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27 수요 가정예배 히브리서(믿음의 실상. 히 11:1~10)
【준비찬송】 찬송가 540장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입니다.
지금부터 21년 10월 27일 수요 가정예배를 드리겠습니다.
【개회찬송】 찬송가 31장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개회기도】 어디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 주님이 임재하시는 이곳 삼채원에서 저희 부부가 함께 예배를 드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죄인을 구원하시고 영생의 복락을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목숨까지도 내어주신 주님! 예수님의 사랑을 잊지 않게 하시고 오직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우리들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이 주신 생명의 말씀으로 영생을 누리는 우리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진리의 길로 인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신앙고백】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 하겠습니다.
【찬송】 찬송가 542장 구주 예수 의지함이 찬송하신 뒤에 황보 송옥 사모님이 대표 기도해주시겠습니다.
【대표기도】 황보 송옥 사모
【성경봉독】 히브리서 11장 1~10절. 1.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3.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4.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5.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6.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7.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8.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9.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10.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아멘.
【특별찬양】 찬송가 544장 울어도 못하네 입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오늘도 주님이 함께 하시며 보호하심으로 평안하고 안락한 삼채원 동산에서 저희 부부가 정성을 다하여 예배를 드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말씀과 찬송과 기도로 예배하는 가운데 주님이 베푸시는 은총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올해는 신약성경을 좀 더 자세히 읽고 깊이 묵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히브리서 11~13장 중에서, 그리고 다음 예배에서는 야고보서 1~3장을 읽고 묵상하고자 합니다. 성령님 함께 하셔서 저희들이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 주님의 뜻을 더 깊고,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는 지혜와 명철을 가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말씀 제목】 믿음의 실상 이 말씀으로 은혜 받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씀이 히브리서 10장까지의 결론입니다. 그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대로 성경이 증거 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구약의 모든 율법과 선지자가 증거 한 대로 예수 그리스도가 율법의 마침이 되시고 완성이 되시므로 그를 믿음으로 단번에 의롭다 함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11장에서는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믿음의 영웅들을 소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믿은 것이 무엇인지를 밝히면서 그들에게 믿음을 주신 궁극적인 분이 누구인가를 계시하고 증거 하는 내용입니다. 믿음이란 인간의 위대한 결단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의 11장 1-3절은 이 장의 서론격으로 믿음에 대한 정의를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합니다. 믿음이란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아직은 분명히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동물을 잡아 제사를 드림으로 죄사함을 받는다는 희미한 그림자의식으로 구약의 선진들은 믿음을 지켜 온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에 따른 제사의식은 죄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그림자에 불과한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은 예수님이 나타남으로 지금까지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 실제로 나타나 분명해질 것으로 믿는다는 것입니다. 아직 손에 잡히지 아니하고 눈에 보이지 아니한 것이 이루어질 줄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구약에 나오는 제사와 성막과 성전 이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희미한 그림자였다고 히브리서에서 10장까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타락한 인간을 구원할 다윗의 후손인 메시야가 나타나실 것이라는 말씀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바로 믿음이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약과 구약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논리적으로 설명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예를 들어 봅니다. 아브라함은 자식이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주시겠다고 하셨으므로 그 말씀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 약속을 믿었는데 아직 자식은 없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그 믿음의 약속으로 받은 것이 이삭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믿음을 갖자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나의 손에 아무것도 없다고 할지라도 믿으면 바라는 것을 얻는다고 잘못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므로 우리도 우리가 소망하는 것을 믿고 구한다면 반드시 주신다는 설교를 많이 들어왔습니다. 이 말이 과연 그런 의미로 말한 것일까요?
