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03 수요 가정예배 야고보서2(더욱 큰 은혜. 약4:1~10)
【준비찬송】 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입니다.
지금부터 21년 11월 3일 수요 가정예배를 드리겠습니다.
【개회찬송】 찬송가 31장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개회기도】 어디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 주님이 임재하시는 이곳 삼채원에서 저희 부부가 함께 예배를 드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죄인을 구원하시고 영생의 복락을 주시고자 낮고 비천한 자리에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며 기도하고 예배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티끌과 같은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도 내어주신 주님! 예수님의 사랑을 잊지 않게 하시고 오직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우리들이 되게 하옵소서. 이 세상이 주는 부귀영화보다 주님이 주신 생명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함으로 영생을 누리는 우리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진리의 길로 인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신앙고백】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 하겠습니다.
【찬송】 찬송가 430장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찬송하신 뒤에 황보 송옥 사모님이 대표 기도해주시겠습니다.
【대표기도】 황보 송옥 사모
【성경봉독】 야고보서 4장 1~10절. 1.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2.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3.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4.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5.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6.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7.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8.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9.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10.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아멘.
【특별찬양】 찬송가 357장 주 믿는 사람 일어나 입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오늘도 주님이 함께 하시며 보호하시는 삼채원 동산에서 저희 부부가 평안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예배를 드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말씀과 찬송과 기도로 예배하는 중에 주님이 베푸시는 한량없는 은혜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올해는 신약성경을 좀 더 자세히 읽고 깊이 묵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야고보서 4~5장 중에서, 그리고 다음 예배에서는 베드로전서 1~3장을 읽고 묵상하고자 합니다. 성령님 함께 하셔서 저희들이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 주님의 뜻을 더 깊고,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는 지혜와 명철을 가지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말씀 제목】 더 큰 은혜. 이 말씀으로 은혜 받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시기와 다툼이 지체들끼리 싸우는 정욕과, 기도로 구하지 않음과,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세상적인 욕심에서 난다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 5절에 이렇게 다투는 우리들을 위해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대한 해석이 분분합니다. 새 번역에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 속에 살게 하신 그 영을, 질투하실 정도로 그리워하신다 한 성경 말씀을 여러분은 헛된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로 되어 있고, 개역한글판은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로 되어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이처럼 해석이 둘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는 ①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그 영을 질투하실 정도로 사모하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②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우리를 향하여 시기하기 까지 사모한다는 것입니다. 앞의 것은 하나님이 태초에 인간을 지을 때 주신 영을 사모한다는 것이고 뒤의 것은 성령이 우리를 질투하고 시기할 정도로 사모한다는 것입니다. 두 가지 해석이 서로 다른 내용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개역개정판은 우리 속에 거하신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우리를 향하여 질투하고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는 뜻입니다. 이 성령은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 우리에게 보내신 성령입니다. 그리고 새 번역에 나오는 그 영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부어넣으신 영을 말하는데 타락하기 전의 원래적인 하나님의 영이므로 성령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본래의 성령을 회복하기를 간절히 사모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영이나 성령은 같은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을 넣으신 것은 주님이 창조하시고 주님의 소유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타락한 인간에게 성령을 주신 것은 태초의 인간의 본질을 회복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19-20절입니다. “19.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성령이 임하신 것은 우리 몸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피 값으로 사신 것임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내 몸이 나의 것이 아니기에 세상과 벗되지 말고, 마귀와 친하지 말고, 하나님과 가까이 하여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계속하여 세상과 벗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길이기에 우리 안에 거하신 성령께서 우리를 질투하듯이 사모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그래서 6절 말씀에 더 큰 은혜를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야고보서는 행함만 이야기하고 은혜가 없는 것처럼 많이 알고 있습니다만 보통 은혜가 아니라 더 큰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 은혜가 바로 우리 속에서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하시는 은혜를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왜 성령이 우리를 향하여 질투할 정도로 시기하며 사모하시는 것일까요?
로마서8:23-30절입니다. “23.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24.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26.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예수님, 복음)를 받은 성도의 모습은 탄식하게 됩니다. 우리 몸의 구속을 바라며 기다리는데 눈에 보이는 소망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보지 못하는 주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보지 못하는 것을 기다리기에 우리가 연약합니다. 자꾸만 보이는 세상을 사랑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우리 연약함을 도와서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는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는 것입니다.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이신 성령이 우리의 생각을 아십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는데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이 임하여 탄식의 간구를 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미리 정하신 자들입니다. 그들을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영화롭게 하신 것입니다. 이미 영화롭게까지 하셨는데 이러한 자기 백성들이 세상의 것을 사랑하면 성령께서 질투하고 시기하기까지 사모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만 지시고 우리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시고 천국에서 만나보자고 올라가버리신 것이 아닙니다.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셔서 우리 속에서 시기하시기까지 사모하는 것입니다. 마땅히 사모해야할 주님을 사모하지 않고 세상의 것들을 사모하고 있는 우리를 위하여 탄식하며 기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에 있습니까?
