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211117삼채원 수요가정예배 설교문

imhp 2021. 11. 17. 11:28

20211117 수요 가정예배 요일 27~11(새 계명)

준비찬송찬송가 443장 아침 햇살 비칠 때 입니다.

지금부터 211117일 수요 가정예배를 드리겠습니다.

개회찬송찬송가 31장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개회기도언제 어디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 주님이 임재하시는 이곳 삼채원에서 저희 부부가 함께 예배를 드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죄인을 구원하시고 영생의 복락을 주시고자 낮고 비천한 자리에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며 기도하고 예배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티끌과 같은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도 내어주신 주님! 예수님의 사랑을 잊지 않게 하시고 오직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우리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이 주신 새 계명을 따라 우리들이 늘 서로 사랑하게 하옵소서. 세상이 유혹하는 부귀영화와 안일함에서 벗어나 주님 주시는 참 평안과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우리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진리의 길로 인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신앙고백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 하겠습니다.

찬송찬송가 445장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찬송하신 뒤에 황보 송옥 사모님이 대표 기도해주시겠습니다.

대표기도황보 송옥 사모

성경봉독요한일서 27~11. 7.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가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8.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그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둠이 지나가고 참빛이 벌써 비침이니라 9.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10.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11.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아멘.

특별찬양찬송가 218장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입니다.

기도사랑의 하나님! 오늘도 주님이 함께 하시며 보호하시는 삼채원 동산에서 저희 부부가 평안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예배를 드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말씀과 찬송과 기도로 예배하는 중에 주님이 베푸시는 한량없는 은혜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올해는 신약성경을 좀 더 자세히 읽고 깊이 묵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요한일서 1~3장 중에서, 그리고 다음 예배에서는 요한일서 4~5장과 요한이서 1장을 읽고 묵상하고자 합니다. 성령님 함께 하셔서 저희들이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 주님의 뜻을 더 깊고,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는 지혜와 명철을 가지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말씀 제목새 계명. 말씀으로 은혜 받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요한일서 2장은 영혼만 강조하고 육체를 무시하여 온갖 죄를 짓고 방탕하게 살면서도 죄가 없다고 스스로 주장하는 영지주의자들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영적인 특별한 지식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교만함을 가지고 삶 속에서 온갖 탐욕을 부리던 이단종파였습니다. 특히 유대인 중의 그리스도인에게 그런 사람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사도들이 다 죽고 요한만 남은 상태에서 요한은 이단 종파들을 경계할 것을 권면하며 바른 진리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머리로만 믿으려는 신앙은 항상 이런 모순과 오류에 빠집니다. 신앙이 좋다는 건 절대 혼자서 성경을 연구하여 깊이 파거나 산 속에 들어가서 기도하거나 영적 교류로 직통계시를 받는 걸 의미하지 않습니다.

신앙이 좋다는 건 나를 사랑하셔서 자기 몸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서 나도 그처럼 내 몸으로 남을 사랑하고 용서하고 받아주는 인간관계가 좋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만 우리의 신앙이 형성되고 발전되고 완성될 수 있습니다, 내가 먼저 손 내밀고 찾아가고 만나서 말을 걸고 부대끼는 것이 신앙과 성숙의 시작입니다.

