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15 성령강림 후 열두 번째 주일예배 고전5.(신앙과 신학)
【준비찬송】 찬송가 441장 은혜 구한 내게 은혜의 주님 입니다.
지금부터 21년 8월 15일 성령강림절 후 열두 번째, 겸 광복절 76주년 기념 주일예배를 드리겠습니다.
【개회찬송】 찬송가 27장 빛나고 높은 보좌와
【개회기도】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이 밤은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심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앞에 지킬 것이니 이는 여호와의 밤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대대로 지킬 것이니라(출 12:41~42) 아멘
430년 애굽의 종살이에서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신 아버지 하나님! 36년간의 일본 압제와 식민통치에서 이 나라 이민족을 해방시키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광복절 76주년 기념주일 예배로 영광을 돌리오니 저희들의 예배를 받아주시옵소서. 아직도 남북으로 분단된 우리 민족이 하나로 통일되어 마음껏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또 오늘 주시는 말씀으로 보다 장성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기를 원하옵니다. 이 예배를 통하여 존귀와 영광을 하나님 홀로 받아주시옵소서.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경배찬송】 찬송가 15장 하나님의 크신 사랑 찬송하겠습니다.
【신앙고백】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성시교독】 교독문 51. 시편 118편
【봉헌찬송】 찬송가 429장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봉헌시간입니다.
봉헌과 축복의 기도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말씀하신 아버지 하나님! 더운 여름철 동안 건강을 지켜주신 하나님 앞에 온 가족이 모여 예배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시고, 주님의 신령한 은혜를 맛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잊지 않고 주님이 주신 물질 가운데 일부를 정성껏 구별하여 주님 앞에 감사의 예물로 드리옵니다. 저희들이 드리는 예물을 기쁘게 받아 주시고 주님께서 예비하신 풍성한 은혜를 늘 베풀어 주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봉헌 예물이 사용되는 곳에 주님의 나라가 더욱 확장되게 하시고, 죄에 갇혀 허덕이는 인생을 구원하는 데 쓰이는 밑거름이 되게 하시옵소서. 만물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찬송】 찬송가 430장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찬송하신 후에 황보 송옥 사모님이 대표 기도해 주시겠습니다.
【대표기도】 황보 송옥 사모
【성경봉독】 고린도전서 14:20~25절. 20.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 21.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22.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23.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24.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25.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 아멘.
【특별찬양】 찬송가 431장 주 안에 기쁨 있네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주 무더운 날씨는 지났습니다. 어느 곳에서나 함께하시는 주님! 저희 온 가족이 주님 임재하시는 이곳 삼채원 동산에서 함께 예배드릴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희들을 주님의 강한 손으로 붙들어 주셔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옵소서. 모든 질병과 환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생기와 활력을 주셔서 강건하게 하시고 주님 주신 사명을 기쁜 마음으로 감당할 수 있게 하옵소서. 자녀인 최 지윤 집사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님 주신 몸을 잘 관리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2021년에는 신약성경을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고린도전서 끝 부분 13~16장을 읽고 묵상하고, 다음 예배에는 고린도 후서 1~3장을 연구하고자 합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보다 자세히 깨달을 수 있게 하옵소서. 성령님 함께 하셔서 저희들의 우둔한 머리를 지혜롭고, 명철하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일상생활이 주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합당한 산제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제목】 신앙과 신학 :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하여 많은 은혜받으시기 바랍니다.
신앙인은 방언인 복음을 배우는 신학자입니다. 신학적인 바탕이 없이 성경을 읽을 수 없습니다. 신앙을 올바르게 가지려면 신앙의 재료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신앙의 재료에 대한 이해 즉 반응이 어떠해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신앙의 재료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①계시(설교 말씀을 듣고)②말씀인 성경(읽고 묵상하는 일) ③전승(전해 내려오는 전통과 관습)이 있습니다.
그리고 신앙의 재료를 가지고 인간이 이해하고 반응하는 현상이 있습니다. 거기에도 세 가지 ①인간의 이성(신앙의 재료를 해석하고 판단하는 것) ②현실적인 경험(지식이 아닌 체험으로 아는 것) ③문화(기독교 문화와 가치관)가 있습니다. 이러한 신앙의 재료와 인간의 반응을 신앙의 요소라고 말합니다. 여섯 가지 신앙 요소들 모두가 어울려 조화를 이루는 신앙생활이 바람직한 신앙입니다. 이러한 신앙생활이 이루어질 때 신앙에 대한 확신이 생기게 됩니다. 신앙에 대한 확신은 신앙의 요소들을 정확히 알고 있을 때 생겨납니다.
