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22 성령강림 후 열세 번째 주일예배 고후2.(믿음으로 행함)
【준비찬송】 찬송가 518장 기쁜 소리 들리니 입니다.
지금부터 21년 8월 22일 성령강림절 후 열세 번째 주일예배를 드리겠습니다.
【개회찬송】 찬송가 27장 빛나고 높은 보좌와
【개회기도】 또 광야가 변하여 못이 되게 하시며 마른 땅이 변하여 샘물이 되게 하시고 주린 자들로 말미암아 거기에 살게 하사 그들이 거주할 성읍을 준비하게 하시리라(시 107: 35~36) 아멘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부르시어 평안과 쉼을 허락하시고, 메마른 심령들을 부르시어 영생의 생명수를 끊임없이 공급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지난 한 주간에도 세상 유혹에 발을 담그려 할 때, 믿음으로 실족하지 않게 인도하시고 동행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 예배를 통하여 저희가 가지고 나온 문제들이 응답받는 시간이 되게 하시고, 저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또 오늘 주시는 말씀과 성령으로 영혼이 살아나게 하시고 삶의 새로운 소망을 품게 하시며, 보다 장성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경배찬송】 찬송가 15장 하나님의 크신 사랑 찬송하겠습니다.
【신앙고백】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 하겠습니다.
【성시교독】 교독문 52. 시편 119편
【봉헌찬송】 찬송가 519장 구주께서 부르되, 봉헌시간입니다.
봉헌과 축복의 기도
성령의 감동으로 예물을 드리고 봉사하게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지난 한 주간의 삶 속에서도 많은 문제가 있었지만 평온을 유지하고, 주님의 자녀로서 신분을 망각하지 않고 살게 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의 목자가 되신 주님께서 우리가 깊은 웅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실족하지 않게 붙들어 주심인줄 믿습니다. 아무리 악취가 나고 더러운 곳일지라도 그곳을 변화시켜 향기로운 동산으로 만들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내일의 소망을 간직하며 한 주간 베푸신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의 예물을 드립니다. 저희들이 드리는 예물을 기쁘게 받아 주시옵소서. 이 봉헌 예물이 사용되는 곳에 주님의 소망이 돋는 해와 같이 솟아나게 하시옵소서. 죄에 갇혀 허덕이는 인생을 구원하는 데 쓰이는 밑거름이 되게 하시옵소서. 만물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찬송】 찬송가 520장 듣는 사람마다 복음 전하여 찬송하신 후에 황보 송옥 사모님이 대표 기도해 주시겠습니다.
【대표기도】 황보 송옥 사모
【성경봉독】 고린도후서 5:1~10절. 1.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2.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3.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4.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5.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6.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7.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8.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9.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10.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아멘.
【특별찬양】 찬송가 521장 구원으로 인도하는 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갈증을 느끼는 대지에 모처럼 촉촉한 비를 흠뻑 내려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어느 곳에서나 함께하시는 주님! 저희 부부가 주님 임재하시는 이곳 삼채원 동산에서 함께 예배드릴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희들을 주님의 강한 손으로 붙들어 주셔서 세상의 유혹을 이길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옵소서. 모든 질병과 환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생기와 활력을 주셔서 강건하게 하시고 주님 주신 사명을 기쁜 마음으로 감당할 수 있게 하옵소서. 주님의 자녀인 최 지윤 집사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2021년에는 신약성경을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고린도후서 4~6장을 읽고 묵상하고, 다음 예배에는 고린도후서 7~9장을 읽고 연구하고자 합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보다 자세히 깨달을 수 있게 하옵소서. 성령님 함께 하셔서 저희들의 우둔한 머리를 지혜롭고, 명철하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일상생활이 주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합당한 산제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제목】믿음으로 행함: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하여 많은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사도의 직분은 새 언약의 일꾼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후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않고 오직 영으로 하는 일꾼입니다. 한 성령 아래에서 여러 지체와 함께 일을 하는 일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에게 직분을 주시고 봉사의 자리로 부르십니다. 