아브라함이 믿은 것은 자기의 소망이나 야망을 이루어주신다는 내용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란 땅과 후손에 대한 약속입니다. 이 약속을 주실 때, 어느 것 하나도 아브라함의 손에 들어온 것이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세월이 지나고 난 뒤에 보니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졌습니다. 결국 이 약속을 아브라함이 믿도록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수밖에 없도록 만드신 후에 후손을 주시고 이것을 믿음으로 그 믿음을 의롭게 여기신 것입니다. 이 약속의 일차적인 성취는 이삭을 아들로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실체가 아닌 그림자와 같은 것으로 희미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약속의 궁극적인 내용은 신약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후손을 갈라디아서 3:16절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후손은 수많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라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8장 56절에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아브라함도 예수님의 때를 기다리다가 보고서 기뻐하였다고 말씀하신 부분입니다. 따라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실상이요 증거입니다. 이렇게 분명한 결론이 주어져 있는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이 말씀을 다르게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르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30~40년 전 우리나라에서 한창 교회가 성장하여 전성기를 이루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당시 거의 모든 교회와 기도원에서 유행한 내용입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청년 때에 결혼을 하려면 신부의 키, 외모, 직업, 성격, 등등의 내용을 상세히 제시하면서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그렇게 기도하였더니 꼭 알맞은 신부로 주셨다고 간증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교회가 그러한 분위기로 변화된 것은 현실적인 복을 추구하고자 하는 교회 지도자의 영향력이 큰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는 내용으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겨자씨만한 믿음만을 가지고 있다면 바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기도함으로 응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전도사시절 책상과 의자와 자전거가 필요하여 간절히 기도하였는데 응답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왜 주시지 않는가 하고 물었더니 수많은 책상, 의자, 자전거가 있는데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필리핀산 호마이카 책상, 미쯔비시사 의자, 미국산 자전거를 달라고 구체적으로 기도하였답니다. 그런데도 주시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 그런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데 구한 것은 이미 주신 것으로 여기라고 하는 말씀이 들렸다는 것입니다. 즉 구하려는 그것을 이미 받았다고 선포하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시간에 기도해서 응답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몇몇 집사가 와서 보자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아이를 가졌을 때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미 배속에 있는 것처럼 자기 마음에 이미 받았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어느 선교사가 이사 가는 것을 도와주러 갔다가 정확하게 기도한 책상과 의자와 자전거가 나와서 달라고 하여 가져왔다고 설교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예로 드는 것은, 우리가 믿음을 얼마나 허망한 것으로 채우고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 대부분이 알고 있는 믿음의 실상은 자기가 바라고 소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꿈꾸고 그것을 목표로 정하고 매일 기도하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소리쳐 외치고 나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간절히 기도하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으로 믿음의 실상과 내용을 말하고 있다면 이것은 성경의 약속과는 너무나 다른 것입니다. 다만 인간의 욕망을 종교로 포장하여 믿음이라 부르는 일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러한 욕구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미 들어와 있기에 성경의 수많은 기도에 대한 구절들은 보이지 않고 보이더라도 외면하여 버립니다. 믿음을 끌어들여서 자기들이 소원하는 바를 구하면 이루어주는 요술 램프처럼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대표적으로 기억나는 말씀이 어떤 구절입니까?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면 주신다는 말씀이 나오는 것을 기억나십니까?
마태복음 21:18-22절입니다. “18.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19.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20.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이르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21.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22.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이 말씀 가운데 무엇만 취하여 기도합니까? 22절입니다.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최소한의 단락이 18-22절인데 무화과나무의 저주 사건에서 시작하여 기도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 무화과나무가 왜 말라죽었습니까? 열매가 없어서 말라 죽은 것입니다. 열매 없는 나무에 대하여 저주하니 말라 죽는 것이 무엇이든지 기도하면 이루어진다는 내용의 바탕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자기의 소원을 이루는 기도와 연결시킬 수가 있습니까?
좀 더 범위를 확대해서 마태복음 21:12-17절을 보겠습니다. “12.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13.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14.맹인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주시니 15.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노하여 16.예수께 말하되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17.그들을 떠나 성 밖으로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하시니라” 무슨 내용이 나옵니까? 하나님의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어야 하는데 무엇이 되어 버렸다고 합니까?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책망하시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전에서 기도하는 것이 자기의 소원성취를 비는 기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강도의 소굴이 되어 버렸기에 이제 남은 일은 무화과나무가 저주받아 말라죽은 것처럼 파괴될 일만 남았다는 것을 비유로 말하고 있습니다. 성전이 왜 이렇게 되어버린 것입니까? 제사장이나 성전 종사자나 거기에 오는 사람이나 다 강도와 같은 욕심으로 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무엇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까? 곧 도래할 임박한 심판의 소식을 듣고서 무엇을 구해야 합니까? 그 뒤에 나오는 마태복음 21:23~27절입니다. “23.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이르되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 24.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25.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 왔느냐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26.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모든 사람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니 백성이 무섭다 하여 27.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성전에서 가르치시는 예수님을 향하여 무슨 권세로 이렇게 하느냐고 따지고 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이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고 물으십니다. 아무런 대답을 못합니다. 하늘로부터 라고 하면 왜 믿지 아니하느냐고 할 것이고 사람으로부터라고 하면 백성들이 선지자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 이어서 마:31~32절에 너희보다 세리와 창기기 천국에 먼저 간다는 말씀을 하시고 있습니다. 세리와 창기는 믿었지만 너희는 처음부터 끝까지 믿지 아니하였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누가 성전에서 기도를 잘하는 사람들입니까? 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입니까? 세리와 창기들입니까? 정말 자신들이 죄인임을 알았던 세리와 창기가 무슨 기도를 하였습니까? 누가복음 18장9~14절입니다. “9.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바리새인은 성전에서 자기의 의로움과 잘났음을 기도의 내용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리는 감히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며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다른 기도에 관한 구절들을 보아도 기도는 우리가 회개할 내용들이지 우리의 소원성취의 근거가 되는 기도가 아님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의 야망을 가지고 삽니다. 때로는 세상을 포기하고 자살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도 자기 야망의 다른 모습일 뿐입니다. 이러한 인간들의 욕망에 대하여 교회는 죄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런 교회가 인간의 욕망을 더욱 잘 성취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면 그 곳은 교회가 아니라 강도의 소굴, 이방인들의 신전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는 말씀이 어디로 사라져버리고 없습니다. 사람들의 욕심을 구체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목표를 써서 벽에 붙이고 그것을 매일 바라보고 기도하라고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세상에 썩어질 것들을 구하고 있으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며 오직 선물로 주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이 바라는 것들의 실상과 바라는 것들의 증거로 받은 내용물이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전체에서 증거 할뿐 아니라 성경전체에서 증거 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이 믿음의 실상이요 믿음의 증거물입니다. 이 예수님을 증거 하기 위하여 히브리서 11장에서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증거 한 바가 무엇인가 하면 눈에 보이는 세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성취되고 있는가를 목격하고서 그 증인들로서 세워진 것입니다.