오늘 말씀에 옛 계명과 새 계명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7절을 보시면 새 계명을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라고 합니다. 이 옛 계명은 너희가 이미 들은 말씀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8절에서는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쓴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지금 이 편지를 받는 사람들은 새 계명에 대하여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용상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새 계명이라고 하는 것은 전에 들었던 그 말씀을 다시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새 계명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13:34-35절입니다. “34.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이것이 새 계명입니다. 그러면 이런 계명이 구약에는 없었습니까? 구약에서도 형제를 사랑하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레위기 19:18입니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그러면 구약, 정말 옛 계명에도 있는 이런 형제 사랑의 말씀을 지키라고 하면 될 텐데 왜 예수님은 새 계명을 말한다고 하셨습니까? 내용은 같은데 그 계명을 성취하는 방법에서 전혀 다르기 때문에 새 계명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먼저 구약에서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온 모습을 에스겔 34:1-3에서 보겠습니다. “1.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에게 예언하라 그들 곧 목자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자기만 먹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목자들이 양 떼를 먹이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3.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 떼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양을 돌보아야 할 목자들이 오히려 양을 잡아먹고 있는 것입니다. 목자와 양 사이만 이렇게 된 것이 아니라 양과 양 사이에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3420~21절입니다. “20.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나 곧 내가 살진 양과 파리한 양 사이에서 심판하리라 21.너희가 옆구리와 어깨로 밀어뜨리고 모든 병든 자를 뿔로 받아 무리를 밖으로 흩어지게 하는도다목자들이 살진 양을 잡아먹고 양들 사이에서는 또 힘 있는 양들이 약한 양들을 어깨로 밀치고 뿔로 받아 흩어지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을 받은 이스라엘의 실상이 이러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기 양떼를 친히 구원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3422-24절입니다. “22.그러므로 내가 내 양 떼를 구원하여 그들로 다시는 노략 거리가 되지 아니하게 하고 양과 양 사이에 심판하리라 23.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24.나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 중에 왕이 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한 목자 다윗을 세워서 그들 중에 왕으로 세우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런 약속을 따라 오신 분이 누구십니까? 바로 새 언약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살과 피로 새 언약을 세우신 것입니다. 그 새 언약 안에서 주어지는 계명이 새 계명인 것입니다. 이 새 계명은 옛 계명과 내용면에서 같습니다만 그 성취의 면에서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받고서 이웃을 사랑하느라고 구제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사람들에게 보이고자 하며 자기들의 의를 내세우는 형식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행위로는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를 예측하고서 이미 구약에서 새 언약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새 언약은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 안 되는 것을 확인시키면서 나오는 것입니다. 힘으로도 안 되고 능력으로도 안 됩니다. 오직 주의 영, 성령의 힘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 언약은 하나님의 영을 자기 백성들에게 부어주시는 방식으로 이루어 내시는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하여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셔야 하셨고 부활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이 새 계명을 주시는 그 앞뒤의 내용을 보면 유월절 만찬을 행하시는 중에 하신 말씀입니다. 만찬 전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기 위하여 그 자리에서 나갔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요1331-32절입니다. “31.그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32.만일 하나님이 그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말미암아 그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이 영광이 무슨 영광입니까?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시는 것까지 다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영광을 받으시는 자리에서 자기 피로 이루어내신 새 언약의 결과물을 자기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도행전 2:33절의 내용입니다. “33.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베드로 사도가 이 말씀을 전하면서 다윗의 이야기를 합니다. 다윗이 예언한 대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스겔서에서도 다윗 같은 목자를 세워 자기 양떼를 먹이는 왕으로 삼겠다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성경구절을 인용하면서 길게 설명하는 이유는 8절 때문입니다. 8절입니다.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그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둠이 지나가고 참빛이 벌써 비침이니라여기 보면 새 계명을 쓰는데 새 계명이 그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되다고 합니다. 여기서 그가 누구이겠습니까? 바로 예수님입니다. 새 계명이 예수님에게 참되었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이 새 계명을 다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 새 계명을 다 지켰다는 것입니다. 정말 자기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심으로 자기의 살과 피를 주셔서 사랑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말씀은 새 계명이 예수님에게만 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너희에게도 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누구입니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오늘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새 계명은 참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십니까? 물론 여기서 내 이웃은 예수 믿는 형제자매,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들입니다. 이들을 과연 내 몸처럼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새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이 아닌 것입니다. 새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는 아직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많은 고민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제부터 새 계명을 지켜야 하는데 어떻게 지키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웃을 사랑하기 위한 여러 가지 실천방안들을 다시 만들어 냅니다. 구약에서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은 성령이 임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키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성령이 임하였음으로 성령의 도움을 받으면 내가 지킬 수 있을 것이다 하면서 열심히 새 계명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노력하여도 내 몸처럼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을 현실적으로 절감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타협안이 나오는 것입니까? 완벽하지는 못해도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려고 최선을 다하여 노력한다면 하나님께서 아마 인정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내 멋대로 생각하는 것이 아직 어둠에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8절 후반부에 이는 어둠이 지나가고 참 빛이 비침이라고 합니다. 어둠은 자기의 힘과 능력으로 이웃을 사랑하고자 애쓴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참된 이웃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밖에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일이 어둠에 속한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새 언약을 이루시고 그 새 언약의 완성의 결과물이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새 계명입니다.

9절입니다. 그러므로 빛 가운데 거한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들은 아직 어둠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형제 사랑은 도대체 언제 어떻게 나타나는 것입니까? 바울과 바나바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바울이 어느 순간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예수님을 증거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울을 바나바가 추천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바울이 어떤 일을 행한 사람인줄 알기에 그를 꺼려하였습니다. 이런 바울을 나중에 사도들이 형제로 맞이합니다. 교제의 악수를 하였습니다. 어제의 원수가 오늘의 형제로 교제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는 무엇 때문입니까?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이 한가지의 고백이 형제를 사랑하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은 성령의 힘이 아니고서는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만 증거 하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만 증거 하는 곳이 얼마나 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는 기본으로 여기고 그것은 이미 지나간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그에 더하여 우리가 실천하여야 할 내용들을 가득 선포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만을 믿고 이야기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야말로 반갑고 기쁜 것입니다. 그 사람이 나에게 무슨 도움을 주어서가 아닙니다. 나 같은 죄인이 예수님의 피로 용서를 받았는데 당신도 그런 용서를 받은 사람이군요! 정말 반갑습니다. 사랑합니다. 이런 고백을 하는 사람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새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계명을 지키는 것은 성령의 역사이지 나의 힘과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각처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은 어떻게 합니까?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바울을 위하여 생명이라도 내어 놓으려고 한 것입니다. 눈이라도 빼어 주려고 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장에서 루디아 같은 경우에도 주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서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입니다. 그러자 바울의 일행을 자기 집에 맞아들이기 위하여 온 가족이 예수 믿는 자가 되어 집에 머물 수 있게 배려합니다.

