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31 성령강림 후 스물세 번째 주일(종교개혁 기념)예배 야고보서1.(그리스도의 종)
【준비찬송】 찬송가 585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 입니다.
지금부터 21년 10월31일 성령강림절후 스물세 번째 주일예배를 드리겠습니다.
【개회찬송】 찬송가 27장 빛나고 높은 보좌와
【개회기도】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롬13:11~12) 아멘
우는 사자가 삼킬 자를 두루 찾고 있는 때입니다. 두려움으로 깨어나기를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타락해 가는 중세교회를 개혁할 수 있도록 종교개혁자들을 세우시고 성령으로 역사하셔서 시대적인 어두움을 밝은 빛으로 바꾸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 종교개혁 504주년을 맞아 저희들이 먼저 말씀으로 개혁되어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기를 원합니다. 저희가 이 세대를 본받지 않게 하시고, 말씀과 예배를 잃어버리지 않게 하시옵소서. 먼저 저희 자신들을 개혁시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게 하시옵소서. 이 예배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옵시고, 예배하는 저희들에게는 한없는 은혜와 감동의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기도가 응답받는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경배찬송】 찬송가 15장 하나님의 크신 사랑 찬송하겠습니다.
【신앙고백】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 하겠습니다.
【성시교독】 교독문 104. 종교개혁주일
【봉헌찬송】 찬송가 400장 험한 시험 물 속에서, 봉헌시간입니다.
봉헌과 축복의 기도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백성들의 영육이 강건하기를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지난 한 주간에도 유혹 많은 세상에서 실족하지 않게 성령으로 인도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주일을 맞아 우리를 불러 영육 간에 은혜를 내리시고 강건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불꽃같은 눈으로 살피시며 눈동자와 같이 지켜주심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심히 적은 예물을 드립니다. 비록 적은 예물이지만 이 봉헌 예물이 주님의 뜻에 합당한 일에 사용되게 하시고, 이 예물이 사용되는 곳에 주님의 소망이 밝은 해와 같이 빛나게 하시옵소서. 죄에 갇혀 허덕이는 인생을 구원하는 데 쓰이는 밑거름이 되게 하시옵소서. 만물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찬송】 찬송가 337장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찬송하신 후에 황보송옥 사모님이 대표 기도해 주시겠습니다.
【대표기도】 황보 송옥 사모
【성경봉독】 야고보서 1:1~11절. 1.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2.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5.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6.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8.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9.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10.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11.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아멘.
【특별찬양】 찬송가 212장 겸손히 주를 섬길 때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가을의 따가운 햇볕으로 농산물의 결실을 풍성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어느 곳에서나 함께하시는 주님! 이 곳에서 예배하는 저희들을 주님의 강한 손으로 붙들어 주셔서 세상의 유혹을 이길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가지게 하옵소서. 모든 질병과 환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생기와 활력을 주셔서 강건하게 하시고 주님 주신 사명을 기쁜 마음으로 감당할 수 있게 하옵소서. 21년에는 신약성경을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야고보서 1~3장을 읽고 묵상하고, 다음 예배에는 야고보서 4~5장 나머지를 읽고 연구하고자 합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보다 자세히 깨달을 수 있게 하옵소서. 성령님 함께 하셔서 저희들의 우둔한 머리를 지혜롭고, 명철하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일상생활이 주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합당한 산제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제목】그리스도의 종 : 오늘 말씀을 통하여 많은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야고보서는 행함을 강조한다고 알려진 성경입니다. 왜 야고보서는 믿음이 아니라 행함을 강조하는 책이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을까요?