한마디로 보이는 세상이 아니라 약속의 세계를 바라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는 나그네와 외국인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본향을 향하여 순례자의 길을 걸었다는 것입니다. 이사를 하려면 살림을 정리하여야 합니다. 가져가야 할 것, 못쓰게 되어서 버려야 할 것 들을 구별하는 것만이 아니라 정리를 해야 할 전화, 전기, 가스, 유선, 의료보험, 주민등록 등 마치 거미줄에 칭칭 감긴 곤충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더욱더 보이는 세상에 얽매어 두려는 끈들이 많다는 것을 느낍니다.
아무리 질기고 많은 끈들이 우리를 감고 있더라도 단숨에 끊어지는 세계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세계입니다. 히브리서 11:3절입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안다고 합니다.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인하여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 사람들은 보이는 세상만의 원리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더욱 잘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보이는 세계만 전부로 알고 삽니다.
그러나 믿음의 선물을 받은 자는 보이지 않는 약속의 세계를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이 보이지 아니하는 약속의 세계를 희미하게나마 보고 있는 것처럼 살았습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믿음의 사람으로서 보이는 세계보다 보이지 아니하는 약속의 세계를 믿고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믿음의 선진들보다 분명한 실상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14장 6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믿음의 대상으로 분명히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막연하게 우리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방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인 예수 그리스도, 즉 말씀만 진리임을 믿고 사는 우리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히브리서 11장의 일부를 읽고 묵상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주님의 뜻을 조금이나마 더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선악과를 먹은 우리들은 지혜가 부족하여 하나님의 뜻을 잘 알지 못합니다. 내 생각은 내려놓고,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뜻을 올바로 분별할 수 있게 하옵소서. 주님이 믿음을 주시지 않으시면 미련하고 완고한 저희들은 주님의 말씀을 전혀 알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게 하시려고 저희에게 예수님과 믿음을 주셨습니다. 올바른 믿음으로 십자가의 예수님을 제대로 알게 하옵소서. 주님이 택하신 자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폐회찬송】 찬송가 546장 주님 약속하신 말씀 위에 서 입니다.
【축도】 축도로 수요 예배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감동 감화 내주 역사 충만 교통하심이 오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 주신 은혜를 잊지 않고 표현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다짐하는 성도들의 머리 위에와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교회 위에와 삼채원 가정교회 위에와 이 나라 이 민족 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있을 지어다. 아멘
매일 매순간 주님 안에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하옵소서.
2021년 10월 27일 수요 가정예배 순서
【준비찬송】 찬송가 540장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 다같이
【개회찬송】 찬송가 31장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 다같이
【개회기도】 예배 인도자
【신앙고백】 사도신경 - 다같이
【찬송】 찬송가 542장 구주 예수 의지함이 - 다같이
【대표기도】 황보 송옥 사모
【성경봉독】 히브리서 11장 1~10절
【특별찬양】 찬송가 544장 울어도 못하네 – 다 같이
【말씀선포】 믿음의 실상 - 예배 인도자
【폐회찬송】 찬송가 546장 주님 약속하신 말씀 위에 서 - 다같이
【축도】 예배 인도자
【광고】 지금부터 내년도 살림살이 계획을 잘 수립하여 우리의 생활이 충실한 삶이 되게 하옵소서.
'교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11103수요가정예배 설교문 (0) | 2021.11.03 |
|---|---|
| 20211031 삼채원 가정교회 종교개혁주일 예배 설교문 (0) | 2021.10.30 |
| 211024 삼채원 가정교회 주일예배 설교문 (0) | 2021.10.24 |
| 211020 삼채원 수요 가정예배 설교문 (0) | 2021.10.24 |
| 211017 삼채원 가정교회 주일 예배 설교문 (0) | 2021.10.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