신비주의에 빠지는 신앙인들이 많이 있는데 이들은 6가지 신앙 요소 중의 일부를 무시하거나 전부를 무시하고 격한 감정으로 인한 황홀경이나 무아지경에 빠져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직통 계시와 같은 신비주의는 이단입니다. 감성적인 자극에 유혹되어 이성을 잃어버림으로 생겨나는 것입니다. 올바른 신앙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기준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학입니다.
우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 신학적인 요소에 대한 분별이 없어서 성공, 명예, 돈과 같은 우상에게 끌려 다녔습니다. 우상이 끄는 대로 끌려간 것입니다.
우상을 따르는 자들은 왜?라는? 합리적인 질문이 없습니다. 이성적인 비판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왜? 무엇 때문에 라고 질문하면 부정 탄다는 말 한마디로 더 이상 질문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방인들이나 하나님을 잘 모르는 사람이 생각하는 신령한 것은 신학이 없는 막연한 신비인 것입니다.
고전 12장 1절에서 말하는 신령한 것은 이러한 신비와는 다른 것입니다. 성경이 이야기하는 신령한 것은 은사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기쁨으로 주시는 선물입니다. 은사의 헬라어는 카리스마인데 카라라는 기쁨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합니다. 통상적으로 말하고 있는 카리스마의 뜻은 기운이 세고 남자답다는 의미로 사용되는데 이는 변형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 주시는 선물이 은사인데 은사의 능력을 신령한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고 바로 알게 하는 역할을 성령이 하십니다. 하나님의 영인 성령은 믿는 자에게 은사를 주어 진리와 생명과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고백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하는 일이 가장 고급한 은사입니다. 막연하고 초월적이며 신비한 종교적인 신령함이나 치유와 방언 등은 은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근거에 의거한 능력과 치유와 방언만이 은사인 것입니다.
그리고 직분은 디아코니아인데 봉사, 섬김, 집사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주님이 주시는 지위, 맡은 자리를 말합니다.
사역은 에네르게마(에너지)로 일의 성취, 현장에서 일을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성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은사와 직분과 사역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과 연결이 됩니다.
각 사람에게 은사와 직분과 사역을 주시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공동체의 사명과 유익을 위해서 주시는 것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은사를 잘 알고 함께 협력하여 조화와 균형을 잡게 하고 선을 이루게 하시는 것입니다. 담임 목사, 장로, 집사, 찬양대 등 각자에게 역할이 주어지듯이 각기 주어진 은사가 다른 것입니다.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는 없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은사, 내가 잘하는 것은 더욱 발전시켜 적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담임 목사의 사역은 성경 지식을 확실히 알리고, 성도들이 진정한 자유를 얻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분들의 은사를 잘 활용할 수 있게 타인의 은사를 존중하고, 도우는 일이 목회자가 받은 은사입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은사를 가지고 서로 협력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사역에 동참하는 것이 바로 신령한 것입니다. 더 이상의 신령한 것은 없습니다. 은사에 따라 직분, 사역을 잘 감당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앙은 느끼고 체험하고 경험한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이성적인 해석과 판단을 거쳐 확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확고한 신앙은 확실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세워집니다. 그래서 신학이 필요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인 사랑장에 가면 많은 은사가 있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은사를 적용함에 사랑이 없으면 시끄러운 소음과 같이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힘입어 은사를 사용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삶은 영적인 전쟁을 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은사를 받은 기독교인에게 사랑은 영적 전쟁의 핵무기와 같은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런 힘을 가지지 못합니다.
고전 14장은. 그리고 15장은 부활에 관하여 정의를 하고 있고 16장은 마지막 장으로 연보, 헌금에 관한 이야기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모두 하나 같이 중요한 내용들입니다.