아마 바울의 이신칭의가 워낙 주목받는 교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치 이에 반하는 말을 하는 것 같은 야고보서는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가 이야기한 것처럼 지푸라기 성경으로 천대를 받아온 것입니다. 오늘은 종교개혁 기념주일입니다. 개혁 교회는 계속 개혁되어야 한다는 말을 모토로 하고 있습니다. 루터가 당시 교회를 개혁한 것처럼 오늘 우리들의 교회도 개혁되어야 할 것입니다. 행위 구원을 강조하는 당시 교회에 반발하여, 루터는 오직 믿음을 주장하며 개혁을 부르짖었습니다. 그 결과 믿음은 행위와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당시 상황에서는 옳았지만 오늘에는 잘못된 해석입니다. 생각과 말만 강조하고 행위가 없는 믿음은 또 다른 반쪽 구원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믿음은 행위를 반드시 동반하게 되어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구원받기 전에는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믿음을 얻어 구원을 받은 사람은 믿음 안에서 인내하며 모든 시험을 이기고 온통 삶으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이처럼 야고보서도 우리에게 오직 믿음을 강조하는 똑같은 성경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친 동생이었지만 불신자로 생활했던 야고보입니다. 그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죽었다고 생각한 예수님을 다시 만나 회심한 이후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내용이 바로 야고보서입니다. 야고보서는 우리 자신들의 믿음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야고보서 하면 제일 생각나는 말씀이 무슨 말씀입니까?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야고보서를 가지고 말로만의 믿음이 아니라 행함이 따라야 제대로 된 믿음이라고 하면서 여러 가지 행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야고보서가 증거 하는 것은 믿음만으로는 부족하여서 행함을 더 보태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바른 믿음이 무엇인가를 증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6절을 봅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말합니다. 무엇이라 하고 있습니까? 오직 믿음으로 구하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행하는 믿음이 확고한 굳은 믿음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믿음과 행함이 일치하지 않으면 두 마음을 품은 자라고 말합니다. 1:4절에 보면 인내하는 자, 곧 믿음으로 행하는 자는 온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자입니다.
만약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결단과 실천의 문제라고 한다면, 믿는다고 하고 난 뒤에는 실천의지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마치 학교에서 도덕을 배우면 도덕에 대한 사고능력이 있어야 하고, 또 그 도덕을 실천할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과 같은 것이 됩니다. 이런 식의 행함이 되어버린다면 그것은 야고보서가 말하는 행함이 아니라 평소에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윤리적 행함이 됩니다. 교회에서 자주 듣는 주일성수, 십일조, 무조건적인 복종 등을 강조함으로 구원받기 위해 반드시 행해야 할 것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과연 그러한 행함이 바른 복음이고 믿음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과연 주님이 원하시는 행함이 무엇인지 말씀에 비추어 물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말하는 그러한 행함의 강조 속에 목사나 교인들의 욕심이 들어 있지나 않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열심과 헌신을 독려하는 것이 과연 주님이 원하시는 행함인지 물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14-16절입니다. “14.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16.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고 합니다. 아무리 교회를 위한 헌신과 충성과 하나님의 영광을 입으로 외친다고 하여도 그 안에 얼마든지 자기들의 욕심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욕심에 끌려 미혹되기에 욕심인줄 모르고 속는 것입니다. 평생을 하나님의 영광과 그 뜻을 위하여 많은 일을 행하고 귀신도 쫓아내고 수많은 능력을 행하였다고 할지라도 끝 날에 주님께서 나는 너를 도무지 모른다고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 중심의 행함에 대하여 교회 안에서도 세상에서도 수없이 많은 비판을 받아 왔습니다. 그래서 또 다른 행함의 형태가 나타났습니다. 그것이 세상 사람들에게 윤리 도덕적으로 착한 일을 하는 선행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무료급식과 문화교실을 만들고, 지역주민들을 위한 봉사활동도 하는 것입니다. 그려면 교회가 욕을 먹지 않고 사람들이 교회에 호감을 가지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나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말세에 재물을 쌓아두지 말고 이웃에게 나누어 주라는 말씀에 그들이 과연 호감을 보이겠습니까?