예수님이 믿는 우리에게 긍휼하신 사랑으로 직분을 주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직접 주신 사도의 직분에 대해 자세히 말하고 그것을 스스로 만든 추천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의 직분을 맡은 자가 섬기는 일을 하면서 낙심하지 않고 스스로가 내가 누구인지 기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기독교인을 박해하다가 예수님께 붙잡혀 이방인을 향한 사도의 직분을 받고 오직 감사할 뿐 낙심할 일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은 사도 바울이 추천서가 없다고 공격하는 교회의 반대 세력들에게 사도임을 변호하는 내용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믿음 안에서 행한 삶 자체가 종이 한 장에 쓰여 있는 추천서보다 더 귀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도로 부름 받은 자신이 믿음 안에 행함으로 사도임을 증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않고,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않고, 오직 진리를 나타냈던 바울의 삶이 바로 부동의 추천서라는 겁니다. 당당하게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지 않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신 것과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한다고 강조합니다. 말씀을 전하는 사도들은 듣는 이들에게 종 된 것을 잊지 말고 잘 섬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사도의 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후4장 13절입니다. “기록된 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 여기서 믿었으므로 말한다는 것은 보이는 세상의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늘의 것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믿음의 내용이 고후4:14절에 나옵니다.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세상 끝 날에 예수와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에 설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4장 후반부의 말씀과 연결이 됩니다. 5:7절입니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믿음으로 행한다는 것은 믿음에는 행함이 따라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믿었으므로 말한다와 같은 맥락입니다. 즉 믿음으로 행한다는 것은 보이는 것으로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자기가 믿는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인 것으로 알면 눈에 보이는 세상만을 위하여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눈에 보이는 것을 삶의 목적과 목표로 여기고 살아 갈 것입니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잠깐이며 보이지 아니하는 주님의 약속은 영원하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이라면 눈에 보이는 이 세상에 목숨을 걸지 않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믿음에 목숨을 걸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로 나온 성도들이 현실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너 나 없이 모두가 잠시 잠깐 있다가 사라질 세상의 보이는 것들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증거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23-25절입니다. “23.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24.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25.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께 받아서 외친 말씀입니다(사40: 6~8). 이 말씀을 베드로사도가 다시 인용하면서 증거 하고 있습니다. 인생이 풀이며 그 영광이 풀의 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런 인생이 거듭남으로 썩어질 씨가 아니라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인데 이 하나님의 말씀이 곧 복음이라고 합니다. 복음으로 인하여 거듭나지 아니한 사람은 인생의 목표를 썩어지고 더러워지고 쇠하여질 것만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나 복음으로 거듭난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하늘에 간직된 산 소망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전하는 이 말씀이 우리에게 기쁨과 위로와 감사와 찬송이 됩니까? 아니면 듣기 싫고 피하고 싶은 말씀입니까? 위로가 되는 사람은 지금의 삶이 무언가 힘들고 답답한 상태에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듣기 싫어하는 사람은 인생이 자기의 계획에 따라 착착 이루어져 세상에서 희망을 찾고자 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하지만 위로가 되든, 듣기가 싫든 이 세상은 나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인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고 사는 것을 믿음으로 행한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인 오늘 본문들을 자세히 살펴봅니다.