오늘은 일단 고린도 전서를 마무리하는 시간입니다. 복음이 시작된 예수님 시대 이래로 방언에 대한 논란이 많이 있어왔습니다. 방언에 대한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데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오늘은 방언에 관하여 신앙의 입장이 아니라 신학적인 입장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14:20절입니다. 지혜에는 어린아이가 되지 말고 장성한 자가 되라고 합니다. 지혜에 장성한 자가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교회에 주어진 은사들이 교회에 덕을 세우는 것이어야 하는데 자기를 과시하는 자기 증명용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책망하는 것입니다. 은사가 주어졌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자기의 몸 된 교회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친히 다스리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보내시고 성령의 은사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사가 임하였다는 것은 성도가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은사를 받은 자가 자기를 자랑하는 것이 얼마나 철없는 이야기이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 지체 가운데 손이 자기만 잘났다고 자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손뿐만 아니라 발, 다리도 다 소중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자기에게 무슨 은사가 임하게 되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나는 무언가 특별한 사람이기에 이런 은사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랑의 가장 고질적인 모습은 목사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목사의 은사를 따로 주신 것에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사도가 된 것은 그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나은 게 있어서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보다 못났기에 사도로 세운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1:15-17절입니다. “15.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16.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7.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이것이 은사 받은 자의 고백입니다. 자기를 자랑하는 말은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습니다. 죄인 중의 괴수였는데 주님의 긍휼을 입은 까닭은 자기 후대인 주님을 믿는 자들에게 본을 보이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나 같은 죄인도 용서하셨다는 것을 본보기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은혜와 은사를 받은 자는 이런 모습입니다. 일체 자기의 자랑은 없고 오직 하나님께만 존귀와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목사가 받은 자기 자랑의 은사를 주님을 위해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21-22절을 봅니다. 22절에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라고 합니다. 어설피 믿는 사람들은 방언을 하는 것을 보고 저 사람은 신적인 능력이 있고 신과 직통하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방언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오늘 본문의 참된 해석과는 정 반대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21절의 말씀은 이사야 28:11절 이하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사야 28장 11절입니다. “그러므로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그가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이사야 28장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의 교만이 하늘에 닿은 것입니다. 그래서 28:1절에서 에브라임의 교만한 면류관은 화 있을진저 라고 책망합니다. 교만을 면류관처럼 쓰고 있으니 교만의 절정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말씀이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 즉 앗수르인의 말로 백성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북방 이민족 말을 통해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심판의 결과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하여 망합니다. 앗수르 사람들이 쳐들어와서 무슨 짓을 하였습니까? 그들은 온갖 약탈을 하면서 유대인들이 모르는 입술이 생소한 다른 방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방언이 나타난 것은 심판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남쪽 유다는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합니다. 이 역시 다른 방언이 나타났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방언을 말하면서 왜 이사야 28장을 인용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방언한다고 떠들어 대는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 지금 너희들이 하는 모습이 이방인들이 쳐들어와 방언을 하면서 약탈하는 것과 똑같다고 질책하는 것입니다. 이방인이 쳐들어와서 방언으로 말하면서 해를 끼치듯이 너희들이 방언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해로운 것이라 말합니다.
그러므로 방언은 통역이 되면 교회에서 하지만 통역이 되지 않으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만 마디 방언보다 다섯 마디 아는 말을 하는 것이 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가능하면 모든 교인들이 다 예언을 하라고 합니다. 이 예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언약을 맡았다가 증거 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간직하면서 이웃에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 언약이 이제 새 언약으로 완성이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이 온 세상을 예수 그리스도로 통일하시고 모든 권세와 능력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이름에 무릎을 꿇는 것이 복되고 그렇지 않은 세상은 철장 권세로 심판받는 것입니다.
