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211020 삼채원 수요 가정예배 설교문

imhp 2021. 10. 24. 00:35

20211020 수요 가정예배 히브리서(완전하게 하심. 6:1~9

준비찬송찬송가 273장 나 주를 멀리 떠났다 입니다.

지금부터 211020일 수요 가정예배를 드리겠습니다.

개회찬송찬송가 31장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개회기도어디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 주님이 임재하시는 이곳 산정호수 펜션에서 결혼기념을 맞이하여 여행 중에 저희 부부가 함께 예배를 드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이 만드시고 섭리하시는 자연만물을 감상하며 예배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즐겁고 안전한 여행이 되도록 주님 지켜주시옵소서. 죄인을 구원하시고 영생의 복락을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목숨까지도 내어주신 주님! 예수님의 사랑을 잊지 않게 하시고 오직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우리들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이 주신 새 계명에 따라 어렵고 힘든 이웃과 가족의 아픔을 생각하는 우리들이 되게 하옵소서. 모든 고통 받는 자를 도우는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신앙고백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 하겠습니다.

찬송찬송가 511장 예수 말씀하시기를 찬송하신 뒤에 황보 송옥 사모님이 대표 기도해주시겠습니다.

대표기도황보 송옥 사모

성경봉독히브리서 61~9. 1.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2.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3.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4.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7.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8.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9.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아멘.

특별찬양찬송가 513 헛된 욕망 길을 가며 입니다.

기도사랑의 하나님! 오늘 김포, 포천을 중심으로 45일간의 결혼기념 여행이 즐거운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이 예배를 통하여 말씀과 찬송과 기도 가운데 주님이 베푸시는 은총을 받아 저희들 삶 속에서 생기와 활력을 찾을 수 있는 여행이 되게 하옵소서. 올해는 신약성경을 좀 더 자세히 읽고 깊이 묵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히브리서 4~6장 중에서, 그리고 다음 예배에서는 히브리서 7~10장을 읽고 묵상하고자 합니다. 성령님 함께하셔서 저희들이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 주님의 뜻을 더 깊고,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는 지혜와 명철을 가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말씀 제목완전하게 하심 말씀으로 은혜 받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무슨 일이나 그 마지막을 안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시작과 과정도 알아야 하겠지만 그러나 이미 그 결론을 알고 있는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신명기 32:28-2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28.그들은 모략이 없는 민족이라 그들 중에 분별력이 없도다 29.만일 그들이 지혜가 있어 이것을 깨달았으면 자기들의 종말을 분별하였으리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종말을 생각하지 못하였기에 어리석은 백성이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 8절 끝에 그 마지막을 불사름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마지막이 무엇입니까? 만물의 마지막이면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만물의 마지막 때에 불사름이 되느냐 안 되느냐의 기준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하여 별 관심이 없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인 것입니다.

어느 목사가 캐나다에서 공부를 하는 동안 요셉의 꿈에 대한 설교와 강해를 한국사람 것과 캐나다 사람의 것을 비교해 보았다고 합니다. 자기가 구한 설교문으로 비교한 결과 한국 사람은 요셉이 꿈꾸는 장면의 설교를 시작할 때부터 벌써 국무총리의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캐나다 사람의 책에서는 단 한사람도 그렇게 말하는 것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직책과 결과를 좋아하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한국인의 핏줄을 타고났기에 결과와 열매에만 관심을 가지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본문 6:1-2절을 봅니다. 1절에 그러므로는 앞의 글을 받아 부연 설명하고 있습니다. 511~14절의 말씀에 연결되는 것입니다. 511~14절을 봅니다. “11.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12.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13.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말씀의 초보에서 벗어나 젖을 먹는 자가 되어 단단한 음식을 먹는 장성한 자가 되어야 함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완전한데 나아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초보가 무엇입니까? 초보란 죽은 행실을 회개함, 하나님께 대한 신앙, 세례, 안수, 죽은 자의 부활, 영원한 심판에 관한 것입니다. 이런 초보에 해당하는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데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서 이러한 기초적인 그리스도의 도를 전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전한 도의 초보와 같은 기초적인 터를 닦았으므로 또 다시 닦지 말고 더 완전한데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초보를 버리고 완전한데 나아가는 것을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비유하면 초보운전 때에는 옆에 사람이 붙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운전에 익숙해지면 혼자서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상식이라면 성경에서 말하는 초보를 버리고 온전한 데 나아가라는 것은 완전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로 밀접하여 지는 것입니까? 내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가 내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함께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우리가 알고, 예수님이 우리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완전한 데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우리의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내용으로 잘 설명하고 있는 것이 베드로 후서 14~11절입니다. “4.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5.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8.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9.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10.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11.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먼저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강조하고 그것을 붙들라고 말합니다. 베드로는 믿음, ,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 우애, 그리고 사랑을 알고 그 다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게으르지 말아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우리가 참으로 착각하는 것은 초보는 예수님을 믿어야 하지만 자라고 성숙하면 스스로 독립적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떠나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는 것이라 하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 하나님께서 끝 날에 남기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기준으로 온 세상을 불살라 버리거나 남기시는지를 제대로 알라는 것입니다.