성령의 시기, 하나님의 질투가 왜 더욱 큰 은혜가 되는지 구약을 통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출애굽기 34:14절입니다.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고 난 후 시내산 앞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질투하시기에 그들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언약을 세우시면서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하시면서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가까이 왔을 때에 미디안 여인들의 유혹을 받아 우상에게 절하고 간음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전염병을 보냈습니다. 그때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질투로 두 남녀를 죽였을 때에 전염병이 멈추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질투가 이스라엘을 심판하기도 하지만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시기와 질투하는 마음으로 징계하였음으로 이스라엘이 구원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질투의 양면성입니다. 하나님의 질투로 심판을 받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행하는 질투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스가랴 8:1-8절입니다. “1.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되 2.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그를 위하여 크게 분노함으로 질투하노라 3.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시온에 돌아와 예루살렘 가운데에 거하리니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이라 일컫겠고 만군의 여호와의 산은 성산이라 일컫게 되리라 4.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예루살렘 길거리에 늙은 남자들과 늙은 여자들이 다시 앉을 것이라 다 나이가 많으므로 저마다 손에 지팡이를 잡을 것이요 5.그 성읍 거리에 소년과 소녀들이 가득하여 거기에서 뛰놀리라 6.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 일이 그 날에 남은 백성의 눈에는 기이하려니와 내 눈에야 어찌 기이하겠느냐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7.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내 백성을 해가 뜨는 땅과 해가 지는 땅에서부터 구원하여 내고 8.인도하여다가 예루살렘 가운데에 거주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진리와 공의로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함으로 성읍이 황폐화된 것입니다. 그대로 버려두시지 않고 다시 구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질투와 분노로 인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왜 질투와 분노로 구원받는 것입니까? 자기 백성이 배반을 하므로 아예 배반을 하지 못하도록 더 완벽한 은혜를 베풀어버리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자기 언약에 대한 신실하심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이제 야고보서 4:5절을 다시 봅니다.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이 말씀 앞에 두려움을 느낍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집요하고 대단한지를 알게 됩니다. 다른 데 한눈팔거나 다른 곳에 마음을 두면 어떻게 하신다는 것입니까? 눈 돌리고 마음 주는 것들을 다 없애버리고서라도 주님에게만 마음 두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에 의하면 이 세상이 다 불에 타 없어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이 세상에는 악한 것도 있지만 또한 보암직한 것들도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특히 돈만 있다면 얼마나 살기 좋은 세상입니까? 그런데 왜 이런 아름다운 세상을 불태워 없애버리고자 하시는 것입니까? 우리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간절히 사모하지 않고 이 세상의 영광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려고 하기에 불살라 버리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에 대한 심판이기도 합니다만 지체들끼리 싸우는 정욕과, 기도로 구하지 않음과, 세상과 벗 되고자 하는 세상적인 욕심에 더 이상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것이 공포로 다가 옵니까? 감사로 다가옵니까?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과 벗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공포가 되겠지만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과 벗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큰 은혜로 다가올 것입니다. 주여 나는 날마다 마음이 나누어집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시기하기 까지 사모하신다는 그 말씀이 우리로 하여금 세상으로 달려가지 못하게 하십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도록 붙드는 것입니다. 한눈팔지 못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다음에 나오는 말씀들은 명령이 아니라 사랑으로 들리는 것입니다.