따라서 믿음이란 인간의 의지적인 결단과 실천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2:1절을 봅니다.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말하고 있습니다. 개역한글 판을 보면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여기 보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받은 믿음이라고 합니다. 받은 믿음이므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노력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로부터 받은 믿음이므로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자라고 환대하고 가난하다고 멸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보이는 세상을 보이는 대로 보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 하는 대로 믿고 사는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스스로 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질문을 해 보아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3장에 보시면 눈에 보이는 이 하늘과 땅이 주님 재림하시면 다 불에 타 없어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준비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믿으십니까?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 것입니까? 소돔과 고모라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유황불에 타 죽었습니다. 그 타 죽은 사람들이 믿음이 없어서 죽었습니까? 행함이 없어서 죽었습니까? 믿음이 없어서 죽었습니다. 롯의 사위들은 성이 멸망할 것이라는 소식을 농담으로 들었습니다.
더 쉬운 예를 듭니다. 비파괴 검사를 하는 전문가 집사님이 있습니다. 건물을 부수지 않고도 엑스레이 같은 사진으로 건물의 재질을 조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 전문가가 만약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지하실이 10분후에 무너지리라는 진단을 내렸다고 합시다. 그 말을 믿는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0분 안에 빠져 나가야 합니다. 그럼에도 남아 있다가 건물이 무너져 내려 죽었다면 그 사람은 믿음이 없는 것입니까? 행함이 없는 것입니까?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참된 믿음을 가졌다면 당연히 밖으로 나와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내걸고 있는 비전이나 목표가 이 세상의 것으로 눈에 보이는 것이라면 그것은 믿음의 내용이라 할 수 없습니다. 로마서 8:24-25절을 봅니다. “24.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어떤 믿음이나 행함을 말하든지 간에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믿음이나 소망의 내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 속에서는 사람들은 믿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믿음을 말로만 하지 말고 행함으로 보여 달라고 합니다. 네 믿음의 능력을 보이라고 합니다. 너는 7년이나 목회하면서 아직도 가정교회를 탈출하지 못했느냐고 말합니다. 나는 5년에 이만큼 큰 교회로 만들었는데 너는 도대체 무엇을 하였느냐 말하고 있지나 않습니까?
야고보서 2:1절처럼 받은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받은 믿음은 야고보서 1:16-17절처럼 은사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16.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17.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받은 믿음, 은사로 주어진 믿음이란 이 세상의 눈에 보이는 욕심들과 대적하여 싸우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나 다른 교회와 비교 경쟁하면서 행함을 강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정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믿음의 행함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대로 보지 않고 믿음의 눈으로 보는 그런 열매들이 어떻게 나타나는 것입니까? 그것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영광의 주로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받은 믿음이고 받은 은사인 것입니다. 그렇게 일어난 일을 야고보서를 통하여 볼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의 저자는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으로서 함께 자라서 어릴 때부터 알아온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을 더욱 믿지 못하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만 보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려서부터 함께 자라면서 조금의 다른 면은 보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대하여 성경은 아주 조금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출생 때의 이야기와 성전에서의 결례, 12세 때의 자기가 하나님의 집에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본 자기 형 예수는 특별한 하나님의 아들이나 메시아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야 말로 자기의 육신의 형으로만 보았던 것입니다. 그런 야고보가 자신을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형으로 알았던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부활하신 주님께서 만나주심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그 어떤 혈육의 관계로 말하지 않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고백한 것입니다.
마가복음 3:21절을 봅니다.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이 임하셔서 활동하실 때에 예수님의 친족들이 예수님을 미쳤다고 붙잡으러 온 것입니다. 여기에 야고보가 있었을 것입니다. 평소에 자기의 형인데 갑자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병을 고치고 기적을 행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추종하고 있으니 미쳤다고 여기면서 붙들러 온 것입니다.
요한복음 7:2-5절입니다. “2.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3.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4.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5.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예수님의 형제들이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였습니다.
이런 야고보가 어떻게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고서 자기를 종이라고 하게 되었습니까? 고린도전서 15:4~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4.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7.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예수님께서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베드로와 오백여 형제들에게 일시에 보이시고 그 후에 야고보에게도 보이셨던 것입니다. 이 때 야고보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모든 생각들이 다 바뀌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라고 소개합니다.