6:4-6절입니다. “4.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이 말씀은 아주 심각하게 전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이는 것에 대하여 불살라버리겠다는 것입니다.

한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바가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았다면 이것은 엄청난 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러한 자가 중간에 타락하여 배신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다면 이 말씀은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경고입니까? 그렇다면 이런 체험을 가지고도 배신할 수 있다면 그 배신을 누가 한 것이 됩니까? 대단히 복잡한 논쟁이 있어 왔습니다.

마태복음 7장에서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였더라도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내게서 떠나가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엄청난 능력을 행하였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어떻습니까? 역시 능력을 받았습니다. 다른 제자들과 같은 능력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예수님을 배신하고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도 배신하고 다른 제자들도 배신하였는데 어떻게 그들은 제자가 되었습니까? 이러한 질문은 성경에서 수도 없이 많이 나올 수 있습니다.

출애굽 한 것이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나왔고, 홍해바다를 건넌 것이 세례였고, 다 같이 신령한 음식과 신령한 반석에서 나오는 신령한 음료를 마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나안 입구에서 믿지 못하여 여호수아와 갈렙만 빼고 다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이들은 다 천국 갔을까요 지옥 갔을까요?

인간적인 구원의 관점에서 성경을 보면 풀리지 아니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아들만 높여 모든 이름이 다 그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드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을 높이는 차원에서 성경을 보고 해석하려 합니다. 마태복음 7장에서 주의 이름으로 행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는 것 같은데 그 속에는 이리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양의 옷을 입은 이리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예외가 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저도 여러분도 얼마든지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구원은 어떻게 되는가 하는 염려는 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물이 다 주님의 뜻대로 쓰일 뿐입니다. 악한 자도 악한 날에 필요하여 주님께서 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사가 어디에 있다고 하였습니까? 빌립보서 2장에서 모든 무릎이 예수를 주로 시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는 것이며, 골로새서 1장에서도 천지의 만물이 다 주를 위하여 창조된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자기 아들 높이시기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성경이 풀어지지 아니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자들의 대표로 모세를 보고자 합니다. 모세는 왜 못 들어갔습니까? 민수기 20:7-12절에서 반석에서 물을 명하여 내라고 하셨는데 반석을 두 번이나 치는 결례를 한 것입니다. 그 현장에서 모세를 향하여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하였기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반석에서 물이 나는 것은 두 번 기록이 있습니다. 출애굽기17:6절에서는 반석을 치라고 되어 있습니다. 한번 침을 받은 반석이 두 번 침을 받을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명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아니한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10:1-4절에서 이 반석을 그리스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처음 반석을 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요 십자가 사건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한번으로 완전하고 완벽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를 무효한 것으로 돌리는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심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세는 구원받았습니까? 못 받았습니까? 이렇게 보면 안 된다고 하였지요! 모세의 구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한번 고난 받으신 것으로 충분하고 완전하다는 것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하나의 도구인 것입니다. 주인집의 종인 것입니다. 아들을 높이기 위한 종이라는 것을 히브리서 3:1-6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1.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2.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 3.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4.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5.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6.