6절입니다. 교만한 자를 물리치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교만한 자란 어떤 자입니까? 교만이란 주님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모든 아담의 후손은 자기 힘을 의지하면서 살고자 하는 것이 본능입니다. 겸손한 자란 세상에서 말하는 도덕적인 겸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런 겸손이라면 야고보는 도덕 선생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겸손한 자란 더 이상 자기의 행함에 기대를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겸손한 사람들에게 이 말씀은 내가 교만을 버리고 겸손해야지 하는 것이 아니라, 주여 주의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고 계시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여 감사합니다. 이렇게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7절입니다. 하나님께 복종하고 마귀를 대적하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 곧 마귀를 대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은 야고보서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이기적인 욕망을 따라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의 그런 유혹을 대적하기는커녕 오히려 원하고 있다면 마귀와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마귀와 친구가 되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물리치신 세상의 영광을 우리도 포기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귀를 대적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8절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께서 가까이 하시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싶습니까?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세상의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것을 버리게 되는데 그런데도 가까이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은 손을 씻고 두 마음을 품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손이란 외면적인 행위들을 말합니다. 우리의 행동들이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가를 보라는 것입니다. 세상적이고 정욕적이고 마귀적인 일들에서 손을 씻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마음을 품은 자들에게 성결하게 하라고 합니다. 두 마음이란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가 없는데도 우리는 늘 두 가지 모두를 가지려고 합니다. 우리가 제일 잘 속는 부분이 이 부분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면 세상의 복을 받고, 하나님을 잘 섬기지 못하면 세상에서 실패하고 저주를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모이고 열심을 내어 일해도 하나님을 사랑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한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 마음을 품은 자들에게 성결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9절입니다. 슬퍼하며 애통하여 울라고 합니다. 웃음을 애통으로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꾸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일은 이 세상을 거꾸로 보는 것입니다. 세상의 웃음과 즐거움을 애통과 슬픔으로 바꾸어 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성공하였다고 잔치하고 있는 사람을 보면서 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과연 이럴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하든지 세상에서 성공하고 웃음과 즐거움으로 살고 싶은 것입니다. 그것을 교회 다니는 사람 모두 다 복이라고 여기는데 어떻게 웃음과 즐거움을 애통과 슬픔으로 바꿀 수가 있는 것입니까? 그러므로 이러한 복을 받으려면 더 큰 은혜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10절입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성령이 임하시면 자기의 죄와 비참함을 알게 되기에 자기를 낮출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 모두 높아지기 위해 애를 씁니다. 자기를 낮추지 않습니다. 혹시 일부러 몸을 낮추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큰 높아짐을 위하여 낮추는 것이라면 그것 또한 두 마음을 품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낮출 사람이 없는데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나온다면 이것은 더욱 큰 은혜를 받았기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더욱 큰 은혜를 말하면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따로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세상의 정욕과 싸우며, 마귀를 대적하고, 손을 깨끗이 하며,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아니하고, 세상의 웃음과 즐거움을 애통과 슬픔으로 바꾸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지도 않고 이러한 은혜를 아무도 구하는 자가 없기에 성령이 질투하고 시기하면서까지 우리를 사모하시는 것입니다.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야고보서 4장의 일부를 읽고 묵상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주님의 뜻을 조금이나마 더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선악과를 먹은 우리들은 지혜가 부족하여 하나님의 뜻을 잘 알지 못합니다. 내 생각은 내려놓고,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뜻을 올바로 분별할 수 있게 하옵소서. 주님이 믿음을 주시지 않으시면 미련하고 완고한 저희들은 주님의 말씀을 전혀 알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게 하시려고 저희에게 예수님과 믿음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두 마음을 보시고 탄식하시며 시기하시기 까지 사모하시는 성령님을 깨닫게 하시옵소서. 하늘 보좌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제대로 알게 하옵소서. 주님이 택하신 자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폐회찬송】 찬송가 358장 주의 진리 위해 십자가 군기 입니다.
【축도】 축도로 수요 예배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감동 감화 내주 역사 충만 교통하심이 오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 주신 은혜를 잊지 않고 표현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다짐하는 성도들의 머리 위에와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교회 위에와 삼채원 가정교회 위에와 이 나라 이 민족 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있을 지어다. 아멘
매일 매순간 주님 안에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하옵소서.
2021년 11월 3일 수요 가정예배 순서
【준비찬송】 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 다같이
【개회찬송】 찬송가 31장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 다같이
【개회기도】 예배 인도자
【신앙고백】 사도신경 - 다같이
【찬송】 찬송가 430장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 다같이
【대표기도】 황보 송옥 사모
【성경봉독】 야고보서 4장 1~10절
【특별찬양】 찬송가 357장 주 믿는 사람 일어나 – 다 같이
【말씀선포】 더 큰 은혜 - 예배 인도자
【폐회찬송】 찬송가 358장 주의 진리 위해 십자가 군기 - 다같이
【축도】 예배 인도자
【광고】 지금부터 기도하며 내년도 살림살이 계획을 잘 수립하여 우리의 생활이 주님의 뜻에 충실한 삶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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