5:1절입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을 안다고 합니다. 여기서 장막집이 무엇입니까? 여행가서 치는 임시처소인 텐트입니다. 즉 우리의 몸을 말합니다. 세상에서 우리의 육신적인 몸이 무너져도 하늘에 영원한 몸이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텐트를 가지고 간 여행자는 돌아갈 원래의 집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만일이라는 말이 붙어 있습니까? 그 이유는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재림을 아주 임박한 것으로 여기고 살았습니다. 정말 오늘 오실까 내일 오실까 하면서 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내가 곧 오리라고 말씀하셨기에 어떤 핍박과 환난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기다렸는데 예수님은 오시지 않고 믿는 사람들은 죽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이 지나갔다는 사람도 있고 부활이 없다는 사람도 나왔습니다. 만약에 재림 전에 믿는 자가 죽게 되어도 소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3-18절입니다. “13.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4.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15.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16.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여기서 땅에 있는 자의 장막이 무너진 것, 즉 죽은 것을 잔다고 합니다. 이들이 마지막 나팔소리와 함께 주님이 재림하시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살아남아 있는 자들도 홀연히 변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때에는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것이라고 합니다. 사망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죽든지 살든지 하늘의 몸을 입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늘에 속한 영광의 몸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영광에 들어가신 몸입니다. 그런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그 몸이 사는 하늘에 속한 영원한 집은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손으로 지을 수가 없는 집입니다. 우리는 평생에 자기의 살 집을 짓기 위하여 애를 씁니다. 오래 동안 수고하여 새 집으로 이사를 가더라도 그 집은 한 달만 지나면 낡아 보이고 마침내는 무너집니다. 그러나 하늘에 준비 되어 있는 집은 사람 손으로 지을 수 없는, 하나님이 친히 만드신, 변하지 않는 영원한 집이라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4:58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 동안에 지으리라 하더라 하되”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2:19절에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하신 그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을 고발하는 말입니다. 자기들의 손으로 지은 성전을 헐어버리라고 하는 이 말씀이 예수님을 죽여야 할 죄목이 되어 고발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손으로 짓지 아니하는 다른 성전을 세우시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성전이 무엇입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심으로 예수님의 몸을 성전이라고 한 것을 제자들은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셨을 때에야 그 말씀의 뜻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성전이시기에 이것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께서 처소를 준비하시려고 하늘로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처소가 준비되면 자기 백성을 데리러 오십니다. 그 준비하던 처소가 성령을 보내심으로 완성된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성령이 임하여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성전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에 있는 무너지지 아니할 영원한 집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7절에 보면 건축자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건축자로서 자기 인생의 집을 설계하고 지어가고 있습니다. 인생의 집을 위하여 여러 가지를 주워 모으는데 쓸모없는 것은 버리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눈에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버린 돌이 하나 있는데 그 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이 싫다고 버린 돌을 가지고 머릿돌 삼아 새로운 집을 지으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늘에 속한 집이란 인간의 무지를 드러내면서 만들어진 집입니다. 사람이 도운 것이 아니라 싫다고 버린 돌로서 하나님께서 새로운 집을 지으신 것입니다.
이와 같은 내용들은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영적인 믿음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 즉, 하나님이 세우신 약속의 말씀을 알고 믿는 사람은 어떻게 행동합니까? 5:2-4절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하늘로부터 내려온 처소를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것입니다. 탄식할 정도로 사모하는 것입니다. 처소를 덧입는 것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벗은 자란 하늘의 처소를 입지 못한 상태를 벗은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처소는 성령이 계실 곳을 말합니다.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 먹은 후에 나타난 반응은 벌거벗은 줄을 알고 부끄럽고 두려워서 몸을 숨기고 가렸습니다. 우리 모두 아담의 후손들입니다. 우리는 몸인 인생의 집을 가리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더럽고 추하고 악한 것들을 착함이나 아름다움이나 선한 것으로 포장하고 싶은 것입니다. 세상에서 스스로 평생 자기를 치장하면서 가장 착하고 의롭고 바르게 살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벌거벗은 것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스스로 치장하고 있는 더러워진 집을 벗어 버리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벗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도를 닦고 선행을 하고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준다고 할지라도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속에서 나오므로 벗을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우상들에서 벗어나고자 하고 욕심을 버리자고 합니다. 스스로 깨끗하게 되자고 합니다. 하지만 스스로 벗을 수가 없는 우리 인생의 집입니다. 따라서 벗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덧입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누구보다도 바울사도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바울은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할 정도로 착한 사람이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생활 속에서 실천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핍박하는 것인 줄 예수님을 만남으로 알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을 만나 믿고 나서는 탄식도 없고 그저 평안하고 행복하게 복음을 전하면서 살았습니까? 아닙니다. 온갖 핍박과 환난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사도의 소망은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를 덧입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것입니다.
