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08 성령강림 후 열한 번째 주일예배 고전3.(지식과 사랑)
【준비찬송】 찬송가 502장 빛의 사자들이여 입니다.
지금부터 21년 8월 8일 성령강림절 후 열한 번째 주일예배를 드리겠습니다.
【개회찬송】 찬송가 27장 빛나고 높은 보좌와
【개회기도】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시 123:2) 아멘
하늘의 은혜를 사모하는 갈급한 심령에게 언제든지 외면하지 아니하시고 응답의 감동을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 지난 한 주간도 주님의 은혜 가운데서 평온무사하게 보내게 해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곳 삼채원 동산에서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송하며 영광 돌리기 위해 예배의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오늘도 저희들의 예배를 받으시고, 주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저희들의 영혼을 흡족하게 하시고, 새로운 삶의 소망을 가지게 하옵소서.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경배찬송】 찬송가 15장 하나님의 크신 사랑 찬송하겠습니다.
【신앙고백】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 하겠습니다.
【성시교독】 교독문 50. 시편 116편
【봉헌찬송】 찬송가 524장 갈 길을 밝히 보이시니, 봉헌시간입니다.
봉헌과 축복의 기도
믿음으로 드리는 영과 진리의 예배와 온전한 예물을 기뻐 받으시는 아버지 하나님! 저희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시고, 주님의 신령한 은혜를 맛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너무나 놀랍고 감사하여 주님이 허락하신 물질 가운데 정성껏 구별하여 감사의 예물을 드리옵니다. 저희들의 예물을 기쁘게 받아 주시고 영광 가운데 예비하신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이 봉헌 예물이 사용되는 곳에 주님의 나라가 더욱 확장되게 하시고, 죄에 갇혀 허덕이는 인생을 구원하는 데 쓰이는 밑거름이 되게 하시옵소서. 만물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찬송】 찬송가 540장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찬송하신 후에 황보 송옥 사모님이 대표 기도해 주시겠습니다.
【대표기도】 황보 송옥 사모
【성경봉독】 고린도전서 8:1~7절. 1.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2.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3.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 주시느니라 4.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5.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6.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7.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아멘.
【특별찬양】 찬송가 510장 하나님의 진리 등대 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저희 부부가 주님이 임재하시는 이곳 삼채원 동산에서 함께 예배드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희들을 주님의 강한 손으로 붙들어 주셔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옵소서. 생기와 활력을 주셔서 강건하게 하시고 주님 주신 사명을 기쁜 마음으로 감당할 수 있게 하옵소서. 2021년에는 신약성경을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고린도전서 7~9장을 읽고 묵상하고, 다음 예배에는 10~12장을 연구하고자 합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보다 자세히 깨달을 수 있게 하옵소서. 성령님 함께 하셔서 저희들의 우둔한 머리를 지혜롭고, 명철하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일상생활이 주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합당한 산제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제목】 지식과 사랑: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하여 많은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위하여 이 세상을 만드셨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은 그분을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세상의 중심, 우주의 중심, 하나님의 일하심의 중심이 내가 아니라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마음에 다가와 아멘이 되십니까?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이루시는 말씀을 우리가 믿든지 안 믿든지 관계없이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밀고나가실 뿐입니다. 6절을 먼저 봅니다. 우리에게 한 분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는데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계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뒤에 이어서 나오는 말씀을 보면 우리에게 한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주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내가 주인으로 있고, 나를 도와줄 신이 필요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온 우주의 주인이시므로 당연히 나의 주인도 주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그 주님을 몰라보고 자기가 주인인양 착각하며 살게 되었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선악과를 따먹은 죄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죄란 진짜 주인을 몰라보고 자신이 주인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 죄입니다.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 세상 사람들은 스스로 인간을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인간이 온 세상의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신이라는 것입니다. 신이 있더라도 인간을 위하여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사는 인간의 모든 관심은 자기에게로 모아지는 것입니다.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무슨 일을 할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결론은 언제나 나의 만족과 유익에 따라서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와 선진국에서는 저 출산율과 결혼을 하지 않고 지내겠다는 독신주의자들의 비율이 늘어남으로 고심하고 있습니다. 왜 독신주의자들이 늘어나고 결혼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고자 합니까? 양육비와 사교육비를 감당하지 못하여 아이를 낳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의 인생을 즐기기 위해서 자녀를 낳지 않으려 합니다. 아이를 낳고, 아니 낳고의 결정 기준이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까? 아니면 나 자신을 위한 것입니까? 결국 나 자신을 위한 결정입니다. 결혼을 왜 기피하고 독신주의자가 왜 늘어나는 것입니까? N포세대의 절망적인 상황이 초래한 것입니다.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는 삼포시대를 지나, 오포, 칠포를 넘어 N포까지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포기하는 젊은이의 마음 그 밑바닥에는 이기주의가 숨어 있습니다. 나는 고생하지 않겠다는 생각과 상대방과 자녀에게도 고통을 주지 않겠다는 안일함이 그 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보다도 내 몸 내 생각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혼하고 일한 대가로 한상에 둘러앉아 음식을 먹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고린도전서 7장에서는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인간이 살면서 획득하는 이 세상의 흔적은 다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초개와 같이 불타 없어져 버린다고 합니다. 오직 주님의 뜻만이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결혼을 하든지 독신으로 생활하든 무엇을 기준으로 결정해야 하는 것입니까? 주님의 뜻대로 결정해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데 결혼을 해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성경에는 그에 대한 즉답은 없습니다. 다만 무엇을 하든지 주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합니다. 주의 영광을 위한다는 것이 어떻게 한다는 것입니까? 오늘 말씀을 봅니다.