24절입니다. 방언이 아니라 예언을 하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 들어와서 책망을 듣고, 판단을 받음으로 그 마음에 숨기고 있던 일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언을 하지 않고 모두가 방언을 한다고 온 교회가 중얼중얼거리면 다른 사람들이 볼 때에 미쳤다고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언을 들으면 그들 마음에 숨어있는 죄가 드러나고 회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였을 때에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그러면 우리는 어찌할꼬! 하면서 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듣고 핍박하고 배척하는 자들이 더 많이 나오지만 그중에서도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들은 회개하며 나아오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나아오는 그들에게 죄에서 구원하시는 주 예수를 믿으라고 증거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구원의 능력임을 증거 할 때 반드시 우리의 죄에 대한 책망이 나옵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로 높이셨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함으로 우리가 죄인임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무엇을 꼬깃꼬깃 감추어 두고 있는지를 하나님의 말씀이 다 드러내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12-13절입니다. “12.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뜻을 감찰하셔서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내십니다. 이렇게 벌거벗은 듯이 드러나면 무엇을 원하겠습니까? 계시록에서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하여 흰 옷을 사 입으라고 하신 것처럼 회개하는 자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은 부자라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였으나 실상은 가련하고 벌거벗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또다시 복음을 듣고서 책망을 받아야 합니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벌거벗은 듯이 우리의 죄가 드러나야 수치와 부끄러움을 알고 흰 옷을 사 입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 앞에 벌거벗은 듯이 드러나게 되어 책망과 판단을 받게 되면 그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뭇사람들이 너희 마음에 하나님이 과연 계시는구나 하고 인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너희 중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이 말씀은 구약 성경 스가랴 8:23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그날에는 말이 다른 이방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시면 이렇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은혜를 구하러 와서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신다는 말을 하게 될 것이고, 이때 돌아오는 자들은 언어가 다른 방언을 가진 다른 열국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말씀인 복음을 유대인들은 알아듣지 못하고 있는데 오히려 이방인들이 복음을 듣고 와서 복음이 너희에게 있다고 알려준다는 것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자국 백성들이 자기 말로 복음을 전해도 잘 알아듣지 못하고 방언처럼 들린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방인들이 오히려 잘 알아듣고 찾아와서 복음을 붙잡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방언인 것입니다. 이상한 소리가 방언이 아니라 은사를 받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알아듣지 못하는 복음이기 때문에 복음이 바로 방언입니다. 그 방언인 복음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구원이 오직 주님의 은혜로만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선행이나 공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일한 것이 없이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복음인 성경을 우리는 보아도 알지 못합니다. 들어도, 읽어도 알지 못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외국어와 같은 방언이기 때문입니다. 신학적으로 배우고, 하나님 보내신 성령님을 받아들여 그의 인도하심을 따라야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방언을 전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고린도전서 13~16장 중 일부를 읽고 묵상할 수 있게 허락하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아무도 알아볼 수 없도록 허약하고 비천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십자가의 사역을 통하여 태초부터 언약하신 약속을 다 이루셨습니다. 바다보다 더 넓은 주님의 뜻을 우리 인간의 지혜로는 제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보내신 성령을 받고 사명을 감당하는 바울 사도의 모습을 봅니다. 우리 또한 성령님을 통하여 예수님의 하신 일과 말씀의 뜻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경 전체 가운데 오늘 읽은 한 부분을 묵상하고 깨달았다고 하여 성경 전부를 알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부분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게 하시고 부분을 통하여 전체를 상상할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저희와 항상 함께 하시며 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들이 알고 있는 지식이 모든 것인 양 주장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 주신 사랑을 더하여 나와 이웃의 마음을 같이 살피는 우리들이 될 수 있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폐회찬송】 찬송가 436장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입니다.
【축도】 축도로 주일 예배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감동 감화 내주 역사 충만 교통 하심이 오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말씀에 순종하고, 주시는 사명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다짐하는 성도들의 머리 위에와 섬기는 교회 위에와 삼채원 가정교회 위에와 이 나라 이 민족 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있을 지어다. 아멘
주님 안에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하옵소서.
2021년 8월 15일 성령강림 후 열두 번째, 광복절 기념 주일 가정예배 순서
【준비찬송】 찬송가 441장 은혜 구한 내게 은혜의 주님 - 다같이
【개회찬송】 찬송가 27장 빛나고 높은 보좌와 - 다같이
【개회기도】 예배인도자
【경배찬송】 찬송가 15장 하나님의 크신 사랑 - 다같이
【신앙고백】 사도신경 - 다같이
【성시교독】 교독문 51. 시편 118편 - 다같이
【봉헌찬송】 찬송가 429장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 다같이
【봉헌기도】 예배 인도자
【찬송】 찬송가 430장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 다같이
【대표기도】 황보 송옥 사모
【성경봉독】 고린도전서 14장 20~25절
【특별찬양】 찬송가 431장 주 안에 기쁨 있네 – 다같이
【말씀선포】 신앙과 신학 - 예배 인도자
【폐회찬송】 찬송가 436장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 다같이
【축도】 예배 인도자
【광고】 예배 속에서 주님의 참사랑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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