이런 새 계명은 오늘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계명을 지키자고 해서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지금도 예수님께서 새 계명을 자기 백성들에게 적용시켜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마치 빛이 어둠에 비치듯이 새 계명이 밀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8절 후반부를 다시 봅니다. 이는 어둠이 지나가고 참 빛이 비침이라고 합니다. 참 빛이 비치는 것을 어둠이 막아낼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를 만나게 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거부할 수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9-11절을 봅니다. 빛 가운데 있다고 하면서 형제를 미워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직 어둠에 속하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형제를 미워하고 있다면 아직 어둠 가운데 행하며 갈 길을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한 것입니다. 사실 우리도 다 이 어둠 가운데 갇혀 지낸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따라서 친분을 유지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사람과 사귀면 세상에서 손해가 나고 핍박이 오는데도 그런 사귐을 피할 수가 없는 사귐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5절을 봅니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는 이기지 못하더라는 말로 번역이 됩니다. 어둠이 빛을 결코 이길 수가 없습니다. 베드로를 향하여 빛이 밀어붙이니 이방인의 집에도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새 계명이 오늘도 땅 끝까지 증거 되고 있기에 이해관계를 넘어서며 목숨도 버리는 일들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초기 영지주의는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어 있다는 이원론을 주장합니다. 그들은 육체는 원래 나쁜 것이므로 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영혼만 깨끗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합니다. 영혼이 깨끗하여 구원 받았으므로 육신은 어떠한 생활을 하여도 구원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논리가 사도 시대 이전부터 생겨나기 시작하여 복음을 훼손시키고 있었습니다. 구원파의 논리와 비슷한 것입니다.

기독교는 영혼과 육체는 하나라는 것입니다. 영육이 함께 있는 것이 온전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영혼이 없으면 육신이 없는 것이며, 육체가 없으면 영혼도 없다는 것입니다. 영육이 일체가 되어 사람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은 영적인 지식을 몸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에서 강조하는 것은 이것을 말합니다. 지식적으로 아는 것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머리로 아는 것을 몸으로 부대끼며 삶으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이며 사랑입니다. 예수님을 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우리의 삶 속에서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체험하며 교제하며 사귀면서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이고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요한과 베드로와 같이 예수님과 함께 생활한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죄를 만드는 공장입니다. 이를 자백하고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나는 깨끗하니 나에게 복을 주옵소서.’ 하면 그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적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나는 죄인이오니 주님께서 깨끗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것을 믿는 것이 바로 기독교인입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것도 역시 죄 많은 너희를 내가 사랑하였으니 너희들도 죄 많은 너희들 서로 서로 사랑하며 살 것을 하나님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에 우리도 사로잡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요한일서 2장의 일부를 읽고 묵상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주님의 뜻을 조금이나마 더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선악과를 먹은 우리들은 지혜가 부족하여 하나님의 뜻을 잘 알지 못합니다. 내 생각은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뜻을 올바로 분별할 수 있게 하옵소서. 주님이 믿음을 주시지 않으시면 미련하고 완고한 저희들은 주님의 말씀을 전혀 이해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게 하시려고 저희에게 예수님을 보내시고 믿음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알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우리의 교만한 마음을 억제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니고 있는 육신과 영혼이 함께 함으로 생겨나는 갈등에서 벗어나 쉼을 얻게 하시옵소서. 택하신 자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폐회찬송찬송가 458장 너희 마음에 슬픔이 가득할 때 입니다.

축도축도로 수요 예배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감동 감화 내주 역사 충만 교통하심이 오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 주신 은혜를 잊지 않고 표현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다짐하는 성도들의 머리 위에와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교회 위에와 삼채원 가정교회 위에와 이 나라 이 민족 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있을 지어다. 아멘

 

 

매일 매순간 주님 안에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하옵소서.

 

20211117일 수요 가정예배 순서

 

준비찬송 찬송가 443장 아침 햇살 비칠 때 - 다같이

 

개회찬송 찬송가 31장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 다같이

 

개회기도 예배 인도자

 

신앙고백 사도신경 - 다같이

 

찬송찬송가 445장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 다같이

 

대표기도 황보 송옥 사모

 

성경봉독요한일서 27~11

 

특별찬양 찬송가 218장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다 같이

 

말씀선포 새 계명 - 예배 인도자

 

폐회찬송 찬송가 458장 너희 마음에 슬픔이 가득할 때 - 다같이

 

축도 예배 인도자

 

 

광고 지금부터 기도하며 내년도 살림살이 계획을 잘 수립하여 우리의 생활이 주님의 뜻에 합당한 삶이 되게 하옵소서.