1절에서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지식이 있으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식이 교만하게 되는 원인이라면 지식이 필요 없다는 말입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열심은 있었으나 지식을 따르지 않았기에 자기 의만을 세우느라고 하나님의 의에 불순종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식이 왜 사람을 교만하게 만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인간이 선악의 지식을 아는 열매를 따 먹고 사랑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선악과를 먹은 상태에서 구하는 지식은 상대방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기의 지식을 자랑하려고만 합니다. 그렇게 된 원인이 교만함에 있다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 먹은 이후의 인간의 지식이 다 그러합니다. 성경을 잘 알고 있어도 거듭나지 못하면 그런 교만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없는 지식은 교만한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12장에 여러 은사들이 나옵니다. 대단한 은사들이 나오지만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모든 은사도 울리는 꽹과리가 될 뿐입니다.
다시 1절을 봅니다. 우리가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다 지식이 있다고 합니다.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 어떤 지식이 있다는 것입니까? 4-6절입니다. 우상 제물을 먹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사람은 우상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우상은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이기에 참 신이 아닙니다. 비록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많이 있으나 그것은 다 가짜요 헛것이라는 것입니다. 모두가 사람들의 필요에 의하여 인간의 손이나 생각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우상이라고 하면, 자꾸만 나무나 돌이나 금이나 은으로 만들어진 형상만을 우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우상이란 탐심이 바로 우상숭배라고 하였습니다. 나의 욕심을 위하여 신을 부르면 그것 역시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을 부르고 예수님을 불러도 나의 탐심을 위하여 부른다면 그것도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철학자 크세노파스는 ‘신은 인간이 자기의 형상대로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신이 인간의 창조물이라는 것은, 인간이 신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인간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장난감이나 인형을 만드는 것은 그 장남감이나 인형을 섬기기 위하여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의 즐거움을 위한 것입니다. 만든 신이 나에게 기쁨을 주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다른 신을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신이라 칭하는 것들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의 수많은 신과 하나님과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6절에 보면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아버지가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만물이 그에게서 났기에 우리도 그를 위한다”고 합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이것이 세상의 신과 차이입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위하여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 중심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에베소서 1:9-10절입니다. “9.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10.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뜻인 비밀이 우리에게 알려진 것입니다. 이런 비밀은 아무나 아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에게만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골로새서 1:13-16절입니다.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15.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6.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구원 받은 자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창조되었다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되었다는 것을 믿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실이 믿어지십니까? 고린도 교인들도 이를 믿었습니다. 이러한 대단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세상의 신들이라고 하는 것은 다 우상이며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니기에 우상의 신전에 들어갔다가 나온 음식을 먹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어차피 우상은 헛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서 그 살과 피를 기념하는 성찬식에 참여하였습니다. 따라서 쓸데없는 그런 우상의 음식을 먹는다고 해서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므로 먹어도 상관없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대단한 지식을 가진 자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그러면 안 된다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5:19-20절입니다. “19.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20.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사도들의 공회의에서 이러한 결정이 났으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과연 어느 것이 옳은 것입니까? 이러한 지식들로 보면 둘 다 옳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대단한 지식을 가진 교인들이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먹어도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먹으면 안 된다는 사람들을 향하여 힐난을 하는 것입니다. 아직도 율법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율법에 메여서 살고 있으니 아직도 믿음이 없는 자들이라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먹으면 안 된다는 사람들은 너희들이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 세상 사람과 구별되는 모습이 무엇이냐? 적어도 예수를 믿는다면 술 담배는 끊어야 당연하지 않느냐는 식으로 말합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싸움의 틈바구니에서 또 한 그룹이 생깁니다. 이러한 지식에 미치지 못하는 자들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자들입니다. 이 말을 들으니 이 말이 옳은 것 같고, 저 말을 들으니 저 말이 옳은 것 같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는 다만 우상 제물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하고자 할 때 반드시 이런 문제가 야기됩니다. 제직회를 하거나 전도회를 하거나 간에 두 의견이 나옵니다. 그러면서 서로의 주장이 옳다는 것입니다. 서로 자기의 주장이 옳다고 온갖 지식을 다 동원합니다. 성경을 이야기하고, 상식을 이야기하고, 목사의 설교까지 동원하여 자기의 주장이 옳다고 증명하고 싶어 합니다.