야고보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사도 바울처럼 모든 것이 다 바뀌었던 것입니다. 그 때부터는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님을 알고 보이는 대로 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 다 그러합니다. 예수님을 육체대로 알았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서는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즉 눈에 보이는 대로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받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게 된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과 같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갈라디아서 2:9절입니다.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바울사도가 야고보와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교제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제일 먼저 교회의 기둥이라고 하면서 야고보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5장:12-21절을 봅니다. “12.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듣더니 13.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이르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14.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그들을 돌보신 것을 시므온이 말하였으니 15.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일치하도다 기록된 바 16.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7.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19.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20.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21.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하더라”
이방인에게 복음이 증거 되는 문제로 유대인이 시비를 걸자 예루살렘에서 사도들과 장로들의 회의가 열린 것입니다. 베드로가 증거 하고, 다음으로 바울과 바나바가 증거 한 후 야고보가 최종 결론을 내립니다.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말한바 자기들도 메지 못한 멍에를 메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다고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이방인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것은 그 어떤 행함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은혜로 돌아온다는 것을 야고보가 인정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에 어떤 행함을 더 추가하여야 되는 문제가 아니라 주께로부터 받은 믿음, 하나님의 은사로 주어진 믿음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는 것을 야고보가 증거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란 바로 교회의 기둥이라고 여김을 받고 예루살렘 총회의 의장이라는 야고보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고백하는 내용인 것입니다. 종은 주인의 말을 믿고 따를 뿐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정말 이러한 고백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자신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생각하고 있습니까? 이 당시의 종이란 노예입니다. 자기의 소유라고는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오직 주인의 소유물이 종인 것입니다. 자기의 뜻대로 살지도 못하고, 자기의 목숨도 자기의 것이 아닌 것입니다. 오직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할 뿐인 것이 야고보의 믿음인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야고보를 만나 주셨듯이 오늘 우리에게도 성령이 임하신 줄 믿습니다.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야고보서 1장 중 일부를 읽고 묵상할 수 있게 허락하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아무도 알아 볼 수 없도록 허약하고 비천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십자가의 사역을 통하여 태초부터 언약하신 약속을 다 이루셨습니다. 바다보다 더 넓은 주님의 뜻을 우리 인간의 지혜로는 제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성령님을 통하여 예수님의 하신 일과 말씀의 뜻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경 전체 가운데 오늘 읽은 한 부분을 묵상하고 깨달았다고 하여 성경 전부를 알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부분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게 하시고 부분을 통하여 전체를 상상할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이 보내신 성령이 오셔서 함께 하시며, 우리를 장성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주신 믿음으로 행함이 있는 우리들이 되어 세상과 하나님 사이를 화목하게 하는 자녀의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있게 하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폐회찬송】 찬송가 289장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입니다.
【축도】 축도로 주일 예배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감동 감화 내주 역사 충만 교통하심이 오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말씀에 순종하고, 주시는 사명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다짐하는 성도들의 머리 위에와 섬기는 교회 위에와 삼채원 가정교회 위에와 이 나라 이 민족 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있을 지어다. 아멘
주님 안에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하옵소서.
2021년 10월 31일 성령강림 후 스물세 번째 및 종교개혁기념주일 예배 순서
【준비찬송】 찬송가 585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 - 다같이
【개회찬송】 찬송가 27장 빛나고 높은 보좌와 - 다같이
【개회기도】 예배인도자
【경배찬송】 찬송가 15장 하나님의 크신 사랑 - 다같이
【신앙고백】 사도신경 - 다같이
【성시교독】 교독문 104. 종교개혁주일 - 다같이
【봉헌찬송】 찬송가 400장 험한 시험 물 속에서 - 다같이
【봉헌기도】 예배 인도자
【찬송】 찬송가 337장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 다같이
【대표기도】 황보 송옥 사모
【성경봉독】 야고보서 1장 1~11절
【특별찬양】 찬송가 212장 겸손히 주를 섬길 때 - 다같이
【말씀선포】 그리스도의 종 - 예배 인도자
【폐회찬송】 찬송가 289장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 다같이
【축도】 예배 인도자
【광고】 기도하며 내년도에 할 수 있는 살림살이 계획을 미리 잘 수립하여 우리의 생활이 보다 충실한 삶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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