 왕따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공동체 문화 속에 동화되어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는 속으로 하기 싫은 일도 남의 눈을 의식해서 어쩔 수 없이 취하는 행동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은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1절에 주요한 단어가 몇 개 있습니다. 사람, 우리, 일꾼, 하나님의 비밀, 맡은 자 등입니다. 여기서 사람은 교회에 나오는 성도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직 그리스도의 복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어린아이 같은 성도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울과 그 동역자들을 지칭합니다. 그리고 일꾼이라는 것은 종, 노예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배 밑창에서 둥둥 치는 북소리에 맞추어 노를 젓는 노예입니다. 바울과 그 동역자인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불러달라는 것입니다. 교회 목회자, 사역자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다시 말하면 본문 1절에서 사람은 성도로서 어린아이와 같고, 우리는 일꾼으로 부모와 같은 목회자입니다. 부모가 젖먹이 어린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어린 아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부모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자랄 수 없습니다. 성도 또한 목회자, 일꾼이 없으면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말합니다. 즉 복음을 말합니다. 여기서의 비밀은 신비의 뜻을 가진 것입니다. 신비는 보고 듣고 읽어도 잘 알 수 없는 것을 말합니다. 비밀은 일반적으로 말하거나 보여주면 쉽게 알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신비는 말하거나 보여주어도 잘 알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인 십자가 사역은 신비한 것에 가까운 것입니다. 성령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도저히 알 수 없는 비밀인 것입니다. 또한 맡은 자는 청지기, 집을 관리하는 집사입니다. 맡은 자는 복음, 말씀을 맡은 자로서 신비한 복음과 말씀을 성령의 조명을 받아, 바로 깨달아 잘 전하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성령을 받아 복음, 말씀을 깨달아 전하는 자가 맡은 자, 목회자가 될 수 있습니다. 맡은 자는 내 인생이 하나님의 경영 아래에 있음을 알고 하나님이 주실 선물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말씀에 의지하여 살아가다 보면 조금씩 점점 하나님의 경영계획이 드러나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며 기대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바로 충성입니다. 목회자가 충성스럽게 살아갈 때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을 시작하는 성도들에게 충성을 다하며 살아가다 보면 성도들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부모가 어린아이를 키우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어렵고, 힘들고, 이해가 되지 않지만 복음의 말씀만 믿고 따라가다 보면 위로와 행복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주요한 핵심을 처음부터 이해하고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것입니다. 불확실하고 모순되고 허무하게 느껴지는 인생입니다. 갈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우리들 인생입니다. 부질없이 헛된 것에 마음을 두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믿고 미련하고 우직하게 그냥 걸어가는 것이 최고의 인생이라고 전도서가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위로와 기쁨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는 자신이 못난 자임을 아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자기의 못남을 자랑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교회에 나오면서도 사람들은 서로 자기를 드러내고, 자랑하기 위하여 애를 쓰고 있습니다. 무슨 옷을 입을까? 머리와 얼굴은 어떻게 꾸밀까에 더 신경을 쓴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에 나와서도 청소, 주차 안내, 주방일, 찬양사역 등 열심히 봉사를 합니다. 그런데 그것도 자기가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그렇게 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쟁을 시키고 이기는 구역이나 기관에 상을 주면 더 열심히 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적용이 되는 삶의 방식입니다.
성도가 살아가야 할 신앙의 싸움은 이와는 다른 것입니다. 신앙인의 행동은 사람 앞에서 할 것인가?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할 것인가의 싸움입니다. 사람들이 알아주고 칭찬해주면 잘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아니하면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국 하나님을 위한 행동이 아니고 자기를 위한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그러했고 또한 우리 교회가 그렇게 행동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파당이 생기고 다른 파를 헐뜯고 깎아내리는 것입니다. 심지어 바울사도를 사도가 아니라고 다른 파에서 주장하는 것입니다.
3절을 봅니다.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고 합니다. 바울사도가 고린도 교회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바울 파에서는 인정을 받고 있지만 아볼로 파나 베드로 파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파에서는 바울의 얼굴은 못 생겼고, 말을 더듬었고, 육신에 질병이 있었다면서 하나님의 종으로 인정을 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사도는 그러한 평가와 판단에 대하여 무관심하며 자유로운 사람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남이 조금만 나쁘게 말해도 그것 때문에 죽이느니 살리느니 하고 다투게 됩니다. 그런데 남이 나를 어떻게 판단하는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자유를 향유하는 사람입니다.