시편 90편 1절에서 우리의 영원한 거처가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거할 처소가 주님의 품입니다. 그 품에 돌아가기까지 우리는 탄식하게 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8장22절에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물이 탄식하고 있습니다. 부활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성도까지 탄식하면서 기다리고 있는데 그것은 몸의 구속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곧 무너질 것입니다. 무너질 집 이제 그만 집착해야 할 것입니다. 영원히 무너지지 아니할 하늘의 장막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하늘의 몸을 덧입게 되면 이 죽을 몸은 생명에게 삼킨바 되리라는 말씀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 약속을 인간이 스스로 믿고 따를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보내신 성령이 보증이 되셔서 이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지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5:5-7절입니다. 곧 이 하나님의 약속을 우리에게 이루어지게 하시기 위하여 성령을 보증으로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보증이 되셨다는 것은 반드시 이 약속을 이루시고야 말겠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직도 무너질 장막만을 영원한 것인 양 붙들고 있기에 성령은 오늘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무너질 장막이 아니라 무너지지 아니할 영원한 하늘의 장막을 사모하도록 역사하고 계십니다. 성도에게 여러 가지 환난과 핍박과 답답함을 주시는 것은 보이는 것을 바라보지 말고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사모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도는 고난 속에서도 믿음으로 담대히 행합니다. 왜냐하면 세상 끝 날에 예수와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에 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은 육신의 몸에 거할 때는 주와 따로 거하는 것인 줄 압니다. 주님을 떠나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환난과 핍박을 받고 있는 것을 알기에 그것을 당연히 여기고 즐겁게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차라리 이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살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사는 것이 믿음으로 행하고 보이는 것으로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하고 간절히 기다리는 것입니다.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고린도후서 5장 중 일부를 읽고 묵상할 수 있게 허락하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아무도 알아 볼 수 없도록 허약하고 비천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십자가의 사역을 통하여 태초부터 언약하신 약속을 다 이루셨습니다. 바다보다 더 넓은 주님의 뜻을 우리 인간의 지혜로는 제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보내신 성령을 받고 사명을 감당하는 바울 사도의 모습을 봅니다. 우리 또한 성령님을 통하여 예수님의 하신 일과 말씀의 뜻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경 전체 가운데 오늘 읽은 한 부분을 묵상하고 깨달았다고 하여 성경 전부를 알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부분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게 하시고 부분을 통하여 전체를 상상할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저희와 항상 함께 하시며 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들이 보고 알고 있는 지식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믿음의 소망을 가지고 복된 삶을 살게 하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폐회찬송】 찬송가 524장 갈 길을 밝히 보이시니 입니다.
【축도】 축도로 주일 예배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감동 감화 내주 역사 충만 교통하심이 오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말씀에 순종하고, 주시는 사명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다짐하는 성도들의 머리 위에와 섬기는 교회 위에와 삼채원 가정교회 위에와 이 나라 이 민족 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있을 지어다. 아멘
주님 안에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하옵소서.
2021년 8월 22일 성령강림 후 열세 번째 주일 가정예배 순서
【준비찬송】 찬송가 518장 기쁜 소리 들리니 - 다같이
【개회찬송】 찬송가 27장 빛나고 높은 보좌와 - 다같이
【개회기도】 예배인도자
【경배찬송】 찬송가 15장 하나님의 크신 사랑 - 다같이
【신앙고백】 사도신경 - 다같이
【성시교독】 교독문 52. 시편 119편 - 다같이
【봉헌찬송】 찬송가 519장 구주께서 부르되 - 다같이
【봉헌기도】 예배 인도자
【찬송】 찬송가 520장 듣는 사람마다 복음 전하여 - 다같이
【대표기도】 황보 송옥 사모
【성경봉독】 고린도후서 5장 1~10절
【특별찬양】 찬송가 521장 구원으로 인도하는 – 다같이
【말씀선포】 믿음으로 행함 - 예배 인도자
【폐회찬송】 찬송가 524장 갈 길을 밝히 보이시니 - 다같이
【축도】 예배 인도자
【광고】 예배 속에서 주님의 참사랑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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