마치 세상 사람들이 억울하면 동네 사람들아 내말 좀 들어보라는 식입니다. 김 집사 내말 좀 들어보라고 말합니다. 나는 이렇게 바르게 말하였는데 이 집사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하면서 자기의 옳음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무어라고 합니까? 내가 그 사람을 미워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을 아껴서 그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내 말이 더 진리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을 보고 바울이 오늘 말씀에서 무어라고 말합니까?
8:1-3절입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덕을 세운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아무리 옳고 바른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덕을 세우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무엇을 안다고 여기는 사람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여기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참으로 아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이 아시는 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말을 달리 표현하면 사랑하게 되면 참으로 아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은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무슨 지식이 있어서 어떤 행동을 할 때에 나는 아무른 거리낌 없이 하더라도 그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면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슨 행동을 하더라도 그것이 형제의 유익을 구하는 것인가를 말씀에 비추어 물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새 자기가 입법자와 재판자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11-12절을 봅니다. “11.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12.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성경지식이 예수님을 죽인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지식이 예수닝을 죽인 것입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거니와 사랑은 덕을 세운다는 말씀이 마음에 새겨져 우리들의 삶 속에서 행동의 기준이 되기를 원합니다.
헬라어에 아디아포라(adiaphora)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수롭지 않다. 불간섭의 영역이다, 해도 좋고 안 해도 괜찮은 것을 의미합니다. 명백하게 할 것과 하지 않을 것을 규정한 규범을 디아포라 라고 하며 거기에 부정의 의미가 있는 아가 붙은 말입니다. 독신주의나 결혼주의는 아디아포라입니다.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결정을 할 때 자기의 유익에 따라 결정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쪽으로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가진 지식은 우리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더하여지지 않는 지식은 아무 쓸모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지식이 우리의 자랑과 교만이 되지 않게 하시고, 주의 사랑으로 충만한 지식이 되어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사용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고린도전서 7~9장 중 일부를 읽고 묵상할 수 있게 허락하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아무도 알아 볼 수 없도록 허약하고 비천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십자가의 사역을 통하여 태초부터 언약하신 약속을 다 이루셨습니다. 바다보다 더 넓은 주님의 뜻을 우리 인간의 지혜로는 제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보내신 성령을 받고 사명을 감당하는 바울 사도의 모습을 봅니다. 우리 또한 성령님을 통하여 예수님의 하신 일과 말씀의 뜻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경 전체 가운데 오늘 읽은 한 부분을 묵상하고 깨달았다고 하여 성경 전부를 알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부분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게 하시고 부분을 통하여 전체를 상상할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항상 함께 하시며 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들이 알고 있는 지식이 모든 것인 양 주장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 주신 사랑을 더하여 이웃의 마음을 살피는 우리들이 될 수 있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폐회찬송】 찬송가 380장 나의 생명 되신 주 입니다.
【축도】 축도로 주일 예배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감동 감화 내주 역사 충만 교통하심이 오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말씀에 순종하고, 주시는 사명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다짐하는 성도들의 머리 위에와 섬기는 교회 위에와 삼채원 가정교회 위에와 이 나라 이 민족 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있을 지어다. 아멘
주님 안에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하옵소서.
2021년 8월 8일 성령강림 후 열한 번째 주일 가정예배 순서
【준비찬송】 찬송가 502장 빛의 사자들이여 - 다같이
【개회찬송】 찬송가 27장 빛나고 높은 보좌와 - 다같이
【개회기도】 예배인도자
【경배찬송】 찬송가 15장 하나님의 크신 사랑 - 다같이
【신앙고백】 사도신경 - 다같이
【성시교독】 교독문 50. 시편 116편 - 다같이
【봉헌찬송】 찬송가 524장 갈 길을 밝히 보이시니 - 다같이
【봉헌기도】 예배 인도자
【찬송】 찬송가 540장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 다같이
【대표기도】 황보 송옥 사모
【성경봉독】 고린도전서 8장 1~7절
【특별찬양】 찬송가 510장 하나님의 진리 등대 – 다같이
【말씀선포】 지식과 사랑 - 예배 인도자
【폐회찬송】 찬송가 380장 나의 생명 되신 주 - 다같이
【축도】 예배 인도자
【광고】 예배 속에서 주님의 참사랑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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