남의 판단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편 3편을 봅니다. “1.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2.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셀라) 3.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4.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셀라) 5.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6.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7.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8.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셀라)”
이 시편 앞부분에 설명이 붙어있습니다. “다윗이 그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에 지은 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윗의 대적이 얼마나 많았던지 천만인이 자기를 에워싸 진 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다윗을 얼마나 놀렸겠습니까? 네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고? 아들이 반역을 해서 맨발로 도망갔으니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입니까? 그런데도 자기는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마음 편히 누워 자고 깨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붙들어 주셨기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구원이 여호와께 있기에 그렇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지 못할 것입니다. 남 보기 부끄럽고 무서우니 교회를 옮기든지 다른 사람들이 모르도록 숨어버릴 것입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나를 모함하고 욕하면 견디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다윗과 바울 같은 경우에 그러한 것들은 매우 작은 일로 여긴 것입니다. 그 이유는 진리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주님을 알았기 때문에 천만인이 나를 대적하여도 매우 작은 일로 여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2)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판단은 중요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4절입니다. 사람의 판단을 매우 작은 일로 여길 뿐만 아니라 자기도 자기를 판단하지 아니한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의 평가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스스로를 판단하고 있습니다. 아! 나는 왜 이럴까! 나의 꿈은 이렇지 않았는데 지금 내 신세는 왜 이렇게 비참한가 하면서 자기를 스스로 판단하고 있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그런데 바울사도는 자기를 판단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를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바울사도가 예수님을 믿고 나서 완벽하게 주님의 뜻대로 살아서 자책할 것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사도도 날마다 죽노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왜 자기를 자책할 것이 없다고 말합니까? 자기가 잘못이 없다고 스스로 판단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자책하지 않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의롭다고 판단하실 이가 자신이 아니라 주님이시라는 고백입니다. 자기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아니기에 자기의 행위를 가지고 자책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의 판단도 매우 작은 일로 여기고, 자기 스스로도 자책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산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진짜로 판단하실 분이 주님이심을 믿고 사는 것입니다. 다만 남의 판단이나 나의 판단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즉 주님께서 재림하시기 까지는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5절입니다. 주님께서 오시면 어두움에 감추어진 것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 보여주실 것입니다. 그때 각 사람을 판단하여 하나님의 칭찬이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사람의 판단이나 칭찬이란 중요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해가 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의 판단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만물을 벌거벗은 듯이 드러내시는 주님의 판단만이 진실하고 참된 판단인 것입니다. 그런데 왜 바울사도는 자기를 인정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까?
1절을 봅니다. 사람의 판단은 중요하지 않다고 하면서 왜 바울사도는 자기들을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생각해달라고 합니까? 알아주든지 않든지 간에 그리스도의 일꾼노릇만 하면 되지 않습니까? 여기서 자기를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알아달라는 것은 자기가 스스로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어떻게 평가하고 판단하더라도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자기가 전하는 하나님의 비밀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임을 증거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고 유대인들은 메시아로 믿지 못하였습니다. 그의 출신 배경이나 학력을 보건데 너무나 보잘 것 없는 사람이었기에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못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나를 믿지 못할 것 같으면 내가 행한 일을 보고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바울사도의 심정이 그와 똑 같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여러 가지 외모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으로 판단하지 말고 내가 전하는 복음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이 복음을 믿지 아니하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 할지라도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2절을 봅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서는 충성할 뿐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직분 자를 세울 때에 맡은 자가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말해 왔습니다. 교사, 성가대원, 집사로서 충성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충성을 잘하면 이 땅에서도 복을 받고 하늘에서도 상급이 크다고 하며 오직 충성을 외쳤습니다. 그러나 바울사도가 충성한다고 말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하는 것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싫어하고 꺼려하고 미련하다고 여기는 내용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판단에 휘둘리지 않고 충성할 것을 말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모든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되는 소식입니다. 사람들을 좋게 하려면 사람들의 판단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바울사도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면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빌립보서 1:18절입니다.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바울을 괴롭게 하려고 다툼과 시기가 나서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을 보고 그렇게 전하여져도 그리스도가 전하여 지니 자신은 기쁘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종이 가지는 자세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어떻게 신앙생활하고 있습니까? 남의 판단 때문에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자기 양심을 기준으로 삼아 신앙생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내 양심에 바르게 하였다고 판단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무리 자기 양심에 옳은 대로 하였다고 해도 그것이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사역자들의 마음에 감추어져 있던 모든 것들이 주님께서 오시는 그 날에 밝히 드러날 것입니다.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판단하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나를 판단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나를 판단하실 주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살아서 일하고 계시고, 다시 오셔서 온 세상을 판단하실,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고린도전서 4장의 일부를 읽고 묵상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주님의 뜻을 조금이나마 더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선악과를 먹은 우리들은 지혜가 부족하여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도대체 잘 알지 못합니다. 내 생각은 내려놓고,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뜻을 올바로 분별할 수 있게 하옵소서. 주님이 주신 믿음을 통하지 않으면 미련하고 완고한 저희들은 주님의 말씀을 알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묵상할 때 마다 우리를 불러 주님의 일꾼으로 삼으심에 감사하며 주님의 일을 잘 감당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폐회찬송】 찬송가 330장 어둔 밤 쉬 되리니 입니다.
【축도】 축도로 수요 예배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감동 감화 내주 역사 충만 교통하심이 오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 주신 은혜를 잊지 않고 표현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다짐하는 성도들의 머리 위에와 섬기는 교회 위에와 삼채원 가정교회 위에와 이 나라 이 민족 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있을 지어다. 아멘
매일 매순간 주님 안에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하옵소서.
2021년 8월 4일 수요 가정예배 순서
【준비찬송】 찬송가 320장 나의 죄를 정케하사 - 다같이
【개회찬송】 찬송가 31장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 다같이
【개회기도】 예배 인도자
【신앙고백】 사도신경 - 다같이
【찬송】 찬송가 321장 날 대속하신 예수께 - 다같이
【대표기도】 황보 송옥 사모
【성경봉독】 고린도전서 4장 1~5절
【특별찬양】 찬송가 322장 세상의 헛된 신을 버리고 – 다 같이
【말씀선포】 판단하는 자 - 예배 인도자
【폐회찬송】 찬송가 330장 어둔 밤 쉬 되리니 - 다같이
【축도】 예배 인도자
【광고】 예배 속에서 주님의 참사랑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교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10811 수요가정예배 설교문 (0) | 2021.08.11 |
|---|---|
| 210808 주일 설교문 (0) | 2021.08.08 |
| 210801 가정예배 설교문 (0) | 2021.08.01 |
| 210728 수요 가정예배 설교문 (0) | 2021.07.28 |
| 210725 주일 가정예배 설교문 (0) | 2021.07.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