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모세가 변화 산에서 엘리야와 함께 예수님의 별세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내용은 이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높이기, 하나님의 아들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하나님께서 물으시고 최종 심판의 근거로 삼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대단한 능력을 행하였는가가 완전한 데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와 함께하는 것이 완전함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6:6절을 봅니다. 타락한 자가 어떤 자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이는 것입니다. 초보시절에는 예수님을 믿고 그 다음 장성하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버리고 자기 능력으로 살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이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히브리서 10:26-29절을 봅니다. “26.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28.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범죄 하면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모세의 법을 폐하여도 두 세 사람의 증인으로 죽임을 당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받는 형벌이 얼마나 더 중요한지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히브리서 6장의 말씀과 같은 말씀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을 너희가 어떻게 대하였는가 하는 것이 모든 심판과 불사름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6:7-8절을 봅니다. “7.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8.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복과 저주의 기준이 나옵니다. 마지막 저주는 불사르는 것입니다. 불에 탈 것은 사라지고 없어질 것이지만 불에 타지 아니할 것만 남게 될 것입니다. 불에 타지 아니할 것은 어떤 것들입니까? 은혜로 주어진 것들만 남게 될 것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처절한 자기 부정을 하는 자만이 남게 될 것입니다. 그래야만 아들의 공로만 남겨지는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고백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는 그 말씀이 초보가 아니라 완전한데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가 얼마나 엄청난지를 더욱 풍성하게 알아가는 것이 완전한데 나아가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아들의 공로만 남기시고 다른 것들은 불살라 버리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끝 날의 심판입니다. 만물이 끝이 주의 뜻대로 되어 질 것입니다.(이장우 목사님 설교 참고함)

기도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히브리서 6장의 일부를 읽고 묵상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주님의 뜻을 조금이나마 더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선악과를 먹은 우리들은 지혜가 부족하여 하나님의 뜻을 잘 알지 못합니다. 내 생각은 내려놓고,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뜻을 올바로 분별할 수 있게 하옵소서. 주님이 믿음을 주시지 않으시면 미련하고 완고한 저희들은 주님의 말씀을 전혀 알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주님의 뜻을 제대로 알게 하시려고 저희에게 복음을 주셨습니다. 우리들이 참 복음이신 십자가의 예수님을 제대로 알게 하옵소서. 오직 주님의 은혜로 우리의 생명이 유지됨을 깨닫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부르시고 주님께서 우리를 장성한 그리스도인으로 키우기 위해 온갖 열심을 다하시는 줄 저희들은 알지 못하였습니다. 내 뜻이 아닌 주님의 힘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이 택한 자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폐회찬송찬송가 515장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입니다.

축도축도로 수요 예배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감동 감화 내주 역사 충만 교통하심이 오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 주신 은혜를 잊지 않고 표현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다짐하는 성도들의 머리 위에와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교회 위에와 삼채원 가정교회 위에와 이 나라 이 민족 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있을 지어다. 아멘

 

 

매일 매순간 주님 안에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하옵소서.

 

20211020일 수요 가정예배 순서

 

준비찬송 찬송가 273장 나 주를 멀리 떠났다 - 다같이

 

개회찬송 찬송가 31장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 다같이

 

개회기도 예배 인도자

 

신앙고백 사도신경 - 다같이

 

찬송찬송가 511장 예수 말씀하시기를 - 다같이

 

대표기도 황보 송옥 사모

 

성경봉독히브리서 61~9

 

특별찬양 찬송가 513 헛된 욕망 길을 가며 다 같이

 

말씀선포 완전하게 하심 - 예배 인도자

 

폐회찬송 찬송가 515장 눈을 들어 하늘 보라 - 다같이

 

축도 예배 인도자

 

 

광고 지금부터 내년도 살림살이 계획을 잘 수립하여 우리의 생활이 충실한 삶이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